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이 아무리 불어도 부드러운 버들가지는 못 꺾는 다는 속담이 있습니다. `세상에 물보다 부드럽고 약한 것은 없다고 하지요. 그러나 홍수를 생각하면 물처럼 무서운 위력을 가진 것이 흔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쉽게 생각하는 것 가운데 하나가 “힘이 있어야 성공하고, 배경이 든든하고 강한 자가 되어야 이 세상을 정복하고 못하는 일이 없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그러나 사실 살아보면 그런 것만도 아닙니다. 이 세상에서는 오히려 온유한 자가 잘 살고 양보하고 겸손하고 순하고 부드럽고 덕(德)이 있고 화평하고 사랑하고 좋은 마음을 가진 사람들이 이 세상에서 잘 사는 것을 많이 봅니다.

동물의 세계를 생각해 볼 수 있어요. 어떻게 보면 힘 있는 동물들이 천하에 우글거리고 충만하게 살 것 같지만 힘이 있는 호랑이나 사자 같은 동물들은 점점 자취를 감춥니다. 번식이 줄어들어요. 점점 수가 줄어들게 되어서 보호해 주어야 합니다. 국가가 특별히 도와주어도 번식이 잘 안됩니다. 숫자가 점점 줄어드는 것 잘 알지 않습니까? 오히려 보호해주지 않고 되는대로 버려두는 이런 동물들 즉 곤충들, 물고기들, 새들은 그렇게 번식이 잘됩니다. 누구든지 참새를 번식시키려고 노력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잘 번져나갑니다. 강하고 사나운 동물들은 자꾸 깊은 곳을 찾고 산을 찾아 들어갑니다. 나오지를 못해요. 사는 영역이 점점 좁아집니다.

아프리카 공화국의 흑인들은 오랜 동안 백인들의 압박 속에서 살아왔습니다. 그러다가 90년 2월 석방 될 때까지 27년간이나 옥중에 있던 넬슨 마이 홀라홀라 만델라는 이가 1994년 마침내 대통령으로 당선되어 권력의 칼자루를 잡았습니다. 침략자의 자손인 소수의 백인이 무자비한 철권통치로 땅주인인 흑인을 노예처럼 다루던 아파르트헤이트 즉 인종 분리 정책이 소리 없이 무덤 속으로 들어갔습니다. 온 세계가 숨을 죽이고 뒷짐 진 만델라를 지켜봤습니다.

칼자루를 굳게 잡고 피를 튀기는 칼춤이 시작되리라는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가고 뒷짐을 진 그의 손에서 칼 대신 비둘기가 날아올랐습니다. 서둘러 탈출했던 극소수 백인은 후회에 땅바닥을 쳤고, 보따리를 싸던 백인은 다시 주저앉았고 백인 테크노크라트인 기술자 출신 관료들은 전과 다름없이 땀을 쏟아 일하게 되었습니다.

정치가 화해와 용서로 과거를 묻어버리자 죽어가던 경제의 맥박은 힘차게 뛰기 시작했습니다. 그때 이상한 현상이 나타났어요. 남아공에서는 보지 못했던 거위라는 새가 뒤뚱뒤뚱 제 발로 걸어 들어와 황금알을 낳기 시작했습니다. 미국에서, 유럽에서, 아시아에서 관광객이 꾸역꾸역 몰려드는 것입니다. 만델라도, 백인도, 흑인도 예상치 못한 일이었습니다.

짐바브웨 나라의 무가베가 백인 농장주를 공격하므로 빅토리아 폭포로 몰려오던 많은 관광객의 발길을 끊어놓은 이웃나라 짐바브웨와는 너무나 대조적이었습니다.

아프리카 하면 우리 머릿속으로 쏟아져 들어오는 연상은 폭염, 한발, 기아, 질병, 내전, 비 위생, 치안 부재 등등이 아니겠습니까? 이 세상에서 사라져야 할 모든 것들입니다. 그런데 남아공의 관문 요하네스버그에 첫발을 디디면 비행기를 잘못 타서 유럽 어느 도시에 내린 것이 아닐까? 의아해질 정도라는 것입니다. 아프리카적인 모든 것에서 동떨어졌다는 것이지요.

