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시야장로교회(담임 한세영 목사) 전도 축제 ‘메시야잔치’가 며칠 앞으로 다가왔다. 올해로 6회를 맞은 ‘메시야 잔치’는 메시야장로교회 연중 행사 중 가장 역점을 두는 사역인 동시에 전교인이 전도에 뛰어들며 헌신하는 행사인 만큼 교회의 기대도 높다. 한세영 목사를 찾아, ‘메시야 잔치’와 한인교회 전도에 대한 관점, ‘수평이동’ 등 조금은 민감한 사안들에 대한 의견 등을 들어봤다.
다음은 한세영 목사와의 인터뷰 전문이다.
-메시야전도축제가 타 교회 전도 축제와 구별되는 특별한 점이라면 무엇이 있나?
다르게 하려고 시작한 건 아니었다. 예전에 섬기던 필라영생교회의 예수사랑초청잔치의 방식을 따서 우리 교회 규모에 맞게 열었던 것이다. 2006년 첫 부임하고, 2007년 처음으로 메시야 잔치를 열었는데, 당시 교회가 부흥하는 분위기여서 그랬는지, 예상외로 굉장히 많이 오셨다. 그래서 많이 주목해 주시는 것 같다.
특징이라면 종합예술적이라는 거다. 목회자 설교 중심의 행사가 아니라 전교인이 참여해서 몇달 간 준비하니까, 주차 안내부터 차에서 내리는 순간부터 달려가 본당에 앉혀주는 일, 찬양, 중창과 동영상 팀, 연극 팀 등 오직 새로운 영혼 구원이라는 목적으로 하나되는 단합의 시간이라 가장 보람있다.
-메시야 잔치를 위해 노방전도에 전 교인이 참여한다. 한인 교회는 노방 전도 보다 관계 전도를 권유하는 분위기도 있는 것 같은데, 목사님 생각은 어떠신가.
일부 교인들은 ‘노방 전도의 효과성’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기도 했다. 하루 종일 나가 있어도 겨우 2명 만나고, 그 마저도 이미 교회 간다고 하는 사람이라며 투덜 거리는 경우도 있다. 심지어 전도 전문가들도 ‘관계 전도’만을 강조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초대교회를 봐도 회당이나 광야에서 모르는 사람들에게 복음을 설파하고 전도했다. 예수님도 제자들에게 ‘모든 족속에게 복음을 전하라’고 했지, 가족이나 친지들에게 먼저 가라고 하지 않으셨다. 관계 전도가 필요없다는 것은 아니다. 병행돼야 한다.
관계 전도 50명하고, 노방전도 200명 해도 결국 교회 오는 사람은 관계 전도해서 오는 사람이 많다고도 얘기한다. 확률적으로 실제 사실이다. 그러나 숫자가 중요한 것인가? 효율성과 경제적 원리에 우리는 너무 민감하다.
하나님께서는 전도의 미련한 것으로 구원하시기를 기뻐하셨다고 말한다. 전도는 세상의 지혜가 아니다. 생각해 보라. 관계전도해서 50명 다 오는 것 하고, 노방전도해서 딱 1명 건지는 것 하고, 둘 중에 어느 것이 중한가? 어느 것도 중하다 못하다 할 수 없다. 어느 하나라도 빼놓을 수 없는 것이다.
-노방전도의 장점에 대해 구체적으로 어떤 것이 있다 보시나
교인들이 도전하면서, 전도에 자신감이 붙는다. 기도하고 가기 때문에 능력을 체험한다. 자녀들도 전도 찬양팀으로 일찍 부터 내보내니 교육의 효과도 있다. 커서도 전도에 담대함을 갖게 하는 것이다.
전도하러 갔다가 후퇴하는 대부분의 이유는, 열매가 별로 없다는 거다. 그렇다고 회피해야 하나? 전도를 성과로 내 보이려고 하니까 꺼려지는 것이다. 하나님의 명령, 순종이라면 못할 이유가 무엇인가?
낚시하는 사람들은 하루 종일 낚시해도 고기 한 마리 못 잡을 때 많다. 그래도 낚시를 그만 두지 않지 않는가? 세일즈 하는 사람들도 그렇다. 어떨 때는 허탕 쳐도 하나라도 팔아야 겠다는 절박감 가지고 세일즈 한다. 그런데 왜 크리스천들은 전도를 쉽게 그만 두는가?
