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은 그 누구나 알고 있듯 골리앗의 죽음으로 다윗이 승리한 내용의 성경 이야기이다. 그러나 이 싸움은 아직도 우리의 인생에 끝나지 않은, 아니 어쩌면 지금 우리 모두가 당면한 싸움이기도 하다.

모든 조건으로는 이길 수 없는 현실에서는 너무나 거대해 보이는 골리앗 같은 우리 인생의 문제들, 우리는 삶과 죽음의 위기 앞에 다윗이 던진 돌처럼 불확실한 미래를 향해 믿음의 돌을 던진다.

이 글을 쓴 저자 허대혁 목사는 다윗과 골리앗을 비롯, 인생역전의 드라마를 이루어 낸 요셉의 이야기를 통해 절망의 끝에 서 있는 사람들을 위로하고 있으며, 성경에 등장하는 9가지의 이야기를 재미있으면서도 깊은 인생의 의미를 담아 엮어내었다.

다윗이 던진 돌
다윗이 만난 골리앗처럼 인생의 많은 난관과 어려움에 서있는 위기의 시간을 보내는 모든 이들을 위해 또한 다윗처럼 연약하고 학벌이나 명예, 뛰어난 언변이나 능력도 없이 냉혹한 현실 속에서 오직 하나님만 의지해야 하는 개척교회의 목회자인 저자 자신을 향해 이글을 썼다고 밝히고 있다. 다윗과 골리앗의 이 유명한 일화 속에는 불확실한 미래에 고민하는 이 시대의 영혼들 그리고 믿음과 현실 사이에서 갈등하는 우리 크리스천들이 반드시 꼭 배워야할 성경적 처세의 비밀이 담겨져 있다.

어릴 적 단상 하나, 철없는 돌 던지기
어릴 적 동네 아이들이 심술궂게 아무 곳에나 던진 돌이 이웃집 유리창을 깨뜨리거나 지나가던 동네사람이 맞아서 다치게 되는 사건들이 종종 있었다.

어느 날, 장난치던 그 아이들 중 한 아이가 잡혀서 동네 아주머니와 아저씨에게 엄청 두들겨 맞고 혼이 나는 모습을 보았다. 아이들이 돌을 던진 이유는 단순했다. “심심해서” “재미삼아”
어떤 일을 할 때 막연하게 아무 생각 없이 대충 일하는 사람들을 보고 있노라면 재미삼아 돌을 던지다 동네 아주머니들에게 죽도록 얻어맞던 그 아이가 생각난다.아무나 돌을 던진다고 골리앗을 이길 수 있을까? 다윗은 이유 있는 믿음에 돌을 던진 것이다. 모든 일을 다 믿습니다. 믿습니다. 믿음으로 하면 다 됩니다, 라고 말하고 가르치는 것은 정말 어리석다. 아무데나 돌을 던지는 것과 같기 때문이다. 다윗은 자신이 믿는 하나님과 위기에 처한 나라를 위해 믿음의 돌을 던졌다. 우리가 던진 돌이 골리앗을 넘어뜨리지 못하는 이유는 바로 나 자신의 욕심과 목적을 위해 있는 힘껏 돌을 던지기 때문이다. 돌을 던지는 행위보다 그 돌을 던지는 이유가 더 중요했던 것이다.

돈을 버는 목적보다 돈을 벌어야 하는 이유가 더 중요하고, 살아남는 것 보다 왜 살아남아야 하는가가 더 중요한 것이다. 전쟁을 이기는 것 보다 전쟁에 왜 이겨야 하는가를 생각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지켜야할 나라와 가정과 가족과 생명을 소중히 여기는 명분 없는 전쟁은 결과에 상관없이 실패한 전쟁이기 때문이다.

미래를 향해 돌을 던져라
다윗처럼 불확실한 미래를 향해 믿음의 돌을 던지기 전에 골리앗과 같은 인생의 사건과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인간적인 행위와 노력을 하기 이전에 하나님이 도우시고 역사하실 성경적 명분을 붙들어야 한다. 곧 말씀에 근거한 성경적 행위선택이 제일 중요하다.
인간의 처세에 있어 가장 먼저 생각해야 하는 것은 인간역사 이전부터 존재해 온 처세의 기준이 하나님이었고 그 말씀이었다는 사실이다.

