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 지난 달인 2012년 6월 23일 국민소득 23,680달러에 도달하고 총인구 5천만명을 넘어서게 되었다. 그리하여 한국전쟁 후 잿덤이가 된 지 58년 만에 올해 6월에 선진국 클럽인 20-50클럽에 가입하게 되었다. 그럼으로써 우리 세대는 단군 조선 이래 가장 한국 국민으로서의 자존감을 크게 느끼는 시대에 살게 되었다.
한국이 세계 일곱 번째로 가입하게 된 ‘20-50 클럽’은 서방 선진국 모임인 G7 회원국과 거의 겹친다. G7 회원국 중 캐나다 자리에 한국이 들어가면 20-50 클럽과 G7의 명단이 똑같아진다. 한국보다 국가 브랜드 가치가 높은 캐나다가 20-50클럽에 못 들어간 것은 국토도 넓고 소득도 높으나 단지 인구가 3513만명으로 이에 미치지 못하기 때문이다. 호주도 마찬가지로 국토도 넓고 소득도 높으나 인구가 2380만명으로 이 기준에 들어가지 못한다. 이제 한국은 소득과 인구 두 가지 부문에서 선진국 진입의 조건을 충족했다. 그러나 통계적인 선진국 진입 수치가 바로 내용적인 선진국 진입을 보장하는 것은 아니다.
국제 사회에 비치는 이미지 측면에서 한국은 경제·문화·스포츠 분야에서 점수를 따지만 정치·사회 분야에서 점수를 까먹는다. 문화체육관광부가 해외 주요 언론에 나타난 한국 관련 기사 5,000여건을 분석해봤더니 부정부패, 비리, 외교분쟁, 범죄 등 정치·사회 분야에서 부정적 기사가 특히 많았다.
한국이 국제사회에서 차지하는 위상이나 대우는 G7 국가들에 한참 못 미친다. 세계경제포럼(WEF)이 발표한 올해 국가 경쟁력 순위에서 한국은 142개국 가운데 24위에 그쳤다. 삼성경제연구소가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회원국들의 국가브랜드지수를 조사한 결과에서도 한국의 국가브랜드 ‘실체지수’와 ‘이미지지수’는 각각 15위, 19위에 머물렀다.
다른 분야에 비해 뒤처진 정치·사회의 후진성은 결국 국격(國格) 문제와 연결된다. 국격을 갖춰야 비로소 국제사회에서 제대로 된 선진국으로 대접받을 수 있다. 관용, 배려심, 도덕성, 애국심 같은 개개인의 인격이 제고돼야 국가의 품격도 높아진다. 국제사회에서 나라 규모에 걸맞은 역할을 하는 것도 국격을 높이기 위한 방안으로 자주 거론된다. 2011년 한국의 공적개발원조(ODA) 규모는 13억2000만달러로 OECD 개발원조위원회 23개 회원국 가운데 17위에 머물렀다.
국민소득이 높아지고 수출강국이 되었다고 선진국은 아니다. 수치적으로 국민소득 2만불 총인구 5천만명에 도달해서 20-50이라는 선진국 클럽에 가입했다고 선진국의 품위를 지니게 되는 것이 아니다. 필자가 1970년대 독일 하이델베르그 대학에서 유학할 당시, 경제 부흥한 일본인들이 엔화를 앞세워 유명한 하이델베르그 성(城)에 올라서 가는 곳마다 샷을 눌러대는 것을, 독일 사람들이 보면서 꼴불견이라고 했다. 30년 지나 2000년부터 한국인들도 단체 해외 여행길에 올라서 오늘날 세계에 가지 않는 곳이 없으며, 가는 곳마다 카메라 샷을 눌러대고 있다.
단기간에 경제를 발전시켜 부자가 된 한국인들은 사회문화적으로 하는 행실이 국제 수준에 미치지 못할 때 졸부(猝富) 국민이라고 수모를 당할 수 있다. 졸부란 땅값이 하루아침에 올라서 부자가 된 자를 말하는데, 한국에서 1970년대 강남 개발붐이 불어 배나 누에 경작지의 땅값이 올라서 하루아침에 부자가 된 자들이다. 그런 졸부들의 자녀들이 주로 강남의 오렌지족으로 행세하게 되었는데, 이들은 사회적으로 결코 존경받는 자들이 아니다. 이제 우리는 경제적 향상에 걸맞는 문화적 격식을 갖추어야 한다. 한국이 국제적으로 오랜 선진국 위상에 걸맞는 문화수준을 유지하기 위하여 다음 몇 가지를 열거해 본다.
첫째, 선진 국민들은 성공에 이르는 합리적 절차를 준수해야 하며, 효율성 못지 않게 도덕성과 책임성이 중요하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공부 열심히 해서 경쟁자를 제치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고 돈 버는 게 최고라고 가르쳐서는 안 된다. 일하는 열정과 재미를 말하고, 재능을 발굴해야 한다. 결과보다는 과정이 중요하다는 태도를 가져야 한다. 겸손과 애국심, 품위와 존경, 헌신과 희생, 사랑을 주제로 대화해야 한다. 기성세대는 젊은 세대가 선(善)을 좋아하고 악(惡)을 부끄럽게 여기도록 스스로 모범을 보여야 한다. 영국의 왕실과 귀족사회가 오늘날까지 지탱해온 것은, 이들이 전쟁시에는 먼저 나아가 목숨을 내놓는 희생을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지금처럼 관료들이 직책을 특권으로 알고 군림하고 자기 희생을 보이지 않고, 시민들은 공공질서를 무시하고 부패와 비리의 관행에 둔감하고 부끄러워할 줄 모른다면 우리 한국은 절대로 선진국이 될 수 없다.
