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본 하나를 집사님께 선물로 받았습니다. 사무실 책상위에 올려놓고 세계 각 나라가 담겨진 지구본을 보면서 "세계는 넓다. 그리고 할일은 많다" 라고 외쳐보았습니다. 날마다의 생존의 문제에만 사로잡혀 정작 바라보아야 할 사명은 도외시하고 있지는 않은지 나 자신을 돌아다보면서 말입니다. 그런데 정말 사람은 "보는 것에 따라 마음의 크기를 결정된다."는 말이 맞는 것 같습니다. 인생의 크기는 마음의 크기와 정 비례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마음을 크게 만드는 것이 성공의 관건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마음을 크게 만드는 방법은 큰 것을 보게 만들고 큰 것을 보여주어야 합니다.
인식론 심리학자들은 연구를 통해 동일한 답을 얻었습니다. 사물의 존재여부는 인식의 여부로부터 시작된다는 것입니다. 원래부터 존재하는 사물이 있었다할지라도 사람이 인식하지 못하면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는다는 결론이었습니다. 그러나 인식되어지면 존재를 인정하는 것이 되고, 인식은 보게 될 때 만들어지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사람이 생각할 수 있는 한계치는 보이는 곳까지라는 말이 성립되는 것입니다. 창조적인 아이디어도 사실은 생각을 통해 인식한 것을 데이터 화 함으로 만들어지는 것에 불과합니다. 그런 이유로 무엇을 보느냐는 것은 대단히 중요한 이슈가 될 수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민족을 구속사의 중심으로 끌어들이면서 그들의 활동반경을 가나안땅으로 제한시키지는 않으셨습니다. 비록 생활의 본거지가 가나안땅이었지만 그들을 당시 세계문명의 중심지였던 이집트로 끌어들이셨습니다. 그곳에서 430년간 거하게 하면서 선진의 문명을 접하게 만들어 주셨습니다. 그러나 역사적으로 이스라엘은 세계열강의 강한 도전에서 자유롭지 못했습니다. 바벨론, 앗시리아, 페르시야, 마게도니아, 로마제국들의 침략과 포로생활로 이어지는 숱한 곤경을 겪었습니다. 그러나 그것도 큰 것을 보게 하시려는 하나님의 커다란 배려임을 깨달을 수 있게 됩니다.
현대를 일컬어 기술의 폭발적 향상시대라고 합니다. 과거 100년에 걸쳐 일어났던 기술향상이 요즘에는 몇 개월 단위로 이루어집니다. 이는 보는 것이 마음의 크기를 결정한다는 정설을 만들 수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의 자녀가 크고 넓은 것을 보았으면 좋겠습니다. 생존이 중요하다고 하지만 예수 믿는 신앙인들에게는 생존은 보장되었음을 확신했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보고자 하는 것이 생존이 아닌 사명이 되었으면 합니다. 자꾸 먹고 사는 것에 관련된 생존에만 집중하다 보면 마음이 좁아지게 되고 마음이 좁아지니까 하나님의 뜻도 놓쳐버리는 실수를 범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김병규 칼럼]보는 것이 자녀의 마음의 크기를 결정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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