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해외 선교사 파송 숫자가 2만 3천명이 넘습니다. 이것이 너무나 귀한 일이지만 그 수는 한국 성도수의 0.2% 밖에 되지 않습니다. 이 시대의 선교는 교회안에 남아있는 이들, 99.8 %를 깨워야 합니다. 이들을 선교 동력화 하는 일은 디아스포라와 지역교회를 중심으로 한 평신도 전문인 사역입니다. 이것이 바로 선교의 제4물결입니다.”
2012 킴넷 10주년 선교대회 둘째날(16일) 네트웍 협의모임을 인도한 호성기 목사(필라안디옥교회 담임)는 연안선교와 내지선교, 종족선교에 이은 선교의 제4물결은 미주 이민교회를 포함한 디아스포라에게 그 열쇠가 있음을 강조했다.
호성기 목사는 “과거, 한국인들은 배고픔을 이겨내기 위해 해외 곳곳으로 퍼져나갔다. 지금 돌아보니 거기에는 하나님의 뜻이 있었다. 176개국 750만명이 복음의 씨앗으로 뿌려진 것이다”라고 설명했다.
이어 호성기 목사는 “랄프 윈터 박사는 1974년 로잔대회에서 선교개념의 패러다임이 전환되야 함을 역설했다. 선교의 개념이 국가에서 종족으로 바뀌었음을 말한 것이다. 그 제3의 물결은 지금도 이어져 파도로 우리에게 몰려오고 있다. 대규모의 사람들이 자신이 태어난 고향을 떠나 다른 나라, 지역에 가서 살고 있다. 지역교회가 잠자는 99.8%를 동력화해 이들을 전도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예를 든 호성기 목사는 “뉴저지 불루베리 농장에 대규모의 하이티 이주민들이 살고 있다. 그 안에서 얼마나 많은 폭력과 강간이 일어나는지 매일 저녁 경찰차 몇 대가 가서 밤을 새며 순찰했다. 그런데 하이티 선교를 꿈꾸는 장로님 한 분이 계셔서 이 지역에 가서 선교하기를 권면했다. 하이티를 가기 원했지만 하이티 인들이 주변으로 몰려온 것이다. 이 장로님이 이곳에서 천막을 치고 예배를 드리기 시작하고 복음이 전파되면서 이제 이곳에는 더 이상 경찰의 순찰이 필요하지 않게 됐다”고 전했다.
호성기 목사는 또 “육군 대령을 예편하고 전남 영광의 시골교회에 파송 받은 목회자 한 분이 있었다. 이 분이 교회를 가보니 할머니 몇 분만 앉아 있어 실망이 컸다. ‘하나님이 보내주신 뜻이 있겠지’하고 마을을 돌아보니 필리핀이나 베트남에서 시집 온 여인들이 너무나 많았다. 이곳에서 다민족 선교가 시작된 것이다. 현재 한국에는 2백만명의 타인종이 산다. 한국인들이 더 이상 험한 일을 하지 않으려 하고 이런 일을 감당할 일군은 계속해서 필요하기 때문에 그 수는 급격히 늘어날 것이다. 한국도 더 이상 단일민족을 이야기 할 때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호성기 목사는 “교회에 한국에서 유학을 온 유수의 인재들이 많다. 선교에 대한 비전을 심고 이들을 훈련시켜 전문인 선교사로 파송했다. 이들은 대한민국 행정 안전부로, 삼성으로, 카이스트로, 기무사령부로, 한국 곳곳으로 간다. 이런 일들은 목사들이 할 수 없는 것이다. 목회자에게 뚜렷한 비전이 있다면 얼마든지 이런 일이 가능해 진다”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호성기 목사는 “성도들이 교회 안에서 지체로서의 정체성이 확립되면 다른 이가 못하는 일을 하는 전문인이 된다. 일례로 교회 청년들이 영국 웨일즈에 가서 VBS를 했다. 그곳은 80년 교회 어린이가 없던 곳이다. 그런데 10년 이상 교회 안에서 교사로 활동하던 청년들이 가니 그곳에 어린이들이 몰려들기 시작했고 지역의 화제가 됐다. 이들을 왜 아프리카로 보내 벽돌을 찍게 하겠나. 이 청년들이 벽돌 찍어봐야 불량률만 올라간다. 자신들이 잘할 수 있는 것을 살리는 것이다. 이들이 지금까지 어떤 선교사들도 하지 못했던 일을 하는 것이다”라며 평신도 전문인의 가능성을 역설했다.
