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영구 목사
(Photo : 기독일보) 빌립보교회 곽영구 목사

잘 되기를 바라세요? 행복해지기를 바라세요? ........

의아하다고 같은 질문이 아니냐고 반문하실 수도 있으실 것 같습니다. 저도 이 질문을 받고는 멈칫했습니다. ‘잘 되면 행복한거 아닌가’라고요. 잘되는 것이 곧 행복해지는 것이라는 공식이 이미 우리를 지배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잘되는 것과 행복해지는 것이 별개 일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해 본 적이 별로 없는 것 같습니다.

행복의 사전적 의미를 보면 “생활에서 충분한 만족과 기쁨을 느끼어 흐뭇하거나 그러한 상태”를 말합니다. 반면 잘된다는 것은 “일이나 현상이 좋게 이루어지다” 라는 뜻입니다. 잘된다는 것은 현상이고 사실적인 측면이라면 행복은 그 현상에 대한 주관적 평가라고 할 수 있습니다.

아시아의 가난한 소국인 부탄에 사는 사람들의 행복지수가 세계 강국이라 할 수 있는 일본 국민보다 훨씬 높은 것은 의아한 일이 아닙니다. 일본 국민들은 물질적으로는 풍요로울지라도 재난과 과도한 경쟁으로 또 개인주의로 인해 생활 속에서 만족과 기쁨을 느끼기는 어려운 것 같습니다. 이와 달리 부탄은 기대수명도 낮고 문맹률도 53%에 달하며 1인당 GDP도 낮은 가난한 국가이지만 국민들 간의 공감대가 잘 형성되어 있고 아름다운 자연 환경 속에서 행복하다고 느끼며 살고 있는 것입니다.

국가의 예 뿐 아니라 개인의 삶을 보아도 ‘잘되는 것’과 ‘행복’이 같은 의미가 아닐 수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여전히 행복에 앞서 잘되기를 소망하고, 그러기 위해 노력합니다. 아이들에게 공부를 강요함도 이 때문일 것입니다. 아이들이 공부를 힘들어해도, 학교에 가는 것을 힘들다고 해도 잘되면 행복해진다는 믿음 때문에 아이들을 공부로만 내 몰 수 있습니다. 공부를 잘하면 잘되는 것이고, 공부를 못하면 잘못 되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면이 있기 때문입니다. 성적이 곧 행복과 불행을 가늠하는 잣대입니다. 이런 현실 때문인지 경제적인 면에서는 세계 13위인 한국에 살고 있는 우리 아이들의 행복지수는 세계 41위에 머무르고 있습니다.

저의 학창 시절에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라는 영화가 있었습니다. 이 제목만으로도 우리는 이야기를 그려볼 수 있습니다. 예상하시는 것처럼 성적이 좋다고 행복하고 성적이 나쁘다고 불행한 것이 아니라는 메시지로 사회에 경종을 울렸던 영화입니다. 이 영화가 개봉된 지 20년이 훌쩍 지났는데도 아직도 이 영화가 공감을 얻는 것을 보면 지금도 행복은 성적순이라고 믿고 있는 것 같습니다. 행복을 잘되는 것에서 찾으려 하기 때문입니다.

좋은 대학에 들어가면 행복해진다 생각합니다. 돈을 많이 벌면 행복해질 거라고, 명예를 얻으면, 권력을 가지면 행복해질 거라고 생각하고 그 길을 향해 매진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명문대 학생들이 자살하는 경우가 드물지 않은 것을 보면 성적이 꼭 행복을 보장해 주지는 않는 것 같습니다. 재벌들이 이런 저런 문제들로 구설수에 오르는 것을 보면 돈이 많은 것이 곧 행복은 아닌 것 같습니다. 명예나 권력도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좋은 성적이나 부 또는 권력 등이 순간적으로는 행복을 주는 듯도 하지만 진정한 행복을 주지는 못합니다. 앞서도 말씀드린 것처럼 행복은 객관적 사실에서가 아니라 충분한 만족과 기쁨을 누리는 주관적인 것에 기인하기 때문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여기에서 한 발 더 나아가 영혼이 행복해져야 합니다. 요한은 “사랑하는 자여 네 영혼이 잘됨같이 네가 범사에 잘되고 강건하기를 내가 간구하노라”라고 말했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에게 잘 되는 것은 영혼이 잘되는 것입니다. 영혼이 먼저입니다. 여기서 영혼이 잘된다는 것은 앞서 언급한 ‘잘되다’와는 구별됩니다. 영혼은 보이는 것이 아닙니다. 잘되다와 행복을 설명함에 있어 주관적, 객관적 기준을 사용한 것에 비추어 볼 때 영혼이 잘된다는 것은 행복과 맞닿아 있는 것입니다. 주님과의 막힘이 없는 원활한 관계 속에서 마음의 평안을 누리고 주님의 큰 사랑을 받음으로 기쁘고 만족하며 살 때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진정 행복할 수 있습니다.

기대수명이 낮고 배운 것이 없는 부탄의 국민이 세계 강국들을 제치고 행복해하며 살고 있는 것처럼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세상에서는 곤고하고 어려울지라도 사람들의 눈에는 잘못되어 있는 듯이 보일지라도 스스로는 행복해야 합니다. 주님과의 관계가 온전하다면 말입니다. 우리 영혼이 잘되고 있다면 말입니다. 우리는 주님 한 분만으로 행복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