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이 돌덩이를 옮기려고 여러 번 시도했지만 잘 안됩니다. 아들이 아빠에게 말합니다. “아빠, 제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했습니다.”

아빠가 말씀합니다. “아니야, 너는 최선을 다하지 않았어. 너의 최선은 이 아빠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것이야.”

우리는 종종 힘에 부치도록 노력했으면 최선을 다했다고 자부합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하는 것이 최선입니다. 유다왕 여호사밧이 모압, 암몬, 마온의 동맹군을 앞에 두고 절박하게 기도합니다.

“우리 하나님이여…. 우리를 치러오는 이 큰 무리를 우리가 대적할 능력이 없고 어떻게 할 줄도 알지 못하옵고 오직 주만 바라보나이다.”(대하20:12)

기도 속에서 하나님은 전적으로 개입해 주십니다. “이 전쟁에는 너희가 싸울 것이 없나니 항오를 이루고 서서 너희와 함께 한 여호와가 구원하는 것을 보라.”(대하20:17). 하나님이 직접 다 하실 테니 너희는 구경만 하라는 것이지요.

우리가 아니라 기도가 해결해 줍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이것저것 다 해 보다가 막판에 가서야 기도합니다. 그러면 안됩니다. 어떤 일이든 초반부터 기도해야 합니다. 기도하는 인생은 형통합니다.

유다왕 웃시야가 기도하는 동안에는 형통했습니다. “하나님의 묵시를 밝히 아는 스가랴의 사는 날에 하나님을 구하였고 저가 여호와를 구할 동안에는 하나님이 형통케 하셨더라.”(역대하26:5) 기도의 고삐를 늦추지 않았을 때 그는 적들을 물리치는 승리자가 될 수 있었고, 요지마다 성읍을 건축하는 건축자가 될 수 있었고, 그 이름을 널리 떨치는 강자가 될 수 있었습니다.(대하26:6-7)

기도하면 안 풀릴 일도 풀립니다. 아브라함의 종 엘리에셀은 기도로 그 낯선 타국에서 주인의 며느리감을 쉽게 얻을 수 있었고(창24:12-27), 느헤미야도 기도로 그 겁나는 절대 군주의 출국 허락을 쉽게 받아낼 수 있었습니다.(느2:2-8) 기도가 일합니다. 우리는 전능하신 하나님을 믿고 대담한 기도를 할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우리가 일하면 우리 수준에서 이루어지지만 우리가 기도하면 하나님 수준에서 이루어집니다.

“항상 교회의 부흥을 위해서 최선을 다하는 목회를 한다”는 것이 저의 좌우명과 같은 것인데, 아쉽게도 ‘진정한 의미의 최선을 다하지 못하고 있다’는 책망이 제 마음 깊숙한 곳에서 메아리 치고 있습니다. 바로 ‘기도’에 관한 부실함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 교회는 3024 강력 기도 운동을 시작합니다. 30일간 24시간 진행되는 연쇄기도를 통해 강력한 기도를 올려 드릴 때, 하늘 문이 열릴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긍휼히 여기실 것입니다. 영적인 에너지를 공급받을 것입니다. 가정과 교회가 새로워 질 것입니다.

“기도로 시작하라. 기도를 사용하라. 초대교회는 기도의 운동으로부터 역사를 창출했다.”

기도에 대한 분명한 성경의 가르침을 거역할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기도와 함께하는 사역을 선포하고 싶습니다. 정말로 기도의 자리에 머물고 싶습니다. 기도를 통해서 ‘하나님으로부터 위대한 것을 기대하고, 하나님을 위한 위대한 것을 시도하는 사역’이 되게 하고 싶습니다.

아들이 돌덩이를 옮기려고 여러 번 시도했지만 잘 안됩니다. 아들이 아빠에게 말합니다. “아빠, 제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했습니다.”

아빠가 말씀합니다. “아니야, 너는 최선을 다하지 않았어. 너의 최선은 이 아빠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것이야.”

우리는 종종 힘에 부치도록 노력했으면 최선을 다했다고 자부합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하는 것이 최선입니다. 유다왕 여호사밧이 모압, 암몬, 마온의 동맹군을 앞에 두고 절박하게 기도합니다.

“우리 하나님이여…. 우리를 치러오는 이 큰 무리를 우리가 대적할 능력이 없고 어떻게 할 줄도 알지 못하옵고 오직 주만 바라보나이다.”(대하20:12)

기도 속에서 하나님은 전적으로 개입해 주십니다. “이 전쟁에는 너희가 싸울 것이 없나니 항오를 이루고 서서 너희와 함께 한 여호와가 구원하는 것을 보라.”(대하20:17). 하나님이 직접 다 하실 테니 너희는 구경만 하라는 것이지요.

우리가 아니라 기도가 해결해 줍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이것저것 다 해 보다가 막판에 가서야 기도합니다. 그러면 안됩니다. 어떤 일이든 초반부터 기도해야 합니다. 기도하는 인생은 형통합니다.

유다왕 웃시야가 기도하는 동안에는 형통했습니다. “하나님의 묵시를 밝히 아는 스가랴의 사는 날에 하나님을 구하였고 저가 여호와를 구할 동안에는 하나님이 형통케 하셨더라.”(역대하26:5) 기도의 고삐를 늦추지 않았을 때 그는 적들을 물리치는 승리자가 될 수 있었고, 요지마다 성읍을 건축하는 건축자가 될 수 있었고, 그 이름을 널리 떨치는 강자가 될 수 있었습니다.(대하26:6-7)

기도하면 안 풀릴 일도 풀립니다. 아브라함의 종 엘리에셀은 기도로 그 낯선 타국에서 주인의 며느리감을 쉽게 얻을 수 있었고(창24:12-27), 느헤미야도 기도로 그 겁나는 절대 군주의 출국 허락을 쉽게 받아낼 수 있었습니다.(느2:2-8) 기도가 일합니다. 우리는 전능하신 하나님을 믿고 대담한 기도를 할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우리가 일하면 우리 수준에서 이루어지지만 우리가 기도하면 하나님 수준에서 이루어집니다.

“항상 교회의 부흥을 위해서 최선을 다하는 목회를 한다”는 것이 저의 좌우명과 같은 것인데, 아쉽게도 ‘진정한 의미의 최선을 다하지 못하고 있다’는 책망이 제 마음 깊숙한 곳에서 메아리 치고 있습니다. 바로 ‘기도’에 관한 부실함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 교회는 3024 강력 기도 운동을 시작합니다. 30일간 24시간 진행되는 연쇄기도를 통해 강력한 기도를 올려 드릴 때, 하늘 문이 열릴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긍휼히 여기실 것입니다. 영적인 에너지를 공급받을 것입니다. 가정과 교회가 새로워 질 것입니다.

“기도로 시작하라. 기도를 사용하라. 초대교회는 기도의 운동으로부터 역사를 창출했다.”

기도에 대한 분명한 성경의 가르침을 거역할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기도와 함께하는 사역을 선포하고 싶습니다. 정말로 기도의 자리에 머물고 싶습니다. 기도를 통해서 ‘하나님으로부터 위대한 것을 기대하고, 하나님을 위한 위대한 것을 시도하는 사역’이 되게 하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