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교회의 사명
과거에는 하나님과 원수 사이였지만 예수님을 통해 회개하고 죄사함을 얻고 나면, 예수님 안에서 하나님의 자녀되는 화목의 관계가 형성됩니다. 이것이 교회가 하는 일입니다. 교회 와서 목자를 통하여 성령의 깨우치심을 따라 복음을 깨닫고, 회개하고, 성령을 받으면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고, 하나님을 아빠 아버지라 할 수 있도록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특권을 주십니다. 이 믿음으로 천국 들어갈 자격 갖추게 하기 위하여 교회는 목자가 꼭 있어야 하는데, 그 목자가 에바브라처럼 성령에 사로잡혀서 진리 정통하고 성령의 은사와 영력을 나타내면서 병도 고치고, 문제도 해결하며 양떼들로 모두가 진리 정통한 가운데 성령충만해집니다. 그 교회는 하늘 소망 가꾸는 교회 천국이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택하신 백성의 죄를 대속하시기 위하여 하늘 영광의 보좌를 내어 놓고, 육신으로 사람의 몸을 입고 오셔서 죄인들에게 매 맞고 망신과 행패와 십자가 형틀에 모진 고통으로 죽임당하셨습니다. 그 죽음은 하나님 아버지의 소원을 이뤄드리는 것입니다. 택하신 백성으로 이 사실을 깨달아서 예수 이름을 불러 회개하고, 애통하고, 자복하면 그 모든 죄를 예수 이름으로 하나님 아버지가 용서하시고, 성령을 다시 주셔서 하나님의 자녀가 됩니다. 하나님의 호적부인 생명책에 이름을 올려 주시며 하나님 나라 들어갈 자격으로 믿음을 결심하도록 보혜사 성령을 보내 주십니다. 그래서 교회는 반드시 성령의 역사가 있는 곳이라야 하늘 문이 열린 교회가 됩니다.
2. 화목의 비밀
19절부터 보면,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모든 충만으로 예수 안에 거하게 하신다고 했습니다. 하늘과 땅에 있는 모든 것을 예수님께 위임하셨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하나님으로부터 모든 것을 넘겨받으신 것입니다. 모든 충만으로 예수 안에 거하게 하시고, 그의 십자가의 피로 회개해서 죄 씻음 받은 사람은 하나님과 화목할 수 있는 화목 제물이 되어 주신 것입니다. 산상보훈에서 예수님은 말씀하시기를 “화평케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임이요”(마 5:9) 하셨습니다.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고 사람과 사람 사이에 믿음으로 서로 용서하고, 이해하고, 사랑하는 마음으로 화목을 이루는 것은 예수님의 십자가 형틀의 모형이 설명하는 본질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과 화목하면서 사람들과도 화목해야 합니다. 원수가 없어야 합니다. 아직도 교회 다니면서 은혜 받았다고 하면서 자기 마음 속에 한이 응어리져 있어서 “이놈, 나한테 이렇게 했지!”하는 인생은 아직도 하늘 소망을 얻기에 걸림돌이 됩니다. 그것이 손해가 됩니다.
상대방이 내게 잘못했다 할지라도, 내가 또한 상대방에게 잘못한 것이 없다 할지라도, 하나님과 화목을 온전히 이루고 하늘 나라 들어갈 수 있도록 영생복락이라는 영원하고 신령한 성공을 이루기 위해서는 내가 그 사람에게 자기 자신을 겸손히 낮추어 찾아가 ‘전날에 우리 사이가 안 좋았었는데 내가 하나님 앞에서 회개하고 깨닫고 보니 내가 당신에게 잘못한 것이 많았더라. 그러니 내가 먼저 당신에게 용서를 빌고 화목을 청한다.’라고 해 보세요. 그 사람도 일말의 양심이 있다면 ‘잘못하긴 내가 잘못했는데, 내가 당신에게 피해를 주고 부담을 줬는데 그게 무슨 말입니까?’라고 하며 어떻게 이렇게 달라졌냐고 할 것입니다. 그러면 ‘저는 예수님 때문에, 이제 육신이 세상의 허욕을 위하여 살지 않고, 영적으로 하늘 소망을 목적으로 살기 때문에 당신과 나하고 풀려고 왔습니다. 당신이 내게 화가 나고 나를 괴롭게 하고 부담이 가도록 한 책임이 내게도 있었으니 제가 용서를 빕니다.’ 라고 한다면 그 사람이 무엇이라고 하겠습니까? 사람이라면 더 무릎 꿇고 용서를 빌 것입니다. 그러면 화평이 이뤄질 것입니다. 화목이 됩니다. 화목을 위하여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로서 하나님과 죄인들 사이, 인간들과 인간들 사이에 맺힌 원과 한을 풀어서 서로 화해하고, 용서하고, 사랑함으로 화목하게 해 주시기 위해서 십자가에 못 박히셨습니다.
