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뉴스 추천도서] 참된 신학이란 무엇인가?
참된 신학이란 무엇인가
프란키스쿠스 유니우스 | 부흥과개혁사 | 302쪽
신학을 공부하면서 알게 된 놀라운 사실 하나는, 칼빈이 우리의 기독교 교리를 정립하고 개혁주의를 앞장서서 주장한 유일한 사람이 아니라는 것이다. 물론 우리는 칼빈의 신학과 <기독교 강요>를 통해 하나님에 대한 것과 경건과 믿음의 부요함에 대하여 큰 도움을 받았다. 그러나 칼빈을 연구할 때 지성사적 배경과 역사적 문맥에서 보면, 칼빈은 16-17세기 있는 위대한 신학자들 중 한 사람이며, 그의 신학은 이 시기에 있는 많은 믿음의 보물들 중 하나의 빛이라는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칼빈만이 개혁주의의 선구자이며 현재 개신교 교리 체계를 정립한 위대한 신학자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정통주의를 보면 칼빈은 동시대 인물들처럼 그가 처한 상황에서 논쟁적인 사건과 신학의 체계화를 위한 역할을 했을 뿐이지, 개혁주의 전통의 원형적인 설립자가 아니었다. 오히려 이 개혁파 정통주의 시대에는 칼빈을 뛰어넘는 위대한 신학자들이 있고 아름다운 믿음의 유산들이 펼쳐져 발굴되기를 기다리고 있다.
이 책은 그 정통주의 시대에 한 신학자인 '프란키스쿠스 유니우스(1545-1602)'가 쓴 <참된 신학이란 무엇인가>이다. 제목이 보여주는 것처럼 하나님이 존재하시기에 하나님의 지식으로 가득한 참된 신학이 있고, 반면 타락한 본성과 뒤틀린 이성을 가진 인간에 의해 발생하는 거짓 신학이 있다.
실제 우리 주변을 봐도 진리는 하나임에도 다양한 신학들이 존재하는데, 이것이 하나님을 향하는 것이라면 하나님이 주신 자유 아래서 복된 일일 것이다. 그러나 그 반대라면 우리의 판단력이 이기적이고 본성이 부패하여 발생하는 거짓 신학을 세우는 일이 될 것이다.
그리고 개혁파 정통주의에서 여러 신학자들은 하나님을 아는 지식을 기준으로 원형 신학과 모형 신학을 구분해 왔다. 쉬운 말로 표현하면 하나님 자신이 스스로를 아는 지식과 피조물이 하나님을 아는 지식으로 구분한 것이다. 이 책이 중요한 이유는 개혁파 신학에서 최초로 이 구분이 기록이 되어 당시 신학의 모델로서 다양하게 활용되었고, 개혁파 정통주의자들에게는 신학의 원리와 작업을 발전시키는 도구가 되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갖는 역사적으로 중요한 의미는, 이 책에 실린 빌렘 판 아셀트의 서문을 보니 이 구분은 대륙의 개혁주의 신학에 국한되지 않고, 존 오웬과 리차드 백스터 같은 영국 청교도들에게도 발견된다는 것이다. 특히 유니우스의 이 구분은 정통주의에서 보편적 논제가 되었으며 모든 체계적인 문헌에서 논의가 됐고, 근대에 이르기까지 합리주의 사상에 저항하며 신학 서론에서 결정적 역할을 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필자는 이 책이 우리 개신교에서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는 특징 세 가지를 소개하고자 한다. 첫째로는 참된 신학을 향한 열정을 불러일으킨다는 것이다. 저자는 신학의 기원과 본질, 형태와 부분을 논리적으로 풀어가는데 '그것은 존재하는가, 그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어떤 종류에 속하는가'와 같은 세 가지 주제를 갖고 아주 구체적으로 참된 신학에 대해 설명해 간다.
