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포럼이 열리고 있다. 왼쪽에서 두번째가 윤여상 소장, 네번째가 서보혁 교수. ⓒ평화재단 제공
전문가포럼이 열리고 있다. 왼쪽에서 두번째가 윤여상 소장, 네번째가 서보혁 교수. ⓒ평화재단 제공

평화재단에서 제66차 전문가포럼 '통일을 위한 준비: 북한 주민의 인권 문제, 어떻게 볼 것인가'를 19일 오후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개최했다.

평화재단측은 "17일 유엔인권이사회에서 공식 발표되는 유엔 북한인권조사위원회(COI) 보고서와 관련한 국제사회의 의견은 당연히 존중해야 한다"면서도 "우리는 직접 당사자로서 상황을 다시 검토하고 입장을 분명히 취해야 하는데, 여기서 가장 중요하게 고려해야 할 가치는 북한 주민들의 실질적 인권 향상과 한반도 통일"이라고 취지를 밝혔다.

포럼에서는 보수 진영에서 윤여상 소장(북한인권기록보존소)이 '국제사회의 북한인권 이슈 부상과 박근혜 정부의 대응'을, 진보 진영에서 서보혁 교수(서울대 통일평화연구원)가 '한국 사회에서의 북한인권 논의 성찰과 대안적 방향'을 각각 발표했다.

윤여상 소장 "인도적 지원 정량 사전예고제 필요"

윤여상 소장은 "북한 인권 문제의 주요 역할은 한국이 아닌 유엔과 국제사회가 맡고 있고, 이처럼 북한 인권 문제가 국제적으로 공론화될 수 있었던 것은 북한 인권의 실상이 국제사회에 공개됐기 때문"이라며 "과거 북한은 폐쇄적 체제로 자유로운 접근이 차단돼 그 인권 실상이 낱낱이 공개되지 못했지만, 1990년대 이후 탈북민 증가로 관련 정보가 증가하면서 이를 토대로 작성된 보고서들은 열악한 북한의 인권상황을 국제사회에 알리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설명했다.

윤 소장은 북한인권 개선을 위한 국제적 활동의 긍정적 성과로 국제적 관심 제고, 이슈 제공, COI 설립 등의 제도화, 국제형사재판소 제소 가능성, 실질적 대북 인도적 지원 및 인권기술 협력 등을 꼽으면서도 △국제적 통합연대 조직 미비 △분야별 및 테마별 통합연대 조직 미비 △국내·국제 단체 연대 미비 등의 문제점도 지적했다. COI는 결과 보고서를 통해 북한 인권 문제는 '반인도적 범죄(Crimes against Humanity)'로 규정하고, 그 책임자로 김정은 등 북한의 최고 지도자들과 국가안전보위부 등 기관들을 지명했으며, 북한 당국이 주민들에 대한 보호 책임을 이행하지 않고 그럴 의지도 없으므로 국제사회가 이를 이행해야 한다고 결론내렸다.

이후 그는 "그러나 남북간 특수한 상황을 고려하더라도 북한 인권 개선을 위한 주된 역할을 서구 국가들이 담당한다는 것은 민족사적 관점에서도 부끄러운 일"이라며 "한국 정부와 시민사회는 북한 인권 개선을 위한 국제적 활동에 더욱 적극적이어야 하고, 유엔 인권 메커니즘 등의 활동을 적극 지원함으로써 북한인권 개선의 실질적 성과를 유도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를 위해 한국 정부는 국제공조와 민간협력을 강화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북한 인권 개선을 위해서는 보편성·지속성·탈정치화를 기본 원칙으로 천명함으로써, 특정 정부와 정권의 입장에 의해 선호와 취사선택이 이뤄지는 것이 아니라 문제가 실효적으로 해결될 때까지 인도주의와 순수한 인간애로 정책을 일관성 있게 계속해서 추진해야 한다고 밝혔다. 우선적 과제로는 △식량 및 보건의료 환경 개선 △국군포로·납북자·이산가족 문제 실질적 성과 제시 △국내외 거주 북한인권 피해자 구제 및 지원 △문제 해결을 위한 제도적 장치 구축 등을 열거했다.

또 북한 당국과 주민을 분리해 투 트랙 전략을 펴고, 한국 정부·국제기구·NGO가 공조하며, 유엔과 국제사회의 추진 전략과 방법을 분석 및 적극 대응하고, 북한 당국에 대한 유인요인 강화와 정책환경 변화에 대한 영향 최소화를 꾀해야 한다고 진단했다. 윤 소장은 "'인도적 지원 정량 사전예고제(대북지원 캘린더)', 즉 2년을 주기로 쌀과 비료 등 지원 품목 수량 및 시기를 사전 예고하고 집행함으로써 특정 사유로 중단됐다 재개되더라도 그 시점의 카렌다에 명시된 항목은 자동 지원함으로써 소모적 논쟁을 지양해야 한다"며 "북한 당국은 대북지원에 협조하지 않을 경우 각 시기별 책정 지원 내용이 소멸되므로 적극 협력할 가능성이 높아질 것"이라고 제안했다.

