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공부가 교회에서 있을 때마다 가장 인기 있는 간식은 역시 빵이다. 곰보빵도 있고, 앙꼬 빵도 있지만 나는 하얀 크림이 들어있는 빵이 제일 반갑다. 왜 그런지 가만히 생각해보니 어릴 때에 먹었던 빵 때문인 것을 알게 되었다.
내가 어릴 때 살 던 집 앞에 작은 구멍가게가 있었다. 그 구멍가게에서 내가 유일하게 사먹는 것이 “삼립빵”이었다. 10원 하던 삼립빵은 나에게 늘 기쁨을 주었다. 그 빵을 사서 봉지를 뜯으면 빵 두 개가 가운데 하얀 크림을 두고 서로 붙어 있었는데, 그 크림이 얼마나 맛이 있었던지 봉지를 열면서 이전보다 크림이 더 들어있기를 늘 소원 하곤 했다. 하지만 그 빵에 크림은 늘 그만큼만 중앙에 몰려 있었던 것이다. 가장 고귀한 빵 중앙에 있던 크림을 맛있게 먹는 기쁨을 두 배로 얻기 위하여 빵 가장자리부터 먹어 들어가다가 크림이 있는 중간에 가서는 속도를 늦추며 아껴서 먹었던 기억이 있다.
수 십 년을 지난 지금, 가만히 내 자신을 보니 아직도 그 타령을 하고 있는 것을 알게 되어 얼마나 웃었는지 모른다. 이제는 빵을 몇 개도 살 수 있고, 아니면 아예 크림만 사서 내가 원하는 대로 빵에 얹어 먹을 수도 있지만, 아직도 빵 포장을 열 때마다 크림이 많이 있기를 바라고, 아직도 가장자리부터 먹어가는 내 자신을 보게 된다. 어릴 때 습관과 기억이 얼마나 중요한 지 다시 한 번 깨닫게 되는 것이다.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면서 늘 기억해야 할 것은 “첫 사랑”이라고 생각한다. 예수님을 만나 하나님을 처음 사랑하게 된 그 때이다. 그것을 잊고 산다면 그야말로 앙꼬 없는 빵이고, 크림 없는 빵이 되고 만다.
믿음생활을 할 때에 열정이 회복된다는 뜻이 무엇인가? 그것은 나의 죄를 회개하고 주님 앞에 무릎을 꿇으며 나의 인생에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한 그 마음이 회복 된다는 뜻이 아닌가? 예수님을 처음 만난 그 때로 돌아간다는 것이고, 그렇게 살고자 한다는 뜻이다. 그런데 나 스스로를 돌아보면 처음 믿었을 때의 감격을 잊고 살아 갈 때가 많았다. 믿음으로 산다는 것이 머리로 깨달아 신학교 박사가 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그 감격의 맛으로 살아간다는 것을 잘 알면서도 말이다.
맛을 잃은 신앙생활이 되고, 맛을 잃은 교회생활이 되며, 맛을 잃은 영혼이 된다면 큰 문제가 아닌가? 그런데 그러한 가운데 사는 사람들이 많다는데 놀라게 된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너희는 여호와의 선하심을 맛보아 알지어다 그에게 피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 너희 성도들아 여호와를 경외하라 그를 경외하는 자에게는 부족함이 없도다” (시편 34편 8-9절)라고 하신다.
나는 맛이 없어진 신앙생활을 하고 있지는 않은가? 겨우 지탱하는 믿음생활은 아닌가? 삼립빵 신앙으로 살아가야 한다. 처음 먹은 그 감격으로 살아갈 때에 흔들리지도, 혼란하지도, 넘어지지도 않기 때문이다.
나는 계속해서 하얀 크림빵을 좋아하며 먹을 것이다. 나에게 어릴 때 먹었던 삼립빵 만한 것이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때 먹은 것만 한 빵은 여태껏 없었다. 처음 먹었던 그 맛이 가장 좋았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하나님의 은혜는 맛이 바뀌지 않는다. 늘 그 자리에 그 맛으로 나를 사랑하시고 인도하시니 감사를 드릴 수밖에 없다. 그 감격을 늘 기억하기 위하여 오늘도 무릎을 꿇고 기도하며, 하나님의 말씀을 전한다.
삼립빵 신앙인가? 아니면 예수님이 아닌 다른 것에 입맛을 적셔서 은혜의 맛을 잊어버리지는 않았는가? 하나님은 우리들에게 맛보아 알게 된 하나님의 사랑 안에 거하며, 그 은혜로 모든 영양분을 공급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을 입으라고 오늘도 말씀하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