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런던 올림픽 때문에 몸살을 앓았습니다. 이번 올림픽 경기들을 보면서 또다시 배우게 되는 것은 ‘집중의 중요성’입니다. 세계적인 유명선수들이 즐비한 가운데 펼쳐지는 경기인지라 선수가 얼마만큼 잘하느냐에 따라 득점이 나오는 것보다, 얼마나 실수하느냐에 따라 득실이 가려지는 상황을 참 많이 봅니다.

집중력 중요합니다. 다 이겨놓은 경기라도 한순간 집중력이 흐트러짐으로써 경기의 흐름이 완전히 뒤바뀌는 경우가 비일비재합니다. 무엇을 하든 집중력이 분산되면 치명적입니다.

몇백 년에 하나 나올까 말까 한 전쟁의 귀재들이 있습니다. 고대 그리스의 알렉산더, 로마의 카이사르, 그리고 나폴레옹이 바로 그들입니다. 그들은 전투에 임했다 하면 승리를 쟁취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들이 거둔 백전백승의 비결은 바로 ‘집중력’이었습니다. 일단 병사들이 전투에 참여하면 그들은 병사로 하여금 다른 생각을 하지 못하도록 했다고 합니다. 전투에 모든 것을 ‘집중’시키는 전략을 통해서 승리의 환희를 맛보았던 것입니다.

이것저것 하고 싶은 게 많고, 소유하고 싶은 게 많아서 힘이 분산되면 신앙생활 속에 숨겨진 놀라운 은혜와 기쁨은 결코 누릴 수 없습니다. 집중력은 성취의 가장 강력한 엔진입니다. 에디슨은 전구의 필라멘트를 만들기 위해 연구실의 소파에서 새우잠을 자며 하루에 20시간씩 연구에 집중했습니다. 뉴턴은 그의 연구를 위해 며칠씩이나 방문밖에 나오지 않았다고 합니다. 집중력과 성취 사이에는 분명한 공식이 존재하고 있습니다.

예수님도 ‘집중력’을 통한 사역을 전개하셨습니다. 기도할 때는 핏방울이 튀기는 모습으로 기도하셨습니다. 인류구원을 위한 고난의 길을 걸어가실 때는 십자가에 집중하셨습니다. 제자들에게도 자신을 따르는 삶에 대한 ‘집중력’을 요구하셨습니다. “손에 쟁기를 잡고 뒤를 돌아보는 자는 하나님의 나라에 합당하지 아니하니라(누가복음 9:62)” 신앙생활에서 기쁨과 감격을 얻는 방법이 바로 집중입니다.

사도 바울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집중력의 원칙이 그의 사역의 최우선 원리였습니다. “내가 이미 얻었다함도 아니요 온전히 이루었다 함도 아니라 오직 내가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 바된 그것을 잡으려고 달려가노라(빌립보서 3:12)” 바울은 사역 속에서 탁월한 집중력을 보이고 있습니다.

한자어로 집중력이라는 말은 ‘힘을 가운데로 모은다는 의미’입니다. 자신의 신앙생활 속에 하나님이 허락하시는 영광의 분깃이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그렇다면 그것을 누리기 위해 힘을 모아야 합니다. 자신의 힘을 이곳 저곳으로 분산시키면서 성취하려 함은 커다란 모순입니다. 집중해야 합니다. 교회생활에, 예배에 집중하십시오. 말씀과 기도에 집중하십시오. 빛의 집중이 쇳덩어리도 잘라버립니다. 바위도 깨뜨려 버립니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가지고 있는 힘 또는 능력을 신앙생활에 집중하면 우리의 삶은 반드시 풍성하게 변화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