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애틀 은혜장로교회(담임 최용주 목사) 선교팀은 지난달 8일부터 17일까지 서부 아프리카에 위치한 베냉과 토코를 방문해 말씀과 찬양으로 복음성회를 인도했다. 본지는 은혜장로교회 명화연 성도의 선교 기행문을 5회에 걸쳐 연재한다. -편집자 주-

로뎀나무 아래에 머무른 시간이었다. 연초부터 온 마음과 정성을 쏟았던 일이 어그러지고 아끼던 사람들과의 관계마저 꼬이고 부서지는 시간을 경험하며 '천국'이라는 단어만 들어도 눈물이 나는 시간을 보냈다. 나는 힘든 일이 있을 때마다 지금은 천국에 계시는 나를 길러주신 할머니가 보고 싶다. 이때도 할머니가 얼마나 보고싶었는지, 아무 근심도 걱정도 없는 나의 본향 천국이 얼마나 그리웠는지 모른다.

나는 한국에서 대학을 다닐 때부터 탈북자들을 섬기고 통일을 준비하는 일에 열심이셨던 부모님의 영향으로 북한 인권 운동을 시작했다. 서울대학교에 북한 인권 동아리를 만들고 북한인권법 통과를 위해 국회를 찾아가기도 하고 신문에 북한 인권과 통일에 관한 글을 써서 올리는 등 나름 학생으로서 북한 인권을 위해 할 수 있는 다양한 일에 참여했던 것 같다. 신랑을 따라 미국에 온지 얼마 되지 않아 UW에서 석사 과정을 시작하며 UW에도 비슷한 동아리를 만들어야 겠다는 생각이 들어 부족한 영어 실력으로 동아리 취지를 홍보하며 함께 할 사람들을 하나둘씩 모아 작은 모임을 시작했다.

동아리가 너무 빠른 시간 내에 성장했기 때문인지, 서로 전혀 모르던 사람들과 일을 했기 때문인지 여러 오해와 잡음이 생기기 시작했고 근거 없는 중상모략과 감성 섞인 비난이 오가는 것을 보며 나는 이렇게 계속 일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느꼈다. 최선을 다해도 일이 어그러질 수 있고 진심을 다해도 관계가 깨어질 수 있다는 것을 배운 쓰디 쓴 경험이었다. 이제 좋사오니 못난 종을 이만 취해달라는 엘리야의 기도가 나의 기도가 되었을 때 로뎀나무 아래 피하는 심정으로 은혜교회에서 떠나는 9박 10일의 서아프리카 선교 여행에 동참하기로 결정했다. 로뎀나무 아래에서 회복되고 새 소망을 선물로 받은 엘리야처럼 나는 베냉과 토고에서 비전을 회복하기를 간절히 바랐다. 베냉과 토고의 영혼들을 위해 일찍부터 기도로 준비하신 최용주목사님과 은혜교회 성도들께는 죄송하지만 나는 이렇게 다소 개인적인 목적을 위해 이 여행에 동참하지 않았나 싶다.

학생인 나는 선교여행에 동참하기 위해 기말고사를 두 주나 당겨서 치르고 시애틀을 떠나는 당일 아침까지 짐을 꾸려서 지친 몸과 마음을 비행기에 실었다. 마음이 절박하니 많은 것들을 계산하지 않았다. 마침 남편과 내가 함께 갈 비행기 표 값이 있었고, 그것이면 그만이었다. 하나님께서 보여주실 새 비전이 간절했다. 한치 앞도 모를 풍랑 속을 분투하며 헤엄치고 있는 듯했던 시기에 나는 버텨야 할 이유를 알고 싶었다. 모두 잊고 훌훌 털고 떠나버릴 것처럼 비행기에 오르고 나니 마음이 얼마나 편했는지 20시간이 넘는 비행 내내 자고 먹고를 반복하다 베냉에 밤 시간에 도착했는데 또 야식을 먹은 후 한바탕 숙면을 취했다. 함께 갔던 선교팀 식구들이 어쩜 그렇게 잘 먹고 잘 자냐고 혀를 내두를 정도로 여행 내내 나는 그렇게 심신의 안식(?)을 마음껏 누렸다.

 베냉 도착 후 선교팀과 처음으로 다 같이 모여서  예배를 드렸는데 그 때 들은 설교는 하나님께서 내게 주시는 말씀이었다. 창세기에 나오는 야곱의 삶에 관한 내용이었는데 '하나님이 사랑하시는 자에게도 시련과 고난이 닥치며, 이 같은 험난한 세월을 이겨낼 수 있도록 하나님은 소명과 약속을 주신다는 말씀이었다. 야곱은 고향을 떠나 14년 동안 외삼촌 라반에게 속아 노동착취를 당했는데 이국땅에서 피붙이에게 이용당하는 심정은 얼마나 암담했을까. 하지만 그가 가장 어려운 순간마다 하나님께서는 그에게 나타나 하나님께서 늘 함께 계시며 야곱의 자손을 하나님의 백성으로 삼아주시겠다는 벧엘의 약속을 환기시켜주셨다. 설교를 듣는 당시에는 몰랐지만 지나고 보니 이번 여행이 나와 신랑에게도 하나님께서 처음 우리 부부에게 주신 비전을 되새기게 해주신 시간이 된 것 같다.     

