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이라고 하는 것은 사람마다 제각기 형편과 처지가 다르기 때문에 그 신앙의 기대와 목적 그 자체도 차이가 있기 마련입니다. 본문 1절에 “함께 하늘의 부르심을 입은 거룩한 형제들아”라고 쓴 것은 교회 등록하고 출입하게 되면서부터 하나님 편에서는 그 사람을 하늘나라 영광의 후사로 천국을 물려주시기 위한 상속 받을 대상으로 택하시고 불러들이셨다는 말씀이 됩니다. 그 사람들은 아직까지 진리를 깨닫지 못하고 성령으로 거듭나지 못한 상태에 있다 하더라도 하나님 편에서는 그가 성령으로 하나님을 알아보게 하실 것이고 또 성령의 체험과 감동으로 믿어지게 해 주실 것이며 그가 회개의 성령에 의지해서 회개하게 되기만 하면 그에게 하나님은 그간의 원죄와 자범죄로 인하여 지옥 길에 시달렸던 불행에서 벗어나게 하실 것입니다. 따라서 그에게 파송된 성령이 지시하시고 인도하심을 따라 오로지 하늘 소망을 목적으로 믿음 생활할 때에는 순종하게 되어 있고, 겸손하여 끝까지 따르게 될 때에 그 성령이 책임지고 하늘나라까지 데려가 주신다고 하는 것이 우리가 믿는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사관에 의한 구원의 교리인 것입니다.
1. 믿음의 시작 - 성령의 깨닫게 하심을 통한 회개
교회는 다니는데 하나님을 정확하게 알아보지도 못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하신 대속의 은혜, 그 비밀을 깨닫지도 못하고 그냥 분위기에 어울리고 휩쓸려서 회개도 하지 아니하고 하늘 소망에 간절한 믿음도 없이 그저 교회만 열심히 들락거리고 회개하지 아니한 사람은 예수님을 주님으로 모실 수가 없습니다.
회개라고 하는 것은 참으로 중요한 것입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성령의 계시와 조명, 체험과 감동을 통하여 하나님을 깊이 있게 알아보게 해 주심을 받은 사람만이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거룩하심과 전지전능하심에 두려워서 스스로 자신이 죄인임을 고백하고 잘못 산 지난날들의 불신앙의 죄악을 용서받자고 회개를 서두를 수밖에 없도록 되어 있습니다. 교회를 수십 년 다녔어도 이와 같은 성령으로 회개케 하심의 과정이 없었고 진심으로 회개한 일이 없었다고 하면 그 사람은 불행하게도 교회 다니는 사람일 뿐이지 하나님과 전혀 상관없는 지옥 갈 사람임에 틀림없습니다.
교회의 목자를 통한 성령의 선포하게 하시는 말씀이 성령으로 깨달아지게 하시고 체험과 감동으로 믿어지게 하심을 받은 사람은 회개 아니 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회개하고 예수님의 이름으로 죄의 용서함을 받은 사람은 하나님이 그의 중심을 보시고 그 믿어지게 하는 믿음의 진실성을 하나님께서 인정하실 때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모든 죄를 사하여 주시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죄의 용서함을 받은 사람은 지옥에 갈 불안도 두려움도 없게 되고 그가 하나님의 백성이 되어져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고 성령에 이끌리며 쓰임받게 되기를 소원하게 됩니다. 그 사람은 자기 의지와 결단과 노력으로 살았던 지난 세월들이 부질없는 것임을 깨닫게 되고 하나님을 전적으로 붙들고 의지하며 매달리게 되어있습니다. 그럴 때에 신앙고백이 터져 나오도록 성령이 역사하시게 됩니다.
하나님을 깊이 아는 사람은 그 믿음의 뿌리는 아는 것만큼 깊어지기 때문에 세상 마귀가 어떤 형태로 위협하고 환난 풍파로 힘들게 괴롭힌다 할지라도 하나님을 깊이 아는 믿음의 사람은 절대로 신앙이 흔들리거나 동요할 리가 없다는 것입니다. 변덕스러운 믿음을 가진 사람은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얕기 때문입니다. 때로는 자기 형편과 입장에 믿는 척 했는데, 교회에서나 선교를 통하여 교회로부터 자기에게 부담이 되면 금방 믿음이 넘어지는 것은 하나님을 깊이 알지 못하는 무지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신앙생활은 회개하던 그 시간부터 확실한 깨달음으로 하나님과 예수님, 성령의 존재와 역할에 대하여 깊이 깨달아졌고 또 깨달아진 만큼 깊이 믿어지기 때문에 시작한 믿음은 끝까지 지속되어야 합니다.
2. 믿음생활의 4가지 과정
이 신앙생활은 네 가지 과정에 변함없는 노력이 있어야 합니다. 첫 번째로는 하나님을 성령으로 깨닫게 하심을 받아 하나님을 깊이 알아보게 되는 신지식(God Knowledge)이 있어야 됩니다. 두 번째로는 진리에 대하여 하나님을 깊이 알아보게 되고 믿어지게 되었다고 하는 것은 그 진리가 약속하고 증거하는 내세소망에 대한 절대적인 확신, 믿어지는 믿음이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세 번째로는 그 소망적인 믿음을 생활 속에서 입체적으로 증거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하늘의 신령한 소망을 품고 사는 것을 자랑하고 기뻐해야 할 것입니다. 네 번째로는 시작할 때부터 확실한 진리의 기대감을 갖고 그 진리가 증거하는 소망을 붙들어야 합니다. 육신이 원했던 세상 조건은 포기하고 영원하고도 신령한 내세의 소망을 목적으로 살아야 합니다. 그리고 오로지 믿음과 기도로 전도하고 봉사하며 섬기는 목적으로 살다가 하늘나라에 영광스런 자격으로 들어가서 천국을 상속받고 하나님 모시고 영생복락을 누리겠다고 생각하고 증거했다면, 생각과 말과 행동은 하늘소망의 신령한 기쁨을 소유한 사람처럼 날마다 생활로 엮어 보여줄 수 있어야 합니다.
