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도의 유산
김선일 | SFC | 304쪽
오늘날 한국 사회에서, 아니 한국 교계에서, 전도는 성경 말씀대로 점점 '미련한 것(고전 1:21)'이 되어가고 있다. '예수 천당 불신 지옥'이라는 전도 문구(文句)는 '무례한 기독교'의 상징으로 자리잡았고, 그 틈을 파고든 이단(異端) 전도자들이 캠퍼스와 거리를 점령했다. 전도나 선교의 수식어로 등장한 '공격적'이라는 단어는 '구령의 열정'을 움츠리게 만들었고, '수비적·수동적' 자세를 선(善)한 것인 양 착각하게 만들었다.
김선일 교수(웨스트민스터신학대학원대학교)가 쓴 <전도의 유산>은 이 같은 '전도의 위기와 딜레마'를 놓고, 2천년 교회 역사를 수놓았던 위대한 '전도의 유산'들을 탐구하여 지금 여기에서 우리에게 주어지는 전도의 과제와 방향을 모색한다. 저자가 '가장 검증된 지혜의 원천'이라 믿는 역사에서 길어올린 사례는 예수 그리스도와 바울, 초대교회, 그리고 중세시대의 켈트, 종교개혁가들, 현대 부흥주의와 구도자교회 등이다.
역사적 발자취를 더듬기에 앞서, 저자는 '전도'의 의미를 재정립한다. 전도 하면 떠오르는 '영혼 구원'이라는 슬로건을 잘못 이해하는 데서, 그리고 전도에 관한 성경 말씀들을 오해하는 데서 오는 오류들에서 먼저 탈출하자는 것이다. 저자는 '영혼 구원'이라는 말에 담긴 핵심 의도에 공감하지만, 이 때문에 전도의 범위를 영혼만으로 제한해선 안 된다고 제언한다. 영혼·육체의 이원론적 사고를 극복하고, 총체적인 '하나님 나라의 삶'이라는 숲을 조망해야 한다는 것. 이 밖에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딤후 4:2)', '강권하여 데려다가 내 집을 채우라(눅 14:23)', '전도의 미련한 것' 등의 말씀을 올바로 해석함으로써 성도들에게 내재된 '전도 강박증 또는 양심의 가책'을 해소시킨다.
결국 전도는 낯선 사람들에게 다가가 복음을 제시하는 행위만이 아니라 삶의 전 영역에서 이뤄져야 하고, 공동체의 삶 그 자체가 메시지로 읽혀야 한다. 대위임령(마 28:19-20)과 문화명령(창 1:28-30)이 별개가 아니라는 것. 이러한 의미에서 전도의 목표는 '결신(faith decision)'의 순간이 아니라, 그리스도와 연합된 삶으로 나아가기 위해 계속되는 과정으로서의 '회심'이어야 한다.
예수님과 바울의 전도에서 저자가 찾아낸 것은 '정치적 복음'이다. 이 정치는 권력 지향적 개념이라기보다, 황제 가이사의 명령과 약속을 의식하며 순응해야 하는 평범한 사람들에게 주어진 '대안적 삶의 양식'이다. 예수님과 바울은 현실에 초연하고 이 땅에서의 삶을 외면한 채 내새만을 지향하는 메시지를 전하지 않았다는 것. 저자는 여기서 "그러나 우리가 오늘날 접하는 복음 전도의 메시지들에서는 이러한 정치적 파격성과 급진성을 찾아보기 힘들다"며 "오히려 복음의 메시지를 성공주의, 기복주의, 소비주의에 충실히 복무시킨 사례가 얼마나 많던가?"고 반문한다.
청중들의 특성을 고려한 메시지와 함께, 특정 계층에게 다가가고 있는 점도 발견된다. '회심 가능성이 높은 이들', '새로운 가르침에 대한 수용성이 높은 이들'을 찾아갔다는 것. 저자는 사회에서 소외된 사람들이나 주변인들, 변방에 거하는 이들이 새로운 종교에 대해 더 수용적이라는 '회심 이론'을 예로 들면서, 예수님은 갈릴리 호수 근처를 주 무대로, 당대의 죄인과 병자들을 주 계층으로 삼았다고 설명한다. 바울은 '이방인의 사도'였지만 새 전도지를 방문할 때마다 유대인들의 집결지였던 '회당'에서부터 복음을 전했고, 자신을 신격화하려던 루스드라와 철학자들의 도시 아덴(아테네)의 메시지가 달랐다.
이를 통해 저자는 "불특정 다수에게 복음을 선포하는 일이 대야에 물을 담아 목마른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을 가리지 않고 물을 뿌리는 행위라면, 좀더 복음에 수용적인 이들을 고려하여 그들의 필요를 따라 접근하는 것은 목마른 사람에게 컵에 물을 담아 대접하는 행위가 될 것"이라며 "복음 전도의 결과를 우리는 예측할 수 없기에 양자가 모두 필요하지만, 지역교회나 개인이 전도자의 삶을 살고자 한다면 좀 더 수용성 있는 이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이러한 수용성을 바탕으로 교회의 섬김 사역을 집중하는 것이 예수님과 바울의 사역과 부합될 것"이라고 분석하고 있다.
