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시록 5:6에는 천국에 계신 예수님의 모습이 가시적으로 묘사되어있다. 그러나 이 구절에는 석연치 않은 부분이 있다. 예수님의 모습이 "일찍이 죽임을 당한 것 같"다고 묘사되어있기 때문이다. 부활하시고 승천하사 천국에서 옹립하신 예수님의 모습이 왜 "일찍이 죽임을 당한 것 같"을 수 있을까? 헬라어의 도움을 받아 이 구절을 입체적으로 살펴보자.
"죽임을 당한"이라고 번역된 헬라어 동사(ἐσφαγμένον)는 완료형 수동태 분사형이다. (1) 수동태로 되어있음은 예수님께서 타의적으로 돌아가셨다는 뜻이고, (2) 완료형으로 되어있음은 과거의 한 시점에 생겼던 상처가 몸에 아직까지 간직되어 있음을 나타낸다. 그리고 (3) "죽음"을 나타내는 헬라어(σφαζω)가 제의적이고 잔혹한 죽음을 의미하는지라 제사를 위하여 몸이 많이 훼손된 채 돌아가셨음을 의미하고, (4) 가시적인 것들을 묘사할 때 사용되는 불변화사(ὡς)가 사용되고 있어 예수님의 몸에 난 상처가 우리의 눈에 시각화 되어있음을 증거한다. 이러한 어휘적, 문법적 정황들을 모아 신학적으로 계시록 5:6을 풀어보면
예수님께서 역사의 한 시점에서 제사를 위한 제물이 되사 누군가에 의해 비참하게 찢겨 죽임을 당하셨고, 그때 몸에 난 상처가 부활하시고 승천하사 옹립하신 후에도 여전히 부활체에 남아있다
는 말이 된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받으신 상처가 아직까지 고스란히 남아 있다는 말이다. 부활하신 예수님과 도마와의 만남이 기록된 요 20:27도 이를 증거한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부활을 의심하던 도마에게 말씀하셨다.
네 손가락을 이리 내밀어 내 손을 보고 네 손을 내밀어 내 옆구리에 넣어 보라 (요 20:27)
부활하신 예수님의 몸에 못 자국이 남아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충격적인 사실은 옹립하신 예수님의 몸에도 그 상처가 여전히 남아 있다는 것이다. 도대체 그 이유가 무엇일까? 천국에서 옹립하신 예수님께서는 모든 영광을 되 찾지 않으셨던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런 상처가 남아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능력이 부족하셔서 상처를 못 지우신 것일까? 아니다. 전능하신 예수님께서 그것들을 못 지우신 것이 아니다. 일부러 남겨두신 것이다. 왜? 그 상처는 천국에 들어간 우리가 영원토록 보고 기억해야 할 무언가를 증거하는 소리없는 아우성이기 때문이다. 그 아우성을 들어보라.
너희가 어떻게 이곳에 올 수 있었는지 아니? 내가 내 몸에 이렇게 상처를 받았기 때문이란다. 이것을 절대 잊지마렴...
그렇다.
예수님께서
머리에 상처를 받으셨기 때문에 우리가 머리로 짓는 죄가 씻겼고,
두 손에 상처를 받으셨기 때문에 우리가 두 손을 짓는 죄가 씻겼다.
예수님께서
두 발에 받으신 상처 때문에 우리가 두 발로 짓는 죄가 씻겼고,
가슴에 받으신 상처 때문에 우리가 마음으로 짓는 죄가 씻겼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온 몸에 받으신 상처 때문에 우리가 온 몸으로 짓는 죄가 씻겼다.
이사야도 증거하지 않았던가?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 (사 53:5)
예수님께서는 이러한 의미를 지닌 상처들을 당신의 부활체 위에 남겨두신 것이다.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은 저 천국에서도 절대로 잊혀져서는 안될, 영원히 기억되어져야만 하는 신성한 메멘토(mémento)이기 때문이다.
사랑하는 성도들이여. 당신과 내가 천국에서 뵐 예수님은 영화배우처럼 찰랑거리는 머리 결을 바람에 휘날리시며 우아한 자태를 뽐내고 계시는 분이 아니다. 그대신 온 몸에 끔찍한 상처를 안고 계시기에 일찍이 죽임을 당한 것 같아 보이시는 상처투성이의 예수님이시다. 우리는 그분과의 첫 대면에서 기쁨과 즐거움은 물론 엄숙함과 숙연함 까지도 느끼게 될 것이다. 그 분의 몸에 빼곡히 수놓아진 찢겨진 상처들은 모든 천군과 천사의 칭송을 받으시는 그 분의 모습과 거룩한 부조화를 이루며 무언의 함성으로 다가올 것이기 때문이다. 그 때 우리는 면류관 고이 벗어 그 분께 드리며 이렇게 고백하겠지.
맞아. 내 힘으로 결코 올 수 없었던 곳. 내 노력으로 결코 얻을 수 없었던 곳. 내가 이곳에 있을 수 있는 유일한 이유는 예수님께서 온 몸에 상처를 받으사 십자가에 달려 대속적 죽음을 맞이하셨기 때문이야.
그렇게 천국은 예수님께 영원을 빚진 사람들의 감사와 감격과 기쁨, 그리고 예수님을 향한 예배로 가득 차게 될 것이다. 이것이 예수님의 부활체에 남겨진 상처가 우리에게 전하는 복음인게다.
[출처: 이상환 목사 홈페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