거짓 신학이라고 할 때, 우리는 그 이름만 들어도 어떤 의미의 신학인지 쉽게 파악할 수 있다. 요즘 뉴스에서 떠들어대는 사교(邪敎)를 보더라도, 이는 그릇된 교리로 사회를 병들게 하고 사람을 도덕적·정신적으로 타락하게 만드는 종교이다. 즉 거짓 신학이란 사교만큼은 아닐지라도 타락한 본성과 자신의 이익을 따라 움직이는 신학이고, 그 결과물은 성경에서 말하는 총체적인 구원과도 거리가 멀며, 자기함몰적인 죽음을 만들어내는 신학이다.
그래서 저자는 참된 신학의 존재를 인정하며, 거짓 신학에 대해 인간의 악한 본성으로 움직이는 통속적인 것과 미신적·물리적·정치적 신학으로 움직여지는 철학적 신학으로 구분한다. 즉 저자는 하나님이 존재하시기에 하나님이 드러나는 참된 신학이 있는데, 우리가 일생 동안 타락한 본성을 부인하고 세상의 정신을 거부하며 하나님의 영광을 향한 신학을 하도록 초청한다. 우리 안에 내장된 거짓된 씨앗이 발아되지 않도록 경계하고, 진리의 영을 인도를 받아 참된 신학의 길을 가도록 가르쳐 준다.
두 번째는 그리스도와의 연합을 강조하는 기독론을 볼 수 있다. 저자는 참된 신학의 구분 이후, 이것을 이 책이 갖는 고유성인 원형신학과 모형신학으로 이어간다. 이 원형신학은 하나님 자신 안에서 하나님의 신학이고, 하나님의 영원하고 본질적인 지혜이다. 이 말은 신적이고 불변적인 성격의 신학이고 고유한 의미에서의 신학이며 하나님의 무한한 지혜이고 신적 본질이다.
그리고 모형신학은 하나님이 인간 이해에 적응시킨 신학으로, 유니우스는 아리스토텔레스의 방법론(작용인 목적인 질료인 형상인)을 사용하여 이것을 설명한다. 그리고 이것을 두 개로 나누면 자체 안에서의 신학과 주체 안에서의 신학으로 구분할 수 있고, 세 종류로 나누면 그리스도로 이루어지는 연합의 신학과 하늘에 있는 복된 자들에게 주어지는 통찰의 신학, 그리고 땅에 있는 자들에게 베풀어지는 계시의 신학으로 구분된다.
여기서 저자는 원형적 신학이 모든 것의 샘이지만, 그리스도 안에 있는 모형적 신학은 공통의 저수지 또는 보관하는 그릇이라고 한다. 즉 그리스도와의 연합으로 이루어지는 기독론이 참된 신학의 본질에 있어 전제이고 접근법이다. 실제 그리스도는 우리가 신학과 신앙생활에 있어 우리가 따라야 할 모범이고 도달해야 될 목표이다. 그리고 그분의 말씀처럼 그리스도를 통해서만 아버지께로 갈 수 있고 아버지를 바르게 알 수 있다.
그래서 이 부분을 통해 우리의 신학은 결코 그리스도의 가르침과 삶을 분리해 진행될 수 없다는 것이다. 우리가 그리스도로 연합되어 충만할 때 주님이 원하시는 신학을 할 수 있고, 주님이 원하시는 삶을 살 수 있다. 목사가 신학교를 졸업했다고 되는 게 아니라 오늘도 예수와 연합되어 예수의 말씀과 정신으로 사는 사람이 목사이고, 성도 또한 단순히 교회를 다닌다 해서 성도가 아니라 예수의 보혈로 덮혀 성령으로 거듭나 그분과 하나 된 사람이 진정한 성도라는 것이다.
필자는 개인적으로 신학을 펼쳐감에 있어 저자가 원형과 모형을 구분하지만, 모형이 하나님을 향할 수 있는 접촉점을 연합의 신학으로 삼은 것이 감동이었다. 또한 이 연합의 신학이 오랜 기간 동안 연구돼야 할 중요한 주제라는 생각과 함께, 교회와 신자에게 이 주제가 얼마나 위로가 되고 힘이 되고 능력이 되는지, 한 편의 소책자나 논문을 쓰고 싶을 만큼 큰 은혜로 다가왔다.
