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과 미움이 상반되는 표현으로 사용되듯이 사랑의 결과는 생명을 살리는 일로 이어져가고 미움의 결과는 죽이고 멸망시키는 것으로 끝을 냅니다. 본문 13, 14절은 아직도 사랑과 미움의 역사 속에 살고 있는 우리들을 향하여 말씀하고 계신 것입니다. 요한일서 3:9에 “하나님께로서 난 자마다 죄를 짓지 아니하나니 이는 하나님의 씨가 그의 속에 거함이요 저도 범죄치 못하는 것은 하나님께로서 났음이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은 참 신앙인과 거짓 신앙인을 구분할 수 있는 시금석(試金石)이 되고 있습니다.
하나님으로부터 거듭나게 하심을 입은 사람 즉, 새 생명으로 거듭난 사람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생명을 얻은 사람입니다. 하나님의 씨(예수 그리스도)가 그의 속에 거한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절대로 범죄할 수가 없습니다. 죄를 짓는 것은 또 다시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아야 하는 것이기 때문에 예수님을 모신 사람은 절대로 죄를 지을 수가 없습니다.
흔히 사회로부터 교회가 외면당하고 전도하면 배척당하는 이유는 무엇이겠습니까? 그것은 교회 다니는 사람들 중에서 예수님 이름 팔아 사기를 치거나 말활 수 없는 피해를 입히고 고통당하게 하는 일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신앙인격도, 양심도 없고 의리도 없으며 하나님으로부터 부여받은 직분을 아무렇게나 생각하고 행동은 옛날 죄악근성을 따라 마귀가 시키는대로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진실로 하나님께로 난 사람들이 아닌 것입니다.
그래서 요한일서 3:10에 하나님의 자녀들과 마귀의 자녀들이 나타나나니 무릇 의를 행치 아니하는 자나 또는 그 형제를 사랑치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께 속하지 않은 자라고 못 박아 놓으셨습니다.
12절에 보면 “가인 같이 하지 말라 저는 악한 자에게 속하여 그 아우를 죽였으니 어찐 연고로 죽였느뇨 자기의 행위는 악하고 그 아우의 행위는 의로움이니라”고 하십니다. 가인이 어떻게 했길래 가인처럼 하지 말라고 하십니까?
가인은 농사지은 것 가지고 속량하지 않고 하나님 앞에 저주받은 땅에서 난 것을 그대로 하나님 앞에 드렸습니다. 하나님이 받으실 수가 없었습니다. 아벨은 자기가 기른 양을 잡아 피를 흘림으로 속량하는 제사를 드리고 제물을 하나님 앞에 바쳤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열납하신 것입니다. 가인은 자신의 제물을 받지 않으신 이유를 자신에게서 찾아야 했음에도 그 아우가 하나님 앞에 열납되는 제사를 드린 일로 인해서 자기 제사가 거부당한 것처럼 악한 생각을 하고 동생을 쳐 죽이고 최초의 살인자가 되고 만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 예배가 상달되지 못하는 것은 자신에게 어떤 결함이 있거나 정성의 부족함이 있어서이지 상대방이 훌륭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가인이 악한 자에게 속하여 그의 근본이 벌써 마귀에게 사로잡혀 이성을 잃었고 분별력을 갖지 못했으니 옳고 그름을 알아차릴 수가 없었습니다. 가인의 행위가 악했고 아벨은 의로웠습니다. 악인이 의인을 죽인 것입니다.
본문 13절에서는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더라도 이상하게 여기지 말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세상은 악한 마귀가 공중권세를 잡고 불의와 죄악으로 지배하는 곳입니다. 가인이 하나님 앞에 의로웠던 아벨을 죽였듯이 이 세상에서 하나님을 잘 믿으려고 하면 할수록 마귀로부터 미움과 환란, 핍박을 당할 수밖에 없습니다. 예수님께서도 마태복음 5:11~12에 “나를 인하여 너희를 욕하고 핍박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거스려 모든 악한 말을 할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나니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큼이라 너희 전에 있던 선지자들을 이같이 핍박하였느니라”하셨습니다.
