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종은 하나님의 말씀과 그 뜻에 복종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이 그 뜻을 우리에게 선포하실 때에 그것을 인간적인 입장으로 해석하고 자신의 입장과 비전, 계획은 무시하고 무조건적인 복종만을 요구한다는 생각을 한다면 그 사람은 신앙인이 아닙니다. 현대 교인들의 생리가 바로 이런 점에 있습니다. 자신의 입장과 형편처지를 앞세워 자신의 것을 포기하거나 희생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 교인들이 넘쳐납니다. 오히려 하나님을 이용해 살아가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예수님이 대제사장이 되셨다는 사실을 히브리서 5:1-10에서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대제사장이란 직책은 무엇입니까?
구약시대에 이스라엘이 애굽을 떠나온 다음 광야교회 생활을 통하여 낮에는 구름기둥, 밤에는 불기둥으로 하나님이 그들의 눈에 보일 수 있도록 함께 하시며 그들의 갈 길을 밤낮없이 인도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모세라는 하나님의 사역자를 하나님과 이스라엘 사이에 세우셨습니다. 그리고 그 백성들이 광야교회 생활을 하면서도 죄를 짓기 때문에 그 죄 문제를 계속해서 하나님 앞에 회개함으로 용서받을 수 있는 대책을 허락하시고 그 대책을 집행할 수 있는 사람을 제사장으로 세우셨습니다.
하나님 앞에 죄를 지은 사람은 그 죄를 심판받기 전에 회개하고 용서받기 위해서 자신이 생각하는 죄의 비중에 따라 소나 양, 염소, 비둘기를 준비해 제사장에게 갖다 바치고 자기 죄를 자백했습니다. 그러면 제사장은 에봇을 입고 가슴 흉배에 죄를 용서받기 원하는 사람의 이름을 적고 그 밑에 그 사람이 용서받기 원하는 죄목을 썼습니다. 제사장은 그날 속죄 제사를 드림으로 죄를 용서받고자 하는 사람의 입장을 대신해서 짐승을 잡아서 피를 뽑아 접시에 담고 우슬초라고 하는 풀을 오른손에 쥐고 성막에 들어갑니다.
성막에 들어가면 휘장이 있고 양쪽에 기둥이 세워져 있습니다. 이 기둥을 기둥 뿔이라고 하는데 이것은 예수님의 권세를 상징하는 것입니다.
그 기둥과 기둥 사이에는 떡상이 있습니다. 그곳엔 진설병이 놓여 있고 그것은 생명의 떡인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합니다. 그리고 양쪽의 휘장이 가려지고 진설병이 있는 부분만 보이게 되어 있고 그 바로 안쪽에 지성소와 성소를 가로막는 휘장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 휘장에 짐승의 피를 찍어서 뿌립니다. 피를 뿌리면서 흉배에 적힌 이름과 죄목을 하나님 앞에 보고를 드리며 짐승의 피로 인하여 임시적으로 심판을 보류하기 위한 효과로 속죄 제사를 드리게 했습니다. 이처럼 제사장의 역할은 양떼의 입장을 대신하는 모습으로 하나님이 세우셨던 것입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그 제사장도 죄를 지을 수 있는 인간입니다. 결국 자기를 위한 속죄제를 드려야 하는 모순된 제사장들이었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혀 피 흘리고 죽임 당하신 이후 예수님이 영원한 제사장이 되셨기 때문에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 앞에 자기 죄를 용서받기 위하여 짐승을 사다가 제사장에게 피를 흘려서 속죄제를 드려 달라고 부탁할 필요가 없어졌습니다.
예수님이 영원한 대속의 희생양으로 자신이 흘리신 피로 아버지께서 택하시고 예수님께 맡긴 자기 양떼들의 죄를 속죄 받을 수 있도록 하셨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을 대신해 제사장 노릇을 했던 사람들의 임무다 끝이 나고 예수님께서는 단번에 자기 피로 영원한 속죄를 이루셨습니다.
구약시대에 하나님은 모세의 형 아론을 대제사장으로 택하셨습니다. 대제사장만이 지성소에 들어갈 수 있었고 그곳은 하나님의 법궤가 있는 곳이었습니다. 이 법궤 안에는 세 가지 상징적 물품을 간직하게 하셨습니다. 첫째는 이스라엘이 애굽을 출발하여 홍해를 건너던 날부터 안식일을 제외하고 날마다 내려주신 만나를 순금을 싼 돌 항아리에 보관했고 그것은 자기 백성을 먹여 살리시는 생명의 양식으로 예수님을 상징합니다. 요한복음 6:35에 보면 “내가 곧 생명의 떡이니 내게 오는 자는 결코 주리지 아니할 터이요”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두 번째는 아론의 싹 난 지팡이이며 이것은 성령을 상징합니다. 그리고 마지막은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해 시내 산에서 성령의 불로 써주신 돌판입니다. 이 십계명은 성부 하나님을 상징합니다.
