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가 어린 시절에는 교회가 세상을 리드하여 변화를 이뤄냈습니다. 하지만 현 시대에는 교회가 세상을 리드하지 못하고 오히려 게으름을 피우다 세상에 추월을 당하니, 주님 보시기에 너무 가슴이 아플 것 같습니다.
특히 주님께서는 이 땅에 오실 때 유대인과 바리새인, 서기관들이 오랜 기간 젖어 왔던 관습과 관행을 거부하셨기에, 이들은 변화를 두려워하며 자신들이 누리는 삶을 이어가기 위해 주님을 십자가 형틀에 못 박고 말았습니다. 이 땅에 오신 주님은 개혁과 복음의 구조조정을 위해 최선을 다하신 분임을 우리는 배워야 합니다.
'툭'하면 터져 나오는 기독교 지도자들의 나쁜 소식은 복음 증거에 크나큰 걸림돌이 되고 있음을 개탄할 뿐입니다. 이 땅을 피와 눈물, 땀으로 물들인 선배들의 숭고한 전도의 열정과 순교의 결실로 복음이 폭발적으로 이어져 왔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선배들의 순교 정신은 어디론가 사라져 버렸고, 기독교는 교회 지도자들의 물욕과 권력, 비리와 명예욕으로 얼룩져 세상에 흠집을 생산하는 종교로 변질되어, 세상 사람들에게 손가락질을 받고 있는 안타까운 현실입니다.
이제 기독교의 변화 없이 주님이 계시는 천국을 소개하기 힘듭니다. 이미 세상에서는 구조조정이라는 안타까운 절차를 통해 기업을 되살리며 새로운 도약의 발판을 마련하였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기독교에 있어 구조조정(restructuring)이란, 지교회 및 노회, 총회, 그리고 운영하고 있는 모든 시설과 기관들의 기능 또는 효율을 보다 높이고자 실시하는 것입니다. 복음 전파를 위한 구조조정은 부실한 사업, 비능률적 조직을 능률적 사업 구조로 개편하며 전환하는 것을 말합니다.
성장에 걸림돌이 되는 조직은 축소 또는 폐쇄하며, 중복된 사업은 통폐합하고, 기구 및 인원을 감축하며, 부동산 소유 자산 매각 처분 같은 방법을 단행하는 방안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복음 성장에 있어 필요하다고 판단되는 경우, 이들 사업을 '합리화 사업'으로 지정하여 경쟁력 있게 복음 전파를 할 수 있게 탈바꿈하도록 모든 성도가 협력하여 좋은 제안을 바탕으로 시행해야 합니다.
지금은 당회부터 교회 내 모든 조직이 오래 전부터 시행해 오던 것들을 그대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이를 과감히 탈피하지 못하고 변화를 거부하며 시대의 요구에 안주하고 있음을 하루속히 깨닫고 변화를 시도해야 합니다.
말은 성(聖)노회라고 합니다. 노회장에 출마할 때는 모두들 최선을 다해 일하겠다고 합니다. 그러나 당선되고 나서는 변화의 모습이 보이질 않습니다. 은퇴식과 위임식, 헌신예배와 제직 세미나, 연합회 사업 등에 초빙받아 설교하는 것으로 맡은 소임을 다하는 것 같습니다. 잘못된 관습이나 관행, 그리고 소외되고 불행한 이들을 위한 사업은 나 몰라라 합니다.
위임식이나 은퇴식 등을 간소화할 수는 없을까요. 사회에서도 공공기관이나 기업 은퇴식을 교회처럼 하지는 않습니다. 담당 부서에서 조용히 하고 맙니다. 하지만 교회의 은퇴식은 그야말로 화려합니다. 교회 안팎에는 화환의 물결이 넘실거리고, 초빙되는 분들의 축사와 격려사가 왜 그리 많은지요. 위임식도 마찬가지입니다.
또 순서를 맡은 분에게는 사례금을 지불합니다. 참 어처구니없는 행사입니다. 성도들의 힘든 삶에서 나온 헌금을 물 쓰듯하는데, 천국 열쇠와 무관한 '일당 수령'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정작 성도가 행사를 위해 봉사하는 것은 전혀 모릅니다.
사회에서는 은퇴한 사람이 절대 간섭하는 법이 없는데, 교회에서는 원로장로·목사의 지나친 간섭 때문에 교회가 분열을 초래하고, 성도의 가슴에 상처를 주며, 이웃 비신자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안타까운 사연들이 넘쳐납니다. 이는 더욱 주님의 영광과 무관함을 잊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헌신예배에도 문제가 많습니다. 교회 각 부서 헌신예배는 형식적으로 기관 경비를 충당하는 자리로 변질된 실정입니다. 헌신예배 목적에 합당한 강사를 모셔야 함에도, 담임목사님과 선후배거나 같은 지역에 계신 분들을 초빙합니다. 이럴 바에는 헌신예배를 드리지 않는 것이 옳은 일 아닐까요.
