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버나움으로 가는 길
갈릴리 바다 서안 중심 도시 티베리아스에서 90번 도로를 타고 갈릴리 북서 해안을 타고 올라가다 보면 기노사로를 지나 갈릴리 바다를 둘러 골란 고원으로 올라가는 87번 도로를 만난다. 이 도로를 타고 오병이어 기적 기념교회와 베드로 수위권 교회가 있는 타브하를 지나면 요단강 상류가 갈릴리 바다와 만나는 지점에 이르기 전에 카파르나움(Capernaum), 우리에겐 가버나움으로 잘 알려진 고대 유적지를 만난다. 이곳에서 베드로의 고향 벳세다와 고라신은 삼각형 모양을 띠고 있으며 반경 2마일 안에 있다.
예수님 당시의 가버나움
헤롯 대왕의 두 아들이 북부 갈릴리를 나누어 통치하던 시절 가버나움에서 동쪽으로 2.5마일쯤 떨어진 곳에 상류 요단강이 흐르고 그 요단강을 경계로 헤롯 안티파스(서쪽)와 헤롯 빌립(동쪽)의 영지가 나누어졌다. 그래서 가버나움은 국경 지대의 주요 대로에 있었고 사람들의 왕래가 많이 있었으며 로마의 세관(막2:14)이 있어서 국경을 지나는 물품이나 사람들에 대한 세금을 징수하기도 했다. 뿐만 아니라 해변 길을 통하여 갈릴리 바다를 끼고 골란고원 쪽으로 올라가는 중요한 대상로와 군대 이동로였다고 보여진다. 예수님 당시 갈릴리 바다에는 10곳의 포구가 있었는데 그중 가버나움이 가장 번성한 포구였다고 한다. 그래서 유대인들이 많이 거주하였고 가장 큰 유대교 회당(눅7:5)이 있었다.
갈릴리 바다에서 첫 사역을 시작하신 예수님은 이곳 “나훔의 아들 The son of Naum”이라는 지명(위로의 마을이라는 뜻도 있다)을 가진 가버나움에서 사셨다.(마4:13) 당시 이 지역은 스불론과 납달리 지경으로 이방인들과 유대 두 지파가 섞여서 살았던 곳이며 이방 문화와 이방세력이 더 강하였던 지역이었다.
훈련과 파송의 장소
주님은 흑암에 앉은 백성에게 빛으로 오신 것이다.(마4:15, 사9:12) 제자들은 이곳에서 부름을 받았고(마4:18-22, 9:9) 백부장의 하인이 고침을 받았다.(마8:5-13) 베드로 장모의 열병이 나았고(마8:14) 중풍병자가 일어나 걸어갔다.(마9:1-9, 요6:55-59) 세관원이었던 마태도 이 곳에서 부름을 받았다.(마9:9) 열두 해를 혈루증으로 앓던 여자가 나음을 입기도 하였다.(마9:18-25)
예수님의 제2의 고향(마4:13)이라고 불릴 정도로 예수님은 가버나움을 사랑하셨다. 주님께서 이곳에서 열두 제자를 훈련하시고 각 지역으로 파송하시며 제자들에게 권능을 주기도 하셨다. 아마 공생애 3년의 대부분을 가버나움을 중심으로 활동하셨으리라 본다. 반 세겔의 교훈(마17:24), 연자 맷돌의 교훈(마18:6)도 생각나게 한다.
가버나움의 교만
가버나움으로 생각할 수 있는 장소는 두 군데이다. 게네사렛 평야의 북동쪽 모퉁이에 있는 칸미니에(호르바트민님)는 유적의 모습이 아랍 사람들과 관련이 있어 우리가 생각하는 가버나움이 아니라 본다. 남은 하나는 텔 카파르나움이다. 이 유적은 앞선 칸미니에에서 북동쪽 연안을 따라 2.5마일쯤 떨어져 있고, 상류 요단강이 갈릴리 바다로 들어가는 지점에서 남서쪽으로 비슷한 거리만큼 떨어져 있다.