요단강에서 세례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시고 성령이 임하셔서 성령에 이끌리어 하나님 뜻을 이루는 그리스도, 희생양으로 죽임 당하시기까지의 3년 세월을 성자 예수님이 세상에 계시면서 제자들에게 천국의 비밀을 가르쳐 주시고 복음을 전할 수 있는 성령의 도구로 쓰임 받기 위해 그들을 훈련시키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죽임당하시기 전에 “내가 너희에게 실상을 말하노니 내가 떠나가는 것이 너희에게 유익이라 내가 떠나가지 아니하면 보혜사가 너희에게로 오시지 아니할 것이요 가면 내가 그를 너희에게로 보내리니 그가 와서 죄에 대하여, 의에 대하여, 심판에 대하여 세상을 책망하시리라(요16:7-8)”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히시고 “다 이루었다”고 말씀하실 때 성소의 휘장이 위에서부터 아래로 찢어졌다고 했습니다(마27:50-51). 그 휘장은 예수님의 몸을 상징합니다. 구약시대 짐승의 피가 그 휘장에 뿌려질 때 그들의 죄는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히셔서 피 흘리실 때까지만 심판이 보류되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만약 구약시대 짐승의 피가 속죄제를 드린 사람의 죄를 영원토록 용서받게 해줄 수 있었다면 예수님의 보혈은 아무 의미가 없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나 아담 이후 예수님이 재림하실 때까지 이 세상에 태어났다가 죽는 모든 사람들에게 오로지 예수님의 피만이 하나님 앞에 영원한 속죄의 보혈이 되도록 하나님이 정해 주셨습니다. 예수님은 이제부터 영원토록 그리스도의 왕국이 이루어진 후에도 영원한 대제사장이 되시는 것입니다.
그러면 누가 예수님을 대제사장으로 세우셨는지 생각해 봅시다. 성부, 성자, 성령이 의논하셔서 성자 예수님이 세상에 육신을 입고 오셨습니다. 그리고 십자가 형틀에 못 박혀 죽임 당하시고 그가 택하신 백성들의 대속을 위한 희생양이 되어 보혈을 흘리심으로 모든 구약, 신약 시대의 신앙인들을 영원히 구속하셨고 예수님 스스로 영원한 대제사장으로 세움을 받았습니다.
그가 아들이시라도 받으신 고난으로 순종함을 배워서 온전하게 되었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모든 것의 절대 주권자이십니다. 어떤 계획을 세우시고 그 계획을 성취하시기 위해 누구를 쓰시는가도 하나님께서 정하신 뜻대로 되도록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영으로는 하나님이시고 육체로는 사람과 똑같은 신인양성(神人兩性)을 겸비하신 분이었습니다. 예수님도 십자가에 달려 죽임 당하실 고통 앞에 “내 아버지여 만일 내가 마시지 않고는 이 잔이 내게서 지나갈 수 없거든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마26:42)”며 간절한 기도를 하셨습니다.
이것은 죽음과 고통이 싫어서 그러신 것이 아닙니다. 이것은 오늘날 우리에게 영과 육의 갈래 속에서 육체가 감당하기 어려운 일이 하나님의 뜻으로 지시가 떨어졌을 때 어떻게 해야 하는가를 본을 남겨 주신 것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히셔서 운명하시기 전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시나이까?)”라고 하셨습니다. 이것은 예수님이 시험에 들거나 고통을 견디기 힘들어서 하신 말씀이 아니라 이 말씀을 읽는 모든 사람들이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이 왜 죄인의 신분이 되셔서 십자가 형틀의 고통 가운데 피 흘려 죽어가셨던가를 확실히 깨닫고 믿게 하시기 위해 하신 말씀입니다. 그 믿음으로 회개해서 지옥을 벗어나 하늘나라로 가는 구원을 얻게 하시기 위해서 입니다.