가지 죄악

"감사하지 않는 것, 불평하는 것, 베풀지 않는 것은 죄악이다." 억눌리고 가난한 베냉과 토고 사람들이 사는 모습을 보면서 머리를 떠나지 않은 생각이다. 가난한 나라에 가보면 우리 삶의 모든 염려와 걱정이 사치로 느껴진다던 말이 생각났다. 베냉과 토고는 서아프리카에 나란히 위치한 작은 나라로 베냉은 우리나라보다 살짝 크고 토고는 우리나라 절반 정도의 크기이다. 두 나라 모두 대부분의 아프리카 나라들과 같이 서구 열강의 식민지 시절을 경험했고 그 여파 때문인지 무척이나 가난했다. 아프리카 서안에 위치해 덥고 습한 기후임에도 수도 시설이 제대로 갖춰져 있지 않아 제대로 씻기 어렵고 전기도 잘 들어오지 않아 건물 안도 찜통 같은 곳이었다. 일반적인 가정에는 화장실이나 부엌이 제대로 갖춰져 있지 않고 토고 비자를 발급받는 베냉과 토고의 국경 지역에는 외국인을 위한 화장실조차 마련돼 있지 않았다. 현지 집회에서 아픈 곳에 손을 얹고 기도하라고 이야기했을 때 많은 사람들이 머리와 배에 손을 얹고 기도하는 모습이 보였는데 이러한 기후와 위생 환경을 보면 왜 이렇게 두통과 복통을 느끼는 사람이 많은지 이해가 될 것 같았다. 우리 선교팀에는 예순이 넘는 분이 많았는데 현재 베냉과 토고의 평균 수명은 60세도 되지 않는다.

예배 시간 아픈 곳에 손을 얹고 기도하라는 목사님 말씀에 한 소년이 한 손은 자기 머리 위에, 다른 한  손은 형제의 머리 위에 올린 채 기도하고 있다.
예배 시간 아픈 곳에 손을 얹고 기도하라는 목사님 말씀에 한 소년이 한 손은 자기 머리 위에, 다른 한 손은 형제의 머리 위에 올린 채 기도하고 있다.

차를 타고 다니다 보면 차가 설 때마다 도로에서 온갖 물건을 가지고 나와 파는 사람들이 차 옆으로 다가와 물건을 보여줬다. 어떤 사람은 어디에서 구한 것인지 해변에서 사용하는 거대한 튜브를 흔들고 어떤 사람은 볼펜, 또 어떤 사람은 신발을 흔드는데 물건들이 새것같이 보이지도 않고 종류도 다양하지 않았다. 어떤 사람은 심지어 어린 강아지 두 마리를 들고 흔들며 지나가는 차마다 보여줬는데 애견가 서지영 권사님은 그 장면을 보고 마음이 아파 그곳에서 시애틀로 강아지를 입양해 오실 뻔 했다. 이곳에서는 학교에 가야 할 나이의 친구들도 평일 낮에 잡다한 물건들을 팔려고 돌아다니고 있었다. 이 친구들은 꿈이 뭘까? <아프리카를 말한다>의 저자 류광철 대사는 아프리카 사람들이 운명에 순응적인 경향이 있으며 역사적으로 그래야만 살아남을 수 있었다고 했는데 정말이지 이곳 사람들은 큰 욕심 없이 주어진 환경을 받아들이며 하루하루를 그저 최선을 다해 사는 것 같았다.

특별히 베냉의 수상마을 간비에를 방문했을 때 그곳 사람들의 삶을 보며 감사하지 않는 것과 불평하는 것이 얼마나 큰 죄악인가 생각했다. 아프리카에서 유럽 국가들과의 노예무역이 성행하던 16, 17세기 베냉의 지배층 역시 다른 많은 아프리카 국가들과 같이 서구의 총과 무기를 얻기 위해 자국민을 잡아 노예로 팔아넘겼다. 당시 베냉의 지배층에게 잡혀 노예로 팔려 가는 것을 두려워 한 토피누족은 육지로부터 떨어진 호수 위에 집을 짓고 살기 시작했는데 현재는 약 3만 여명의 주민들이 커다란 수상마을을 이룬 채 살고 있었다. 처참한 역사만큼이나 이곳의 삶은 안타까워 보였다. 집들은 육지에서 본 집들보다 더 위태롭고 남루해보였고, 집집마다 침수의 흔적이 보였다. 가이드에게 집이 물에 자주 잠기냐고 물었을 때 현재는 건기라 괜찮지만 우기에는 집이 잠겨 온 가족이 작은 배 위에서 생활한다고 했다. 배도 결코 좋은 배가 아니다. 낡은 누더기들을 이어 붙여 돛을 만들어 단 배도 보였고, 배에 물이 세는지 계속해서 배 밖으로 물을 퍼서 버리는

작고 남루한 수상 마을  가옥 앞에 생업을 위한 고기잡이 배가 떠 있다.
작고 남루한 수상 마을 가옥 앞에 생업을 위한 고기잡이 배가 떠 있다.

