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고의 '지성'(知性)이라 불리는 이어령 박사(전 문화부 장관)가 다시 한 번 '영성'(靈性)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이 박사는 "영성이 없는 기독교는 하나의 복지단체, 혹은 윤리적 행위에 지나지 않는다. 그런 것은 굳이 기독교가 아니라도 누구나 할 수 있는 것들"이라며 "그런데도 많은 교회들이 '돌을 떡으로 만드는 일'에 관심을 둔다"고 했다.
그는 이날 구글 딥마인드가 개발해 얼마 전 이세돌 9단과 이른바 '세기의 대국'을 펼쳤던 인공지능 '알파고'(AlphaGo)를 예로 들며, 과학의 발전과 이로 인한 인간 존재의 가치를 역설했다.
이 박사는 "알파고와 같은 인공지능(AI)은 어떤 면에서 하나님과 같은 존재"라며 "과거엔 인간이 명령을 내리고 컴퓨터가 수행하는 형태였다면, 지금은 인공지능이 명령을 내리고 이를 인간이 수행한다. 그야말로 인간의 뇌와 같은 역할을 인공지능이 대신하고 있는 셈"이라고 했다.
이세돌 9단과 알파고의 대국은 단순히 그 결과를 넘어 인류로 하여금 인공지능이 가져올 미래를 고민하게 했다. 하지만 이 박사에 따르면, 그것은 미래가 아니라 이미 오늘의 현실이다. 구글의 안드로이드나 애플의 iOS와 같은 운영체제(OS)를 탑재한 스마트폰이 바로 그와 같은 인공지능이라는 게 이 박사의 통찰이다. 그리고 그 발전 속도는 "기하급수적"이라고 했다.
"가령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 연꽃이 15일 만에 연못의 반을 덮었다면, 이후 하루만 더 지나면 연못은 연꽃으로 모두 뒤덮이게 됩니다. 하지만 대개 인간은 연꽃이 연못의 반을 차지하는 데 걸린 시간, 즉 15일이 더 지나야 전부를 덮을 것이라고 생각하죠. 인공지능이 가져올 미래 역시 먼 훗날이 아닌, 어쩌면 눈앞에 와 있을 수 있습니다."
그는 "그런데 역설적이게도 인공지능이 발달하면 할수록 우리는 인간을 생각하게 된다. 인간이 하던 많은 일들을 인공지능이 대신하게 됐을 때 '과연 인간은 무얼 할 수 있느냐' 하는 것"이라며 "인공지능이 인간의 몸, 즉 지성을 능가할 수는 있어도 인간의 영, 곧 하나님이 흙에 불어넣으신 숨결은 결코 대체할 수 없다. 인간처럼 시와 소설을 쓸 수 없고, 무엇보다 신앙을 가질 수 없다"고 했다.
"최고의 지성이라 할지라도 사랑과 죽음에 대해 한 마디로 정의할 수 없을 겁니다. 뉴턴이 떨어지는 사과를 보고 만유 인력의 법칙을 발견했지만, 그 법칙을 거슬러 사과를 나무 위에 달리게 한 힘은 보지 못했죠. 우리는 그것을 보고 체험하고 느껴야 해요."
이 박사는 "지성과 영성은 마치 지렛대의 양 끝과 같아서, 한 쪽이 세지면 다른 쪽은 올라간다"며 "오늘날 인공지능으로 대표되는 과학, 곧 인간 육체의 힘이 크면 클수록 은총을 향한 영성의 힘은 더욱 높이 드러날 것이다. 그런 점에서 과학은 신앙과 대립하는 것이 아니라 신앙의 깊은 세계로 우리를 인도하는 통로가 될 수도 있을 것"이라고 역설했다.
특히 동성애와 관련, 이 박사는 "민감한 문제"라며, 성경 속 소돔의 멸망과 그 일이 일어나기 전 하나님과 아브라함의 대화를 예로 들어 그 답을 대신했다.
"아브라함은 소돔을 멸망시키시려는 하나님께 의인의 존재를 명분으로 그 뜻을 거두시기를 간청했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바로 인간을 향한 사랑 때문이었죠. 동성애를 지지하려는 게 아닙니다. 다만 기독교는 그런 사람들까지도 불쌍히 여겨야 한다는 점을 말하고 싶어서입니다. 우리는 소돔의 멸망만을 보지만, 그 전에 아브라함을 주목해야 해요. '심판하시는 하나님'은 이미 유대교에도 있었죠. 기독교가 전 세계로 퍼져 오늘에 이르게 된 건, 예수님을 통해 '사랑의 하나님' 또한 드러났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