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5년간 한국선교는 세계교회가 놀랄 정도의 성장했다. 이러한 성장은 분명 구속사(救贖史)를 이루어 가시는 하나님께서 한국교회를 사용하신 놀랍고 특별한 축복이며, 또한 선교지의 장애와 서구선교사의 상황적 제한성을 돌파하는 한국인 선교사의 불굴의 개척정신으로 이룬 결과라 말할 수 있다.
이런 놀라운 발전과 성과와 함께 선교이해당사자들 사이에서는 한국선교가 중대 기로에 서 있다고 말하기도 한다. 현재의 한국선교의 위기를 맞아 위기타계를 위한 한국교회, 선교사, 선교학자들의 자기성찰과 반성, 연구와 개발(Research & Development)에 대한 노력이 높아지는 것은 매우 바람직한 현상이라 하겠다. '연구' 는 어떤 활동에서 드러나는 문제들이나 현상들에 대해 조사 분석하여 어떻게 대처, 변화, 응용할지를 추구하는 노력이라면 '개발'은 그 연구 결과를 가지고 새로운 정책이나 전략들을 만들어내고, 그것으로 경쟁력을 높여가는 활동을 말한다. 최근 교단 선교부, KWMA, KWMF, KWMC(한인세계선교협의회), 그리고 GMTC 같은 기관들을 중심으로 한국선교의 반성과 혁신을 통한 한국형 선교모델 개발운동이 일어나고 있는 일은 매우 고무적이라 하겠다.
이제부터 연구자는 앞에서 논의한 한국선교의 4대 문제점 해결을 위한 제언을 하고자 한다.
첫째, 한국사회와 한국교회의 성장주의와 성과주의의 선교지 이식 문제이다.
70-80년대 미국에서 교회성장학이 한국에 들어온 이래 한국교회 목회자 그리고 선교사들에게 '성장'(Growth)은 최고의 가치가 되었다. 한국선교 현장도 지난 35년 간 '성장' 에 초점이 맞추어져 왔다. 이제 성장주의와 성과주의의 패러다임의 수정이 필요한 시점이 되었다. 성과와 성장주의적 패러다임의 선교는 돈과 건물이 필수적이기 때문에 궁극적으로 한국교회에 심한 부담이 되는 선교일 수밖에 없다. 성과주의 선교는 선교의 본질을 변질시키고, 이미 선교지 여러 곳에서 일어나고 있는 현지인과 갈등의 소지를 일으킬 수밖에 없다.
한국선교의 성장주의와 성과주의의 문제해결은 선교 당사자들의 선교에 대한 올바른 성경적 이해와 가시적 성과가 나타나지 않는 선교활동은 실패라는 미국식 실용주의적 태도를 내려놓는 뼈아픈 회개와 자기반성을 해야 한다. 성과주의는 가시적인 성과를 중시한다. 한 예로 선교지에 후원교회의 이름을 딴 이상한 교회이름을 지닌 선교지 교회들이 적지 않다.
성장과 성과주의로 인해 성장이 늦고 성과를 빨리 내기 어려운 개척선교지역에는 가지 않으려는 경향으로 나타나 선교사 재배치가 시급한 것이 한국선교의 현실이다. 그동안 한국교회, 선교단체들이 빠른 열매와 가시적 성과를 볼 수 있는 지역으로 선교사들을 파송하고 자신들의 세력을 확장하기 위한 곳으로 파송해왔다. 바울은 베드로와 선교지를 분할하여 바울은 이방으로 베드로는 유대인을 대상으로 복음을 전한 것을 보게 된다. 바울은 "또 내가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르는 곳에는 복음을 전하지 않기를 힘썼노니 이는 남의 터 위에 건축하지 아니하려 함이라" 는 선교원칙을 갖고 있었다(롬15:20절). 연구자는 상호의존적이며 좋은 협력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KWMA(39개 교단과 217개 선교단체를 회원으로 갖고 있는), KWMC, KWMF 가 선교사 배치전략을 포함하여 성장 및 성과 주의적 선교문제를 주도적으로 해 나갈 것을 제안하다. 경쟁과 중복투자를 피하기 위해 초임선교사를 미전도 지역으로 파송하거나, 이미 파송된 선교사들은 현재의 복음화 지역에서 미전도 지역으로 재배치하는 방법이 있을 수 있다.
둘째, 네비우스(Nevius) 선교원리 불이행의 문제이다.
