지난 주에 귀신들의 울부짖음과 자유를 찾은 한 사내의 사연이 있었던 쿠러쉬(거라사) 지방에 관해 알아보았다. 오늘은 쿠러쉬를 떠나 골란 고원으로 가 보자.
쿠러쉬에서 골란 고원을 관통하여 골란 고원의 가장 높은 산이 있는 Merom Golan이 있는 곳까지는 87번 도로를 타고 888번 지방도로, 98번, 91번 도로를 타고 가면 29마일에 50분 정도가 소요된다. 이 도로로 가는 도중에는 골란 고원의 특징을 잘 볼 수 있는 풍경들이 있다.
또 다른 길 하나는 쿠러쉬에서 789번 도로를 타고 갈릴리 바다에서 골란 고원으로 올라가는 코스인데 789번, 869번, 808번, 87번, 98번, 9881번 도로를 경유하여야 한다. 이 코스는 40마일로 1시간 가량이 소요된다. 이 코스는 거의 시리아 국경지대를 우측으로 바라보며 가는 도로로, 우리나라의 휴전선보다는 조금 못하지만 그래도 시리아와의 분쟁으로 인한 긴장감이 감돈다.
골란 고원은 상당히 넓은 고원이라 목적지로 향하는 길이 다를 수 있고 풍경도 다를 수 있겠다. 오늘 우리가 가고자 하는 목적지는 사실 골란 고원을 관통하여 헬몬 산(Helmon Mountain) 남쪽 자락까지이다.
헬몬 산 남쪽 기슭에 있는 마을인 Majdal al-Shams은 쿠러쉬에서 789번을 타고 서쪽으로 진행하다가 92번, 888번, 91번을 지나 978번 도로를 타고 주행하면 약 1시간 8분 걸린다. 거리는 38마일이다. 겨울에는 눈길을 지나는 경우도 있고 목적지에 다다르면 헬몬 산의 웅장한 설산을 만날 수 있다.
또 다른 코스로 쿠러쉬에서 789번(9마일), 98번(42마일) 도로를 지나는 길이다. 목적지까지는 1시간 20분 이상 걸리지만 이스라엘 군 레이더 기지 앞에서 시리아 자유의 마을과 유엔 마을을 볼 수 있고 멀리 다마스커스를 바라보며 기도할 수 있는 시간을 가질 수 있어 좋다.
오늘날의 골란 고원
누가 말하기를 골란 고원은 곤란 한 문제가 많아서 골란이라는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 사람들의 말처럼 해발 800m-1000m가 되는 골란 고원은 시리아와의 국경지대이기에 어느 지역보다 전방이라는 냄새가 난다. 사실 갈릴리 호수 북동쪽, 지금의 엔게브키브츠에서 상류 요단강까지 1967년 6월 6일 전쟁 이전에는 시리아 땅이었다. 그래서 그런지 유난히 지뢰밭이 곳곳에 눈에 띈다. 노란색 삼각형 표지와 철조망이 있는 곳은 어김없이 지뢰 지대이다.
1967년 6월 5일부터 6일간 벌어진 이스라엘과 시리아의 전쟁에서 이스라엘은 바산의 암소 지대인 이곳을 점령하게 되었다. 남부길이 50 마일, 동서 길이가 10마일쯤 되는 이 고원 지대에 이스라엘의 정예부대가 밀집되어 있다.
갈릴리 북동쪽에서 87번 도로를 타고 올라가면 황량한 고원 지대가 나타난다. 최전방답게 탱크부대와 레이더 기지가 곳곳마다 보인다. 해발-202m인 갈릴리 바다에서 해발 800m로 올라오면 건기인 여름에도 시원함을 맛볼 수 있고 우기인 겨울에는 눈이 쌓여 있을 때도 있다.
6일 전쟁과 골란 고원
기왕 골란 고원까지 올라왔으니 6일 전쟁에 대해 간단히 알아보자. 전쟁은 1967년 6월 5일에 일어났고 6월 10일에 끝났다. 남쪽의 이집트, 동쪽의 요르단, 북쪽의 시리아가 연합해 이스라엘을 침공한 전쟁이다. 이스라엘은 독립 전쟁 때부터 (1948년) 항상 전쟁에 대하여 대비하여 왔다고 볼 수 있는데 시리아 쪽에 첩자를 침투시켜 최고위층과 사귐을 가지게 한 후 전쟁 발발시 이 첩자는 중요한 정보를 이스라엘로 보내어 이스라엘이 전쟁에 승리하도록 만든다.
