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종 연애 팁에 기웃거릴 수 있으나 그대로 취하기는 어려운' 크리스천 청춘 남녀들을 위한, 김재욱 작가의 '솔직 담백한 돌직구'입니다. 4년 전 나온 자신의 책 <연애는 다큐다(국제제자훈련원)>를 기초로, 연애가 갑갑한 모든 싱글들에게 진지하게 건네는 조언, 함께 들어보시죠. -편집자 주
과거에 불신자를 만나 지금까지 살고 있는 크리스천이나, 불신자와 연애를 해서 결혼을 고려중인 젊은이와 그 부모라면, 고민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 바로 이 문제일 것이다.
크리스천 배우자를 원했지만, 여러 이유로 불신자와 결혼한 이들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배우자의 신앙 문제를 함부로 말하기 어려운 것은, 배우자와 믿음이 달라 고민인 크리스천들에게 비수처럼 들릴 수 있기 때문이다. 그들에게는 가족과 끝내 다른 길로 가서 다음 세상에서는 영영 만나지 못한다는 경고가 될 수 있고, 불신자를 택한 자신들을 정죄한다고 오해할 수도 있다.
불신 배우자에게는 계속 듣도록 전하되 바른 복음과 정확한 변증을 통해 온유하게 전해야 하고, 교회 생활보다는 가족들과 가정에 더 충실한 모습을 보이며 끝없는 사랑을 주는 것이 좋을 것이다. 오래 참음을 바탕으로 너무 강요하지는 말아야 하지만, 정말 가끔은 눈물로 진심을 담아 함께 천국에서 영원히 살자고 간곡히 당부해야 한다.
또한 믿으려다가도 요즘 교회의 물질주의와 기복신앙 등 부정적인 모습에 뒤로 물러설 수 있으니, 나부터 정상적이고 상식적인 신앙인이 되어야 한다. 그리고 소망을 잃지 말아야 한다.
"오 아내여, 네가 네 남편을 구원할지 어찌 알 수 있으리요? 오 남자여, 네가 네 아내를 구원할지 어찌 알 수 있으리요(고전 7:16)?"
아직 결혼 전인 젊은이들에게는 꼭 이 문제에 신중할 것을 당부하고 싶다. 배우자와의 문제는 요행을 바랄 일이 아니고, 말로 합의할 사안도 아니다. 물론 이상한 단체들이 하듯이 억지로라도 같은 신앙끼리 만나야 한다는 차원이 아니다. 모든 것은 자연스럽고 정상적인 과정을 통해야 한다. 그것이 하나님의 뜻이다.
대개 불신자와 결혼을 반대할 때 이 구절을 성경적 근거를 제시한다(고후 6:14 上). "너희는 믿지 않는 자들과 더불어 공평하지 않게 멍에를 같이 메지 말라."
본디 멍에란 그 자체로도 짐인데, 그것을 하나님을 거부하는 사람과 같이 진다는 것은 본인 자신에게 얼마나 힘든 일이겠는가. 믿지 않는 사람과 짐을 함께 지려면 더 참아야 하고, 더 양보하며 희생해야 한다. 벙어리와 귀머거리 노릇을 해야 할 때도 있다.
요즘 청년들은 교회에 또래 집단도 별로 없을 뿐 아니라, 종교의 자유가 있는데 왜 꼭 믿는 사람과 결혼해야 하는지 잘 모를 정도로 믿음도 자유분방하다. 그래서 다 잔소리로 듣겠지만 이는 매우 중요한 문제이다. 그러니 결혼을 앞둔 사람은 다음 사항들을 꼭 주의 깊게 고민하고 바른 판단을 하면 좋겠다.
1. 나는 구원받았는가?
구원받은 사람은 불신자와 종착역이 다른 사람이다. 어차피 다른 곳으로 갈 사람들이 백 년 아니라 천 년 해로한들 무슨 의미가 있을까.... 먼저 자신이 구원을 정확히 받고 나면, 배우자 선택 문제는 고민이 필요없을 만큼 명료해질 수 있다.
2. 왜 신앙인을 찾는지 스스로 점검하라.
