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장 합동총회(총회장 정준모 목사) '비상대책위원회'(위원장 서창수 목사, 이하 비대위)가 지난 21일 위원장 명의의 입장문에서 "조속한 시일 내 해산할 것"이라고 전격 발표했다. 지난해 9월 제97회 정기총회 마지막 날 총회 현장에서 조직된 비대위가, 약 8개월 만에 사실상 막을 내린 것이다.

갑작스런 '해산' 선언

비대위의 이번 '해산' 선언은, 그 동안 그들이 드러낸 의지에 비하면 다소 갑작스런 감이 없지 않다. 일각에서는 오는 9월 제98회 정기총회 때 각 노회들을 통해 구체적 '개혁 헌의안'을 올리겠다던 비대위가 정기총회 전 '해산'을 언급한 자체를 모순으로 보고 있다. 지금까지 비대위측에 서 있던 노회들에게 자칫 찬물을 끼얹을 수 있다는 점 때문이다.

비대위는 이번 입장문에서 '해산'의 명분을 크게 두 가지로 꼽고 있다. 하나는 정준모 총회장이 스스로 오는 6월 목사장로기도회 개회예배 설교를 하지 않겠다고 했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총회의 화합 차원이다. 특히 전자에 대해 합동측 교단지인 <기독신문>은 "(비대위가) 총회장의 설교권 양보를 총회장의 자진근신으로 해석한 것"이라고 분석했다. 즉, 비대위는 총회장의 이 같은 결정으로 소기의 목적을 달성했다고 보는 듯하다.

▲지난 1월 '속회 총회'(비상총회) 개최에 찬성하는 비대위원들이 손을 들어 의견을 표시하던 모습. 

하지만 이런 이유만으로 비대위가 해산을 결정했다고 보는 시각은 많지 않다. '총회장 사퇴'까지 언급하며 압박 수위를 높이던 발족 초기 모습과는 거리가 멀기 때문이다. 총회 화합을 위한 '대승적' 결정이라고 하기에도 무리가 따른다. 일부는 '화합' '협력'이라는 단어를 명분이 없을 경우 대신 쓰는 '수식어'일 뿐이라고 치부하기도 한다.

'진짜' 원인은?

비대위는 왜 '해산'까지 결정하게 된 것일까. 우선 비대위가 '법적' 싸움에서 밀렸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비대위 발족의 결정적 불씨가 된 것은 지난 제97회 정기총회 마지막 날 총회장의 '기습 파회'였다. 총대들은 여기에 분노를 느꼈고, 즉시 총회석상에서 전국 노회장들을 중심으로 비대위를 결성했다. 그들은 총회장의 기습 파회를 '불법'으로 규정했다. 지난 2월 소위 '속회 총회' 역시 사실상 정기총회의 '불법 파회'를 전제한 모임이었다.

그러나 이후 총회 임원회는 정기총회 회의록을 채택하며, 기습 파회의 불법성을 인정하지 않았다. 또 총회 직후의 흥분이 가라앉자 교단 내부에선 총회장의 기습 파회에 법적 하자가 없었다는 여론이 형성되기 시작했다. 의장으로서 경솔했을지는 모르나 법적 문제는 없었다는 것이다. 비대위에서조차 이런 기류가 흘렀는데, 이 때문에 비대위는 지난 2월 '속회 총회'를 열기까지 약 4개월 동안 상당한 시간을 '법적 검토'에 할애할 수밖에 없었다.

▲비대위가 지난 2월  19일 대전에서 개최했던 '속회 총회'. 

