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섹에 유하며 게달의 장막 중에 거하는 것이 내게 화로다, 내가 화평을 미워하는 자와 함께 오래 거하였도다, 나는 화평을 원할지라도 내가 말할 때에 저희는 싸우려 하는도다(시120:5-7)"
Woe to me that I dwell in Meshech, that I live among the tents of Kedar! Too long have I lived among those who hate peace. I am a man of peace; but when I speak, they are for war.

"'내가 (내 영혼이-칼빈 사역) 화평을 미워하는 자와 함께 오래 거하였도다', 시편 기자는 ... '메섹'과 '게달' 이라는 말로써 간접적으로 지적했던, 거룩한 조상의 후손으로서 타락한 이스라엘 백성, 이스라엘의 진정한 씨라기보다는 이스라엘 백성이란 이름만 가지고 있는 자들을 지적하여 말하고 있다. 선지자가 그들을 가리켜 '화평을 미워하는 자'라고 한 까닭은, 그들이 고의적으로 악을 행하기를 즐겨하면서, 선하고 공격적이 아닌 자들과 전쟁을 일으키고 있기 때문이다. ... '나는 화평을 원할지라도'라는 말씀은, 상당히 비약적인 말이기는 하지만 그 의미는 분명하다. 즉 자기는 그들이 미워함에도 불구하고, 아무런 해나 잘못을 범한 일이 없음을 의미하고 있다. 그의 마음에는 항상 화평이 있었다. 한 걸음 더 나아가 선지자는 그들이 자기에게 분노를 발하고 있음을 보았을 때에도, 그들과 화평하고 그들을 좋게 판단하려고 애썼다. ... 자기들에게 아무런 해를 입힌 일이 없는 사람과 말할 때의 다윗이 보여준 예를 보아, 성도들은 다른 사람에게 해를 입혀서는 안된다는 것을 배울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성도는 다른 사람들에게 온유함과 기쁨을 주며, 그들이 선한 뜻을 갖도록 관심을 가져야 한다. 만일 온유함과 자비가 배척을 받는다 해도, 하나님께서 조만간 하늘에서 자기들의 보호자이심을 보여주실 때까지 참고 기다려야 한다(존 칼빈 주석/시120:6-7 중에서)."

시인은 화평하기를 소망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시인이 닥친 상황이 다툼으로 인해 서로가 깊은 상처를 입게 될 처지였는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시인은 이러한 결과로 인한 상처를 피할 수 있기를 진심으로 소망하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상대방은 이 시인의 소망과는 전혀 다른 마음 상태에 놓여 있는 것 같습니다. 시인은 화평을 위해 조심스럽게 말 몇 마디를 전해 봅니다. 그러나 그 화평을 위한 부드러운 말은 오히려 상대방으로부터 비수가 되어 다시 날라오고는 합니다. 즉, 좋게 전한 말도 그들에게는 싸움거리가 되는 처지가 되었다고 시인은 한탄하고 있는 듯 합니다.

오 주님! 하나님의 어린 양들의 마음에 화평이 항상 있게 하여 주소서. 그 화평 중에 다시 오실 예수 그리스도를 소망하게 하여 주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