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지금 행복하십니까?" 이 물음에 선뜻 '네'라고 대답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대부분 사람은 이 질문 자체가 짜증이 날 것이다. 일부러 화를 돋우려고 하는 소리처럼 들리기도 한다. 우리는 행복하지 않다. 아니 더 정확하게 말하면 행복하지 않다고 느낀다. 서로 만나면 누가 더 힘들게 사는지 불행을 경쟁하는 사람들 같다는 느낌을 받을 때가 많다.

그렇다면 우리는 왜 이렇게 불행할까? 우리는 이 문제에 대답하기에 앞서 왜 우리가 불행을 느끼게 되는가를 곰곰이 생각해 보아야 한다. 불행과 행복은 개인이 느끼는 감정이다. 그러나 우리는 보이지 않는 누군가로부터 현재의 행복을 팔아 내일의 불행을 사도록 강요 받고 있다. 우리의 불행은 더 이상 개인감정의 문제가 아니다. 우리의 불행은 조작되었다.

우리의 불행의 그림자에 숨어 들킬세라 소리 죽여 웃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불행을 파는 사람들이다. 우리의 불안과 불행을 강조할수록 그들은 더욱 행복해진다. 그들은 우리가 더 좋은 자동차 보험에 들지 않으면 곧 아무도 없는 곳에서 사고가 나서 내팽개쳐질 것이며, 반드시 중병에 걸릴 것이기 때문에 지금 당장 건강보험에 가입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리고 은퇴하면 가진 것이 없이 빈털터리가 되어 자식에게 손 벌리게 될 것임이 분명하므로 젊을 때부터 노후를 위해 투자해야 한다고 말한다.

정치하는 사람은 현재 상황이 그 어느 때보다 위급한 것임을 강조하면 할수록 더욱 큰 지지를 받고, 불안한 사람들이 낸 세금으로 사들인 안락한 가죽 소파에 앉아 있을 시간을 번다. 죽을 때까지 써도 번 돈을 다 쓰지 못할 재계의 지도자들은 이제 한 기업, 한 나라의 어려움을 넘어서 그야말로 글로벌 경제 위기를 강조함으로써 직원들에게 당연히 돌아가야 할 혜택을 줄이고 그들의 통장에 더 많은 자금을 쌓아놓을 수 있게 된다.

우리는 이런 불행 마케팅에 무차별적으로 노출되어 있다. 우리의 불안감이 더욱 커질수록 그들이 가져가는 파이는 더 커진다. 그들이 배부르기 위해서는 우리는 계속 불행해져야 한다. 우리가 불행하다고 느끼면 느낄수록 그 불안한 감정에 대한 비용은 더 늘어난다. 그리고 그 비용은 우리의 행복이 아니라, 그들의 행복을 위하여 쓰인다.

우리는 지금 오지도 않은 불행한 삶을 일부러 찾아 경험하며 살고 있다. 불안과 불행은 오늘을 괴롭게 만든다. 아무리 소처럼 일해도 보람을 찾을 수도 없고, 남들과의 경쟁 속에서 하루를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견뎌가는 것으로 만든다. 또한, 우리가 그들처럼 되지 않으면 영원한 불행의 소용돌이에 빠지게 될 것이라고 굳게 믿고 만다.

과연 우리는 지금 정말 불행한가? 반대로 묻는다면, 우리는 과연 무엇을 행복이라고 믿고 있는가? 놀랍게도 대부분 사람들은 행복이 일확천금을 얻는 것이 아니라고 말한다. 그저 하루 세끼 밥 굶지 않고 가족들 모두 하루하루 건강하게 사는 것이라고 말한다. 그렇다면 우리는 지금 영양실조에 허덕이고 있기 때문에 불행하다고 느끼는가? 모두 불치병에 걸려 시한부 삶을 살고 있는가?
당신은 태어난 것 자체가 죄요, 걸어가는 발자국을 남기는 것조차 허락되지 않는 2억 명이 넘는 인도의 불가촉천민(不可觸賤民)보다 불행한가? 60초에 한 명의 어린이가 목숨을 잃고 1년에 80만 명의 아이들이 말라리아로 죽어가는 아프리카에 사는 것보다 더 힘든 삶을 살고 있는가? 오히려, 누가 보더라도 힘든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은 미치도록 힘든 하루하루의 삶에도 감사하고 있는데 우리만 불행 중독증에 걸려 신세를 한탄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불행의 마약을 끊어 버려라. 우리는 지금도 누군가 보기에는 꿈도 꿀 수 없을 만큼 행복하다. 우리는 지금 이 상태만으로도 진짜 행복한 사람이다. 오늘을 행복하게 사는 사람에게는 내일의 따뜻한 햇볕이 예약되어 있지만, 오늘을 불행하게 느끼고 불안 속에 떠는 사람에게는 내일 날씨도 흐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