2012 킴넷 10주년 선교대회 둘째날(16일) 네트웍 협의모임을 인도한 호성기 목사(필라안디옥교회 담임)는 연안선교와 내지선교, 종족선교에 이은 선교의 제4물결은 미주 이민교회를 포함한 디아스포라에게 그 열쇠가 있음을 강조했다.
호성기 목사는 “과거, 한국인들은 배고픔을 이겨내기 위해 해외 곳곳으로 퍼져나갔다. 지금 돌아보니 거기에는 하나님의 뜻이 있었다. 176개국 750만명이 복음의 씨앗으로 뿌려진 것이다”라고 설명했다.
이어 호성기 목사는 “랄프 윈터 박사는 1974년 로잔대회에서 선교개념의 패러다임이 전환되야 함을 역설했다. 선교의 개념이 국가에서 종족으로 바뀌었음을 말한 것이다. 그 제3의 물결은 지금도 이어져 파도로 우리에게 몰려오고 있다. 대규모의 사람들이 자신이 태어난 고향을 떠나 다른 나라, 지역에 가서 살고 있다. 지역교회가 잠자는 99.8%를 동력화해 이들을 전도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예를 든 호성기 목사는 “뉴저지 불루베리 농장에 대규모의 하이티 이주민들이 살고 있다. 그 안에서 얼마나 많은 폭력과 강간이 일어나는지 매일 저녁 경찰차 몇 대가 가서 밤을 새며 순찰했다. 그런데 하이티 선교를 꿈꾸는 장로님 한 분이 계셔서 이 지역에 가서 선교하기를 권면했다. 하이티를 가기 원했지만 하이티 인들이 주변으로 몰려온 것이다. 이 장로님이 이곳에서 천막을 치고 예배를 드리기 시작하고 복음이 전파되면서 이제 이곳에는 더 이상 경찰의 순찰이 필요하지 않게 됐다”고 전했다.
호성기 목사는 또 “육군 대령을 예편하고 전남 영광의 시골교회에 파송 받은 목회자 한 분이 있었다. 이 분이 교회를 가보니 할머니 몇 분만 앉아 있어 실망이 컸다. ‘하나님이 보내주신 뜻이 있겠지’하고 마을을 돌아보니 필리핀이나 베트남에서 시집 온 여인들이 너무나 많았다. 이곳에서 다민족 선교가 시작된 것이다. 현재 한국에는 2백만명의 타인종이 산다. 한국인들이 더 이상 험한 일을 하지 않으려 하고 이런 일을 감당할 일군은 계속해서 필요하기 때문에 그 수는 급격히 늘어날 것이다. 한국도 더 이상 단일민족을 이야기 할 때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호성기 목사는 “교회에 한국에서 유학을 온 유수의 인재들이 많다. 선교에 대한 비전을 심고 이들을 훈련시켜 전문인 선교사로 파송했다. 이들은 대한민국 행정 안전부로, 삼성으로, 카이스트로, 기무사령부로, 한국 곳곳으로 간다. 이런 일들은 목사들이 할 수 없는 것이다. 목회자에게 뚜렷한 비전이 있다면 얼마든지 이런 일이 가능해 진다”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호성기 목사는 “성도들이 교회 안에서 지체로서의 정체성이 확립되면 다른 이가 못하는 일을 하는 전문인이 된다. 일례로 교회 청년들이 영국 웨일즈에 가서 VBS를 했다. 그곳은 80년 교회 어린이가 없던 곳이다. 그런데 10년 이상 교회 안에서 교사로 활동하던 청년들이 가니 그곳에 어린이들이 몰려들기 시작했고 지역의 화제가 됐다. 이들을 왜 아프리카로 보내 벽돌을 찍게 하겠나. 이 청년들이 벽돌 찍어봐야 불량률만 올라간다. 자신들이 잘할 수 있는 것을 살리는 것이다. 이들이 지금까지 어떤 선교사들도 하지 못했던 일을 하는 것이다”라며 평신도 전문인의 가능성을 역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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