한국교회가 하나님이 허락하신 물질적 축복으로 선교지에 많은 교회를 세운 것은 좋은 일이다. 하지만 "네 보물이 있는 그곳에는 네 마음도 있느니라"(마6:21) 는 말씀에 비추어 볼 때, 현지교인들의 희생적 헌신이나 물질적 참여 없이 선교지교회가 선교사가 본국에서 가져온 물질로 세워지는 것은 성경적이지도 않고 바람직하지도 않다. 한국선교의 선교지에서의 교회개척 방식은 재고되어야 마땅하다. 네비우스 자립정책을 통해 자립교회의 아름다운 전통을 가진 한국교회가 선교지 도처에서 물량주의적 선교 때문에 비난받고 있는 현실은 아니러니 그 자체이다.
1934년 출판된 미 북장로교의 『한국선교 50년 사(史)』에서 해리 로즈(Harry Rodes) 는 "네비우스 방법 때문에 한국교회가 성장한 것인가, 아니면 한국교회가 성장하는 단계에 있었기 때문에 그 방법의 수용이 가능해진 것인가?" 라는 질문을 던졌다. 이어서 그는 급속한 교회 성장이 일어나기 전에 네비우스 방법이 도입되었기 때문에, 네비우스 방법이 한국교회 성장의 원인이 되었다고 결론을 내렸다. 한국교회는 선교정책면에서 초기부터 선교사들이 네비우스 원리를 적용했다. 자치. 자전. 자립의 원칙은 오늘날 선교에서도 매우 중요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한국선교에서 이러한 좋은 정책이 적용되지 않고 있는 것은 반드시 시정되어야 한다.네비우스 원리는 파송교회 혹은 선교사들이 중심이 되는 선교에서 현지인들이 중심이 되는 선교(nationals-centered missions)으로의 패러다임 전환을 이루어 선교의 토착화를 목표로 한다. 네비우스 원리는 한국에서 그 결실을 보았고 한국교회는 이 원리를 도입하여 자치, 자립. 자전적인 한국인이 중심 되는 교회가 되었다. 이제부터 한국선교가 돈으로 가시적 성과를 네비우스 원리를 철저히 적용함으로 현지교회로 스스로 전도하고, 스스로 경영하고, 스스로 쓸 것을 공급하는 자립적 토착교회(self-reliable indigenized church)를 만들어 갈 것을 제언한다. 한국교회에 성공적으로 적용된 네비우스 원리. 최윤식 목사가 주장한 것 같이 2028년 한국교회의 재정이 반 토막이 날 경우 돈에 의존하는 돈 선교는 불가능하게 된다. 1980년대 말 IMF 위기는 국가적 위기 뿐 아니라 한국선교의 위기였다. 한국선교는 선교현장에서 삼자정책을 묵묵히 실천하거나 교육을 통하여 현지교회가 삼자정책을 재생산하도록 도울 필요가 있다. 선교비 축소시대에 청지기적 선교개념을 고취할 필요가 있다.
아니러니컬한 것은 설립 초기부터 자립하는 교회로 건강하게 성장해 온 한국교회가 진작 선교지에서는 자립하는 교회들을 세우는 것이 아니라 물질 의존적 교회를 양산하고 있다는 점이다. 선교사와 한국교회가 안타까운 마음이나 선한 의도로 제공하는 도움이 건강한 자립교회 설립을 가로막거나 지체시킬 수 있다. 현지교인들로 외부지원을 의지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십일조와 헌금을 하도록 가르쳐서 그 수입으로 교회의 재정을 책임지게 하는 것은 성경적이며 한국교회역사에서 입증된 선교방법이다. 이제부터라도 한국선교사는 선교지교의 자립을 염두에 두고서 다양한 자립의 방법을 강구할 수 있을 것이다. 선교사는 선교지의 여러 여건과 상황을 잘 연구하여 현지에 맞는 자립방안을 강구해야 한다. 예컨대, 중국선교사 네비우스는 미국 뉴 잉글랜드산 사과와 배를 산동지역에 수입, 보급하여 교인들의 소득 증대를 꾀했다. 한국의 대구 지역에서 사역했던 안의와 선교사(James E. Adams)도 개량종 사과묘목을 미국에서 가져와 교인들에게 보급하여 자립의 기반을 마련해 준 것은 시사하는 바가 많다.