마태복음 11:27에는 “내 아버지께서 모든 것을 내게 주셨으니 아버지 외에는 아들을 아는 자가 없고 아들과 또 아들의 소원대로 계시를 받는 자 외에는 아버지를 아는 자가 없느니라”하셨고, 마태복음 28:18에 “예수께서 나아와 일러 가라사대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 하셨습니다. 하나님 아버지께서 모든 권한을 예수님께 주셨습니다. 예수님은 영으로는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완전한 인격자입니다. 그럼에도 예수님이 이런 말씀들을 남기신 이유는 모든 신앙인이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모든 일들에 순종하길 원하시디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로서 고난과 죽임을 당하기 위해 오셨습니다. 그 일을 당하기 위해 오신 것을 스스로 밝히셨고 그 일이 이루어지게 하기 위하여 기도와 눈물로 간구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우리들에게 실질적인 본을 보여 주셨습니다. 예수님이 우리 죄를 위하여 대속의 희생 제물로 죽임을 당하셨고, 부활하심으로 예수님을 믿고 회개해서 죄를 용서받아 의로워졌다는 보증이 되어 주시며, 승천하셔서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아 계십니다. 이것이 예수님의 고난과 죽임 당하심의 성과였습니다.
빌립보서 2:5-11에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어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들과 같이 되었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셨으매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사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 있는 자들로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시고 모든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느니라” 했습니다.
예수님은 영원한 대제사장이 되셨습니다. 이제 예수님이 승천하시면서 보내주신 보혜사 성령은 택하신 백성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회개하게 합니다. 죄 사함을 받으면 성령이 함께 하십니다. 그러면 우리는 그 성령에 이끌리며 쓰임 받아 하늘나라 확장을 위하여 힘쓰다가 하나님이 부르시는 날 천국가면 훗날 예수님이 재림하셔서 그리스도의 왕국이 이루어질 때 그 영광스런 주인공들로 참여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 일을 위하여 지금도 성령은 애타게 역사하시고 계십니다. 순종은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드리기 위한 것입니다. 그 뜻을 이루어 드리기 위하여 목숨을 빼앗기는 순교를 하게 된다 하더라도 예수님처럼 생명부활로 반드시 살려 주실 것이라는 믿음을 소유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자신의 대속의 죽음을 통해 지옥 갈 많은 영혼을 생명 길로 이끌며 그리스도 왕국에 들어가는 하나님의 자녀를 계속 해산하고 있습니다. 이 사실 앞에서 오늘 우리도 남은 생애를 예수님 같이 하나님의 뜻을 위해 우리 자신을 완전히 복음의 제물로 드릴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면 그리스도와 같은 영광의 생명 부활로 영원히 동참하게 하시는 소망이 보장될 것입니다.
예수님이 대제사장이 되셨다는 사실을 히브리서 5:1-10에서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대제사장이란 직책은 무엇입니까?
구약시대에 이스라엘이 애굽을 떠나온 다음 광야교회 생활을 통하여 낮에는 구름기둥, 밤에는 불기둥으로 하나님이 그들의 눈에 보일 수 있도록 함께 하시며 그들의 갈 길을 밤낮없이 인도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모세라는 하나님의 사역자를 하나님과 이스라엘 사이에 세우셨습니다. 그리고 그 백성들이 광야교회 생활을 하면서도 죄를 짓기 때문에 그 죄 문제를 계속해서 하나님 앞에 회개함으로 용서받을 수 있는 대책을 허락하시고 그 대책을 집행할 수 있는 사람을 제사장으로 세우셨습니다.
하나님 앞에 죄를 지은 사람은 그 죄를 심판받기 전에 회개하고 용서받기 위해서 자신이 생각하는 죄의 비중에 따라 소나 양, 염소, 비둘기를 준비해 제사장에게 갖다 바치고 자기 죄를 자백했습니다. 그러면 제사장은 에봇을 입고 가슴 흉배에 죄를 용서받기 원하는 사람의 이름을 적고 그 밑에 그 사람이 용서받기 원하는 죄목을 썼습니다. 제사장은 그날 속죄 제사를 드림으로 죄를 용서받고자 하는 사람의 입장을 대신해서 짐승을 잡아서 피를 뽑아 접시에 담고 우슬초라고 하는 풀을 오른손에 쥐고 성막에 들어갑니다.
성막에 들어가면 휘장이 있고 양쪽에 기둥이 세워져 있습니다. 이 기둥을 기둥 뿔이라고 하는데 이것은 예수님의 권세를 상징하는 것입니다.
