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나누고 싶은 말씀입니다.
<마태복음 14:16~23>
예수께서 이르시되 갈 것 없다 너희가 먹을 것을 주라
제자들이 이르되 여기 우리에게 있는 것은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 뿐이니이다
이르시되 그것을 내게 가져오라 하시고
무리를 명하여 잔디 위에 앉히시고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지사 하늘을 우러러
축사하시고 떡을 떼어 제자들에게 주시매 제자들이 무리에게 주니
다 배불리 먹고 남은 조각을 열두 바구니에 차게 거두었으며
먹은 사람은 여자와 어린이 외에 오천 명이나 되었더라
예수께서 즉시 제자들을 재촉하사 자기가 무리를 보내는 동안에 배를 타고 앞서
건너편으로 가게 하시고
무리를 보내신 후에 기도하러 따로 산에 올라가시니라 저물매 거기 혼자 계시더니
오늘 말씀에 주목하고 싶은 것은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의 기적이 아닌 그 기적 이후에 예수님이 보이신 태도에 대한 부분입니다. 엄청난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무려 남자만 오천 명을 먹이는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즉시 제자들을 재촉하셔서 배를 타고 건너편으로 건너가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그 사이에 사람들을 흩어 보내셨고 사람들을 다 보내신 후에는 기도하시기 위해 홀로 산에 올라가셨습니다.
원하기만 한다면 그 사람들과 더불어 그곳에서 더 많은 사역들을 진행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분명히 그곳은 흥분과 열광으로 가득 차 있었을 것입니다. 기적을 체험한 사람들은 더 많은 기적을 체험하고 보고 위해 그 자리에 남아 있기를 원했을 것이고, 더 많은 말씀을 듣기를 원했을 것입니다.
병자들을 더 치유하고 더 많은 말씀을 선포하고, 그들을 섬길 수 있는 많은 사역들을 할 수 있는 자리였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제자들을 그 자리에서 떠나게 하셨고, 친히 수천 명의 사람들을 집으로 보내셨고, 자신은 기도하시기 위해 홀로 산으로 올라가셨습니다. 우리가 여기서 예수님께 배워야 할 아주 중요한 사실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일이라고 말하는 사역은 사람들의 요구에 반응하는 것이 아님을 예수님을 통해 배워야 합니다. 사람들의 요구에 응답하고 사람들의 필요를 채워주는 것이 사역은 아닙니다. 하나님의 일인 사역은 멈출 수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일인 사역은 흥분한 사람들을 집으로 돌려 보낼 수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일인 사역은 사람들의 관심과 박수 소리에서 떠날 수 있어야 합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예수님의 승천 이후에 말씀을 전하고 병자를 치유하면서 수많은 군중들에게 둘러싸이게 됩니다. 지금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소위 말하는 집회와 기적의 현장에서 떠나는 법을 가르쳐 주고 계십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사람들 속에서 안정감을 누리는 것이 아니라 홀로 하나님을 만나는 자리가 진정한 사역의 현장임을 알려주신 것입니다. 그러하기 때문에 하나님의 일을 하는 사역자는 절대로 바쁘지 않습니다.
그러나 바쁜 것이 능력이 되고 자랑이 된 요즘의 시대입니다. 그래서 바쁜 스케줄을 자랑하는 목회자와 사역자가 귀하게 존경받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저도 그렇게 믿고 바쁘게 살았습니다. 기도할 시간조차 없을 정도로 바쁘게 사는 것이 하나님께 쓰임받는 것인 줄 착각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종들을 바쁘게 살도록 내버려 두시지 않습니다. 바쁘게 사는 것은 어쩌면 나의 바벨탑을 쌓기에 정신이 없어서일지도 모릅니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보다는 사람들의 요구에 응답하고 있기 때문일지도 모릅니다. 사람들의 환호와 찬사들, 그리고 그들이 나에게 쳐주는 박수 소리에 미혹되어 사람들을 기쁘게 해주는..., 그래서 정신없이 뛰어다니는 광대가 되었는지도 모릅니다.
