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연방대법원은 지난달 26일(현지시각) ‘결혼은 남성과 여성의 결합’이라는 ‘결혼보호법’(DOMA)을 ‘위헌’ 판결했다. 이 법 때문에 동성커플에게 제도적 차별이 주어져선 안 된다는 취지였다. 이 판결이 주법 개정으로 바로 이어지지 않고 여전히 다수의 주가 동성결혼을 금지하고 있지만, 동성애 옹호자들의 분위기는 이미 고조돼 있다.
미국 만큼은 아니지만 ‘동성애’에 대한 인식 변화는 한국이라고 다르지 않다. 동성애를 이성애와 동일한 ‘성적 지향’의 하나로 간주하거나, ‘선천적’ 요인이라고 주장하며 인정하는 이들이 점점 늘고 있다. 동성결혼도 마찬가지다. 최근 한 영화감독은 자신의 ‘동성 애인’과의 결혼을 발표했다. 그러면서 ‘혼인신고’도 하겠다고 했는데, 만약 이것이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헌법 소원’까지 내겠단다. 한국에서도 ‘동성결혼’ 문제는 이미 현실이 됐다.
미국 연방대법원이 ‘결혼보호법’을 위헌이라고 한 것은, 이 법이 미국인들의 평등과 자유를 보장한 수정헌법을 위배한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연방대법원의 판결이 난 직후 성명을 통해 “모든 미국 국민이 동등하게 여겨질 때 우리는 더 자유로울 것”이라고 했다. ‘성별’을 이유로 차별이 있어선 안 된다는 것이다. 설사 그것이 결혼이라 할지라도.
한국은 어떨까. 미국처럼 결혼을 남성과 여성의 결합이라고 명시한 법은 없지만, 법이 이를 전제하고 있다는 점만은 분명하다. 가령 우리 헌법이 “혼인과 가족생활은 개인의 존엄과 양성(兩性)의 평등을 기초로 성립되고…”(제36조 제1항)라고 하거나 민법이 가족제도 등을 언급하며 ‘부모(父·母)’ 혹은 ‘부부(夫·婦)’ 등 성적으로 대비되는 용어를 사용한다는 점에서 그렇다. 실제 동성끼리는 혼인신고 자체가 불가능하다.
지난 2004년 인천지방법원의 관련 판결 역시 동성결혼에 대한 우리 법의 입장을 잘 보주여는 사례다. 당시 재판부는 동성(同性) 간 동거를 ‘사실혼’으로 볼 수 있는지에 대해 “사화관념상 가족질서적인 면에서 용인될 수 없다”며 “동성 간 사실혼 유사의 동거관계를 사실혼으로 인정, 법률혼에 준하는 보호를 받을 수는 없다”고 했다. 즉, 사회관념상 결혼은 남성과 여성의 결합이므로, 이러한 관념이 변하지 않는 이상 동성결혼은 법적 보호를 받을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는 다시 말해, 사회관념이 변하면 동성결혼도 가능하다는 의미와 같다. 그러니까 결혼을 반드시 남성과 여성의 결합이라고 볼 수 없다는 인식이 생기면, 남성과 남성, 여성과 여성의 결혼 역시 법적 보호의 대상이 될 수도 있다는 말이다. 동성커플이 늘어 그들이 이성커플과 같은 사회보장을 요구한다면, 이미 미국의 판결이 있는 상황에서 한국은 어떤 결정을 내리게 될까.
당장 이 문제로 “헌법 소원을 내겠다”고 한 이들이 있다. 한 변호사는 “동성결혼을 원하는 이들이 헌법이 보장한 기본권 중 평등권 등을 주장할 수 있다”며 “이럴 경우 재판부는 동성결혼을 금지하고 있는 현행 법률이 과연 ‘과잉금지의 원칙’에 타당한지 등을 검토할 것”이라고 했다.
과잉금지의 원칙은 국가가 법으로 국민의 기본권을 제한할 경우 ▲목적의 정당성 ▲방법의 적절성 ▲법익의 균형성 ▲제한의 최소성 등을 준수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과 어긋나는 법은 위헌이 된다.
이 변호사는 “결혼이 남자와 여자의 결합이라는 인식이 강한 지금은 헌법 소원을 내더라도 이길 가능성이 그리 높아 보이지 않는다”며 “그러나 만약 결혼에 대한 전통적인 인식이 변해 법으로 동성결혼을 제한하는 것이 적절하지 못하다는 분위기가 형성되면 상황은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다. 이 때 다른 나라의 사례, 가령 얼마 전 미국의 판결 등이 참고사항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혼인빙자간음죄가 바로 그러한 경우다. 헌법재판소는 지난 2009년 당시 형법 304조 혼인빙자간음죄 조항에 대해 위헌 판결했다. 이는 개인들이 스스로 결정해야 할 것을 국가가 법으로 통제할 수 없다는 문제의식에서 내려진 판결로, 성에 대한 사회인식의 변화가 법률의 위헌 결정을 가져온 대표적 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