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르겐 몰트만 박사는 2일 오전 서울신학대학교(총장 유석성 박사)에서 명예 신학박사 수여식 후 제자인 박종화 목사(경동교회)의 통역으로 ‘하나님의 기쁨의 광활한 공간 속에서’를 제목으로 ‘영성과 신학’ 강좌를 가졌다. 해당 원고는 역시 몰트만 박사의 저자인 김균진 교수(연세대)가 번역했다.
몰트만 박사는 이날 ‘희망의 신학자’로서, ‘기쁨의 종교’인 기독교가 고통과 고난이 만연한 이 세계에서 어떻게 이를 극복할 수 있는가에 대한 신학적인 답변을 시도했다.
먼저 몰트만 박사는 ‘하나님의 기쁨’에 대해 이야기했다. 그는 구약과 신약에 흩어진 수많은 구절들을 열거하면서 기독교가 ‘독특한 기쁨의 종교’임을 주장했다. “기독교 신앙은 성탄절의 기쁨과 부활절의 영광, 성탄절의 노래들과 부활절의 웃음, 하나님의 성육신과 인간의 부활 등 그야말로 잔치들 속에서 살면서도, 기독교의 보편적 표징은 십자가, 곧 고통과 고난과 잔인한 죽음에 대한 상징이기 때문”이다. 그는 “기쁨과 고통이 서로를 배제하는 모순인지, 아니면 그들이 함께 속하는지”를 묻기도 했다.
그는 이에 대해 영적 기쁨과 감각적 기쁨을 구별하면서, 이 둘은 함께 속하지만 우리는 생명의 기쁨과 신약에서 ‘육적 즐거움’이라 부르는 파괴적 중독증들을 구별할 수밖에 없다고 이야기한다. “믿음 그 자체가 기쁨”이라고도 했다.
몰트만은 “우리의 고통에 참여하신 예수의 고통에 참여함으로써 기쁨을 체험할 수 있다”고 전했다. 본회퍼의 말처럼 ‘그리스도인들은 그의 고난 속에 계신 하나님 가운데 서 있다’고 할 수 있으며, 기뻐할 수 있는 하나님은 고난을 당할 수 있고 고난을 당할 수 없는 하나님은 기쁨의 하나님일 수도 없다는 것이다.
이후에는 ‘인간의 삶의 기쁨과 고통’에 대해 설명했다. 여기서는 구원받은 사람들에 대한 하나님의 기쁨과 살아계신 하나님에 대한 사람들의 기쁨을 규범으로 삼을 수 있는데, 이때 기쁨은 외적이며 일시적인 감정일 수 없고 오히려 ‘온 마음과 영혼, 힘을 다해’ 체험될 수밖에 없다. 절반의 마음과 부재한 영혼으로는 제대로 기뻐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많은 이들은 기쁨이나 행복보다는 고통과 절망을 더 가깝게 느끼고 있다. 이에 대해 그는 “기쁨과 슬픔, 행복과 고통, 웃음과 울음은 대립하는 게 아니다”며 “오직 사랑 안에서, 우리는 자신으로부터 나가 삶의 경험들을 대면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이야기했다. 사랑 안에서 행복을 얻을 수도, 상처를 받을 수도 있다. 사랑이 우리를 사랑 안으로 더 깊이 끌어들일수록 우리는 더욱 생동하게 되지만, 더 큰 고난을 경험할 수도 있다. 삶이 생동케 될수록 죽음이 더욱 치명적으로 경험되는 이러한 현상을 두고 그는 “긍정되고 사랑받는 삶의 변증법”이라고 했다.
그는 “기쁨과 고통, 삶과 죽음 가운데 어느 것이 더 원초적이고 깊은가에 대해, 우리는 현존(Dasein)이 비존재(Nichtsein)보다 더 원초적이라고 대답할 수 있다”며 “삶은 죽음 이상의 것, 사랑이 먼저 오고 그 다음에 슬픔이 오며, 희망은 절망을 앞서기 때문에 기쁨이 고통보다 더 원초적이고 더 깊다”고 말했다.
몰트만 박사는 결론에서 “십자가에 달린 그리스도의 고난과 죽음이 서 있음에도, 왜 기독교는 독특한 기쁨의 종교가 될 수 있는가” 라고 질문하면서 “골고다 뒤에서 부활세계(Auferstehungswelt)의 태양이 떠오르기 때문이요, 십자가에 달린 그분이 영원한 신적 삶의 광채 속에서 이 땅 위에 나타났기 때문이요, 그분 안에서 새롭고 영원한 세계의 창조가 시작하기 때문(롬 5:20, 롬8:34)”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므로 고통은 기쁨으로 변화될 것이며, 시간적인 죽음은 영원한 생명으로 지양(止揚)될 것”이라고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