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미대륙에서 처음으로 금이 발견된 것은 1820년 말이다. 캘리포니아에서 금이 발견됐다는 소식은 백인들에게는 Good News였지만 인디언들에게는 Bad News였다. 금을 채굴하기위해 미국 정부는 1830년 《인디언 이주법》(Indian Removal Act)을 강행하였고, 아메리카 토착민들이 오클라호마의 인디언 보호구역으로 강제 이주 당하면서 많은 인디언들이 병, 추위, 굶주림으로 죽은 '눈물의 길'(Trail of Tears)을 걸어가야 하는 운명이 되었다.
가장 잘 알려져 있는 골드 러시는 1848년 캘리포니아의 새크라멘토 강 근처에 있는 존 서터(Johann Sutter)의 제재소에서 발견되었다. 1848년 1월 24일 존 서터가 제재소를
건설하고 있는 동안 그의 목수인 제임스 마셜(James W. Marshall)이 우연히 금을 발견하였다. 서터와 마셜은 서로 동업자가 되기로 하며 그들이 금을 발견했다는 사실을 누설하지 않는 것에 동의한다. 그 당시 라디오도 텔레비전이 없던 시절이었기에, 캘리포니아에서 금이 발견됐다는 소식이 미국 동부에 전해지기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소요되었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캘리포니아에서 많은 양의 금이 발견됐다는 소식을 접한 수천명의 사람들이 일확천금을 좇아 제재소로 몰려들었다. 그리하여 본격적인 골드 러시는 1849년에 시작되었다. 그 해 약 80,000명의 포티나이너스들이 캘리포니아의 금광지대에 몰려들었고,1853년에는 그 수가 250,000명에 달했다.
끊임없이 사람들이 유입되어 그로 인해 골드 러시의 세력이 점차 약화되었고 채굴 가능한 매장량이 고갈되기 시작했다. 또한 금을 채굴하는 데 있어 효율적이고 장비를 갖춘 기계가 사람을 대신하였다. 금 광산 지대가 불법적이고 폭력적인 장소로 변모하자 정부의 감시체제와 함께 법이 강화되었다. 1853년 금이 대부분 고갈되어 골드 러시의 세력이 사그라지면서 거주지들은 다른 경제활동이 부족해져 유령도시로 변했다. 골드 러시는 1849년부터 1853년까지 짧은 기간동안 미국 서부의 캘리포니아에서 성행하였던 금 채굴붐이었다.
1849년 본격적으로 시작된 골드 러시는 미국사회의 개발의 중요한 발판으로 작용했다. 이 당시 사람들은 금을 발견하면 자신의 소유가 될 수 있다는 기대에 부풀어 캘리포니아로 몰려들었다. 이들은 대체로 가족단위로 정착하여 거주하지 않고 개인 위주로 정착한 모험심이 강한 청년들이 주류를 이루었고 아메리칸 드림을 품고 미대륙으로 건너왔다. 과거에는 금이 발견되면 모두 왕이나 지배층의 몫이었지만, 캘리포니아의 골드 러시는 평범한 사람들도 금을 찾아내기만 하면 장소나 양에 상관없이 자기가 소유할 수 있다는 새로운 풍조를 만들어내어 세상은 황금열풍에 휩싸이게 되었고 그로 인해 미국에 대한 환상도 늘어났다. 골드 러시 동안 금 생산량이 급격히 증가했다. 캘리포니아 금 생산량은 1851년 85톤까지 늘어났고 한 해의 금 선적량이 전체 연방예산보다 많았다. 골드 러시가 거의 끝날 무렵인 1853년에는 금 생산량이 100여 톤으로 증가했다. 또한 골드 러시가 가장 성행하였던 1849년에는 금광 붐으로 인해 미국으로의 이민이 급격히 증가했다.
1853년 금이 고갈되어 일확천금의 꿈이 사라지자 정착했던 이주민들이 다시 돌아가게 되었고 그 결과 금광 붐을 이루었던 지역들은 유령도시로 변모했다. 1848년 캘리포니아에서 골드러쉬가 처음 일어난 뒤 반세기 동안 세계 도처에서 다른 골드 러시가 발생했다. 그러나 역사를 통해서 수많은 골드 러시가 존재하지만, 금을 발견한 사람은 단지 소수의 퍼센트에 해당한다.
미국 전역에 불어닥친 황금 열풍의 영향권에서 메릴랜드도 예외가 아니었다. 메릴랜드에 살던 젊은 농부인 데이빗도 골드러쉬 행렬에 동참하게 된다. 자신의 재산을 정리해 콜로라도의 금광지대로 가서 갖은 고생 끝에 큰 금광맥을 발견하게 된다. 그는 이 사실을 숨기고 고향으로 돌아와 친구들을 설득해 자금을 모으고 기계를 구입해 금광을 발견한 곳으로 달려가 채광 작업을 시작했다. 드디어 최초의 채광작업 물량이 회사차에 실려 제련소로 보내졌다. 결과는 만족스러웠다. 본격적으로 채광작업에 들어가 두어 번만 더 캐내도 투자액을 환수할 수 있고, 그 다음부터는 그야말로 노다지를 캐는 벼락부자가 되는 일만 남았다. 호사다마라 했던가? 이게 왠 일인가?
갑자기 금광맥이 끊어져 버렸다. 그럴 리가 없다며 필사적으로 파보았지만 역시 헛수고였다. 데이빗은 결국 얼마안가 포기하고 기계를 헐값에 고물상에 팔아 버리고 집으로 돌아오고 말았다. 데이빗으로부터 기계를 사들인 고물상 주인은 전문 광산기사를 고용해 조사를 해봤더니 '데이빗'은 단층 광맥의 성질을 잘못 알고 포기했음이 드러났다. 데이빗이 포기한 지점에서 1m뒤에 금광맥이 있었다. 이로 인해 고물상 주인은 횡재하여 수백만 달러의 재산가가 되었다. 데이빗은 기회를 잡았었으나 마지막 단계에서 인내치 못해 꿈을 놓치고 말았다. 이 사실을 신문보도를 통해 알게 된 데이빗은 발을 구르며 원통해 했다. 그 후 그는 생명보험 영업 사원이 되어 자신의 쓰라린 경험을 살려 보험을 권유하다 거절당할 때 마다 언제나 이렇게 다짐하곤 했다. [나는 의지가 약해 1m 뒤의 황금을 놓치고 말았다. 이젠 두 번이고, 세 번이고, 다섯 번이고 거절당해도 결코 포기하거나 단념하지 않으리라.] 결국 그는 끈기와 인내로 한 달에 백 만불 이상의 보험 상품을 파는 탁월한 세일즈맨으로 성공했다.
운 좋게 발견되는 황금으로 벼락부자가 되려는 욕심은 옛날이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는 것이 도처에 불고 있는 복권 열풍과 카지노마다 인산인해를 이루는 현상을 보면 알 수 있다. 진정한 황금은 기약없는 금광맥이 아니라 주어진 분야에서 수많은 고난을 인내하며 실패 앞에 굴복하지 않고 끊임없이 도전하는 투지이다. 적어도 자기 분야에서는 둘째가라고 하면 서러울 정도의 전문가가 되어야 한다.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탁월한 전문성이 바로 노다지 황금맥이다. 신앙생활에 있어서도 타의추종을 불허하는 믿음의 일인자가 되어야 한다. 금과 같은 믿음, 다이아몬드와 같은 믿음, 하나님이 감탄하시는 믿음의 소유자가 되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