예수님은 희생을 위하여 세상에 오셨습니다. 하늘 영광의 보좌를 버리시고 인간의 육신을 입고 세상에 오셔서 지옥 갈 죄인들의 발을 씻어 주시면서 자신을 낮추셨습니다. 마태복음 20:28에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하셨습니다. 그리고 십자가에 못 박히고서 “다 이루었다” 하실 때 예수님은 모든 사람들에게 온전히 희생 제물이 되어 주신 것입니다.
우리가 시작할 때에 확실히 깨달은 보배로운 진리, 성령의 계시와 체험과 감동으로 믿어지게 하심을 받았으면 그 믿음이 우리에게 보장하시는 진리의 약속대로 하늘의 영원하고 신령한 소망의 기쁨에 젖어 사는 모습을 모든 주변사람들에게 입체적으로 보여줄 수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자기가 날마다 이 신령한 소망의 기쁨을 위하여 믿음으로 산다는 신앙고백이 입술의 말로만 그칠 것이 아니라 생각과 말과 행동을 통한 맏음 생활을 지속해야 합니다.
3. 믿음의 표증 - 기쁨과 내세의 소망자랑
2절을 보면 예수님과 모세에 대하여 비교하면서 설명을 합니다. 여기서 모세와 예수님과의 존재와 자기에 대한 비교가 거론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우리가 믿어야할 참 교리의 사도가 되시고 대제사장이 되십니다. 예수님은 자기를 세상에 보내신 아버지의 뜻을 이루어 드리기 위하여 자기 생애를 수모와 고통 가운데 횡포를 당하시며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시기까지 어떤 고난도, 죽임당하심도 전혀 주저하시거나 망설임 없이 향기로운 희생 제물이 되셨습니다. 그리고 모세는 하나님의 집에 충성을 다한 사환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집은 교회를 말씀하는 것입니다. 구약시대의 교회는 출애굽을 하면서 시작된 광야교회를 말합니다. 그 광야교회가 앞으로 오실 예수 그리스도의 왕국에 참예할 자격자들을 양성하는 곳이었습니다. 약속의 땅인 가나안에 들어가기까지의 여정속에 있었던 교회가 광야교회입니다.
3절에서 예수님은 모세보다 영광을 받으실 만한 것이 마치 집지은 자가 그 집보다 존귀하다고 했습니다. 모세는 광야교회를 하나님의 지시에 의하여 세웠고 그 광야교회를 영적인 교회로 만들기 위해 기도하고 권면하고 애원하고 책망하고, 처벌해 가면서 이끌어 왔으나 불행하게도 40년 세월에 모세의 목회는 여호수아와 갈렙 두 사람만 가나안 땅에 들어가는 성과를 거두었습니다. 천국가는 노정에 대하여 구약에 있었던 모형을 우리에게 상기시켜 깨닫게 하시는 교훈을 받아야 합니다.
히브리서3:7-8에서 “그러므로 성령이 이르신 바와 같이 오늘날 너희가 그의 음성을 듣거든 노하심을 격동하여 광야에서 시험하던 때와 같이 너희 마음을 강퍅케 하지 말라” 합니다. 9절에 “거기서 너희 열조가 나를 시험하여 증험하고 사십 년 동안에 나의 행사를 보았느니라” 하십니다.
성령의 무한하신 능력으로 하나님의 존재와 하나님의 뜻을 밝히시면서 하나님이 예비하신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에 들어갈 자격 갖추라고 목자 모세를 세워서 일러 주셨으나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았습니다. 모세와 하나님을 원망하고 대적하던 그들은 광야에서 땅이 입을 벌리게 하고 한꺼번에 생매장을 시킨 일도 있었습니다.(민16:25-34)
우리가 흔히 생각할 때에 하나님을 사랑이시라고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사랑이시기도 하지만 하나님이 속도 없는 분으로 생각해서는 안됩니다. 하나님은 엄격하시고 철저하시고 완벽하신만큼 상선벌악(賞善罰惡)의 원리는 절대로 변하지 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의 믿음은 하나님을 정확하게 알아보는 믿음으로 하나님의 신령하고도 영원한 영생복락의 소망에 대한 확신이 있을 때에 우리의 생활이 달라집니다. 이제 있다가 없어질 세상 것들이 아무리 유혹을 하고 위협을 해 오더라도 더 낫고 영구한 하늘의 영원하고 신령한 소망을 붙들었기 때문에 이것을 놓칠 수가 없습니다. 이 세상의 모든 유혹도 위협도 횡포도 뿌리치며 믿음과 기도로 타개하며 극복하고 이겨야 하는 것은 내세의 소망에 대한 믿어지는 믿음 때문입니다.
“그 소망을 자랑하고 증거하라” 이것이 간증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으로부터 얻어서 누리고 있는 영적인 세계의 신령한 소망의 기쁨과 만족한 은혜를 모르는 사람들에게 자랑하고 증거해야 합니다. 간증해야 합니다. 그리고 내세의 소망의 확신을 믿어지는 믿음으로 자랑했다면 하늘나라에 들어가기까지 입으로 증거한 만큼 생활에 걸맞는 신앙생활이 지속되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