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말: 한국교회 위기 원인은 목회자의 거룩성 상실

오늘 한국교회가 당면한 위기는 목회자의 거룩성 상실에 그 원인이 있다. 교권 투쟁과 각종 비리, 교회 운영방식과 소유권을 둘러싼 대립 및 소송, 일부 목회자들의 성추문, 교회 재정 횡령, 교회당 세습 등에 의하여 한국교회는 사회적인 지탄을 받고 있다.

교회의 지도자로서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의 청지기인 목회자들이 직분에 전혀 어울리지 않는 극소수의 비행으로 인해 교인들과 세상 사람들의 구설수(口舌數)에 오르고 우려거리가 되고 있기 때문이다.

목회자는 거룩성의 본보기가 되며, 세상에서 마땅히 윤리적인 모범이 되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일부 목회자의 삶과 윤리는 세속 인사들과 다름이 없는 실정이다. 이런 목회자들은 대부분 번영주의 내지 성공주의 목회의 우상숭배에 빠진 자들이다. 목회의 본질이란 목회자 자신이 모범이 되어 양들을 거룩한 무리로 양육하는 것인데 이들을 종교적인 상품으로 간주하여 교회를 종교적 복권 판매소로 간주하는 데서 문제가 야기된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실수한 자들에 대한 정죄보다는, 권면과 재활 네트워크와 이를 겸허히 수용하는 목회자 개인의 품성과 태도다. 목회자에게는 두뇌나 처세술보다는 성품과 인화력과 도덕성이 중요하다.

사람들의 영혼을 취급하는 일이 중요한 업무이기 때문에 성품이 정직하고 온유한 것이 중요하다. 이제 한국 목회자에게는 목회의 본질 이해가 중요하며, 종교적 수사학을 사용하여 흥미를 끄는 달콤한 설교보다는 목회자로서의 성품과 윤리가 중요한 과제로 다가오고 있다.

이러한 한국교회의 자정(自淨)능력이 요구되고 있는 중대한 상황에 직면하여 ‘한국교회목회자윤리위원회’가 2012년 11월 29일 ‘목회자 윤리선언문’을 발표했다. “개인적인 결단과 헌신만으로는 과업의 성취가 어려운 것을 알기에 독립 상설기구인 윤리위를 설립해 목회자들의 윤리적 사명 수행을 돕고자 한다”며 윤리선언 10개항을 밝혔다. 이는 지난 9월 감리교 총회에서의 목회자세습금지법 통과와 아울러 지극히 환영할 만한 일이다. 그 신학적 의미를 성찰해 본다.

1. 목회자 윤리 선언의 필요성

1) 목회자 역시 죄인이자 의인

목회자들이 종교적 성역에서 나와서 자기들도 잘못할 수 있는 인간임을 선언한 것은 진실된 자기 이해다. 윤리선언은 천명한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피로 속량함을 받고 의롭다 함을 얻은 사람들이지만 동시에 여전히 죄로 오염된 몸과 마음을 가진 죄인들이다”. 종교개혁자 루터는 신자를 “의인이자 동시에 죄인”(simul justus et peccator)이라고 하였다.

목회자도 하나님 앞에 선 한 신자로서 끊임없이 자기 자신을 쳐 복종시키는 성찰과 수련을 필요로 한다. 윤리선언은 천명한다. “따라서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 앞에서 항상 자신을 살펴 죄를 회개하고, 우리를 거룩케 하시는 성령님의 도우심을 의지하여 성결을 이루는 일에 마땅히 헌신해야 한다”. 다른 사람에게 설교하고 이들을 가르치기 전에 먼저 목회자는 자기 자신을 하나님 말씀의 가르침과 성령의 인도하심에 항상 바로세워야 한다.

2) 윤리위원회는 제도적 장치

루터는 교회를 성도의 교제(sanctorum communio)라고 했다. 교회는 단지 예배처라기보다는 성도의 교제를 통해서 하나님을 섬기고 서로의 잘못을 수정하는 공동체다. 윤리선언은 “개인적인 결단과 헌신만으로는 이런 과업을 성취하기가 어렵기” 때문에 “우리 모두가 연약한 동역자들로서 서로 돕고 보호해 주어야 할 필요가 있음”을 피력한다. 윤리위원회라는 기구 설립은 목회자들의 윤리적 사명 수행을 돕는 데 목적이 있다.

3) 목회자들끼리의 상호 도움

목회자 윤리공동체가 있음으로써 목회자의 성품과 자기 계발을 위하여 서로 돕고 격려하면서 성화를 이루는 데 도움을 받을 수 있다.

