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편118:22~23절 말씀을 인용해서 예수님이 하신 말씀의 의도를 잘 깨달아야 합니다. 건축자들에게 필요한 돌은 주춧돌입니다. 이것을 건축자들이 알아보지 못하고 오히려 쓸모없다고 내어버리게 될 때 그 집은 머릿돌을 제공하신 이의 뜻대로 지어질 수가 없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교회 지도자들, 제사장들과 선지자들, 율법사들, 서기관, 바리새인들을 동원해서 이스라엘에게 은혜계약을 성취해 주시고자 예수 그리스도라는 머릿돌을 주셨음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은 그 머릿돌의 가치와 용도를 알아보지 못하고 영문밖에 갖다 버려 은혜계약의 성취라는 놀라운 축복을 스스로 거부해 버리고 말았습니다.
1. 머릿돌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가치
만일 머릿돌로 주신 예수님이 누구신지 알아보았다면 이스라엘이 먼저 구원의 은혜를 받고 세계선교의 본거지로 인류복음화의 주역이 되었을 것이지만 불행히도 그들은 이 돌을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첫 번째 건축자들은 이스라엘의 신앙지도자들이었습니다. 그들은 건축 기술자들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신령한 집, 영적교회를 세우는 건축자들로 이스라엘 선지자들과 제사장들, 장로들을 세우셨던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하나님께서 설계하시고 머릿돌도 제공해 주셨음에도 그 설계를 알아보지도 못하고 자기 멋대로 설계를 하고 그 돌의 본질과 용도와 가치를 알아보지 못했기 때문에 영문밖에 끌어내어 골고다 언덕에 갖다 내어던지고 말았습니다.
이 돌은 베드로전서 2:4~5에 “사람에게는 버린 바가 되었으나 하나님께는 택하심을 입은 보배로운 산 돌이신 예수에게 나아와 너희도 산 돌같이 신령한 집으로 세워지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기쁘게 받으실 신령한 제사를 드릴 거룩한 제사장이 될찌니라 ”했습니다. 이 말씀은 살아있는 돌인 예수 그리스도에게 나아와 신령한 집으로 세워지고 신령한 집을 짓는 거룩한 제사장이 되라는 말씀입니다.
이스라엘의 영적교회 건축자들은 예수님을 머릿돌도 알아보지 못하고 갖다 버림으로 이스라엘은 하나님 앞에 영적인 소망을 그르치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버려진 그 돌의 가치와 용도를 전세계에 택하신 자기백성들에게 알게 해주심이 오늘과 같아서 교회를 통하여 알게 해주시고 우리가 세계선교를 하는 것 또한 이 돌을 소개하는 복음을 전해온 것입니다. 이 돌은 살아있는 돌입니다.
“건축자의 버린 돌이 집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나니 이것은 주로 말미암아 된 것이요 우리 눈에 기이하도다”했습니다.
이스라엘만이 하나님의 은혜계약의 대상인 듯이 알고 있었습니다. 이방인에게는 하나님의 은혜계약에는 외인이요 세상에서 소망도 없고 하나님도 없는 자들인 것이 사실이었습니다. 에베소서 2:12에 “그 때에 너희는 그리스도 밖에 있었고 이스라엘 나라 밖의 사람이라 약속의 언약들에 대하여 외인이요 세상에서 소망이 없고 하나님도 없는 자이더니”했습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께서 그 돌을 주실 대상으로 정하셨습니다. 그들은 아브라함을 통하여 할례를 받음으로 남자들마다 육체의 표식을 가졌고 구별된 사람들이 되었습니다. 이 할례의 의미는 하나님이 약속하신 산 돌(Living Stone)을 줄 터이니 그 돌 위에 너의 영적인 영원하고 신령한 소망을 건축하라는 것입니다. 영원한 하늘나라 영생복락의 후사가 되도록 하라고 이스라엘에게만 허락된 돌이었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이 돌을 알아보지 못하고 버렸습니다.
여러분들도 교회는 다니고 있다 하더라도 예수 그리스도로 소개되고 있는 살아있는 돌을 바로 알아보지 못하는 무지 때문에 영적인 소망을 그르치고 있다는 것을 분명하게 깨달아야 합니다.
머릿돌을 내어버린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나라를 빼앗기게 된다(43절)고 합니다. 허락된 그 나라 이스라엘은 하늘나라의 길이 되고 진리가 되고, 생명이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알아보지 못하고, 믿지 않고, 예수 그리스도로 더불어 신령한 소망을 가꿀 줄 몰랐기 때문에 불행하게도 하늘나라를 허락할 수 없다는 말씀입니다.
