잃어버린 법궤를 발견하고, 갈보리 십자가 예수님의 피가 땅 속으로 스며들어 지하에 숨겨져 있던 그 법궤 위로 떨어진 증거를 찾았다고 주장하는, 아마추어 성서유적탐험가인 로널드 와이어트의 동영상은 수 년 전부터 떠돌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와이어트는 신앙 배경이 안식교인 것으로 알고 있고, 이전부터 모세가 이끈 이스라엘 민족의 출애굽 여정을 시나이 반도가 아닌 아라비아 반도로 비정하거나, 노아 방주가 아라랏산이 아닌, 이슬람의 꾸란이 방주가 도착했다고 기록하고 있는 주디산(꾸란 11:44)에서 발견했다고 주장하는 등, 여러 가지 논란을 일으킨 사람으로 유명합니다. 물론 모두 근거가 없는 딜레탕트 수준의 주장입니다.
첫째, 법궤 발견 주장의 성경적·신앙적 문제점
법궤(언약궤)는 여호와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지시한 대로(출 25: 10-22) 브살렐이 조각목(아카시아 나무)으로 제작했습니다. 처음에 성막 지성소에 있던(출 40:21) 법궤는 실로에 도착(수 18: 1), 블레셋의 수중에 빼앗김(삼상 4:1-11), 독종에 시달린 블레셋의 반환(삼상 5장), 벧세메스, 기럇여아림(삼상 6장), 오벳에돔의 집에 3개월 보관을 거쳐 예루살렘 장막(삼하 6: 17)에 있다가 솔로몬이 완성한 예루살렘 성전 지성소에 안치되었습니다(왕상 8:1-9). 이후 바벨론의 느부갓네살이 예루살렘과 솔로몬 성전을 파괴하고(주전 약 586년 전후) 성전에서 법궤는 사라져 버립니다. 성전은 약탈되고 파괴되었고, 이스라엘의 모든 핵심 귀족과 인력들은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갑니다. 이 때 언약궤는 그 안에 있던, 만나를 담은 금항아리와 아론의 싹 난 지팡이와 십계명의 두 돌판과 함께 사라져 버렸습니다. 성경 밖 전설로는 구스의 도읍으로 옮겨간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예루살렘에서 2,500여년 만에 발견되었다는 것은 아무래도 석연치가 않습니다.
이 문제에 대해 선지자 예레미야는 훗날 예루살렘 자체가 하나님의 보좌가 될 것이기 때문에 성전 재건 시 법궤(언약궤)는 보이지 않을 것임을 분명히 합니다.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가 살다 돌아올 사람들은 여호와의 언약궤를 다시는 말하지 아니할 것이요 생각하지도 않을 것이요 기억하지 않을 것이요 찾지 않을 것이요 다시는 만들지도 않을 것”이라고 말합니다(렘 3:16-17).
예루살렘 멸망과 예루살렘으로의 포로 귀환과 관련된 예레미야 선지자의 이 예언은, 바벨론 포로 귀환으로 정확하게 실현되었습니다. 하지만 예레미야의 예언대로 스룹바벨과 헤롯 성전의 지성소에서 언약궤는 더 이상 보이지 않았습니다. 이 문제에 대해 신약 성경의 히브리서 기자는 중요한 말을 합니다. 성막과 지성소와 언약궤는 은혜 시대의 예표임을 분명히 합니다. 즉 육신의 제사장들은 땅의 제물로 땅의 제사를 드리나, 그리스도께서는 송아지의 피가 아닌 자기 피를 가지고 단 한 번 지성소에 들어가 영원한 구원의 길을 연, 대제사장 중의 대제사장이라고 말합니다. 그리스도는 육적 계명의 법을 따르는 제사장 계열이 아닌, 오직 무궁한 생명의 능력을 따라 영원한 멜기세덱의 반차를 좇는 제사장이었습니다. 이를 증거하듯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실 때 성소의 휘장은 찢어져 버렸습니다. 새 언약이신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언약궤는 말할 것도 없고 지상 성막 전체가 완전히 소멸되어 버렸습니다. 모형(그림자)은 실체가 드러나면 큰 의미가 없습니다. 하물며 썩어버릴 아카시나무(조각목)로 만든 언약궤에 집착하는 것은 무의미합니다. 우리 산야에도 많이 자라는 아카시나무가 단단하기는 하나 결국은 썩어버릴 나무에 불과합니다. 성경(히 11장)은 법궤가 없던 시절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과 요셉은 모두 영원한 대제사장이신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구원받았다고 말합니다. 율법은 장차 오는 좋은 일의 그림자요 참 형상이 아니므로 성막과 언약궤 앞에서 해마다 드리는 바 같은 제사로는 나아오는 자들을 언제든지 온전케 할 수 없다고 말합니다(히 10:1). 즉 성경은 이 전엣 계명은 연약하며 무익하여 폐하였다고 분명하게 말씀하십니다. 언약궤를 찾았다고 소동을 벌이는 것은 온전치 못한 계명으로 돌아가는 무익한 일일 뿐입니다. 모세 시체를 하나님께서 숨기신 이유도 바로 같은 이치입니다. 만일 모세 시체나 언약궤가 남아 있다면 유대교, 이슬람교, 천주교, 그리고 기독교 신자들이 성지순례한다고 얼마나 몰려들까요? 모두 부질없는 일이라 하나님은 모세 시체도 언약궤도 제거하신 것입니다(신 34: 6; 렘 3: 16-17).
