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 섬기던 교회에 알코올 중독으로 고생하는 한 가장(家長)이 있었습니다. 평상시에는 참 좋은 분입니다. 그런데 술만 마시면 전혀 다른 사람으로 바뀝니다. “같은 사람이 맞나?” 싶을 정도로 포악해집니다. 아무에게나 폭력을 휘두릅니다. 뼈만 앙상하게 남은 가련한 아내와 예쁜 딸아이를 죽도록 때립니다.

어느 주일 중학교 1학년에 다니던 그의 딸이 교육담당 목사였던 저를 찾아 허겁지겁 달려 왔습니다. 제 정신이 아니었습니다. 불길한 생각이 들어 얼른 그의 집으로 달려가 보았습니다. 방바닥에 선혈이 낭자했습니다. 가엾은 아내가 얼마나 맞았는지 이미 초주검이 되어 있었습니다. 순간적으로 잔인한 그의 모습이 무섭기도 했지만 끓어오르는 분노가 훨씬 더 강했습니다. 당시 서른을 갓 넘긴 젊은 목사였던 저는 제 안에도 그 놈 못지않은 광기(狂氣)가 있다는 사실을 그날 처음으로 알았습니다. 임자를 제대로 만난 그는 하얗게 질려서 “야! 너 목사 맞아?”만 반복하면서 방바닥에 나동그라져 있었습니다.

며칠 뒤 술에서 깬 그가 저를 찾아왔습니다. “같은 주먹끼리” 통하는 것이 있다고 생각했나 봅니다. 그는 자신의 숨겨진 유년의 아픔을 굵은 눈물을 떨구며 이야기 해 주었습니다. 그의 아버지는 술만 먹으면 매일 어머니를 때렸습니다. 일곱 살 난 그가 아버지의 팔을 붙잡고 눈물로 애원하며 말리다가 수도 없이 밖으로 끌려 나가 기둥에 묶인 채 혁대로 매를 맞았다고 합니다. 지긋지긋한 아버지의 술주정을 견디다 못한 어머니가 어느 날 어린 자신을 버려두고 어디론가 멀리 도망쳐 버렸습니다.

그런데 삼십 년이 지난 지금 자신의 모습은 바로 그 저주스러웠던 아버지의 모습이 되고 말았습니다. 그는 원래는 큰 기업에 근무하던 성실한 회사원이었습니다. 고질적인 술 주사 때문에 직장 상사를 두들겨 패고 회사에서 쫓겨나기 전까지 말입니다.

나중에 그를 설득시켜서 정신과 치료를 받도록 했습니다. 물론 가족들도 함께 상담치료를 받아야 했습니다. 마침내 치료를 다 받고 가족의 품으로 돌아간 그가 제게 기억에 남는 몇 가지 말들을 해 주었습니다. “목사님 함께 울어주셔서 감사했습니다”, “제가 먹은 약 중에서 최고의 약은 목사님의 기도 약이었습니다”, 그리고 “목사님은 절대로 술 잡숫지 마십시오. 저하고 같은 계열입니다.”

고맙게도 그는 알코올 중독을 잘 이겨내 주었고 신실한 신앙인이 되었습니다. 그는 주(酒) 때문에 고생하다가 주(主)를 만난 사람입니다. 이 세상의 사람들 중에서 주님이 필요하지 않은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깨닫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