전쟁 첫날 이집트, 요르단, 시리아 공군이 격파되었고 이스라엘은 시나이 반도 가자지구를 이집트로부터, 요단 서안지구를 요르단으로부터(동 예루살렘 포함), 골란 고원을 시리아로부터 차지하였다.
이집트 군은 7개 사단이 궤멸되고 탱크 600-700대가 부수어졌으며 100대가 포획되었다. 444대의 이집트 공군기가 박살나고 16개의 비행장이 파괴되었다. 이집트 비행사 350명 중 100명이 첫 공습에 사망하였다. 시리아 군은 유카리툽스 라는 암호명의 이스라엘 공군의 공습을 받게 되었다. 이 암호는 이스라엘 첩자가 이스라엘 군에 보낸 것으로 유카리나무 밑에 시리아 벙커가 있으니 폭격하라는 암호이다.
결국 시리아는 대패하고 다마스커스 앞 40km 지점까지 밀리게 된다. 이 전쟁으로 이스라엘은 영토가 2만7천 평방미터로 늘어났다.
전쟁이 끝난지 50년이 되어간다. 하지만 갈릴리 물 분쟁으로 시작되었다는 이 전쟁은 아직도 끝나지 않았다. 시리아와의 골란 고원 반환 문제로 이 지역은 매우 곤란한 지역이 되었다. 40여 년 동안 이스라엘은 이 지역에 정착촌을 개발하였고 약 5만 명의 유대인들이 골란 고원에서 농업과 목축을 하며 살고 있는 것이다. 미국과 이스라엘과 시리아 사이에 골란 고원 철수와 배상에 관한 협상이 진행 중이지만 아직도 적대국가로서 총을 겨누고 있는 형편이다.
쿠네트라 마을이 보이는 전망대에 도착하여 우측으로 유엔 마을과 풍력발전소도 보고 철조망 건너 시리아 마을과 멀리 다마스커스를 바라본다. 좌측으로는 헬몬 산의 웅장한 모습이 보이는데 겨울에는 눈 덮여 있는 아름다운 설원을 감상할 수 있다. ‘과실이 많은 땅’이라는 골란의 이름답게 이곳에서는 소위 고랭지 과일을 많이 재배하고 있다.
성경에 나오는 골란 고원 그리고 사도 바울
이스라엘에서 소비되는 사과가 기후관계로 이곳에서 거의 생산되어진다. 상수리나무도 부지기수다. 과연 과실이 많은 땅이다. 고대에는 목축이 성행하였고(시22:12, 암 4:1, 신32;14) 백향목이 우거진 지대였으며(사2:13, 겔27:6, 스11: 2), 바산 왕 옥이 모세의 백성과의 싸움에서 대패하였다.(민21:32-35,신3:1-7)
골란을 오를 때마다 바산의 암소들을 떠올리는데 암소들은 주로 남쪽지대에서 목축이 되고 있다. 순례객들은 중앙 도로를 타고 서북쪽으로 방향이 잡아가기에 남쪽으로는 갈 수 있는 기회가 드물다.
골란 고원을 거의 빠져나갈 무렵에 사울이 주님을 만났던 대로를 지나게 된다.(행9:3) 시리아와의 도로가 끊어진 지점에서 잠깐 버스에서 내려 사울이 주님을 만나는 모습을 상상해 보면 좋겠다.
2017년 1월 올해는 지난 시간과 다르게 시리아의 내전으로 인한 아픔이 더욱 깊어지는 해이다. 골란 고원은 어쩌면 내전으로 인해 안전한 것처럼 보이지만 언젠가 다시 시리아와 이스라엘은 싸우게 될 것이다.
곤란한 땅이 축복과 화해의 땅으로 변하는 모습을 생각하며 이 땅을 놓고 주님께 기도해 본다. “주님! 사울이 바울이 되듯이 골란 고원이 평화 고원이 되게 하여 주소서.”
골란 고원의 평화는 이스라엘의 평화이고 중동의 평화이고 세계의 평화이다. 우리 모두는 평화를 위해 기도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