교인 중에도 전도를 ‘성과를 위해’ 하려는 사람이 항상 있다. 그래서 계속 주지 시킨다.
전도를 직접 해보면서 하나님께서 한 영혼을 구원하시는 것이 얼마나 수고로운 것인지 이해하고, 자신을 구속하신 하나님의 사랑에 다시 한번 감격하게 된다. 또 열매가 없어도 하나님께 순종했다고 하는 일말의 감격과 보람도 자리 잡는다. 교인들도 이 계기로 단합된다.
오늘날 교회 훈련 중 가장 부족한 부분이 ‘전도’가 아닌가 싶다. 노방전도를 통해 단 1명이 와도 괜찮다. 아니 안 와도 상관없다. 일단 교인들이 ‘지상명령’에 순종하는 전도 훈련이 되는 것이 큰 성과라면 성과다.
-이민 오면 한인교회 부터 찾는다는 말이 있다. 그정도로 한인교회에는 기댈 곳이 필요해서 혹은 사회적 이유로 오는 경우도 적지 않기 때문에, 구원의 확신 없이 교회를 다니다가 인간적 상처를 입고 교회에 등을 돌리는 경우도 많은 것 같다. 그런 면에서 전도 자체 보다 전도 이후의 후속 교육이 매우 중요하다고 보여지는데.
맞는 말이다. 하지만 강요로 사람을 변화시키지 못한다. 조심스럽지만 교육 역시 성경 지식을 쌓게 할 지는 몰라도 사람을 변화시키진 못한다. 사람을 변화시킬 수 있는 것은 오직 사랑 밖에 없다.
목회를 하다보면, 문제 성도가 있다고 불평이 들어오는 때도 있고, 때로는 목회자인 나를 대적하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목회자도 사람을 변화시키지 못한다. 첫째는 하나님이 하시는 거고, 둘째는 사람의 섬김이다. 돌덩이를 사랑의 용광로에 흠뻑 빠뜨려 녹아질 때까지 기다리는 수 밖에…. 우리가 해야 할 일은 계속 사랑으로 섬기는 일이다.
물론 프로그램이 있다. 바나바 사역이라고, 전도해서 인도한 사람 외에 다른 사람이 새신자를 관리하도록 따로 붙여준다. 새신자의 경우도 새로운 환경에서 새로운 사람과 경험을 통해 더 성숙해 갈 수 있도록 개척 정신을 길러준다. 영국 속담에 ‘자식을 사랑하면, 여행을 보내라’는 말이 있는데, 새로운 기회를 주면서 기존 성도도, 새신자도 성숙해지게 된다.
새가족반을 통해 교역자가 마음을 움직이고, 제자훈련으로 신앙관 및 신학을 확립하고, 전도 폭발을 통해 훈련하며, 신앙을 삶으로 연결시켜 주도록 길을 열어주는 것 모두 매우 중요하다.
하지만 제일 중요한 건 하나님의 역사다. 그런 면에서 예배가 가장 중요하다고 본다. 목회자는 콩나물 자루에 물 주듯이 올바른 말씀을 일관성 있게 전해야 한다. 목회자의 말씀이 일정한 방향으로 흐르면 성도들은 저절로 따라오게 돼 있다. 저의 경우, 강단에서는 매우 엄격하고 매섭게 말씀을 전하는 편이지만, 내려와서는 강요나 야단을 친 적이 없을 정도로, ‘섬김’의 목회를 지향하고 있다.
-실제로 교인들에 의해 불거지는 갈등은 어떻게 해결하시나
교회에서 설교가 은혜가 안되서 나간다고 하는 분은 내보내준다. 신앙의 본질에 관한 거니까. 지금까지 한 2가정이 그런 경우가 있었다.
하지만 교인간에 관계가 틀어져 트러블이 생기는 경우면 대체로 상담으로 해소하는 편이다. 목회자로서 철칙 중 하나가 대립각을 세우는 두 사람 중 어느 편에도 서지 않는다는 것이다. 문제 없는 사람은 없고 대부분 오해나 감정에 치우쳐 불거진 일이라 시간이 지나면 자동으로 해결되는 것이 다반사다. 가장 중요한 것은 목사님은 나를 알아준다고 확신하게 하는 것이다. 다 몰라줘도 목사님은 아시고, 하나님은 알아주신다는 확신 말이다. 나의 경우, 이 쪽 말도 ‘맞고’ 저 쪽 말도 ‘맞다’고 한다.
