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란드의 수도 바르샤바는 2차 대전때 파괴됐던 곳이다. 제2의 도시 크리코프에는 어둠컴컴한 도시로 당시에 유태인들과 폴란드인들의 죽음의 대기소이기도 하였다.

1945년 기준으로 약 600만 명의 유태인, 로마인, 옛 소련군포로, 정신질환자, 나치즘에 반대자들을 처형한 곳이 아우슈비츠 수용소이다. 독가스 실에는 하루에 약 2000명이 학살 당했다. 독가스 실은 대게 샤워실의 모양을 하였고 나치는 샤워를 하라고 명령하여 옷을 스스로 벗게 하고 샤워 실에서 사워하고 살기 좋은 곳으로 가서 살 것이라 속여 가스실에서 처형시켰다. 나치 독일은 “선의에 따라 유대인을 보호 수용하는 장소”라고 강제 수용소를 거짓으로 속여 처형장소로 활용했다. “일하면 자유 로와 진다”(ArbeitMachtFrei)란 문구를 수용소 정문 앞에 써넣은 글귀가 보인다. 이것이 독일 나치가 폴란드에서 저지른 역사적 비극의 만행 장소이다. 나치는 죽은 사람을 뒷처리 하기가 힘들어 스스로 옷을 벗게 하고 신발은 따로, 머리카락은 짤라 카펫을 만들고 가발을 만들고 인체실험실에서는 생사람을 죽이고 총살형으로 사람의 시체가 산더미처럼 쌓이게 하여 화장을 하였다. 수감자들은 유럽 각지에서 기차로부터 실려 왔고 기차로 실려 온 자들은 죄수 건물 수용소에 갖혀 있었고 방은 너무 좁아 일어 설 수도 없는 콩나물시루였을 정도였다고 한다. 80%가 유태인이였고 그런 중에도 콜베 신부는 그와 함께 죽음을 앞둔 수용소 안에 죄수들을 누구도 저주하지 않고 비록 힘이 빠진 목소리만으로 기도하고 찬송을 불렀다고 전해 온다. 수용소 내에 사형장은 사랑의 불꽃이 피는 성당이 되었던 것이다. 1941년 8월 14일 47세로 막시밀리안 콜베 신부는 죽음을 당했고 그곳이 지금은 박물관으로 남아 있다.


한가지 놀라운 사실은 독일은 과거의 잘못을 뼈저르게 느끼며 아우슈비츠를 지금도 돕고 있으며 독일 정부에 국가 원수가 뽑히면 반드시 폴란드에 와서 사죄를 한다는 이야기다. 요즘 일본은 독도가 일본 땅이라 우겨대며 2차 대전 당시 성노예로 끌고 갔던 역사적 잘못에 대하여 조금도 반성하고 사죄하는 마음이 없는 저들을 보며 악질 같은 미개인 같은 생각을 하게 된다. 우리 일행은 이곳 이우슈비츠에서 눈을 감고 깊은 인생의 비참함을 깊이 새겨본다.


그리고 성경 말씀이 하나 떠오른다. 마태복음 27장 24-26의 말씀이다.

“빌라도가 무리 앞에서 손을 씻으며 이르되 이 사람에 대하여 나는 무죄하니 너희가 당하라. 백성이 다 대답하되 그 피를 우리와 우리 자손에게 돌릴지어다” 하고 “바라바는 놓아 주고 예수는 채찍질하고 십자기에 못 박히게 넘겨 주니라.”

유태인들의 비극이 왜 생겼을까? 조상들의 죄, 조상들의 말의 댓가, 예수님을 갈기갈기 찢어 죽인 죄의 댓가. 온갖 생각에 사로잡혀 고개를 떨어뜨리며 이번 여행을 마감하였다.

Berlin 으로 돌아와서 다시 United Air 로 세계의 최고의 축복의 나라 미국으로 입국하였다.(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