우리가 믿음이 좋아서 당하는 핍박은 감사할 수 있는 일이지만 우리의 생각과 말과 행동을 잘못해서 남들에게 피해와 고통을 주었기 때문에 그 실수한 죄값으로 당하는 행패를 팝박 받는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하나님이 모든 것을 아십니다. 자신이 잘못하여 맞을 짓을 해서 얻어 맞으면서 예수 믿는 이유로 핍박당하는 것처럼 위장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은혜 받았고 성령을 모셨다고 하면서도 믿음의 형제들을 진정으로 사랑치 아니하는 자는 아직도 사망에 사로잡혀 있는 존재, 즉 마귀 그늘에 사로잡힌 존재라고 14절에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미움이 자라나면 살인도 할 수 있습니다. 그 살인의 동기는 미움에서 시작됩니다. 그래서 15절에 “그 형제를 미워하는 자마다 살인하는 자니 살인하는 자마다 영생이 그 속에 거하지 아니하는 것을 너희가 아는 바라”고 합니다. 실제로 사람을 죽이지는 않았어도 그 마음속에 미움으로 살기(殺氣)가 채워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16절에 예수님이 우리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셨으니 우리가 이로써 사랑을 알고 형제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는 것이 마땅하다고 말씀하십니다. 사랑실천을 통한 생명운동은 해도 되고 안 해도 되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시고 하늘 영광의 보좌도 버리시면서 우리와 같은 육신을 입고 동정탄생으로 성육신(成肉身, Incarnation)해서 세상에 오셨습니다. 그분은 죄인들을 위하여 죄 없는 자기 목숨을 버리시기까지 구속을 위한 희생제물이 되어 주셨습니다. 그래서 그분이 십자가에서 흘리신 피와 또 빼앗기신 그 목숨이 그것으로 끝난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영원히 구속받을 수 있는 죄 값을 지불하신 다음에 아버지 하나님이 살리셨기 때문에 사랑실천을 통한 생명운동은 예수님이 본을 보여주신 것처럼 이루어져야 할 것입니다. 우리가 다른 영혼을 살리기 위해서 순교하는 일이 있을지라도 다른 생명을 살리는 성과 때문에 내 육체도 다시 살리셔서 예수님과 함께 영생복락을 누리게 해주신다는 본을 예수님이 보여주신 것입니다. 그러나 미움을 통하여 시작된 살인은 남을 죽였기 때문에 자기도 죽습니다.
요즘 뉴스가 참으로 기가 막힌 일들이 많습니다. 예전에 유영철이라는 사람이 열여섯 명을 죽이고 여섯 명을 불구자로 만들고 상처를 입혀 총 24명을 해쳤다고 했는데, 그후 그와 유사한 범죄를 저지른 사람이 태연스럽게 끌려 다니면서 현장검증 하는 것을 본 적도 있습니다. 이 사람들은 그저 잘 사는 사람이 밉고 세상이 미워서 그랬다는 것입니다.
자신의 육체가 건강하면 얼마든지 일해서 돈 벌어 살 수 있는 세상은 모든 사람에게 똑같은 상황으로 주어진 여건입니다. 그런데 남들은 부지런히 일하고 수고해서 밥 먹고 사는데 자기는 아무것도 안하고 남의 것을 그냥 빼앗아 가로채 먹으려 하다가 뜻대로 안되면 죽이는 못된 짓을 해놓고 세상이 미웠다고 말을 합니다. 잘사는 사람들이 미웠으면 잘사는 사람들을 해쳤어야 하는데 그는 가난한 사람들만 죽였습니다. 앞뒤가 안 맞는 말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처럼 이치에 맞지 않는 일들이 일어나는 세상에 살고 있습니다. 미움의 싹이 자라 다른 생명들을 이유없이 죽였습니다. 그리고 이제 자기 생명도 죽임을 당하게 됩니다.
오늘 우리는 우리 마음속에 누구를 미워하는 마음이 없는지 잘 살펴보아야 하겠습니다. 그것이 시작으로 미움의 싹이 자라나게 되면 살인까지 이어집니다. 그런즉 그런 사람은 천국에 갈 수 없다고 단언을 했습니다.
예수님이 우리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셨으니 이로써 우리가 참 사랑의 승리가 무엇인가를 깨달아야 합니다. 16절에서는 우리가 이로써 사랑을 알고 우리도 형제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는 것이 마땅하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다른 생명을 살리기 위해서 내 육신의 목숨을 투자할 수 있는 것은 내 속에 하나님의 씨(예수 그리스도)가 거하시기 때문이고 내가 하나님께로부터 거듭난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죽어서도 하나님이 예수님처럼 이 다음에 생명의 부활로 되살리셔서 예수님과 더불어 영원히 살게 해 주실 것이 믿어지기 때문에 우리는 다른 생명 살리는 운동을 위해서 내 목숨 투자할 각오도 가능할 수 있다는 얘기가 되는 것입니다.
17절에 도와줄 마음을 막는다는 것은 성령께서 그 사람 마음에 계시면서 아무개를 도와주라고 지시하시고 명령하시는데 그냥 거절하고 뿌리친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그 사람 속에는 하나님의 사랑이 없다는 것입니다.
18절 말씀은 말과 혀로 부담없는 사랑만 자꾸 할 것이 아니라 행함과 진실함으로 베푸는 사랑의 재물이 되어야 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사랑은 행함으로 희생이 크면 클수록 사랑의 농도가 더 진하고 뜨겁게 전달된다는 것입니다. 살리기 위한 생명 운동에 목숨을 버려도 하나님이 다시 살리실 보장을 예수님을 통해 보여 주셨습니다.
미움으로 시작되는 살인은 내가 괜히 미워해서 남을 죽이고 결국 그 죄값으로 나도 죽고 멸망해야 하는 비극을 장만하는 어리석음이 되고마는 것입니다. 여러분 마음속에 그 어느 누구에게도 미움을 갖지 마십시오. 그것은 자기를 죽이는 독약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절대로 누굴 미워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도리어 불쌍히 여기고 사랑하십시오. 그렇게 하면 그 영혼이 하나님 앞에 돌아올 날이 다가올 것입니다.
“사람이 친구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리면 이에서 더 큰 사랑이 없나니 너희가 나의 명하는 대로 행하면 곧 나의 친구라”(요15:13-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