오늘날 복음에 좀더 수용적일 수 있는 이들로는 가족의 죽음이나 질병, 경제적 고통 등 심각한 차원부터 이사·출산·진학·고독 등 덜 위급한 상황까지 크고 작은 위기 상황 속 즉 '생애 전환기(transitional periods)의 사람들을 꼽았다. 대표적인 생애 전환기로는 출산과 성년, 결혼과 장례 등이 있다. 이 시기 사람들은 교회의 관심과 돌봄에 더욱 호의적이라는 것. 복음이 사람들의 필요에 응답하기 위해 존재하는 것은 아니지만, 사회에서 겸허하게 도움을 필요로 하는 이들에게 이를 제공하면서 진정한 필요인 예수 그리스도와 인격적인 만남의 통로가 되어줄 수 있다.
이어 전도는 커녕 박해와 순교만이 가득했던 초대교회의 성장 비결을 영적·사회적 동력 뿐 아니라 여성 우대나 가정에서의 전도, 이차적 회심자와 출산율, 서로 돌보는 공동체와 헌신적 이웃 사랑 등 문화적 동력까지 살핀다. '전도 없이 전도한' 초대교회의 모본을 통해 오늘날 이벤트나 기법 혹은 군중 동원 등으로 전도에 접근하는 한국교회 일각의 시도들을 재성찰하고, 세례를 받기까지 오랜 기간 철저하게 성도를 양육했던 전통의 회복을 제언한다.
이 밖에 '공동체'와 '일상'이라는 메시지로 켈트족을 효과적으로 전도했던 성 패트릭 이후 중세 수도원 공동체, 노래나 이미지 등 예술적 장치들을 활용한 종교개혁기의 전도, 인간의 주관적 느낌과 응답을 강조한 19세기 찰스 피니로 시작해 D. L 무디와 빌리 그래함으로 이어지는 '부흥의 시대', 이에 대한 부작용으로 문화적 접촉과 공감, 친교와 탐구 중심의 20세기 후반 '구도자 전도' 등의 특징과 평가 등을 차례로 기술한다.
책의 결론과도 같은 '포스트모던 시대와 한국교회의 전도 과제'에서 저자는 모던 시대와 포스트모던 시대의 전도 특징을 ①논리·명제적 전도에서 인격적 이야기의 전도로 ②표준적 전도에서 상황적 전도로 ③개인 전도에서 공동체 전도로 등 3가지로 비교한다. 그러면서 '전도 거부 카드'까지 등장한 세태에 대해 '안티기독교 운동' 탓만 할 것이 아니라, "모던 시대의 해묵은 부대에 새로운 복음을 담으려 했던 건 아닌지" 반성을 촉구한다.
또 현대 한국 사회를 탁석산의 견해에 따라 4가지 시대로 구분하면서, 각각의 시대에 복음이 어떠한 메시지를 선포했는지 돌아본다. 먼저 구한말부터 1961년 군사 혁명까지 '생존의 시대'에는 '예수 천당'의 복음을, 박정희 정권부터 1980년대 중반 민주화까지 '생활의 시대'에는 희망의 복음을, 이후 밀레니엄 직전까지 '행복의 시대'에는 감동과 재미의 복음을 전했다. 21세기에 들어선 지금은 '의미의 시대'로, 한국교회는 함께하는 여정으로서의 복음을 전해야 한다. 그러므로 이제 사람들을 끌어모으는 전도가 아니라, 사람들의 생활 리듬 속으로 들어가 그들과 의미 있는 관계를 만들며 영적 여정의 동반자가 되는 '선교적 교회의 전도'로 전환해야 한다.
저자는 마지막으로 "역사는 돌고 돈다는 말이 있듯, 기독교 역사에서 복음 전도의 과제는 지난 1,700여년의 기독교 국가 시대(Christendom)를 지나, 탈 기독교 사회에서 새롭게 모색돼야 할 시점으로 오늘날은 오히려 초대교회 상황과 더 유사한 시기"라며 "복음 전도는 기독교 국가 시대의 교회성장 패러다임에서 벗어나, 하나님 나라의 선교적 교회 패러다임으로 전환돼야 하는 본질적 과제와 마주한 셈"이라 평가하고 있다. 선교적 교회론에 입각한 전도 모델은 영접기도를 따라하거나 관념적으로 동의하는 수준의 결신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의 가르침을 따라 전인적 변화에 들어서며 새로운 공동체에 헌신하는 과정으로서의 회심을 목표로 한다.
프로그램이나 방법론이 아닌, '전도'의 본질과 21세기적 대안을 찾고 있는 점에서 반갑다. 책을 펴낸 출판사가 선교단체라는 점도 희망을 갖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