자립교회 설립은 선교의 중요한 목표이어야 한다. 선교지 교인이 가난하기 때문에 자립할 수 없고, 가난하기 때문에 헌금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 선교사는 결코 자립교회를 세우지 못하게 된다. 성경적으로 볼 때 현지교회가 헌금하지 않기 때문에 그들은 더 가난해진다. 하나님은 가난 중에도 생활비 전부를 드렸던 과부(눅21:1-3)와 극한 가난 속에서도 힘에 지나도록 풍성한 헌금을 드렸던 마게도냐 교회(고후8:1-5)를 축복하셨다. 선교사가 하나님의 축복이 선교지에서 일어날 수 있는 기회를 막아서는 안 된다.
이런 점에서 한국교회의 선교역사만 잘 연구해도, 선교지에서 많은 시행착오를 줄일 수 있다고 본다.
셋째, 교계와 선교계의 분열과 과다경쟁의 문제이다.
지난 35년의 한국선교의 성장은 어떤 면에서 교단, 선교단체들, 개 교회들의 '경쟁적' 선교사 파송의 결과로 볼 수 있다. 이런 경쟁적 선교는 빠른 가시적 성과를 보고자 했고 결국 한국선교에서의 중복투자, 특정지역에 대한 선교사 쏠림 현상을 결과를 낳았다. 한국교회는 선교사 파송을 지나치게 강조하는 바람에 전략과 정책을 배제한 채 파송단체나 교단의 이해관계, 경쟁 구도 속에서 선교사를 보낸 측면이 있는데 이 때문에 중복투자와 선교사 쏠림 현상 등은 고질적 문제로 지적돼왔다. 한국교회의 개 교회주의와 개 단체 위주의 성향 때문에 선교사들 간의 협력이 약하다는 지적이 꾸준히 제기되고 있다.
130년 전 우리나라에 들어온 선교사들도 처음엔 대도시에서 경쟁적으로 복음을 전했지만, 효율적인 선교를 위해 지역을 나눠 사역을 감당했던 역사가 있다. 한국에 온 선교사들의 강한 장점은 선교사들 간의 협력선교였다는 점이다. 한국에 온 선교사들 간에 협력이 가능할 수 있었던 것은 한국에 온 선교사들 모두가 교파주의와 선교사 자신들의 공로주의에 물들지 않았기 때문이다. 선교사들은 협의체를 구성하고 '선교지역 분할 정책' 을 사용하여 한국의 방방곡곡에 복음이 전해지는 축복을 누리게 했다.
선교의 궁극적 목표는 특정 교단, 특정 선교단체의 성장이나 발전에 있지 않고 하나님의 나라 확장에 있다. 동반자 관계를 갖기 위해서는 선교이해당사자들 간의 경쟁심을 내려놓아야 한다. 중복투자를 피하고, 함께 할 수 있는 일을 찾아가면서 선교적인 시너지를 내도록 하는 것이 이제 한국교회와 선교단체가 꼭 해결해야 할 일이다.
분열과 과다경쟁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전략적인 선교를 위해 선교지마다 선교사들의 협의체가 구성돼야 한다는 의견이 대두되고 있다. KWMA 한정국 사무총장은 "우리는 그 동안의 한국선교가 많은 부분에서 한국사회와 교회의 구조적 문제에서 비롯된 성장주의 및 성과주의 영향으로 가시적 물량주의 선교를 해왔음을 인정하고 이를 극복하기 위해 단체마다 그러한 경향을 감시하고 중재할 수 있는 제도와 선교정책을 수립할 필요가 있다" 고 말했다. 한 총장은 "선교정책의 강제력을 실행할 조직, 조직을 견제할 제도가 필요하다"며 "KWMA의 회원단체들이 협의체를 구성해 비교적 장기적인 리더십 체제를 구축하고, 회원단체들의 협약을 감독할 제도를 갖추는 것도 한 방법"이라고 제안했다.
넷째, 문화이식적 선교문제이다.