첫 단추를 잘못 끼운 비대위는 갈수록 '법'에 발목이 잡혔다. 그들이 야심차게 꺼내든 '속회 총회' 카드 역시 끊임없는 법적 문제에 휘말려야 했다. 게다가 수시로 날아드는 '고소장'에 비대위원들이 상당한 압박을 느꼈고, 결국 이것이 비대위를 멈추게 한 가장 큰 요인이라는 분석이다. 이를 반영하듯 비대위는 이번 입장문에서 "총회 화합을 위해서는 모든 고소·고발을 취하하고, 오해한 부분은 믿음 안에서 기도하고 이해함으로 새로운 100년을 향해 나아가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미 법적으로 불리해진 비대위는 '도의적 책임'에서 돌파구를 찾으려 했지만 이마저도 이렇다할 성과를 내는 데 실패하고 말았다. 예상을 깨고 지난 2월 비대위 '속회 총회'에 모습을 드러낸 정준모 총회장은 비대위원들을 향해 큰절까지 올리며 사과의 뜻을 전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후 '합의문 사태'가 불거지며 양측은 다시 첨예한 갈등으로 치달았다. 총회장측은 '속회 총회' 직전 양측이 합의한 사항이 일부 변조됐다고 주장했고, 비대위는 총회장이 말을 바꾸고 있다고 맞받았다. 이런 과정에서 비대위가 총회장에게 요구한 '7월 말까지 근신' 등은 끝내 이뤄지지 않았다.

이 때부터 비대위는 활동의 초점을 오는 제98회 정기총회로 맞추기 시작했다. 비대위와 뜻을 같이 하는 노회들로 하여금 헌의안을 올리게 해 그들의 목적을 달성하려는 의도였다. 이와 함께 비대위의 가시적 활동이 뜸해졌는데, 그러자 "비대위가 힘을 잃은 것 아니냐"는 목소리가 조금씩 대두되기 시작했다. 목사장로기도회를 따로 열기로 했다가 취소한 것도 '비대위 세(勢) 약화론'에 힘을 실었다. 이런 분위기에서 '해산'을 언급한 이번 입장문이 나오게 된 것이다.

구심점이 강하지 않았다는 점도 지적되고 있다. 위원장 서창수 목사를 비롯한 지도부는 '속회 총회' 전부터 이미 '사퇴'를 언급하는 등 의지가 약화된 모습을 보여왔다. 교단 내 한 관계자는 "그들의 잘못이라기보다 법적 정당성도 약하고 재정도 뒷받침되지 않은 상황에서 목회와 비대위 활동을 병행하는 게 쉽지만은 않았을 것"이라며 "애초 비대위가 발족될 당시 총회석상에서 분위기를 주도하던 몇몇 목회자들이 비대위를 이끌어야 했다는 주장도 있었다"고 말했다.

이밖에 사태 지속으로 인한 책임론 대두, 교단 분열 위험성 및 이미지 실추 등에 대한 부담도 복합적으로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속회 총회' 당시 발표된 합의문을 두고 양측의 주장이 엇갈리자 증경총회장단은 양측을 불러 직접 사태를 조사하기도 했다.

"이제 개혁은 총대들 손에"

비대위 부위원장 사일환 목사는 비대위가 '해산'을 언급한 입장문을 발표한 후 본지와의 통화에서 "지금 제일 중요한 것은 전국 목사장로기도회고, 이미 오는 총회에 각 노회의 헌의안이 다 올라가 있기 때문에 원칙적으로 비대위가 해야 할 일은 끝났다"며 "(입장문에서 '해산'을 언급한 것은) 목사장로기도회 때 혹시 생길지 모를 불협화음을 미연에 방지하기 위함이다. 화합의 장으로 나가자는 메시지"라고 말했다.

사 목사는 또 "비대위가 지금까지 존재한 것만으로도 굉장히 의미 있었다는 평가들이 있다. 앞으로도 총회를 계속 감시할 것"이라며 "이제 개혁은 총대들의 손에 넘어갔다"고 덧붙였다.

비대위 활동은 끝났지만 교단 관계자들은 총회가 이번 일을 계기로 환골탈태해야 한다고 조언하고 있다. 한 목회자는 "교단 내 상당히 많은 목회자들이 비대위 활동에 동참했었다는 사실을 총회는 진지하게 고민해야 할 것"이라며 "오는 제98회 정기총회에서 이것이 어떤 식으로 표출될 지 알 수 없지만 다음 지도부가 이번 사태를 반면교사로 삼아야 한다는 것만은 분명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