이곳의 해안 평야는 무척 좁지만 고대에는 요단강으로부터 아래로 가버나움을 지나 게네사렛 평야를 가로지르는 길이 메소포타미아 지역과 시리아 그리고 이스라엘을 지나 이집트까지 뻗어있는 큰 무역로와 연결되어 있어서 도시가 크게 형성되었으리라 본다. 게네사렛 평야 전역의 많은 샘들과 요단강의 물은 갈릴리 바다로 흘러가면서 물고기들이 많이 몰려서 어부들이 고기잡이하기에도 좋은 곳이다.
예수님의 행적도 이곳 유적물을 통하여 알 수 있게 되었다. 예수님이 이처럼 많이 사랑했던 도시였지만 교만으로 치닫던 가버나움은 고라신과 벳세다와 함께 책망을 받고(마11:21-24) 결국은 AD 746년에 지진으로 파괴되고 만다. 18세기까지 버려진 마을로 있던 가버나움이 다시 빛을 본 것은 1865년 윌슨이라는 사람에 의해 회당 발굴이 시작되면서이다. 이곳에서는 세베대의 아들 야고보라는 이름이 적힌 비문이 발견되기도 했다.
오늘날의 가버나움
주차장에서 가버나움 입구까지 가려면 500m-600m쯤 길을 가야 한다. 우기에는 야생겨자가 우측으로 노랗게 피어있다. 좌측으로는 야자수가 길게 그늘을 늘어뜨리고 있다. 입구에는 <나훔의 마을, 예수님의 마을>이라는 간판이 보인다. 우측 한편으로는 지진 때 파괴된 회당의 기둥과 머릿돌들을 볼 수 있다. 전면을 바라보면 베드로 교회가 현대식으로 잘 지어져 있다. 마치 배의 구조와 비슷하게 교회를 지어놓았다. 베드로 교회 안으로 들어가서 잠시 묵상 기도 후 가버나움에 관련된 성경구절을 읽은 다음 유리창 밑으로 보이는 베드로 집터 위에 세워진 초기 교회의 모습을 본다. 교회에서 내려와 교회 밑에 가서 베드로 집터를 보고 베드로의 집과 회당 사이에 있었던 집들을 바라본다.
아련히 중풍병자가 친구들에 의해 지붕에서 달려 내려오는 모습이 보인다. 중풍병자가 지붕에서 달려 내려올 수 있었던 것은 친구들의 헌신과 중풍병자의 믿음 때문이기도 하지만 당시 집 구조에 기인하기도 한다. 당시 집은 지붕을 쉽게 뚫을 수 있는 구조를 가지고 있었는데 이 지역의 집은 돌로 기둥을 세우고 지붕은 야자나무 가지를 엮어 물과 흙을 개어 만들었다 한다. 만든 후 얼마가 지나면 지붕은 단단해지는데 구멍을 뚫기는 쉬웠다고 한다.
앞으로 나아가 보자. 백색 대리석 회당이 보이는데 계단 입구에 서서 좌측 밑을 보면 현무암으로 된 기초석이 보인다. 이 기초는 바로 예수님 당시 회당의 기초이다. 지금 보이는 현 회당은 비잔틴 시대인 4세기에 지어진 것이다.
가버나움의 교훈
3년 간 제자 교육과 파송으로 하나님의 나라를 확장하셨던 주님의 사역을 다시 생각할 수 있는 곳이다. 주님은 고라신, 벳세다, 가버나움 등 세 도시를 삼각형으로 연결한 반경 10리 안에서 생명을 심으셨고, 주님은 생명이기에 작은 곳에서 시작하셨지만 복음은 흐르고 흘러 전 세계에 전파된 것이다. 교회의 크고 작음이 문제가 아니다. 직분도 높고 낮음이 없다. 가정도 부하고 가난한 것이 문제가 아니다. 생명의 복음을 가지고 있느냐가 문제인 것이다. 이 생명이 있다면 천하를 움직이는 힘을 소유하게 된 것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