문화이식 선교 가운데는 좋은 요소들도 있다. 예를 들면 2014년 7월14일 용인 Acts 비전빌리지에서 일주일간 진행된 한국세계선교협의회(KWMA) 제6차 세계선교전략회의(NCOWE)에서 조명순 선교사(한국형선교개발 원장, NCOWE VI 광범위 리서치팀)가 1백여 명의 목회자 및 선교사를 대상으로 한국 자신학에 관한 설문을 실시한 결과 한국 자신학 특유의 내용으로 한인선교사가 선교지에서 바로 사용하가능한 요소들로 새벽기도가(73.3%), 심방(55.8%), 효 사상(53.5%), 삼자원리(25.6%), 성경공부(20.9%), 가난극복(20.9%) 등으로 나타났다. 이외 초기한국교회가 사용했던 날 연보, 통성기도, 사경회, 성경암송, 성미(誠米)제도 등은 한국에 온 서구 선교사들도 감탄할 만큼 한국교회의 좋은 문화였다. 날 연보제와 성미제도는 한국교회의 '자급'(self-support)의지를 그대로 반영한 것이었다. 한국 신자들이 토착 전도인의 생활을 돕기 위해 교회에 쌀을 바쳤고, 교회 건물을 짓는데 '날 연보'를 통해 노동력을 제공했다. 선교사가 사용한 '날 연보' 는 '자전'을 '성미'는 '자립'을 가능하게 했다. 초대 한국교회에서 돈이나 물질이 아닌 시간을 바치는 '연보행위'를 '날 연보'(Day Offering)라 불렀다. '날 연보' 로 바친 시간은 '하나님의 시간' 이기 때문에 그 시간에는 세상일을 해서는 안 되고 '하나님의 일'을 하는데 주로 전도, 교회 건축하는 일에 참여하였다. 선교사들은 이 같은 한국교회의 '날 연보' 제도에 깊은 감명을 받은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한국선교에 의해 선교지에 세워질 토착교회는 서구의 기독교와 한국의 교회 사이에서 이들과 '연결되면서도 구분되는' (continuus et separatus) 교회이어야 한다. 토착교회는 현지인들의 문화적 요소를 기독교적으로 해석하고 수용하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형성되어야 한다. 서구 선교사들도 놀라고 감탄했던 초기 한국교회의 '토착화된 교회' 신앙과 모습은 한국교회의 성격을 형성하고 성장하는데 중요한 요인이 되었는데 선교의 위기를 맞고 있는 한국선교 이해 당사자들이 이 방식을 깊이 고려해 볼 필요가 있다.
선교사의 자민족우월주의 혹은 자문화우월주의(ethnocentrism)는 선교에서 제1의 걸림돌이 되는 요소이다. 한국선교가 선교지에서 교파주의를 물려주어서는 안 된다. 일부 한인 선교사들이 선교지에서 한국교회 지교 회를 세우는 일이 있다. 또 선교지에 신학교를 교파마다 세워 현지에 교파를 만드는 것은 자기중심적 선교의 예들 가운데 하나라 하겠다.
한국선교가 선교 현지문화와 관습에 적절한 상황화된 선교방식을 통해 토착화된 교회가 세워지도록 배려할 필요가 있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반드시 기억할 사항이 있다.
"1972년 선교학계에 혜성같이 등장한 상황화(常況化. contextualization)는 꼭 필요한 것임에도 불구하고 또한 위험한 신학적 작업이다. 만약 상황화가 과(過)할 경우 혼합주의(syncretism) 로 빠질 가능성이 대단히 높고 하나님 중심이 아니라 인간이 중심이 되는 신학이 될 위험성이 있다. 또한 상황화가 약(弱)할 경우 단일 문화적 태도(mono-cultural viewpoint)로 상황(문화) 의 차이를 고려함이 없이 일방적으로 말씀을 전했던 19 세기의 서구선교사들이 범했던 실수를 재현할 수밖에 없다. 상황화의 생명은 철저히 성경적이면서 동시에 상황적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VI. 결론
한국교회 없는 한국선교 없듯이 한국선교 없는 한국교회도 없다. 한국선교는 한국교회역사와 함께 했고 한국교회의 성장은 한국선교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주었다. 선교는 교회부흥의 열매라는 관점에서 볼 때 최근의 한국교회의 침체는 중장기적으로 한국선교에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한국교회와 함께 한국선교가 위기를 맞고 있다는 점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공감한다. 선교이해 당사자들 사이에 문제의식이 높아져가고 있으며 또 서구 선교계와 선교지 교회에서의 한국선교에 대한 비판도 커져가고 있는 상황이다.
한국선교가 지난 35년의 선교를 통해 경험한 시행착오들에 대해 성경신학적 차원의 자기반성과 성찰을 하고, 위기를 불러온 이슈들에 대한 구체적인 연구와 대책을 마련한다면 한국선교는 말할 것도 없고 한국교회는 다시 한 번 구속사를 이루어 가시는 하나님의 도구로 소중하게 쓰임을 받을 것이 분명하다.
한국선교가 위기를 겪고 있는 작금, 교단과 선교단체의 분열과 과다경쟁이라는 부정적 면을 극복하고 연합된 사역을 통해 하나님의 나라를 확장하기 위해서 교단, KWMA, KWMF, KWMC 의 회원단체(교단. 선교기관)의 지도자 및 구성원들의 성숙된 자기 비움, 청지기의식, 협력의식을 간절히 기대한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