“모든 목회자들이 서로 돕고 격려하며 이를 함께 이루어갈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할 것을 다짐하며”. 서구 교회사를 보면 중세(9-11세기)에 수도원이 성직매매, 축첩으로 극도로 타락했을 때 나타난 12세기 신앙 갱신운동은 수도사들이 중심이 된 프랜시스회와 도미니크회 운동이었다.

그리고 14세기에 수도사와 평신도들이 같이 참여한 제3의 경건운동, 신경건운동(devoto moderna)이 있었다. 이들은 성경과 예전, 교부들의 서적을 읽었고, 자신들의 허물을 기꺼이 드러내어 형제들에게 고백하고 주어진 충고를 받아들이는 겸손과 순종의 삶의 훈련을 하였다. 오늘날 한국교회 목회자들에게도 이러한 운동은 필요하다.

2. 교회의 본질과 목회자의 권위

1) 목회자의 본질

윤리선언은 “하나님께서는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하라’고 말씀하셨다”고 천명한다. 거룩성은 단지 목회자만의 본질이기보다는 모든 성도의 본질이다. 천주교에서는 사제와 평신도의 신분의 차이를 말하지만, 개신교에서는 목회자와 평신도도 다같이 영적으로 제사장이다. 그래서 특수 사제직이나 만인 제사장직이 아니라 ‘모든 신자 제사장직’을 선언한다. 모든 제사장은 그리스도를 닮아서 거룩해야 한다. 목회자는 종교적 특권층이 아니라 일반 신자들과 같은 그리스도의 사람(Christian)이다. 그리스도의 영이 우리 속에 거하시기 때문이다.

2) 그리스도는 교회의 주

윤리선언은 [1항]에서 “그리스도가 교회의 주 되심(the Lordship)”을 거듭 확인하고 고백한다. 목회자는 교회의 주가 아니라 청지기다. 교인들의 어른이 아니라 머슴이다. 목회자는 개인적으로 집단적으로 그리스도의 주권을 훼손해서는 안 된다. 목회자들은 이러한 일에 대하여 두려워하며 떨며(시 99:1) 삼가야 한다. 대형교회 목회자들 가운데는 교회에서 자신을 우상화하는 자들이 있고 일부 목회자들은 교회일로 세상 법원에 고발하는 자들이 있다. 이는 그리스도의 주권에 도전하거나 훼손하는 일이다. 결코 있어서는 안 된다.

3) 목회자의 권위

[2항]은 목회자의 권위는 “겸손과 섬김과 희생에 있다”고 선언한다. 목회자의 권위는 명령과 다스림에 있지 않다. 목회자는 “섬김이 가장 귀한 사역이라는 그리스도의 교훈(막 10:45)을 받들어”

“부와 명예와 권세의 유혹을 이기고 평생토록 낮은 자리에서 섬기는 자”가 되어야 한다. 그러므로 목회자는 “직책이나 지위를 얻기 위하여 선거운동하거나 돈을 써서는 안 된다.” 이러한 일이 없도록 “자정 노력을 계속할 뿐 아니라 감시 감독의 책임도 다할 것을 다짐한다”. 오늘날 교회가 커짐에 따라 교권을 얻기 위하여 각종 운동을 하고 이에 돈을 쓰는 일부 목회자들이 있다. 윤리위원회는 이에 대한 경고와 감시를 하겠다고 선언하고 있다.

3. 목회자 윤리의 구체적 지침

윤리선언은 목회자 윤리의 구체적인 지침을 제시하고 있다. 선언문은 의사결정의 공정성, 투명한 재정운영, 결혼의 존엄과 가정 순결 유지, ‘교회 세습’ 반대, 이원론 및 왜곡된 복 사상 금지, 자연 보존, 정교분리, 그리고 ‘금권 선거’ 반대, 타종교 존중 등 내용을 제시하고 있다.

1) 의사결정의 공정한 절차: 교회는 사회 양심의 최후 보루

[3항]은 “공정한 절차를 통한 민주적인 의사결정이 성서적인 방법”이라고 선언한다. 교회의 의사결정은 권위주의가 아니라 민주적 방식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비밀리에 독단적이지 않고”, “하나님의 뜻을 찾아야 한다(롬 12:2)”. 하나님의 뜻이란 “공개적이고 민주적인 절차를 따라 행하는” 것이다. 교회는 “사회로부터 신뢰를 얻을 수 있어야 한다”. 이를 위하여는 “목회자 스스로 정직 근면할 뿐 아니라 그리스도인들도 양심운동과 정직운동에 적극 참여토록 격려하고 고무하는 지도자”가 되어야 한다. 교회는 사회 양심의 최후 보루가 되어야 한다. 그럴 때 교회는 오늘날 이 시대의 등대가 되고 공신력을 얻게 된다.