서보혁 교수 "이제 남북한이 '코리아 인권' 외칠 때"

이후 서보혁 교수는 "구조적 차원에서 북한 인권의 실태는 물론 개선 전망까지 북한체제와 분단체제의 향방에 달려 있다"며 "그간 관여정책(김대중·노무현 정부)과 압박정책(이명박 정부)으로 방향을 달리한 우리의 대북정책은 둘 모두 충분한 성과를 거뒀다고 말하기는 어려우므로, 남한 역시 북한 인권 개선을 위해 남북관계 활용은 물론 국제협력에도 적극 나설 때 실효적 인권 개선을 가져올 수 있을 것"이라고 평가했다.

서 교수는 북한 인권을 둘러싼 5가지 쟁점을 ①북한의 인권 실태 ②북한 인권의 발생 원인 ③탈북민 실태 ④소위 기획탈북 문제 ⑤북한 인권 개선 방향 등으로 설정했다. 그는 "북한의 인권 상황이 악화된 데는 여러 원인이 작용했지만, 그 핵심원인은 수령독재체제"라며 "그러나 북한이 분단 상황 및 미국과의 적대관계로 국방정책을 강조하지 않을 수 없는 지정학적 조건이나, 1990년대 이후 사회주의 경제권 붕괴와 같은 지경학적(geoeconomic) 상황, 연이은 자연재해 등은 거의 다뤄지지 않고 있다"고 비판했다.

한 인터뷰에서 "북한인권법은 북한인권단체 지원법에 불과하다"고 비판한 바 있는 서 교수는, 북한인권법 문제에 대해 "새누리당이나 민주당이 내놓은 북한 인권 관련 법안은 그 접근 방향과 주관심사에 대한 차이에도 불구하고, 기본적 인권론에 부합하지 않고 정치적 접근이라는 비판을 받을 수 있다"며 "특히 정부여당의 법안은 남북관계 정상화가 아닌 상태에서 북한인권법 제정을 강조하는 일방적 자세를 보이고 있고, 입법 추진 입장에서 실효적 정책과 관련된 로드맵을 결여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서보혁 교수는 이후 북한인권 논의 성찰을 통해 "객관적 사실로서 북한에 인권 침해 현상이 있고, 그 실상이 평균 이하의 심각한 수준이라는 판단을 하는 데 인색할 필요가 없다"며 "지나친 정치적 고려가 진보의 어깨를 스스로 무겁게 해온 것이 사실"이라고 언급했다. 또 북한 인권 논의 틀을 진보의 관점에서 제시하지 못한 채 기성 담론에 따라 가거나 부정하는 소극적 태도를 극복하고, 진보 진영은 보편주의·실용주의 시각에서 북한 인권 개선을 위한 현실적 대안을 제시해야 한다고 했다.

그는 북한 인권 개선을 위한 접근 원칙으로 △국제인권 원리 준수 원칙 △인권과 평화의 조화 원칙 △실질적 인권개선 원칙 △협력적 인권개선 원칙 등을 제시하고, 구체적 정책은 한반도 정세와 남북관계, 북한의 호응 등을 감안해 점진적이고 다각적으로 전개하는 로드맵을 구상해야 한다고 전했다.

여기서 그는 '코리아 인권'이라는 용어를 통해 남북한이 상대의 인권문제를 도구화·대상화하지 않고, 한반도 차원의 공동 협력과제로 인식하는 것을 전제로, 북한과 남북한 인권협력 포럼을 열어 인권협력 가이드라인을 작성하고, 북한 측과 인권 대화 및 학술회의를 갖자는 등의 내용을 주장했다. 그리고 이를 위해 정전체제가 청산돼야 하고, 군사적 대치 상태가 완화돼야 한다고도 했다.

그러나 이 같은 '코리아 인권'론에 대해, 20일 조선일보 오피니언에서는 "국제사회도 본격 제기하는 북한 인권 문제를 더 이상 외면하기 어렵게 된 진보좌파가 고육지책으로 찾아낸 '물타기·물귀신 작전'"이라며 "우리 진보좌파는 온 세계가 걱정하는 북한인권 문제를 인류·민족적 양심과 양식에 기초해 바라보는 것이 왜 이다지도 힘든가"라고 규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