매년 두 차례 실시하는 노회도 정말 비생산적입니다. 총대 수가 많은 교회의 장로나 목사는 어깨에 힘을 줍니다. 부노회장과 노회장이 되기 위해 총대 숫자가 많은 교회 지도자들에게 부탁하기 때문입니다.
은퇴 노회장에게는 어려운 성도가 피와 눈물, 땀으로 주님께 드린 돈을 예우 경비로 지출합니다. 노회장을 하셨던 분이 여비가 없어 노회에 못 오시겠습니까? 그리고 참석을 하셨으면, 후배들을 위해 쓴소리든 달콤한 소리든 무슨 말씀이라도 하고 가시는 것이 도리 아닙니까? 그런데 돈만 챙기고 점심식사 후 돌아가 버립니다. 어찌 보면 일당 받으러 오시는 분들과 무엇이 다른지요!
노회 선거의 타락은 어제오늘 이야기가 아닙니다. 쪽지를 돌려 교환하여, 짜고 투표를 합니다. 총회에 총대로 참석하는 일도 그렇습니다. 가는 사람들만 매년 갑니다. 개혁을 해야 할 사안에는 과감히 한목소리를 내어야 하는데, 말 한 마디 못하고 '총대 참석'이라는 명예만 누리며 지교회에 와서는 어깨에 힘만 주는 모습을 보려니, 참 한심하기 짝이 없습니다.
주일학교에서 복음을 위해 프로그램을 짜 놓으면, 장로님들이 막아섭니다. 앞으로 총회법을 개혁하여 정말 '장로 같은 장로'들만 안수받게 해야 합니다. 사회에서 패거리들이 하는 짓들을 서슴지 않고 교회 안에서 하고 있으니 개탄스럽습니다.
또 담임목사와 장로를 임기제로, 매 5년마다 재신임하도록 총회법을 개혁했으면 합니다. 현재 기독교가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과감하게 개혁하지 못하는 이유는, 연로하신 분들이 자리를 꿰차고 있기 때문입니다. 자신들의 밥그릇만 챙기느라 새로운 시대를 열지 못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제 기독교가 변하지 않으면, 타종교에 밀려 이 땅에서 사라져 가는 위기가 곧 들이닥칠 것임을 깊이 깨달아야 합니다.
원로장로와 원로목사 제도는 과감히 폐지해야 합니다. 주님의 복음과 전혀 무관한 자리입니다. 성경에서 주님께서는 상석에 앉지 말라고 당부하지 않으셨나요? 무슨 뜻인지는 잘 아실 것입니다.
그리고 기독교 내 모든 기구에는 참신한 인재를 등용해야 합니다. 인재를 등용할 의사는 전혀 없이, 자신을 잘 따르는 성도에게만 요직을 선사합니다. 자리만 지키고 있다 다음 해에 더 좋은 직책을 배정받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지역 사람들로 자리를 구성하여, 마치 자신을 보스처럼 따르게 합니다.
교회는 주님 안에서 형제들 간에 서로 사랑하고 협력하여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곳임을 결코 잊어선 안 될 것입니다. 그 주님 때문에 우리는 고아와 과부들을 위해, 어렵고 힘든 이들을 위해, 불행한 이들을 위해, 그리고 교도소 안에서 신음하는 이들을 위해 사역해야 합니다. 자신의 명예와 부를 위하는 것은 주님의 방법이 아닙니다.
설교 때는 그렇게 천사처럼 말하면서, 정작 본인은 물질욕과 자랑과 교만으로 충만하여 주님 뜻과는 전혀 다른 길로 나아감이 가슴 아픕니다. 이제 변하지 않으면 기독교의 미래는 없습니다. 더 늦기 전에 나 자신을 먼저 개혁하며, 철저한 자기반성을 통해 이웃을 바라보아야 하겠습니다.
현재 교회 안에 개혁해야 할 일들이 너무 많습니다. 지도자들은 하루속히 이를 진단하여, 미래의 복음을 위해 당장 자신부터 나서, 모든 성도에게 존경을 받는 종이자 세상 사람들이 좋아하는 기독교인으로 바뀌어야 합니다. 이 땅에 주님의 사랑이 충만하게 넘치는 아름다운 교회가 늘어나기를 진심으로 소망합니다.
/이효준 장로(부산 덕천교회,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