교회 문화가 익숙해서, 부모님이 반대해서, 교회 다니면 술 담배를 덜하니까, 종교 문제로 싸우기 싫어서..., 이런 이유로 신앙인을 찾는 것은 아닌지, 자신을 돌아봐야 한다. 자기가 편해서, 자기한테 맞춰주길 원해서, 기독교인을 찾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가정은 하나님의 선물이고, 교회보다 먼저 세워진 공동체이다. 이 원리에 부합해 함께 하나님을 섬기려는 궁극적이고 장기적인 의도가 본인에게 있어야 한다.
3. 교회 출석 약속을 쉽게 믿지 말라.
교회에 나간다고 다 크리스천은 아니지만 그나마 지키는 사람은 매우 드물다. 선거 전에는 무슨 공약인들 못하겠는가. 하늘의 별도 달도 따줄 것 같은 연애 시절에 하는 말은, 각서를 쓰고 혈서를 써도 말처럼 되는 것이 아니다. 이런 약속을 하는 사람을 선택하는 심리는 약속을 믿어서라기보다, 불신자지만 결혼하고 싶은 사람의 자기 합리화일 수 있다.
4. 믿음을 갖게 한 뒤에 결혼하라.
약속이 아니라 스스로 믿음을 갖고 구원과 성경에 관심을 보이며, 최소한 자기 가정을 한 믿음으로 유지하겠다는 개념은 있어야 한다. 이 과정도 위장할 수는 있지만, 내가 구원받은 사람이라면 대화를 통해 충분히 진위를 알 수 있다.
5. 그러나 바리새인 같은 횡포를 부리지 말라.
상대방은 신앙이 없는데 나는 기독교인인 것이 무슨 벼슬은 아니다. 오히려 상대방이 갑이고 내가 을이 되는 것이다. 불신자는 신자를 핍박할 수밖에 없다. 이것을 견디는 것이 그 사람을 감당하는 바른 자세이다. 믿음이 없다고 정죄하고, 말이 안 통한다고 제쳐두고.... 바리새인이 특권의식으로 이방인들을 정죄한 것과 같은 관점을 지니면 안 된다. 그 사람은 당신을 통해 기독교와 하나님을 읽는다는 것을 잊어선 안 된다.
6. 그래도 해야겠다면 어쩔 수 없다.
하나님은 사람의 자유의지를 꺾지 않으시고, 어떤 결정이든 존중하신다. 심지어 하나님을 거부하고 지옥에 가는 결정도 억지로 막지 않으신다. 그것이 존귀한 인격체의 기본 전제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불신자와 굳이 하겠다면 그것도 막을 수 없다. 그러나 어떤 선택이든 대가는 항상 따른다. 그 뒤로는 가시밭길을 걷겠다는 각오가 있어야 한다. 이런 경우에 부모는, 자녀가 머지 않은 날에 상대방을 전도하는 전화위복을 꿈꾸는 수밖에 없다.
세상 사람은 만나지도 말고 기독교인끼리만 뭉치자는 것이 아니다. 결혼 자체를 하나님이 창조하신 것이니,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면서 스스로도 행복해야 진짜 행복이다. 한 사람을 더 전도하고 그 사람과 함께 믿음의 자녀를 낳고 하는 것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이다.
결혼 적령기의 청년은 물론, 중고등학생까지 이런 개념을 잘 가르쳐야 행복한 인생을 설계할 수 있다. 행복이란 단순히 잘 먹고 잘 사는 것이 아니고, 지지고 볶아도 하나님 안에서 몸부림치는 것이다. 이 험한 세상을 하나님도 없이 어떻게 지나겠다는 것인가?
결혼은 둘이 마주 보는 것이 아니라 한 곳을 바라보는 것이라 하고, 한 배를 탔다고도 표현한다. 그런데 같은 배를 타고 다른 곳을 보며 어떻게 정상적으로 살 수 있을까? 그런 부부는 결국 하나님 아닌 다른 것을 함께 바라보게 될 것이다. 이 문제로 고민하고 기도하는 기혼, 미혼의 모든 이들에게, 하나님의 위로와 함께 말씀 안에서의 해답이 있기를 바란다.
김재욱 작가
<연애는 다큐다(국제제자훈련원)>
<내가 왜 믿어야 하죠?(생명의말씀사)> 외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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