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의 과거 인식의 기준은 어느 때 까질까요? 생각해 보신 적이 있으십니까? 저는 한때 아주 어릴적 일들이 생각나지 않아 생각에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닌가 걱정한 적이 있습니다. 그러나 기우에 불과한 것이 사람은 네 살 이전의 일들을 기억하지 못한다는 과학적 근거들이 제시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런 생물학적 망각이 사람을 참 염치없는 인간으로 만들 때가 있습니다.
자녀를 키우다 보면 종종 잘하건 못하건 서운한 감정이 들 때가 있습니다. 자녀가 종종 친구들의 상황과 자신을 비교하며 우리 부모님은 나에게 해준 게 별로 없다고 생각할 때가 있기 때문입니다.

저도 청소년기를 생각해 보면 부모님을 원망한 기억이 납니다. “왜 나는 부자 부모를 만나지 못해 하고 싶은 것, 먹고 싶은 것 맘껏 하지 못하고 사는 것일까?” “왜 우리 부모님은 다른 사람들처럼 자녀들과 외출 한 번 하지 않는 것일까?” “왜 우리 부모님은 자식들과 진지한 대화 한 번 해주질 않으시는 것일까?” 등등 말입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참 모자라도 한참 모자랐다는 생각이 듭니다. 사실 부모님께서 내게 베푸신 사랑은 내가 기억하지 못하는 그 시간 받을 만큼 받고 누릴 만큼 누렸는데 말입니다.

4살 이전에 스스로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이 있겠습니까?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면 아니 자기 한 몸 가누기도 어려워 자신의 몸을 부모의 손에 의탁해 지탱해 왔다는 것을 알기만 한다면 과연 그런 생각을 할 수 있을까? 말입니다. 지금 내가 존재하는 것 자체가 누군가의 사랑의 손길이 없었다면 불가능한 일이었을 텐데 말입니다.

사람의 심장은 하루에 10만 3689번 뛴다고 합니다. 사람 몸속의 혈액은 눈에 보이지 않지만, 하루에 1억 6800만 마일을 달린다고 합니다. 그리고 내가 하루에 쉬는 숨의 수는 2만 3040번 가까이 쉰다고 합니다. 이 엄청난 일들이 조금이라도 차질이 생기면 내 몸에 금방 이상이 오게 되는 것입니다. 이 엄청난 일에 당신이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입니까? 당신이 생각하고 명령을 하건 하지 않건 내 심장과 폐는 호흡하며 엄청난 역사를 이루어 가고 있는 것입니다.

눈앞에 오곡백과가 보이지 않으십니까? 뭘 감사해야 하는지 찾을 것이 없으십니까? 그저 쳐다만 봐도 화가 날 만한 사람들과 환경만 주변에 있다는 생각이 드십니까?

한번 가만히 생각해 보시길 바랍니다. 눈에 보이는 것보다 보이지 않게 나를 존재하게 한 손길들이 없는지 말입니다. 그리고 감사하는 마음을 가져보시길 바랍니다.

바울 사도가 우리에게 왜 ‘범사에 감사하라’(살전5:18)고 하셨는지 알 것 같습니다. 눈에 보이는 것보다 보이지 않고, 생각나는 것보다 생각지 못하는 것들 속에 오히려 더 큰 사랑을 받고 누리며 살아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감사합시다. 내가 지금 감사하면 생각할 수 없는 사랑의 느낌을 충만히 느끼는 복을 경험하게 되실 것입니다. 그런 감사주간 맞이하시길 바랍니다. @Kisung
Nov 11, 20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