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임사체험(Near Death Experience)을 한 사람들, 소위 죽었다가 깨어난 자들이 있습니다. 그들 중에는 지옥을 체험한 사람도 있지만, 많은 사람들이 잊을 수 없는 것은 빛이라는 존재에 대한 만남과 자신의 지난날에 대한 파노라마와 같은 회상입니다. 완벽한 사랑과 이해와 위로가 가득 찬 존재를 만나는데, 대체로 사람들은 그 존재 때문에 천상에 더 머물러 있기를 원한다고 합니다.
그러나 이 모든 영적 체험, 임사체험보다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깊은 체험은 하나님의 보좌체험입니다. 이는 우주의 중심부에 들어가는 일이며, 성 삼위일체를 체험하는 사건이기도 합니다. 사도 요한은 모든 존재의 수도인 천국의 중심에서 하나님 아버지의 보좌를 보게 됩니다. 보좌 앞에는 등불이 되셔서 빛나는 성령님이 계시며, 아울러 죽임 당하신 어린양 예수 그리스도께서 계십니다. 이 보좌 앞에서 우리는 스랍 천사를 보게 되며, 이십 사 장로들의 보좌 또한 보게 됩니다.
요한 사도가 본 천상의 공동체는 나른한 안식에 거하는 것이 아닙니다. 평안한 정적으로 덮여있는 것도 아닙니다. 보좌에 앉으신 하나님과 어린양을 향하여 네 생물과 이십 사 장로와 모든 천군과 천사는 큰 음성으로 새 노래를 부릅니다. 하나님과 어린양 예수 그리스도를 향하여 영광을 돌리는 것입니다. 이 찬송은 보좌 가장 가까이에서 이십 사 장로들을 통하여 먼저 드려지는데, 구원받은 기쁨으로 나라와 제사장으로 삼으시고 땅에서 왕노릇하게 한 이유로 드려집니다. 보좌를 동심원으로 하여 생물과 장로들의 주변에서 수를 알 수 없는 많은 천사들이 찬송을 부릅니다. 더 밖에서는 하늘 위에 땅 위에 땅 아래에 그리고 바다 위의 모든 피조물이 영광을 돌립니다.
모든 피조물이 하나님 앞에서 드리는 찬송은 그러므로 하나님과 우리의 관계 속에서 없어지지 아니하는 예배의 축입니다. 설교는 없어질 것입니다. 예수님과 성령님이 우리와 함께 하시고 모든 진리가 드러날 것이기 때문입니다. 아픔의 제목을 가지고 간절하게 드리던 기도도 더 이상 존재하지 않을 것입니다. 모든 기도의 제목이 응답되어지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승리와 구원을 주신 하나님에게는 영원히 찬송하게 될 것입니다. 찬송은 선택이 아니라 의무라고 성경은 가르칩니다. “우리 하나님을 찬양하는 일이 선함이여 찬송하는 일이 아름답고 마땅하도다”(시 147:1). 찬송은 영원 세세토록 돌려야 합니다(계 5:13).
찬송은 우리 자신을 위하여도 필요합니다. 첫째는 사울 왕 시대처럼 찬송 중에 악령이 쫓겨나기 때문입니다(삼상 16:23). 둘째는 여호사밧 시대처럼 하나님께서 찬송 중에 대적을 물리치고 성도를 구원하시기 때문입니다(대하 20:22). 셋째는 옥중의 바울과 실라의 경우처럼 우리가 찬양할 때 매인 것이 풀리는 기적이 일어나기 때문입니다(행 16:25-26). 넷째는 다윗의 경우처럼 우리가 찬양할 때 주의 통치가 임하면서 우리를 세우시기 때문입니다(시 2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