-이 지역 한인들의 수와 한인교회의 교인 수를 대략 계산해 보면, 실제 교인은 전체의 20~30%선으로 볼 수 있다. 그런데 한인사회에서 전도 하려고 하면 대부분 교회를 다닌다고 한다는 말을 들었다.
그게 아이러니하다. ‘김 집사, 주변에 예수 안 믿는 사람 있으면 전도하세요’ 하면 ‘다 교회 다닙니다 혹은 있어도 그 수는 별로 되지 않습니다’고 한다. 지금 메시야 평생 교육원 200명 학생 중에서 통계적으로라면 전체 40% 정도만 교회 다녀야 하는데 거의 다 교회에 다닌다. 코러스 축제에 가서 이번에 전도를 했는데, 교회를 안 다닌다는 사람을 거의 만나지 못했다. 아이러니한 부분이 아닐 수 없다. 결국은 한인 사회에 나오지 않는 한인들의 수가 많다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그런 면에서 ‘전도’하면 수평이동에 대한 거부감을 가지는 경우도 없지 않은 것 같다. 목사님 생각은 어떠신가.
수평 이동에 대해서는 남의 교회 잘 다니는 사람 절대로 데려오지 말라고 표현할 정도로 반대한다. 교회 나와 방황하는 사람들을 담아야 한다.
전도 하려면 숫자에 대해 포기할 수 있어야 한다. 개 중에 인간적인 분들도 가끔 있다. 교인 중에는 굳이 교회 다닌다는 데, ‘우리 교회 좋아요 한번 나와 보세요’ 하는 경우도 가끔 있다고 들었다. 그런 것은 우리 의도가 아니다.
전도하면서 잊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 우리가 모든 것을 하지만 하나님의 주권을 간과하면 안된다. 하나님께서 구원할 사람을 구원하신다. 다시 말하지만 전도는 성과가 아니다. 성과 위주 즉 숫자에 집착하면 본질이 상실된다. 전도 자체가 중요한 것이고, 하나님의 명령을 지키려는, 즉 교회의 순수성을 지키는 것이 더 중요하다.
‘전도 많이 하면 교회가 더 큰 일을 할 수 있지 않을까’ 라고 말할 지 모른다. 그러나 교회 규모와 큰 일을 하는 것이 늘 정비례 한다고 보는 것은 착각이다. 하나님이 사용하시면 마른 막대기도 들어 쓰실 수 있는 것이 아닌가? 교인수 많은 교회만 큰 일을 감당한다면, 이 땅에 소망을 두고 살아가는 세상 사람들 가치관과 별반 다를 게 없다. 우리는 성실히 하나님 경외하고 살면서, 하나님이 그 위에 더해주시고 공급해 주시는 것을 기다릴 필요가 있다.
-아까 말씀하신 맥락에서, 한인 중 비신자들이 통계적으로 많은데 실제적으로 접촉하기 어렵다면, 한인교회의 연합을 통한 총체적인 이미지 개선이라든지 문화적 접근 등을 논할 수 있지 않을까? 아이디어가 있으시다면 나눠달라.
가장 중요한 것은 개 교회가 바로 세워지는 것이다. 행사를 많이 벌린다고 교회의 이미지 개선이 무조건 일어난다고 보장 할 수는 없다. 오히려 행사 자체로 벌어지는 잡음 등 또 다른 부작용이 생길 수 있기 때문이다.
교회가 본질에 충실하면 세상에서도 손가락질 할 수 없다.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도그마적 핍박은 얼마든지 수용할 수 있지만, 도덕적 윤리적 비판은 교회가 수정해야 할 부분이다.
그래서 회개 운동이 늘 일어나야 한다고 생각한다. 성취를 위한 기도도 중요하지만, 사도 바울이 말했던 것 처럼 늘 자기를 쳐 회개하며 복종 시키는 게 우리에게 더 필요한 게 아닐까.
