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한 수명을 가진 존재도 제품도 없다. 언젠가는 수명이 다하는 날이 오리라는 전제하에 미래를 준비해야 한다. 고모리 시게타카가 2000년 후지필름 사장에 취임했을 당시만 해도 '필름의 시대'가 그렇게 빨리 종말을 고할 줄은 누구도 예상치 못했다. 디지털카메라 보급으로 필름이 사양산업이 될 것이라는 관측은 1980년대부터 나왔지만, 필름은 당시 최고의 '캐시카우(cashcow•현금 수익 창출원)'였다. 세계 필름시장을 미국의 코닥, 일본의 후지필름, 독일의 아그파 3사가 독점하다 보니 수익률도 높았다. 당시 후지필름의 필름 부문 이익은 회사 총이익의 70%에 육박했다. 하지만 천국에서 지옥으로 추락하는 건 순식간이었다. 2000년을 정점으로 전 세계 필름시장이 연간 20~30%씩 감소해 2005년에 140년 역사의 독일 아그파가, 131년 역사의 코닥은 1.19.2012에 각각 파산보호신청을 했다. 전 세계 기업의 평균 수명은 13년임을 감안할 때 코닥의 역사는 경이로운 기록이었다.
미국에서 100년 이상의 기업으로 GE, 코카콜라와 함께 대표적인 장수 기업이었던 코닥은 1881년 사진 기술자 조지 이스트만이 설립한지 131년, 창업자 이스트만이 타계한 지 80년만에 생사의 기로에 서게 된 것이다. 코닥은 롤필름 컬러필름 코닥 카메라와 같은 독보적 기술 개발을 주도해 ‘필름 제국’으로 우뚝섰다. 1970년대 미국 필름 시장의 90%, 카메라 시장의 85%를 점유했고 14만명이 넘는 직원을 고용했다. 1975년 디지털 카메라 기술을 먼저 개발해 놓고도 세계 시장의 3분의 2를 장악한 필름사업에 안주했다. 눈앞의 달콤한 수익에 연연해 결단을 미루다 ‘디카’ 대중화 시대로 대세가 완전히 바뀌고서야 뒤늦게 디카 시장에 뛰어들었으나 이미 시장은 소니를 비롯한 경쟁 업체들이 선점해 버린 뒤였다. 한때 100달러에 육박하던 코닥 주가는 엄청난 적자가 누적되면서 40센트까지 추락하고 말았다. 1만1000여건의 특허를 갖고 있을 만큼 기술력이 뛰어나면서도 무너진 코닥의 경우는 자만과 방심과 안주가 얼마나 치명적인 결과를 가져오는가를 웅변적으로 말해 주고 있다.
2003년 CEO로 취임한 고모리 사장은 먼저 경영 목표를 '세계 1위 코닥 타도'에서 '탈(脫)필름 구조조정'으로 바꿨다. 그는 "구조조정을 하지 않으면 모두 직장을 잃는 사태가 온다"며 임직원을 설득하며 필름 분야를 과감하게 쳐냈다. 2004년 제2의 창사(創社)를 선언하며 2000억엔(당시 환율 기준 약 2조원)을 들여 대대적인 구조조정을 단행했다. 둘째는 사업 다각화였다. 2000년부터 약품 회사인 도야마(富山)화학공업(2008년), 미국의 초음파 진단 장비 제조업체 소노사이트(2011년) 등 약 7000억엔을 들여 40여개 회사를 인수•합병(M&A)했다. 일본 기업으로선 보기 드문 신속한 의사 결정과 과감한 추진력이었다. M&A 원칙도 분명했다. "본업과 무관한 분야는 절대 진출하지 않는다. 필름 개발 과정에서 연구해 확보한 10만점이 넘는 화학물질 등 기존 기술 역량을 최대한 활용해 확장을 시도한다." 기존의 필름 기술을 활용해 후지필름이 전자소재(電子素材) 기업으로의 변신을 시도하여 결국에는 LCD 패널의 시야각(視野角)을 확대하는 필름 분야에서 후지필름이 세계 시장을 독점하기에 이르렀다.
마지막은 과감한 신기술 연구•개발(R&D)이었다. 10년 동안 끈질기게 구조조정을 밀어붙인 끝에 후지필름은 이제 의료기기와 전자소재, 화장품 회사로 탈바꿈했다. 필름 부문 매출 비중은 2000년 20%에서 현재 1% 미만으로 떨어졌고, 의료•전자소재•화장품 분야 매출 비중은 40%를 넘는다. 보수적인 일본 재계에서 이례적으로 과감하고 선도적인 구조조정으로 눈부신 성장을 실현한 고모리 사장은 일본 제조업의 강인함을 상징하는 '새로운 CEO 모델'로 떠오르고 있다. 공격적인 경영의 상징인 고모리 시게타카(古森重隆) 사장은 "필름 수요가 사라진 시대에 후지필름이 생존할 수 있는 가장 큰 비결은 미래에 대한 '준비'와 그것을 실행할 수 있는 '용기'였다”라고 말한다. 그는 특히 CEO에게 가장 필요한 자질은 '용기'라고 강조한다.
필름이 사라지는 운명 앞에서 3대 필름 기업들은 각자의 대응 자세에 따라 그들의 미래를 결정하게 된 것이다. "코닥도, 우리도 1980~90년대에 필름 수요가 쇠퇴해 디지털 시대가 올 것으로 예상하고 '필름 이후 시대'를 준비했다. 하지만 디지털 시대가 예상보다 10년 이상 일찍 도래했다. 우리가 코닥보다 준비의 폭과 깊이가 더 넓고 깊었고 빨랐다.” 시대의 변화를 막을 수 없다. 같은 분야, 같은 시대 상황속에서 망하는 기업이 있고, 흥하는 기업이 있다. 기업자신이 변화해야 하고 나자신이 변화해야 한다. 변화하는자만 살아남고 승리할 수 있다. 나를 고집하고 지금을 고집하며 현실에 안주하는 것은 스스로를 도태시키는 것이다. 시대가 변화된 기업을 요구하는 것처럼 하나님은 변화된 사람을 원하신다. 우리에게 주어져 있는 시대를 변화시켜야하는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서 먼저 요구되는 것이 우리자신의 변화이다. 구원은 일회적이면서 지속적이다. 구원이 지속적인 중요한 이유 가운데 하나가 세상을 변화시켜야 하기 때문이다. 세상의 변화는 변화된 그리스도인에 의해서만 가능하다. 변화에는 용기가 필요하다. 변화는 희생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남의 희생이 아니라 나의 희생이 세상을 변화시킨다.
[안인권 칼럼] 코닥이 망할 때 후지는 더 컸다.
새소망교회 안인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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