그 기둥과 기둥 사이에는 떡상이 있습니다. 그곳엔 진설병이 놓여 있고 그것은 생명의 떡인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합니다. 그리고 양쪽의 휘장이 가려지고 진설병이 있는 부분만 보이게 되어 있고 그 바로 안쪽에 지성소와 성소를 가로막는 휘장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 휘장에 짐승의 피를 찍어서 뿌립니다. 피를 뿌리면서 흉배에 적힌 이름과 죄목을 하나님 앞에 보고를 드리며 짐승의 피로 인하여 임시적으로 심판을 보류하기 위한 효과로 속죄 제사를 드리게 했습니다. 이처럼 제사장의 역할은 양떼의 입장을 대신하는 모습으로 하나님이 세우셨던 것입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그 제사장도 죄를 지을 수 있는 인간입니다. 결국 자기를 위한 속죄제를 드려야 하는 모순된 제사장들이었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혀 피 흘리고 죽임 당하신 이후 예수님이 영원한 제사장이 되셨기 때문에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 앞에 자기 죄를 용서받기 위하여 짐승을 사다가 제사장에게 피를 흘려서 속죄제를 드려 달라고 부탁할 필요가 없어졌습니다.
예수님이 영원한 대속의 희생양으로 자신이 흘리신 피로 아버지께서 택하시고 예수님께 맡긴 자기 양떼들의 죄를 속죄 받을 수 있도록 하셨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을 대신해 제사장 노릇을 했던 사람들의 임무다 끝이 나고 예수님께서는 단번에 자기 피로 영원한 속죄를 이루셨습니다.
구약시대에 하나님은 모세의 형 아론을 대제사장으로 택하셨습니다. 대제사장만이 지성소에 들어갈 수 있었고 그곳은 하나님의 법궤가 있는 곳이었습니다. 이 법궤 안에는 세 가지 상징적 물품을 간직하게 하셨습니다. 첫째는 이스라엘이 애굽을 출발하여 홍해를 건너던 날부터 안식일을 제외하고 날마다 내려주신 만나를 순금을 싼 돌 항아리에 보관했고 그것은 자기 백성을 먹여 살리시는 생명의 양식으로 예수님을 상징합니다. 요한복음 6:35에 보면 “내가 곧 생명의 떡이니 내게 오는 자는 결코 주리지 아니할 터이요”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두 번째는 아론의 싹 난 지팡이이며 이것은 성령을 상징합니다. 그리고 마지막은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해 시내 산에서 성령의 불로 써주신 돌판입니다. 이 십계명은 성부 하나님을 상징합니다.
요단강에서 세례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시고 성령이 임하셔서 성령에 이끌리어 하나님 뜻을 이루는 그리스도, 희생양으로 죽임 당하시기까지의 3년 세월을 성자 예수님이 세상에 계시면서 제자들에게 천국의 비밀을 가르쳐 주시고 복음을 전할 수 있는 성령의 도구로 쓰임 받기 위해 그들을 훈련시키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죽임당하시기 전에 “내가 너희에게 실상을 말하노니 내가 떠나가는 것이 너희에게 유익이라 내가 떠나가지 아니하면 보혜사가 너희에게로 오시지 아니할 것이요 가면 내가 그를 너희에게로 보내리니 그가 와서 죄에 대하여, 의에 대하여, 심판에 대하여 세상을 책망하시리라(요16:7-8)”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히시고 “다 이루었다”고 말씀하실 때 성소의 휘장이 위에서부터 아래로 찢어졌다고 했습니다(마27:50-51). 그 휘장은 예수님의 몸을 상징합니다. 구약시대 짐승의 피가 그 휘장에 뿌려질 때 그들의 죄는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히셔서 피 흘리실 때까지만 심판이 보류되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만약 구약시대 짐승의 피가 속죄제를 드린 사람의 죄를 영원토록 용서받게 해줄 수 있었다면 예수님의 보혈은 아무 의미가 없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나 아담 이후 예수님이 재림하실 때까지 이 세상에 태어났다가 죽는 모든 사람들에게 오로지 예수님의 피만이 하나님 앞에 영원한 속죄의 보혈이 되도록 하나님이 정해 주셨습니다. 예수님은 이제부터 영원토록 그리스도의 왕국이 이루어진 후에도 영원한 대제사장이 되시는 것입니다.
그러면 누가 예수님을 대제사장으로 세우셨는지 생각해 봅시다. 성부, 성자, 성령이 의논하셔서 성자 예수님이 세상에 육신을 입고 오셨습니다. 그리고 십자가 형틀에 못 박혀 죽임 당하시고 그가 택하신 백성들의 대속을 위한 희생양이 되어 보혈을 흘리심으로 모든 구약, 신약 시대의 신앙인들을 영원히 구속하셨고 예수님 스스로 영원한 대제사장으로 세움을 받았습니다.