* 메시야장로교회 메시야잔치는 오는 10월 7일 초청주일, 10월 14일 환영주일을 앞두고 새신자 맞이 준비에 한창이다. 주일예배는 오전 9시, 11시에 각각 열린다.
<메시야장로교회>
주소 : 4313 Markham St., Annandale, VA 22003
문의 : 703-941-4447
다음은 한세영 목사와의 인터뷰 전문이다.
-메시야전도축제가 타 교회 전도 축제와 구별되는 특별한 점이라면 무엇이 있나?
다르게 하려고 시작한 건 아니었다. 예전에 섬기던 필라영생교회의 예수사랑초청잔치의 방식을 따서 우리 교회 규모에 맞게 열었던 것이다. 2006년 첫 부임하고, 2007년 처음으로 메시야 잔치를 열었는데, 당시 교회가 부흥하는 분위기여서 그랬는지, 예상외로 굉장히 많이 오셨다. 그래서 많이 주목해 주시는 것 같다.
특징이라면 종합예술적이라는 거다. 목회자 설교 중심의 행사가 아니라 전교인이 참여해서 몇달 간 준비하니까, 주차 안내부터 차에서 내리는 순간부터 달려가 본당에 앉혀주는 일, 찬양, 중창과 동영상 팀, 연극 팀 등 오직 새로운 영혼 구원이라는 목적으로 하나되는 단합의 시간이라 가장 보람있다.
-메시야 잔치를 위해 노방전도에 전 교인이 참여한다. 한인 교회는 노방 전도 보다 관계 전도를 권유하는 분위기도 있는 것 같은데, 목사님 생각은 어떠신가.
일부 교인들은 ‘노방 전도의 효과성’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기도 했다. 하루 종일 나가 있어도 겨우 2명 만나고, 그 마저도 이미 교회 간다고 하는 사람이라며 투덜 거리는 경우도 있다. 심지어 전도 전문가들도 ‘관계 전도’만을 강조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초대교회를 봐도 회당이나 광야에서 모르는 사람들에게 복음을 설파하고 전도했다. 예수님도 제자들에게 ‘모든 족속에게 복음을 전하라’고 했지, 가족이나 친지들에게 먼저 가라고 하지 않으셨다. 관계 전도가 필요없다는 것은 아니다. 병행돼야 한다.
관계 전도 50명하고, 노방전도 200명 해도 결국 교회 오는 사람은 관계 전도해서 오는 사람이 많다고도 얘기한다. 확률적으로 실제 사실이다. 그러나 숫자가 중요한 것인가? 효율성과 경제적 원리에 우리는 너무 민감하다.
하나님께서는 전도의 미련한 것으로 구원하시기를 기뻐하셨다고 말한다. 전도는 세상의 지혜가 아니다. 생각해 보라. 관계전도해서 50명 다 오는 것 하고, 노방전도해서 딱 1명 건지는 것 하고, 둘 중에 어느 것이 중한가? 어느 것도 중하다 못하다 할 수 없다. 어느 하나라도 빼놓을 수 없는 것이다.
-노방전도의 장점에 대해 구체적으로 어떤 것이 있다 보시나
교인들이 도전하면서, 전도에 자신감이 붙는다. 기도하고 가기 때문에 능력을 체험한다. 자녀들도 전도 찬양팀으로 일찍 부터 내보내니 교육의 효과도 있다. 커서도 전도에 담대함을 갖게 하는 것이다.
전도하러 갔다가 후퇴하는 대부분의 이유는, 열매가 별로 없다는 거다. 그렇다고 회피해야 하나? 전도를 성과로 내 보이려고 하니까 꺼려지는 것이다. 하나님의 명령, 순종이라면 못할 이유가 무엇인가?
낚시하는 사람들은 하루 종일 낚시해도 고기 한 마리 못 잡을 때 많다. 그래도 낚시를 그만 두지 않지 않는가? 세일즈 하는 사람들도 그렇다. 어떨 때는 허탕 쳐도 하나라도 팔아야 겠다는 절박감 가지고 세일즈 한다. 그런데 왜 크리스천들은 전도를 쉽게 그만 두는가?
교인 중에도 전도를 ‘성과를 위해’ 하려는 사람이 항상 있다. 그래서 계속 주지 시킨다.