아이들의 모습도 보였다. 그 가운데도 이 사람들은 불평하지 않고 최선을 다해 사는데 훨씬 좋은 여건에서 태어난 나는 감사한 마음을 잃지 않고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들은 부유한 관광객들을 보며 삶을 비관할 수도 있었고 역사적으로 이들을 착취하고 억압하며 이들의 삶의 질을 현저히 저하시킨 타인을 원망하는데 시간을 쏟을 수도 있었다. 하지만 주어진 하루하루를 그저 최선을 다해 묵묵히 살아내고 있는 이들을 보며 타인과 비교하고 나의 처지를 비관하거나 주어진 환경에 대해 불평하는 것이 얼마나 부끄러운 행동인지 다시금 생각했다.

그리고 내가 조금 더 많이 갖고 태어난 행운을 이 사람들과 나누지 않는 것은 얼마나 불의한 일인가 생각했다. 은혜교회 청년회 이문규 목사님은 청년들에게 한국인으로 태어나 미국에 유학 오는 기회를 누리는 것만으로도 너희는 이미 엄청난 특권을 누리고 있는 것이며 그러한 특권을 누릴 수 없는 사람들을 늘 돌아보아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엄청난 특권층으로서 자기 개인의 부귀영화만을 추구하는 것은 얼마나 이기적이고 천박한 태도인가. 어떻게 보면 하나님은 누군가는 금수저를 물고 태어나고 또 다른 누군가는 흙수저를 물고 태어나게 하셨는데 이것이 하나님의 본 마음은 아닌 것 같다. 구약에서 신약까지 성경은 늘 더 가난하고 약한 이웃들을 돌아보아야 한다고 거듭 강조하고 있으니 말이다. 개개인의 노력과 관계 없이 우리는 많은 것을 거저 받고 태어나며 그러므로 이것들은 우리 것이 아니라 이 땅에 사는 동안 나눠 쓰다 가라고 하나님께 잠깐 빌려 주신 것임을 잊어서는 안 되겠다.

두 나라 모두 수도를 조금만 벗어나면 노란 흙이 덮인 비포장 도로가 나온다.  차가 다니는 도로 위로 소떼가 지나가고 있는데 소들이 충격적일 만큼 야위었다.
두 나라 모두 수도를 조금만 벗어나면 노란 흙이 덮인 비포장 도로가 나온다. 차가 다니는 도로 위로 소떼가 지나가고 있는데 소들이 충격적일 만큼 야위었다.

간비에 사람들이 오늘날 이렇게 고단한 삶을 살고 있는 것은 분명 그들만의 책임이 아니다. 노예무역이 이루어지던 시기 자국민을 잡아 팔아넘긴 베냉의 엘리트 계층과 이들에게 총기를 수출하며 계속적으로 노예 수요를 만든 유럽인들, 그리고 아프리카를 식민지 삼아 모든 자원들을 수탈했던 프랑스를 비롯한 서구 열강들이 모두 오늘날 간비에 사람들이 경험하는 가난에 책임이 있다. 베냉은 또한 1970년대 소련, 중국, 동독, 북한 등의 영향으로 사회주의를 택하고 1990년까지 사회주의 정권을 유지하며 경제발전이 지체돼 더욱 가난한 나라가 되었다. 베냉에 머무는 동안 우리 일행은 북한이 만든 사회주의를 상징하는 동상이 아직도 도시에 남아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통일이 된다면 우리도 북한이 베냉에 진 역사적 빚을 함께 갚아야 하지 않을까. 내가 좋아하는 시 한편을 나누고 싶다.

이제 이해할 수 있습니다     -루스 앤더슨-

주여!

때때로 나는 이해할 수 없습니다.

내게는 먹을 것이 많습니다.

그러나 다른 사람들은 굶주리고 있습니다.

나는 이해할 수 없습니다

주여!

당신은 내게 좋은 건강을 주셨습니다.

그러나 주님의 자녀들은 고통을 당하고 있습니다.

나는 이해할 수 없습니다

주님은 내게

사랑하는 가족을 주셨습니다

그러나 다른 사람들은

가족이 전혀 없습니다.

나는 이해할 수 없습니다.

주님은 내게

따뜻한 보금자리를 주셨습니다.

그러나 다른 사람들은

추위에 떨고 있습니다.

나는 이해할 수 없습니다.

주여!

나는 주님이 나의 구세주임을

알고 있습니다.

아, 그러나 수많은 무리가 주님의 이름을

들어 본 적이 없습니다.

나는 이해할 수 없습니다.

주여!

주님은 내게 풍성한 축복을 주셨습니다.

그리고 나는 주님의 말씀을 기억합니다.

'많은 것을 받은 사람에게

많은 것이 요구될 것이다'

오, 주여!

주님이 내게 주신 축복을

주님을 위해 쓸 수 있도록 도와 주시옵소서.

주님이 원하시는 일을 할 수 있도록

나를 도와 주소서.

아!  이제 나는 이해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