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해를 보내며 나는 한해를 잘 살았는가? 하는 마음과 오는 새해는 어떤 해가 될 것인가를 기대하니 희비의 교차가 큰 것을 느낍니다. 그러면서 하나님이 쓰셨던 것은 분명한데, 왜 결과가 좋지 않을까? 을 생각해 보니 이런 말이 생각났습니다. "인간에게 일어날 수 있는 가장 불행한 일은, 그가 준비도 되기 전에 성공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쓰시는 사람들에게 예외 없이 나타나는 현상이 은사입니다. 그 은사가 다 잘못된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준비되지 않은 자에게 은사는 불행인 것 같습니다. 일찍 성공이 찾아온다는 것은 어쩌면 준비되지 않는 사람들에게 찾아오는 은사와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요셉이 어린 시절에 받았던 특별한 은사는 꿈꾸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요셉은 자신에게 주어진 은사를 제대로 사용하지 못함으로 인하여서 형들의 시기와 질투의 대상이 됩니다. 그래서 그는 길고 긴 연단과 준비의 과정을 거쳐야 했습니다. 이렇듯 준비되지 않은 사람들에게 성공은 금방 과거의 것이 되고 마는 것입니다. 지금의 성공이 얼마를 갈지 모르지만, 하나님께서 더 이상 쓰시지 않는 성공은 불행한 것입니다. 자신이 과거의 사람이라는 증거는, 누군가를 시기하고 질투할 때, 다른 사람을 쓰시는 하나님의 계획을 축복하지 못하게 될 때, 우리는 이미 과거의 사람이 되었다는 증거인 것입니다.
사울왕은 하나님께서 택하신 사람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버리셨을 때, 그는 시기와 질투로 눈이 멀었습니다. 버리셨다는 것이 그에게 더 이상 기회가 없었다는 의미는 아니었습니다. 그럼에도 그는 끝까지 하나님께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 다윗에게 기름을 부으신 이후에도 20년이나 왕 노릇을 합니다. 그러나 그는 불행한 자리에서, 자신의 자리를 지켰을 뿐입니다. 오늘 새벽은 두려운 마음으로 묵상하게 됩니다. 과거의 사람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 성공보다는 준비를 꿈꾸는 사람이 되어야겠다는 것, 나를 쓰심에 감사함과 누군가를 쓰심을 진심으로 기뻐하는 사람이 되겠다는 것입니다.
성공한 자의 불행은 더 이상 배우려 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바라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과거의 성공에 머무시는 분이 아닙니다, 지금도 강력하게 움직이시며 새로운 변화의 역사를 만들어 가시는 분이십니다. 지금 기도를 해도 교회가 가야할 길이 잘 보이지 않습니다. 세상을 설득하고 변화시킬 방법도 잘 보이지 않습니다. 그러나 길이 보이지 않는다고, 하나님의 길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단지 우리가 알지 못할 뿐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더욱 겸손하게 배움과 기다림의 광야로 나가야 합니다. 과거의 사람과 과거의 교회가 아니라, 미래의 사람이 되기 위해서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