전도를 직접 해보면서 하나님께서 한 영혼을 구원하시는 것이 얼마나 수고로운 것인지 이해하고, 자신을 구속하신 하나님의 사랑에 다시 한번 감격하게 된다. 또 열매가 없어도 하나님께 순종했다고 하는 일말의 감격과 보람도 자리 잡는다. 교인들도 이 계기로 단합된다.
오늘날 교회 훈련 중 가장 부족한 부분이 ‘전도’가 아닌가 싶다. 노방전도를 통해 단 1명이 와도 괜찮다. 아니 안 와도 상관없다. 일단 교인들이 ‘지상명령’에 순종하는 전도 훈련이 되는 것이 큰 성과라면 성과다.
-이민 오면 한인교회 부터 찾는다는 말이 있다. 그정도로 한인교회에는 기댈 곳이 필요해서 혹은 사회적 이유로 오는 경우도 적지 않기 때문에, 구원의 확신 없이 교회를 다니다가 인간적 상처를 입고 교회에 등을 돌리는 경우도 많은 것 같다. 그런 면에서 전도 자체 보다 전도 이후의 후속 교육이 매우 중요하다고 보여지는데.
맞는 말이다. 하지만 강요로 사람을 변화시키지 못한다. 조심스럽지만 교육 역시 성경 지식을 쌓게 할 지는 몰라도 사람을 변화시키진 못한다. 사람을 변화시킬 수 있는 것은 오직 사랑 밖에 없다.
목회를 하다보면, 문제 성도가 있다고 불평이 들어오는 때도 있고, 때로는 목회자인 나를 대적하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목회자도 사람을 변화시키지 못한다. 첫째는 하나님이 하시는 거고, 둘째는 사람의 섬김이다. 돌덩이를 사랑의 용광로에 흠뻑 빠뜨려 녹아질 때까지 기다리는 수 밖에…. 우리가 해야 할 일은 계속 사랑으로 섬기는 일이다.
물론 프로그램이 있다. 바나바 사역이라고, 전도해서 인도한 사람 외에 다른 사람이 새신자를 관리하도록 따로 붙여준다. 새신자의 경우도 새로운 환경에서 새로운 사람과 경험을 통해 더 성숙해 갈 수 있도록 개척 정신을 길러준다. 영국 속담에 ‘자식을 사랑하면, 여행을 보내라’는 말이 있는데, 새로운 기회를 주면서 기존 성도도, 새신자도 성숙해지게 된다.
새가족반을 통해 교역자가 마음을 움직이고, 제자훈련으로 신앙관 및 신학을 확립하고, 전도 폭발을 통해 훈련하며, 신앙을 삶으로 연결시켜 주도록 길을 열어주는 것 모두 매우 중요하다.
하지만 제일 중요한 건 하나님의 역사다. 그런 면에서 예배가 가장 중요하다고 본다. 목회자는 콩나물 자루에 물 주듯이 올바른 말씀을 일관성 있게 전해야 한다. 목회자의 말씀이 일정한 방향으로 흐르면 성도들은 저절로 따라오게 돼 있다. 저의 경우, 강단에서는 매우 엄격하고 매섭게 말씀을 전하는 편이지만, 내려와서는 강요나 야단을 친 적이 없을 정도로, ‘섬김’의 목회를 지향하고 있다.
-실제로 교인들에 의해 불거지는 갈등은 어떻게 해결하시나
교회에서 설교가 은혜가 안되서 나간다고 하는 분은 내보내준다. 신앙의 본질에 관한 거니까. 지금까지 한 2가정이 그런 경우가 있었다.
하지만 교인간에 관계가 틀어져 트러블이 생기는 경우면 대체로 상담으로 해소하는 편이다. 목회자로서 철칙 중 하나가 대립각을 세우는 두 사람 중 어느 편에도 서지 않는다는 것이다. 문제 없는 사람은 없고 대부분 오해나 감정에 치우쳐 불거진 일이라 시간이 지나면 자동으로 해결되는 것이 다반사다. 가장 중요한 것은 목사님은 나를 알아준다고 확신하게 하는 것이다. 다 몰라줘도 목사님은 아시고, 하나님은 알아주신다는 확신 말이다. 나의 경우, 이 쪽 말도 ‘맞고’ 저 쪽 말도 ‘맞다’고 한다.