그가 아들이시라도 받으신 고난으로 순종함을 배워서 온전하게 되었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모든 것의 절대 주권자이십니다. 어떤 계획을 세우시고 그 계획을 성취하시기 위해 누구를 쓰시는가도 하나님께서 정하신 뜻대로 되도록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영으로는 하나님이시고 육체로는 사람과 똑같은 신인양성(神人兩性)을 겸비하신 분이었습니다. 예수님도 십자가에 달려 죽임 당하실 고통 앞에 “내 아버지여 만일 내가 마시지 않고는 이 잔이 내게서 지나갈 수 없거든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마26:42)”며 간절한 기도를 하셨습니다.
이것은 죽음과 고통이 싫어서 그러신 것이 아닙니다. 이것은 오늘날 우리에게 영과 육의 갈래 속에서 육체가 감당하기 어려운 일이 하나님의 뜻으로 지시가 떨어졌을 때 어떻게 해야 하는가를 본을 남겨 주신 것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히셔서 운명하시기 전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시나이까?)”라고 하셨습니다. 이것은 예수님이 시험에 들거나 고통을 견디기 힘들어서 하신 말씀이 아니라 이 말씀을 읽는 모든 사람들이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이 왜 죄인의 신분이 되셔서 십자가 형틀의 고통 가운데 피 흘려 죽어가셨던가를 확실히 깨닫고 믿게 하시기 위해 하신 말씀입니다. 그 믿음으로 회개해서 지옥을 벗어나 하늘나라로 가는 구원을 얻게 하시기 위해서 입니다.
마태복음 11:27에는 “내 아버지께서 모든 것을 내게 주셨으니 아버지 외에는 아들을 아는 자가 없고 아들과 또 아들의 소원대로 계시를 받는 자 외에는 아버지를 아는 자가 없느니라”하셨고, 마태복음 28:18에 “예수께서 나아와 일러 가라사대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 하셨습니다. 하나님 아버지께서 모든 권한을 예수님께 주셨습니다. 예수님은 영으로는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완전한 인격자입니다. 그럼에도 예수님이 이런 말씀들을 남기신 이유는 모든 신앙인이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모든 일들에 순종하길 원하시디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로서 고난과 죽임을 당하기 위해 오셨습니다. 그 일을 당하기 위해 오신 것을 스스로 밝히셨고 그 일이 이루어지게 하기 위하여 기도와 눈물로 간구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우리들에게 실질적인 본을 보여 주셨습니다. 예수님이 우리 죄를 위하여 대속의 희생 제물로 죽임을 당하셨고, 부활하심으로 예수님을 믿고 회개해서 죄를 용서받아 의로워졌다는 보증이 되어 주시며, 승천하셔서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아 계십니다. 이것이 예수님의 고난과 죽임 당하심의 성과였습니다.
빌립보서 2:5-11에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어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들과 같이 되었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셨으매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사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 있는 자들로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시고 모든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느니라” 했습니다.
예수님은 영원한 대제사장이 되셨습니다. 이제 예수님이 승천하시면서 보내주신 보혜사 성령은 택하신 백성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회개하게 합니다. 죄 사함을 받으면 성령이 함께 하십니다. 그러면 우리는 그 성령에 이끌리며 쓰임 받아 하늘나라 확장을 위하여 힘쓰다가 하나님이 부르시는 날 천국가면 훗날 예수님이 재림하셔서 그리스도의 왕국이 이루어질 때 그 영광스런 주인공들로 참여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 일을 위하여 지금도 성령은 애타게 역사하시고 계십니다. 순종은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드리기 위한 것입니다. 그 뜻을 이루어 드리기 위하여 목숨을 빼앗기는 순교를 하게 된다 하더라도 예수님처럼 생명부활로 반드시 살려 주실 것이라는 믿음을 소유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자신의 대속의 죽음을 통해 지옥 갈 많은 영혼을 생명 길로 이끌며 그리스도 왕국에 들어가는 하나님의 자녀를 계속 해산하고 있습니다. 이 사실 앞에서 오늘 우리도 남은 생애를 예수님 같이 하나님의 뜻을 위해 우리 자신을 완전히 복음의 제물로 드릴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면 그리스도와 같은 영광의 생명 부활로 영원히 동참하게 하시는 소망이 보장될 것입니다.
© 2020 Christianitydaily.com All rights reserved. Do not reproduce without permissi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