창세기 1장에서 제일 중요한 부분은 창조가 아니다. 창조는 우리에게는 놀라운 일이지만 하나님께는 그저 평범한 일상일 뿐이다. 성경에서 신비로운 것만 중요하게 보려고 생각하지 말고 하나님이 우리에게 하시려는 말씀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 바로 이 말씀을 하고 싶으신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바로 이 말씀에 주목해야 한다.

모든 인간은 태어나면서부터 그 누구에게도 배운 적이 없지만 자신의 행복을 위해 살려고 하는 본능적 가치관을 갖고 있다. 성경적 가치관은 이것을 정면으로 거스르는 가르침을 말씀한다. 그것도 창세기 첫 장부터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 이것이 세상을 만든 기준이며 인간을 창조하시기 전부터 세상에 있었던 하나님이 정하신 최고의 가치관이었다.

창세기 3장은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는 최고의 처세 기준을 버리고 “네가 하나님과 같이 되어”라는 사단의 처세기준을 인간이 받아들인(영접) 결과 모든 인간은 욕심과 거짓에 사로잡혀 인간의 행복이 지상에서 사라지게 되었다.

세상을 내 마음대로 하겠다고 생각하는 모든 인간이 던지는 막연한 기대와 욕심의 돌은 골리앗과 같은 인생의 문제를 해결하는 하나님의 기적과 응답이 아니라 문제 많은 세상에 또 다른 문제를 만드는 죄악으로 세상을 멍들게 할 뿐이다.

다윗의 승리를 함부로 꿈꾸지 마라
아무렇게나 돌을 던지면서 다윗의 승리를 꿈꾸는 헛된 욕심을 버려라. 당신이 지금 거대한 골리앗처럼 도저히 이 길수 없을 것 같은 인생의 문제와 환경과 인간관계를 넘어서고 싶다면 막연한 믿음의 용기와 자신의 입장에서 최선이라 생각하는 결정의 돌을 던지기 전에 다윗이 말한 신앙의 고백을 들어야 한다.“전쟁은 여호와께 속하였다 너는 칼과 단창으로 나아오나 나는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으로 나아가노라. 오늘 여호와께서 너를 내손에 붙이셨느니라"

다윗은 전쟁에 이길 수 있는 성경적 명분을 붙든 것이다. 그리고 그 명분에 생명을 걸었다. 생명을 걸만한 명분, 곧 사명을 찾지 못하면 당신의 인생은 시간만 흘러갈 뿐이다.

당신은 어떤 일에 대하여 다수의 사람들이 그건 할 수 없고 안 된다고 하는 말들을 너무 쉽게 당연한 것처럼 받아들이고 있지는 않는가. 다른 사람에게는 할 수 없는 일이 당신에게는 할 수 있는 일이 될 수 있다. 모든 사람이 같은 모습으로 같은 일을 하지 않고 어떤 사람에게는 쉬운 일이 어떤 이에게는 어려울 수 있고, 모두가 불가능한 일이 당신에게만은 가능한 일이 될 수 있음을 잊지 말라. 다른 이들의 포기가 당연히 당신의 포기로 이어지는 생각 없는 삶에서 벗어나라.
하나님은 지금까지 인류의 역사를 모두가 포기할 때 용기 있게 미래를 꿈꾸며 도전하는 창조적 소수를 통해 새로운 문화와 지식이 창출되게 이끌어 오셨음을 기억해야한다.

모든 기득권을 버리고 “본토친척 아비집을 떠나라”라는 말씀에 아브라함이 순종하여 이스라엘 역사의 시작이 되었고 살인자요 도망자였으며 80세의 노인이 되어 양떼를 먹이던 초라한 모세를 통해 이스라엘은 애굽의 노예생활에서 해방되었다.

여호수아와 갈렙은 가나안족속의 겉모습이 아닌 하나님이 주신 약속과 비젼을 붙들고 승리를 확신했고 결국 그 땅을 차지했다.

성경적 믿음이란 보이지 않는 것을 말씀을 통해 믿고 그 믿음이 결국 사실이 되고 증거가 되는 것을 의미한다.

당신은 모두가 할 수 없다고 하는 많은 일들을 아무 생각 없이 할 수 없다고 받아들이는 타성에 젖은 삶의 방식을 버리고 창조적이고 도전적인 창조적 소수의 삶을 선택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