-이 지역 한인들의 수와 한인교회의 교인 수를 대략 계산해 보면, 실제 교인은 전체의 20~30%선으로 볼 수 있다. 그런데 한인사회에서 전도 하려고 하면 대부분 교회를 다닌다고 한다는 말을 들었다.
그게 아이러니하다. ‘김 집사, 주변에 예수 안 믿는 사람 있으면 전도하세요’ 하면 ‘다 교회 다닙니다 혹은 있어도 그 수는 별로 되지 않습니다’고 한다. 지금 메시야 평생 교육원 200명 학생 중에서 통계적으로라면 전체 40% 정도만 교회 다녀야 하는데 거의 다 교회에 다닌다. 코러스 축제에 가서 이번에 전도를 했는데, 교회를 안 다닌다는 사람을 거의 만나지 못했다. 아이러니한 부분이 아닐 수 없다. 결국은 한인 사회에 나오지 않는 한인들의 수가 많다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그런 면에서 ‘전도’하면 수평이동에 대한 거부감을 가지는 경우도 없지 않은 것 같다. 목사님 생각은 어떠신가.
수평 이동에 대해서는 남의 교회 잘 다니는 사람 절대로 데려오지 말라고 표현할 정도로 반대한다. 교회 나와 방황하는 사람들을 담아야 한다.
전도 하려면 숫자에 대해 포기할 수 있어야 한다. 개 중에 인간적인 분들도 가끔 있다. 교인 중에는 굳이 교회 다닌다는 데, ‘우리 교회 좋아요 한번 나와 보세요’ 하는 경우도 가끔 있다고 들었다. 그런 것은 우리 의도가 아니다.
전도하면서 잊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 우리가 모든 것을 하지만 하나님의 주권을 간과하면 안된다. 하나님께서 구원할 사람을 구원하신다. 다시 말하지만 전도는 성과가 아니다. 성과 위주 즉 숫자에 집착하면 본질이 상실된다. 전도 자체가 중요한 것이고, 하나님의 명령을 지키려는, 즉 교회의 순수성을 지키는 것이 더 중요하다.
‘전도 많이 하면 교회가 더 큰 일을 할 수 있지 않을까’ 라고 말할 지 모른다. 그러나 교회 규모와 큰 일을 하는 것이 늘 정비례 한다고 보는 것은 착각이다. 하나님이 사용하시면 마른 막대기도 들어 쓰실 수 있는 것이 아닌가? 교인수 많은 교회만 큰 일을 감당한다면, 이 땅에 소망을 두고 살아가는 세상 사람들 가치관과 별반 다를 게 없다. 우리는 성실히 하나님 경외하고 살면서, 하나님이 그 위에 더해주시고 공급해 주시는 것을 기다릴 필요가 있다.
-아까 말씀하신 맥락에서, 한인 중 비신자들이 통계적으로 많은데 실제적으로 접촉하기 어렵다면, 한인교회의 연합을 통한 총체적인 이미지 개선이라든지 문화적 접근 등을 논할 수 있지 않을까? 아이디어가 있으시다면 나눠달라.
가장 중요한 것은 개 교회가 바로 세워지는 것이다. 행사를 많이 벌린다고 교회의 이미지 개선이 무조건 일어난다고 보장 할 수는 없다. 오히려 행사 자체로 벌어지는 잡음 등 또 다른 부작용이 생길 수 있기 때문이다.
교회가 본질에 충실하면 세상에서도 손가락질 할 수 없다.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도그마적 핍박은 얼마든지 수용할 수 있지만, 도덕적 윤리적 비판은 교회가 수정해야 할 부분이다.
그래서 회개 운동이 늘 일어나야 한다고 생각한다. 성취를 위한 기도도 중요하지만, 사도 바울이 말했던 것 처럼 늘 자기를 쳐 회개하며 복종 시키는 게 우리에게 더 필요한 게 아닐까.
* 메시야장로교회 메시야잔치는 오는 10월 7일 초청주일, 10월 14일 환영주일을 앞두고 새신자 맞이 준비에 한창이다. 주일예배는 오전 9시, 11시에 각각 열린다.
<메시야장로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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