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약성경에서는 구약성경에서와는 다르게 하나님의 관심이 다민족을 대상으로 하는 복음사역으로 구원의 역사를 펼쳐가심을 보게 된다. 무엇보다 구약성경에서는 “이방인”이나 “나그네”라는 단어가 이스라엘 민족이 아닌 다른 민족을 이야기 했다면 신약성경에서는 달리 복음의 대상이었던 불신자들을 “이방인” 혹은 “나그네”라고 부르고 있다. 우리는 이와 같이 신약에 들어와서 하나님의 관심이 구약에서와는 다르게 이스라엘 민족만이 아닌 “모든 민족과 종족과 방언과 백성”에게 전해질 복음사역 이였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신약성경에서도 예수님 당시에 우리가 구약에서 발견한 '게르'라고 불리는 이방인이란 뜻의 단어가 사용되었던 것을 보게 된다. 그러나 신약에 와서는 그 의미는 상당히 축소되어서 프로세프토(προσήλυτος)라는 용어로 사용되었는데 이것은 “유대교 개종자”를 부르는 말이었다.
우리가 알고 있는 것처럼 신약시대의 유대는 로마의 신민지 국가였다. 그래서 유대인들은 “이방인”이라는 단어를 자유롭게 사용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 이유는 바로 자신의 나라를 빼앗긴 사람들이 점령군을 가리켜 “이방인”이라고 부를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이방인이라는 프로세프토라는 용어를 종교적인 의미로 전환하여 사용하였는데 그 의미는 다른 종교나 사상을 받아 전환한 개종한 자를 뜻하는 의미였던 것이다.
또 신약성경에서 “나그네”를 지칭하는 단어로 파로이코스(πάροχος)라는 단어가 사용되었다. 이 단어의 의미 또한 일차적으로는 외국인 혹은 외인을 지칭하는 단어이지만 그러나 이 단어는 나그네의 삶이 언제나 괴롭고 고통스러운 삶인 것처럼 때때로 다른 의미 즉, “고통”과 “외로움”을 의미하는 단어로 사용되기도 하였다. 무엇보다 예수님은 신약에서 나그네를 영접하는 자에게 하나님의 나라가 상속되어질 것이라는 말씀을 하시면서 나그네를 지칭하는 단어로 '제노스'라는 단어를 사용하셨다. 누가복음 10장 34절에서 말씀하신 강도 만난 자와 선한 사마리아인의 비유에서 사용하셨던 것을 보게 되는데 이 명령은 낯선 나그네를 돌보고 그들의 상처를 싸매고, 돌보아 주어야 할 실제적인 책임 즉, 다문화 목회와 선교의 책임감을 우리에게 알려주고 있는 중요한 가르침이기도 하다.
또한 외국인과 나그네의 의미가 에베소서 2장 19절부터는 새로운 의미로 사용하고 있는 것을 보게 된다. 지금까지의 “외국인”과 “나그네”의 의미가 타국인들을 지칭하는 단어였지만 에베소서에서는 “외국인”과 “나그네”의 의미가 하나님 나라의 시민이라는 새로운 의미로 사용되게 된 것이다. 이러한 표현은 하나님으로부터 창조된 이 땅에 모든 사람들이 비록 이 땅에서 나그네와 같은 삶을 살아가지만 본향인 하나님 나라에 속한 천국시민이라는 사실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신약성경에서 사용되었던 “이방인”과 “나그네”라는 단어의 의미를 통해서 우리는 하나님의 복음의 대상이 단지 특정 민족만이 아닌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모든 민족을 대상으로 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이러한 사실을 요한계시록 14장 6절과 7절에서도 “모든 민족과 종족과 방언과 백성에게 전할 영원한 복음”이라고 말함으로써 하나님의 구원의 계획은 이 땅에 살고 있는 모든 민족과 종족이 된다는 사실을 말해 주고 있다.
우리는 신약에 들어서 하나님의 아들인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건으로 시작된 복음 사역과 돌봄 사역의 대상은 구약에서와 달리 그 대상이 “나그네들”과 “이방인”을 포함한 모든 민족과 종족으로 하는 다문화 목회와 선교사역이었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