많은 사람들은 쉽게 자기가 그리스도인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그렇게 말하는 기준이 무엇인가? 그리스도께서 하나님과 연합하신 것처럼, 우리가 주님과 하나가 된 증거가 있는가? 주님이 교회를 위해 희생한 것처럼, 우리에게도 그 십자가의 고난과 흔적을 지니고 있는가? 이 땅에 성육신하신 그리스도를 따르기보다, 조금의 헌신도 하지 않는 탈육신의 삶을 사는 게 우리가 아닌가? 그리스도로 가득해야 주님의 사람이 사람인데, 여전히 죽지 않으려는 나의 모습을 반성하게 된다.
세 번째는 피조물을 향한 하나님의 긍휼이다. 모형 신학은 그리스도의 신학과 통찰의 신학, 계시의 신학으로 나누는데, 마지막은 나그네 신학이라고도 부른다. 나그네는 본향을 향해 가는 길에 잠시 이 땅에 머물며 여행하는 사람이다. 이 땅은 죄로 물들어 늘 하나님을 대적하고, 죽음의 기운이 사자 같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 곳이다. 거짓 신학은 갈수록 많아져 사회에 악을 끼치고, 사람을 물 없는 웅덩이로 몰아가고 있다.
그러나 이런 무서운 땅에서도 하나님께서는 나그네들에게 성경을 주셔서, 예수님을 통해 하나님께 가는 길을 보여주셨다. 기독교는 다시 하나님께로 돌아가는 진리인데, 하나님께서는 그 나그네길에 선생이요 안내자요 이정표인 성경을 주셨다. 또한 보혜사 되시는 성령님께서 택하신 백성을 거듭나게 하시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셔서, 나그네 길에 기쁨과 희망을 주신다. 그러기에 우리는 나그네 신학을 통해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긍휼을 발견한다.
글을 마무리하며, 필자는 이 책을 읽기 전 책을 번역한 한병수 교수님을 만난 적이 있다. 교수님은 이 책에 대해 유니우스는 순교자적 마음으로 이 책을 썼다고 설명하셨고, 그의 영향력은 정통주의 시대에 광범위하고 결정적이었다는 말씀을 하셨다.
실제 책에는 그의 자서전이 포함되어 있는데, 그가 걸어갔던 여러 좁은 길들과 죽음의 위협들, 정치적 계략과 음모와 함정들 속에 고집과 정복의 욕망을 버리고 고뇌하며 연합이라는 보편 신학의 길을 걸어가는 순교자적인 모습을 볼 수 있다.
사람의 제일 되는 목적이 하나님의 영광이지만, 신학의 제일 되는 목적도 하나님의 영광이다. 그러나 현실을 보면 그 신학의 아름다운 기능이 상실되었다. 하나님께서는 신학을 통해 자신을 드러내시고 인간이 하나님 안에 거하여 하나님을 향유하도록 하셨고, 이어서 우리가 그 영광과 기쁨을 피조세계와 인류 안에 드러내게 하셨다. 그러나 인간의 탐욕스런 본성과 타락한 이성이 세상의 쾌락과 일시적인 팥죽을 손에 잡아 영원한 영광을 내던져 그 신학의 고유함이 희미해지고 있다.
이렇게 신학이 무분별하고 약해진 시대에, 정통주의 시대에서 최초로 원형과 모형을 분류하여 하나님을 바르게 알도록 도와주고 하나님을 향해 목마름을 가지게 하는 이 책은 생수와 같다. 그리하여 하나님을 향하는 우리의 신학이 더 정교해지고 거룩해지면, 우리의 마음 또한 더 순수해지길 바래본다.
정통주의 시대에는 귀한 믿음의 보물과 신학적 유산이 많이 담겨져 있으니, 우리에게 옛길을 가야 한다고 주장하시는 분들이 있다. 그러나 이에 대한 연구와 관심은 현저히 부족하여 아직도 그 유산은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데, 책을 통해 정통주의에 대한 관심이 일어나 우리의 교회와 사회와 가정에서 부패한 것을 도려내고, 성경과 진리에 합당하게 일치시켜 나가는 개혁의 물결이 일어나길 소망해 본다.
/방영민 목사
크리스찬북뉴스 편집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