2) 투명한 재정운영: 교인들의 감시와 감독 그리고 공개

[4항]은 투명한 재정운영에 관해 언급하고 있다. 오늘날 교회의 재정 문제가 “교회의 불투명하고 독단적인 재정운영”에서 비롯되며. 이는 “목회자를 부패시키고 교회의 화합을 깨는 주요한 원인이 되고 있다”는 것을 주지시킨다.

교회의 재정은 “교인들의 감시와 감독을 받을 수 있도록 공개되어야 한다”. 그럼으로써 교회는 “안팎으로부터 신뢰를 얻고, 적극적으로는 선교와 사랑의 나눔을 통하여 교회의 사명을 완수하는 데 전력할” 수 있다. 교회는 한편으로는 은혜의 질서 속에 있으나 다른 편으로는 여전히 율법의 질서 아래 있다. 그러므로 재정의 불투명성과 유용에 대하여 감시와 감독이 필요하다.

3) 결혼의 존엄함과 순결한 가정의 순결 유지에 본이 되어야

[5항]은 목회자가 “결혼의 존엄함과 가정의 순결을 지키는 일에 본이 되어야 함”을 주지시킨다. 가정의 신성함은 “한 남자와 한 여자가 연합하여 둘이 한 몸을 이루게 하신”(창 24:4) 창조주 하나님의 섭리에 근거한다. 가정은 “그리스도의 뜻대로(엡 5:22~27) 거룩하고 순결하게 보존되어야 한다”. 목회자의 결혼과 가정 생활은 “무방비 상태로 노출된 현대사회의 온갖 유혹으로부터 자신과 가정과 교회를 지키는 순결운동에 앞장서야” 한다.

먼저 목회자가 순결한 가정에 모범이 되어야 한다. 바울은 “너희는 나를 본받으라”고 하였다. 오늘날 목회자들도 교인들에게 “나를 본받으라”고 할만큼 순결한 삶을 살아야 한다. 그래야만 목회자의 설교는 성도들의 삶을 변화시킬 수 능력을 부여받는다.

4) 세습하지 않기

[6항]은 세습을 금지한다. ‘내가 세웠으니까 내 교회 내 재산’이라고 생각해 교회를 자식에게 물려주는데, 이는 공교회에 대한 인식의 부족에서 비롯된다. 교회는 주님의 교회이다. 교회의 주권은 오직 그리스도에게 있다. 교회는 담임목사의 소유가 아니며, 자녀들에게 물려줄 수 있는 유산도 아니다. 따라서 자녀나 친족에게 담임목사의 자리를 대물림하는 일을 하지 않는 것이 본이 된다.

윤리선언은 다만 현재 부친으로부터 교회를 이어받아 목회를 잘 하고 있는 교회에 대하여는 이 원칙을 유보시킨다. 평화로운 교회에 대하여 ‘세습하면 안 된다’며 혼란스럽게 하는 것은 지혜로운 처사가 아니기 때문이다. 제도가 정착되기까지 큰 진통이 따르지만, 원만한 질서를 만들어 교회 평화와 발전을 이룩해 나가고자 한다.

5) 왜곡된 복 사상이나 번영주의를 추구하지 않음

[7]항은 이원론적인 세계관과 왜곡된 복 사상을 금지한다. 개혁주의 목회자는 “교회의 양적 성장주의 추구에 함몰되지 않아야 한다”. 그리고 “세속화와 인본주의 그리고 각종 프로그램에 치우치지 않도록 자기를 지켜야” 한다. 윤리선언은 청교도 목회자들처럼 교회의 갱신과 진정한 부흥의 최선의 방식을 “말씀과 기도에 더욱 전념하는 것”에서 찾고 있다.

6) 환경 돌봄, 검소와 절제의 모범을 보이며 교육적 사명을 다할 것

[8항]은 “하나님의 창조 세계를 사랑하고 귀히 여기며, 자연을 보존하는 친환경적인 생활습관과 문화 함양”을 선언한다. 이를 위하여는 “목회자 자신이 생활에 있어서 사치나 향략을 멀리하고 검소와 절제를 생활하는 것”이 필요하다.

환경운동과 절제와 검소운동은 연결된다. 이것은 바로 신앙생활과도 연결된다. 진정한 영성이란 삶의 소박한 질서운동으로 나타난다.종교개혁교회가 일반은총을 강조함으로써 환경에 대한 문화적 위임권을 복권시켜야 한다.