사역자의 안정감은 집회에 있지 않습니다. 말씀을 전하고 찬양을 인도하고 사람들과 상담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기도하기 위해 홀로 올라가는 그 산이 안정감이 되어야 합니다. 사람들이 떠나고 홀로 남아 있는 사역자의 안정감은 하나님과의 시간이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오늘 적지 않은 사역자들의 안정감은 인터넷과 SNS가 되었습니다. 끊임없이 사람들과 소통하기를 원합니다. 홀로 남은 그 시간에 우리가 하나님과의 시간을 가지고 있지 못하다면, 우리는 하나님의 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 어쩌면 나의 일을 열심히 하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하나님의 일을 하는 사역자에게 바쁜 것은 자랑이 아닙니다. 사역 때문에 집회 때문에 바쁘다 보니 결국 하나님과의 시간도 가지지 못하고, 그렇게 얼마의 시간을 지내다 보면 이제는 기도하지 않고 충분한 경건의 시간이 없이 사역하고 있는 자신의 모습에 대해 부끄러워하지 않게 됩니다. 기도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집회에 역사가 일어나고 사람들이 설교에 은혜를 받고 환호하고 몰려듭니다.
경건하지 않은 설교자와 사역자를 통해서도 기적은 일어날 수 있습니다. 아마도 두 가지로 이런 현상을 이해를 할 수가 있을 것입니다. 하나는 영혼들이 불쌍해서 하나님께서 잠시 동안 나를 도구로 쓰셨는지도 모릅니다. 하나님께서는 당나귀의 입도 여실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러한 일이 반복되면 결국 그것이 나의 영성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나의 것으로 착각하게 됩니다. 그러나 얼마의 시간이 흐른 뒤에 사역자는 공허감을 느낄 수밖에 없고 결국에는 쓰러지게 됩니다.
또 다른 하나는 사단의 속임수일 수도 있습니다. 사단은 권모술수에 능합니다. 사단은 얼마든지 속일 수 있습니다. 경건의 시간을 충분히 가지지 못하는, 기도하지 않는 사역자와 설교자를 속이는 것은 아마도 쉬운 일일지도 모릅니다.
하나님과의 경건의 시간을 충분히 갖지 못하면 일어나는 현상이 거룩함에 대한 상실입니다. 그래서 세상의 방법들과 기교들을 교회와 사역의 현장으로 가지고 들어와서는 사람들을 자극하려고 시도하게 됩니다. 말씀으로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을 믿지 못하면 결국 음향과 조명으로, 그리고 자극적인 음으로 무장한 소위 말하는 현대 기독교 음악으로 사람들을 흥분시키려고 노력할 수밖에 없습니다.
사람들이 흥분하고 열광했다고 그것이 하나님의 역사는 아닙니다. 바쁘면 영적으로 성장하는 데 어려움이 생깁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바쁘게 사역하고 일하면서 탈진하기를 원하지 않으십니다. 날마다 그리스도 안에서 성장하기를 원하십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멈추고 산으로 올라가 하나님 앞에 앉아 있는 시간을 자주 가져야 합니다. 기도하고 말씀을 읽고 연구하는 홀로 있는 시간이 나의 안정감이 되어야 합니다. 사람들이 초청해 준다고 바쁘게 다니는 것이 좋은 것이 아닙니다. 거절할 수도 있어야 합니다.
나만이 그 일을 감당할 수 있다는 오만함도 버려야 합니다. 성장을 멈춘 사역자 자신도 위험하지만, 성장이 멈춘 사역자를 통해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도 참으로 위험한 일입니다. 저는 참 바쁘게 사역하던 사람이었습니다. 많은 곳에서 저를 불러 설교하게 하고 집회를 부탁했습니다. 부끄럽게도 기도하는 시간도 가질 수 없을 정도로 바쁘게 몇 년을 보냈습니다. 공부할 여유도 없었고 그럴 필요조차도 느끼지 못했습니다. 나만이 그 일을 감당할 수 있다는 교만이 저를 지배하기 시작했고,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깊이보다는 말하는 기교만 늘어가는 저의 모습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어느 날 보니 사람들을 웃기고 흥분시키는 데 탁월한 전문가가 되었습니다. 저는 개그맨이 아닌데도 말입니다. 하나님 말씀을 제대로 배우기 위해 신학교에 와서 공부하고 있는 요즘, 이제 조금씩 하나님 앞에 앉아 있는 법을 배워가기 시작합니다. 멈추어 서는 것을 배우고, 사람들의 필요를 채우기 위해 사람들이 모여 있는 들판에 머물러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 만나기 위해 홀로 산으로 올라가는 법도 배워가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일을 하는 사역자에게는 모여든 사람의 숫자가 중요하지 않습니다. 설교를 듣거나 예배에 참석한 사람들이 흥분하고 열광하는 것도 중요하지 않습니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우리를 알아 주고 얼마나 많은 모임에서 우리를 불러 주고 있느냐도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날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그를 아는 지식에서 자라가는 것이 우리에게는 가장 중요하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베드로후서 3:18) "오직 우리 주 곧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그를 아는 지식에서 자라가라 영광이 이제와 영원한 날까지 그에게 있을지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