원래는 이스라엘에게만 머릿돌을 주시기로 하셨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그것을 알아보지 못하고 갖다 버렸습니다. 하나님은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게 하신다고 하신 것은 이스라엘을 전적으로 버리지도 않으시고 이스라엘이나 이방인이나 예수 그리스도를 산 돌로 알아보고 그리스도를 바탕으로 신령한 성전을 짓고 성령을 받아서 영적인 소망만 가꾸는 백성이라면 하늘나라를 허락하신다는 것입니다. 이방인도 이스라엘도 예수 그리스도를 알아보고, 믿어지고, 회개하고, 신령한 소망을 목적으로 믿고 행하는 사람들에게 , 예수님을 모퉁이 돌로 머릿돌을 삼은 신앙건축가가 되기만 하면 하늘나라의 열매 맺는 백성으로 구원을 보장해 주시겠다는 약속이십니다.
2. 머릿돌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능력
이 돌이 세계만방에 소개되고 있습니다. 이 돌을 세계각국에 소개하기 위하여 수많은 사람들이 기도와 물질로 애를 쓰며 돕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 돌에 대한 가치를 바로 알아보고 믿어지고, 회개해서 그 돌 위에 자기 집을 건축하는 사람은 신령한 집을 지을 수 있어서 성령으로 하늘 소망에 결실할 가능성을 기대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많은 선교사들이 순교의 피를 흘리고, 교회마다 피와 땀을 흘리며 기도와 물질로 선교 뒷바라지를 하고 애를 써서 이 돌의 가치와 용도를 소망적인 복음으로 애타게 전달했음에도 불구하고 이 돌을 알아보지 못하고, 믿지 않고, 외면하며 사는 인생들의 결과는 어떠할지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이 돌 위에 떨어지는 자는 깨어지겠고 이 돌이 사람 위에 떨어지면 저를 가루로 만들어 흩으리라“하셨습니다.
이 돌은 건축자의 머릿돌이었습니다. 이것을 알아보고 신령한 소망에 믿음을 잘 건축하는 사람은 그 돌로 말미암아 영생 복락의 구원을 얻지만 그 돌의 가치를 알아볼만 하도록 증거하고 알려주었음에도 불구하고 무지와 불신앙으로 거부하며 발악하고 대적했다가 스스로 세상조건에 의지하고 자기 자신이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지내다가 어느날 갑자기 하나님의 심판으로 이 돌 위에 떨어지게 되는데 그 인생은 깨어져 박살나고 말 것입니다. 그 돌이 사람위에 떨어져도 가루가 되어 흩어진다고 하셨으나 그 인생의 심판은 반드시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피할 수 없는 결과를 맞이하고 만다는 것입니다.
사도행전7:52절 이하에 보면 스데반이 성령이 충만하여 설교를 했습니다. “의인이 오시리라 예고한 자들을 저희가 죽였고 이제 너희는 그 의인을 잡아준 자요 살인한 자가 되나니 너희가 천사의 전한 율법을 받고도 지키지 아니하였도다.”했을 때 저희가 이 말을 듣고 마음에 찔려했다고 되어있습니다. 이렇듯 마음에 가책을 느꼈음에도 그들은 회개할 생각은 않고 도리어 이를 갈며 돌을 던져 스데반을 죽이고 말았습니다.
이와 같이 대제사장과 서기관들이 예수님의 비유가 자기들을 가리켜 말씀하심인줄 깨달았음에도 그들은 예수님을 잡으려고 기회를 엿보더니 결국은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이고 말았습니다. 이들은 생명의 반석으로 소개되는 예수님, 산 돌이시며 보배로운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하고 온전히 알아들을 수 있도록 비유로 말씀하셨음에도 그들은 이 돌의 본질과 가치와 용도를 알아차리지도 못하고 영문 밖에서 깨뜨려 버렸습니다.
3. 머릿돌이신 예수 그리스도와 하나됨
이 돌에 붙어사는 이들은 구원을 얻고 심판에도 동참을 합니다. 이들은 이 돌의 움직임을 따라 함께합니다. 이 돌에 붙어살려면 성령의 충만함을 받아야 합니다.
요한복음 15:3~4에 보면 “너희는 내가 일러준 말로 이미 깨끗하였으니 내 안에 거하라 나도 너희 안에 거하리라”하셨습니다. 근본적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깨닫고 믿어지고, 철저히 회개해서 죄를 완전히 용서받은 자라야 예수님과 연합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깨끗하기만 하다고 산 돌인 예수님 곁에 있어도 붙어 살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접착제가 필요합니다. 그것은 말씀과 성령입니다. 말씀절대주의 신앙, 말씀에 붙잡혀서 말씀대로만 사는 믿음은 예수님께 붙어사는 자가 되고 성령이 그렇게 살려고 애쓰는 자를 예수님께 완전히 붙이는 역할을 하시기 때문에 이로 인해 예수님과 완전히 하나가 되어지는 삶을 살아가게 됩니다. 여러분들의 믿음이 예수 그리스도에게 붙어있음으로 그리스도의 사역에 동참하게 되며, 그 돌이 떨어져 부셔지는 일도 없을 것입니다. 이와 같이 예수 그리스도와 하나되어지는 믿음으로, 우리의 믿음은 가장 안전한 구원의 보장을 받을 수 있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