7) 정교 분리: 세상 권력 추구나 정당 가입 금지

[9항]은 교회와 국가의 영역 구분을 명료히 한다. 개신교는 교회 역사를 통하여 교회와 국가가 서로 분리되어야 하는 것을 체험하였다. 중세교회는 교회가 정치를 지배하려 하였고, 근세 이후에는 정치가 교회를 지배하고 이용하려 하였다. 그리하여 십자군 전쟁, 신구교 30년 전쟁 등이 일어났고, 오늘날에도 코소보 학살이나 각종 인종 분쟁에 종교가 개입되어 있다.

그러므로 교회와 국가가 영역에서 구분되어 있다는 것을 인지해야 한다. 교회가 세상 권력을 쟁취하기 위해 정당을 만들거나 특정 정당에 가입하여 활동하는 일을 삼가야 한다.

그렇다고 정치와 종교의 구분이 기독인들의 사회 정치적 책임과 권리를 유보케 하는 것은 아니다. 목회자는 시민으로서 납세와 국방의 의무를 포함한 공적 의무와 사회적 책임을 다해야 한다. 나아가 목회자는 이 땅 위에 하나님의 공의와 사랑이 이루어지도록 예언자적 사명을 다할 것을 노력해야 한다.

종교인이 정치를 하는 것이 잘못된 것이 아니라 교회가 국가의 일을 대신하는 것이 잘못된 것이다. 교회를 대표하는 목사님들이 직접 정당정치에 개입하는 것은 안 된다. 교회의 가치는 세상의 가치와는 다르다. 교회가 세상의 힘(정치적 힘)을 추구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다.

8) 타종교 존중: 기독교의 탁월성을 전도하되 독선주의 탈피

[10항]은 구원을 위한 그리스도의 복음의 유일성과 “기독교 진리의 탁월성”을 선언한다. 그러나 “독선주의에 갇혀서는 안 된다”. 동시에 목회자는 “타종교들을 존중하며 그들이 가진 신앙과 종교시설을 폄하하지 않아야” 한다. 오로지 예수 구원 복음과 기독교 독선주의를 구분하는 것은 바른 길이다. 전도하되 타종교의 좋은 점을 폄하(貶下)해서는 않된다.

그리스도의 유일성은 타종교의 상대적 인정·공존과 모순되지 않는다. 그것은 타종교를 허락하신 하나님의 뜻이다. 한국 기독교는 초창기처럼 타종교와 사회적 선한 일에 같이하고, 저들의 존재를 인정하는 존중과 관용이 필요하다.

맺음말: 윤리 준칙을 넘어서 목회자의 성품 성화가 더 중요하다

이상의 윤리적 지침은 하나의 방향이며 성화를 위한 하나의 구체적인 지침사항에 불과하다. 윤리준칙은 필요하나 외면적 준수에 몰두하다 보면 바리새적 율법주의에 빠질 위험성이 있고, 외면적 위법이 없다고 생각할 때 공로주의나 선행주의의 위험에 빠질 수 있다. 가장 중요한 것은 목회자 자신의 성품 성화다. 그것은 성령으로 날마다 새롭게 되는 것이다.

첫째, 우상숭배 척결이다. 그것은 자기 속의 탐욕을 버리는 것이다. 탐욕이란 오늘날의 우상숭배(명예욕, 성욕, 재물욕 등)다. 이를 척결해야 한다. 존 오웬을 비롯한 청교도들은 자기 죽이기(mortification)를 날마다 실천하고자 하였다.

둘째, 날마다 자기와의 투쟁에서 새 사람의 승리이다. 존 오웬은 이를 자기 새로워짐(vivification)이라고 하였다. 이를 위해서는 날마다 끊임없는 영적 싸움이 필요하다. 사도 바울은 날마다 죽노라고 하였다. 자기 옛 사람을 십자가에 못받고 그리스도 안에서 살아남으로써 성화를 이를 수 있다.

셋째, 하나님과의 인격적 교제를 갖는다. 날마다 하나님의 뜻에 따라 살기를 다짐하고 실천해야 한다.

넷째, 목회자 소명을 확인해야 한다. 목회자로의 부르심에 대한 소명의 확인이다. 소명의 확인에서 사고방식과 삶의 방식은 점차 달라진다.

다섯째, 목회자 네트워크에 연결하여 공공목회에 참여한다. 동료 목회자들 속의 주님을 봄으로써 자신 속의 주님을 확인한다. 이제 한국의 기독교는 양적 성장에서 질적으로 심화되어야 한다. 원로 목회자들의 목회자 윤리선언 계기로 한국교회 목회자들의 삶과 윤리가 더욱더 성숙화하여, 목회자의 성품이 질적으로 새롭게 되는 데 기여하기를 소망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