3. 예수님의 소원
23-24절을 보면 “만일 너희가 믿음에 거하고 터 위에 굳게 서서 너희 들은 바 복음의 소망에서 흔들리지 아니하면 그리하리라 이 복음은 천하 만민에게 전파된 바요 나 바울은 이 복음의 일꾼이 되었노라 내가 이제 너희를 위하여 받는 괴로움을 기뻐하고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그의 몸 된 교회를 위하여 내 육체에 채우노라”
이 말씀은 참 중요한 말입니다. 우리의 믿음은 가끔식 흔들립니다. 상당히 소망적인 것보다 절망적인 상황이 나를 엄습해 오면 그 인생은 믿음이 흔들립니다. 하지만 이럴 때 믿음이 흔들리면 안됩니다. ‘나는 누구냐? 나는 하나님의 아들, 딸이다.’라는 확신이 있어야 합니다. 우리의 믿음이 하나님을 향하여 절대로 동요하는 일이 없어야 합니다. 고문과 죽음이 다가왔다 할지라도 내 믿음은 “죽으면 죽으리다”는 영적인 소망을 목적으로 하나님 앞에 굳건히 서 있다고 하면, 하나님은 그 사람을 끝까지 책임져 주십니다. 구원하시고 승리하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구원은 성화되는 과정을 통하여 사도바울처럼 예수 그리스도로 꽉 채워져 있기 때문에 아무리 환란의 고통, 핍박, 고문, 위협, 행패를 당한다 할지라도 그 사람의 입에서는 감사와 찬송과 예수 그리스도만 나오는 것입니다. 이것이 연단을 받는 성화과정입니다. 우리도 그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지금까지 회개하기 전까지는 내가 내 인생의 주인공처럼 인생설계도 하고, 그 설계대로 노력도 해보고, 실패도 해 보았지만, 이제는 내가 회개하고, 나를 비워서 예수님을 내 주인으로 모셨기 때문에 내 인생의 주인은 내가 아니라 예수님입니다.
이제 그 사람들이 사는 목적이 하나님의 기뻐하시는 뜻을 이루어 드리는 것이 성도가 사는 목적이고 방법이 되어야 합니다. 예수님께 인정받고 쓰임 받고 더 잘 섬기는 중심이 간절하면, 예수님께서 쓰시면서 충만하신 것으로 함께 하시며 역사하실 줄 믿습니다.
24절에 보면 “내가 이제 너희를 위하여 받는 괴로움을 기뻐하고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그의 몸 된 교회를 위하여 내 육체에 채우노라” 저도 얼마 남지 않았지만 하나님이 목숨 붙드시는 날까지 한 영혼이라도 더 구원시키려는 목적으로 내 생애를 복음의 제물 되기를 소원하고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이 항상 제 가슴을 눈물로 저미게 합니다. 내가 이제 양떼를 위하여 받는 괴로움을 기뻐하고,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그의 몸 된 교회를 위하여 내 육체에 채웁니다. 어떤 고난도 감내할 각오가 되어 있습니다.
장 목사는 주님을 위해서 목숨을 내 놓았습니다. 그렇게 살다가 갈 것입니다. 너무나 확실한 진리고 복음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성령으로 나와 함께 하시고, 이 보잘 것 없는 손으로 기도해서 온갖 병자들, 귀신을 쫓아내는 등 많은 체험을 보이셨기 때문에 저는 안 믿을 수가 없습니다. 다 안 믿는다고 해도 저는 안 믿을 수가 없습니다. 그러니 이렇게 애가 탑니다.
이제 여러분의 교회는 예수님이 머리가 되시고, 하나님 아버지께서 예수 그리스도 안에 모든 것으로 충만하게 채워 넣으셨습니다. 예수님께 인정받고, 쓰임 받고, 더 잘 섬기는 중심이 간절하면 예수님께서 여러분을 쓰시면서 얼마든지 뒷바라지 해 주실 것입니다.
아버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뜻을 이루어 드리기를 소원하는 사람들의 인생을 주님은 책임져 주시고, 함께 해 주시며, 역사해 주실 줄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