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강북의 변두리 미아동(북쪽)에서 자라던 저는 4학년 끝, 5학년으로 올라가기 전에, 중곡동(동쪽)으로 이사를 했습니다. 지금이야 그 거리가 그리 멀지 않지만, 어린 저에게는 굉장히 먼 곳으로 이사했다고 느꼈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아버지는 자신의 사업체를 갖게 되었다고 흐뭇해하셨을 것 같습니다. 그러나 저에게는 정들었던 친구들과 헤어지는 아련한 아픔으로 기억되고 있습니다. 더구나 저의 초등학교 3학년 같은 반 친구들은 반 편성 할 때 행정상 실수가 있어서, 우리 반 친구들만 4학년으로 그대로 올라갔습니다. 그러니까 2년 동안 한 반에서 공부하게 되었던 것이지요.
그 때 우리 반 친구들 중에서 저를 포함하여 네 명의 남자 녀석들이 4총사를 편성했습니다. 우리는 평생을 한 형제들처럼 함께 하자고 굳게 맹세했습니다. 그래서 학교에서 놀아도 우리 4총사는 똘똘 뭉쳤습니다. 운동회를 하든, 소풍을 가든, 피구 시합이나 닭싸움을 하든, 우리는 로보트가 해체했다가 다시결합하듯, 우리는 하나라고 느꼈습니다. 그런데 제가 이사를 가게 된 것입니다. 이사 간 동네에서 처음 며칠은 자전거도 빌려 타고(그 당시는 자전거를 대여해주는 곳이 인기), 도랑(작은 개천)에서 미꾸라지도 잡으면서 재미있게 지내는 듯 했지만, 일주일이 되지 않아서 저는 친구들이 보고 싶어졌습니다.
외로움을 느낀 것이지요. 친구들이 보고 싶은데, 갈 수가 없었습니다. 지금처럼 셀폰이 보급되지도 않은 때라서, 전화도 맘껏 할 수가 없었습니다. 친구들의 목소리도 듣기가 어려워졌습니다. 현실에서는 이제 곧 이사 간 지역의 새로운 학교(전학)에 가서, 5학년에 올라온 새 친구들을 사귀어야 했습니다. 그 당시(제가 4학년) 텔레비전 프로그램 중에서 <엄마 찾아 삼만리>라는 만화가 방영되고 있었는데, 저는 그 주제가를 즐겨 부르게 되었습니다. "아득한 바다 저 멀리, 산 설고 물길 설어도, 나는 찾아가리. 외로운 곳 삼만리......." 만화 속 주인공 마르코가 찾아가는 먼 길, 그 곳에 가면 보고 싶은 사람이 있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정들었던 친구들, 익숙했던 골목길, 학교 계단을 오르내리며 친구들과 다방구 게임도 하고, 수돗가에서 깔깔 대고 웃던 추억들이 아련한 추억으로 남았습니다. 몇 년 전 저는 한국을 방문했을 때, 제가 다니던 그 초등학교를 가 보았습니다. 학교 주변 지역은 재개발되어 고층 아파트들이 들어서서, 제가 살던 집 주변은 전혀 흔적을 찾아볼 수 없었지만, 초등학교만은 그 자리에, 그 모습 그대로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왜 아브라함에게 정들었던 고향, 친척 아비 집을 떠나라고 하셨을까?' 잠시 묵상에 빠졌던 저는 하나님의 깊은 뜻이 계셔서 그렇게 하셨음을 인정하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사람을 만나고 헤어지고, 사랑하고 정이 들고, 다시 이별의 아픔을 겪으면서 살아갑니다. 이런 과정을 겪으면서 하나님은 우리에게 여러 가지를 깨닫게 하시는 것 같습니다. 알파와 오메가(시작과 끝) 되시는 분은 하나님이시고, 만남과 이별을 통해서 서로 사랑해야 할 때가 있음을 알게 하시는 것 아닐까요?
이별이 없다면 우리는 지금 내 옆에 있는 사람의 소중함을 깨닫지 못할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믿음으로 떠났고, 하나님은 그에게 많은 복을 주셨는데, 그 중에 하나가 만남의 축복이었습니다. 지금 우리 손을 잡고 인도해주시는 분이 주님이시기에 이별의 슬픔 속에서도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