둘째, 예수님 피에 대한 로널드 와이어트 주장의 문제점
예수님 피에 대한 로널드 와이어트의 주장은 더욱 괴이합니다. 골고다 십자가 지신 언덕 장소를 찾았으며, 갈보리에서 주님이 피흘리셨을 때 그 피가 땅 속으로 스며들어 정확히 그 지점 지하에 숨겨져 있던 법궤 위에 피가 떨어져 응고되어 있고, 놀랍게도 그것이 산 피였다는 주장입니다. 그런데 그 피의 염색체 수를 조사해보니 23개였다는 이상한 주장을 폅니다. 이것은 아마 예수의 피라고 주장하는 그 피가, 아버지 요셉의 피가 섞이지 않은 피라는 것을 설명하기 위한 의도가 있는 거라 생각됩니다.
이 같은 주장은 삼위일체론과 기독론에 엄청난 혼란을 주는 심각한 이설(異說)입니다. 피나 과학적 결과를 가지고 그리스도를 설명하려는 시도는, 피조물인 인간이 세속 피조 세계를 유비로 하여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을 설명하려는, 아주 위험한 발상입니다. 이런 시도는 늘 교회사에 있어 이단설이 되어 왔습니다. 따라서 로널드 와이어트의 주장은 일고의 가치도 없는, 하나님 말씀을 훼손케 만드는, 아주 위험한 발상이요 주장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자신들이 지하 동굴에서 발견한 피가 살아있었고 23개의 염색체만을 가졌다는 주장은, 결국 예수님이 동정녀 마리아에게서 나셨다는 주장을 합리화하려는 시도로 보입니다. 성 세포를 제외한 어떤 세포도 염색체를 23개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로널드 와이어트의 주장은 공상과학만화에서조차 등장하지 않는, 유치한 주장에 불과합니다. 오히려 그 피가 23개 염색체를 가졌다는 와이어트의 괴이한 주장은, 그 피가 남성(Y) 염색체가 없는 여성의 난포 세포라는 의미가 되어 신성모독의 결론에 이르게 만드는, 아주 위험한 주장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세속과 육체의 언어를 동원하여 그리스도를 설명하려는 시도는 절대 금해야 합니다. 그리스도인은 오직 사도신경과 니케아신경과 아타나시우스신경에 나타난, 그리스도께서 “동정녀 마리아에게서 나셨다”는 고백에 그쳐야 합니다. 이것이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의 고백입니다.
따라서 로널드 와이어트의 주장은 스탠리 그랜츠가 말하는 소위 ‘민속신학’에 속하는, 성경 밖의 이설이라고 보아야 합니다. 이런 민속신학이 한국교회에 난무한다는 것은 한국 그리스도인들의 수준이 늘 ‘민속신학’ 수준에 머물러 있는, 위태로운 상태라 하지 않을 수 없군요. 이 같은 주장에 동조하는 것은 늘 이단과 사이비들을 비호하게 만들고, 그들에게 기회를 만들어주는 계기가 되며, 안티 기독교인들에게 기독교가 한심한 종교에 불과하다는 빌미를 주게 됩니다. 이 지경에 이르게 된 책임은 일차적으로 분별력이 부족하여 바른 교리를 바르게 가르치지 못한, 한국의 일부 세속적인 목사들이 져야 할 겁니다.
* 이 글은 조덕영 박사의 ‘창조신학연구소’ 홈페이지(www.kictnet.net)에서 가져온 것입니다.
조덕영 박사는
환경화학 공학과 조직신학을 전공한 공학도이자 신학자다. 한국창조과학회 대표간사 겸 창조지 편집인으로 활동했고 지금은 여러 신학교에서 창조론을 강의하고 있는 창조론 전문가이기도 하다. 그가 소장으로 있는 ‘창조신학연구소’는 창조론과 관련된 방대한 자료들로 구성돼 목회자 및 학자들에게 지식의 보고 역할을 하고 있다. ‘기독교와 과학’ 등 20여 권의 역저서가 있으며, 다방면의 창조론 이슈들을 다루는 ‘창조론 오픈포럼’을 주도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