남아공은 아프리카 대륙 남단에 위치, 열대에서 벗어나 있고 국토의 대부분이 해발 1000m 가 넘는 고원지대입니다. 요하네스버그는 해발 1900m로 1년 내내 쾌적한 기후를 자랑합니다. 도시는 백인정권이 수백 년간 구축해 놓은 인프라로 유럽을 뺨치고, 도시를 벗어나면 아프리카의 원색이 그대로 펼쳐져 서구와 아시아의 관광객이 찾아와 그 아름다움에 탄성을 지르지 않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아프리카 사파리의 원조, 케냐와 탄자니아가 닳고 닳아 자연의 청순미를 잃어버린 것도 남아공으로 관광객이 몰리는 이유 중 하나라는 것입니다. 세계적 위락단지 선 시티는 특히 관광객들을 불러 모으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 모든 것은 만델라가 강자가 되어 피 뿌리는 보복 통치를 버리고 온유한 마음으로 용서할 것을 용서하고 사랑할 것을 사랑하였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남을 해치며 강하다는 사람은 본인의 마음에 평안이 없습니다. 불안합니다. 그래서 사람이나 짐승이나 깊은 곳으로 자꾸 들어갈 수밖에 없습니다. 또 자유가 없습니다. 참새들은 사람이 있는데도 마음대로 날아와서 먹고 노래하며 잘도 지냅니다. 그러나 강한 짐승은 그렇지 못합니다. 항상 온유하고 사랑하고 겸손한 사람이 평안하게 삽니다.

온유한자가 오히려 승리하는 사람이요 큰일을 하는 사람입니다. 하나님과 사람에게 마음의 흡족함을 주고 기쁨을 주는 사람들은 다 온유한 자들, 순한 자들입니다. 그들이 사랑을 받습니다.

사람이 원숙한 단계, 성숙한 단계에 이르면 온유해지고, 모두 순해진다고 하지 않아요? 골프하는 이들 아시겠지만 힘주고 치면 아주 멀리 갈 것 같은데 그런 사람은 초보자라고 하지요. 힘을 쑥 빼고 치는 것이 최고의 경지에 오르는 것이라고 하지 않아요. 골프는 제 아무리 운동을 잘해도 3년, 5년까지는 힘이 들어간다고 합니다. 5년, 10년 지나야 그때 힘이 빠지면서 공이 멀리 날아간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온유한 자의 나라입니다. 하나님 아버지는 사랑과 인자하심이 한이 없으시고 노하기를 더디 하시고 은혜를 수천 대에 베푸시는 좋으신 하나님이십니다.

예수님은 말씀합니다. “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임이요.” 행복을 논하기 전에 자기 자신의 성격부터 먼저 따지십시오. 온유하면 주님이 기업으로 땅을 주신다고 했습니다. 총, 칼을 가지고 땅을 빼앗는다는 말이 아니고, 유업으로 받을 것이라고 말합니다. 온유한 자가 받는 것은 남의 것을 훔쳐 내는 것이 아닙니다. 가만히 있으면 하나님이 주시는 것입니다. 온유하면 처음에는 손해 보는 것 같습니다. 지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결국에는 땅을 얻게 됩니다. 온유한 아내는 남편을 땅처럼 기업으로 받습니다. 온유한 남편은 아내를 땅처럼 기업으로 받습니다. 온유한 부모는 자녀를 땅처럼 기업으로 받습니다. 가족들이 온유하면 그 가정에는 행복을 땅처럼 소유하게 됩니다. 기쁨과 만족을 땅으로 소유하게 됩니다.

어떤 상황에서든지 자기 자신을 위해서는 화를 내지 마십시오. 악에 대하여는 화를 내십시오. 용기가 필요할 때는 누구보다도 우리는 강자로서 악과 대결해야 합니다. 이런 사람이 온유한 자입니다. 성령의 통제를 받으면서 화를 낼 때와 내지 아니할 때를 분명히 알고 자기의 감정을 균형 있게 유지하는 사람이 가장 강한 자라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가 이와 같은 온유한 자가 되어 하나님이 주시는 땅을 기업으로 받는 가장 멋진 삶을 살 수 있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