둘째, 선진문화는 공무원, 정치인 및 사회지도층이 청렴해야 한다. 그런데 실제로 우리나라의 부패 정도는 세계 최고 수준이다. 최근 홍콩 소재 기업컨설팅 연구소가 발표한 아시아 국가 부패지수를 보면 한국의 부패지수는 아시아 16개국 중 11위를 기록했다. 국가청렴도를 따지자면 태국(9위)이나 캄보디아(10위)만도 못한 나라이다. 우리나라 부패지수는 지난 6년간 꾸준히 나빠지고 있다. 지난해 국제투명성 기구가 발표한 부패인식지수에 따르면 청렴도 순위가 2010년 39위에서 지난해 43위로 추락했다. 선진국 모임이라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4개 회원국 중에는 27위로 최하위권이다. 우리 사회가 수치적으로 선진국에 진입했다고 하더라도 부패를 척결해서 높은 도덕성을 갖추지 못하면 소용없다. 부패하면 경제성장도 한계에 부딪힌다. 정직하지 않은 나라에 외국인 투자가 몰려들 리 없고, 부정으로 얼룩진 나라에서 만드는 제품의 이미지가 좋을 리 없다. MB 정부의 원로격인 방송통신위원장이 수뢰 혐의로 구속되고, 후세의 교육을 책임진 서울시 교육감은 돈으로 상대 후보를 매수했다는 혐의로 재판 중이다. 검사가 그랜저와 벤츠를 선물 받고, 감사위원이 저축은행 브로커로부터 돈을 받은 혐의로 감옥에 가 있다. 청와대 경호처장은 경호장비업체로부터, 경찰청장은 건설현장 식당(속칭 함바집) 운영자로부터 돈을 먹는 세상이다. 저축은행장들이 줄줄이 횡령·배임 혐의로 감옥에 가고, 저축은행을 감독하는 금융감독기관 공무원도 함께 수갑을 찬다. 정권 말기에는 어김없이 대통령의 최측근 인사나 고위 정치인, 재벌 회장까지 교도소를 자기 집 드나들듯 한다. 정부수립 이후 모든 대통령의 가족 친인척의 비리(非理)는 매 정권 말기마다 터져 나오는 나라다. 심지어는 전직 대통령도 뇌물수뇌 혐의에 걸려 두 분은 감옥살이를 하다 사면으로 풀려 나왔으며, 한 분은 자살하는 나라다.
셋째, 선진문화는 예약제를 잘 활용하고 지키는 문화다. 예약제는 행사 운영자에게 준비할 시간을 주고 대기 인원과 수용 능력의 균형을 적절히 맞춰주는 제도다. 항공기 좌석이든 호텔 방이든 상당 기간 앞서 예약하는 손님에겐 요금을 깎아주고, 예고 없이 무작정 오는 고객에겐 최고 요금을 물리는 것도 이 때문이다. 여수 엑스포가 예약제를 실시한 것은 스마트폰 2500만대가 보급된 선진 IT 기반을 믿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예약 문화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 부족과 일부 떼쓰기 앞에서는 IT 강국도 허울 좋은 이름 뿐이었다. 기술로 예약문화가 실천되는 것이 아니라 기술을 활용하는 사고가 중요하다. 엑스포 조직위가 8개 주요 전시관에서 시행해오던 관람 예약제를 중단하고 선착순 줄서기로 바뀌는 일이 벌어지기도 하였다. 이 예약제가 뒤집힌 것은 일부 관람객의 거친 항의 때문이었다. 예약했으면 자기 차례가 오기까진 서 기다리는 여유를 생활화해야 한다. 여수 엑스포는 국제적 행사이므로 이를 반드시 실천해야 한다. 외국 공항에 가보면 외국인 승객도 항공기 연발·착에 항의할 때가 있다. 공항측이나 항공사가 늦는 이유를 제대로 설명하지 않는 경우다. 그러나 갑작스러운 기상 변화나 테러 제보에 따른 긴급 수색으로 지연될 때는 조용히 기다린다. 항의할 때와 참아야 할 때를 가릴 줄 아는 것이 선진(先進)국민의 분별이다. 1인당 GDP가 2만 달러를 넘었다고 해서 저절로 선진국이 되는 것은 아니다. 광릉 국립수목원은 하루 5,000명 입장객 모두 예약제로 받아 성공적으로 운영하고 있다.
넷째, 선진문화는 사회 구성원들이 기초질서를 잘 지킨다. 미국 대부분의 주(州)에서도 해변에서 술을 마실 수 없다. 해변 등 공공장소에서 술 마시는 행위를 불법으로 규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해변에서 술을 마시다 적발될 경우 1,000달러(약 110만원) 이하의 벌금 또는 6개월 이하의 징역에 처한다. 미국의 대표적인 해변인 캘리포니아 샌디에이고와 하와이 와이키키 해변에서 술 마시는 사람을 볼 수 없는 이유다. 뉴질랜드에서도 해변에서 술을 먹다 적발될 경우 최대 2만 뉴질랜드달러(약 1,820만원)를 벌금으로 내야 한다. 한국 동해안 경포대 해변에서 음주규제를 실시한다고 한다. 이러한 음주규제는 점차 전국적으로 확산되어야 한다.
다섯째, 국제관계에 있어서 우리보다 못 사는 나라들에 대하여 겸허하고, 도와주는 국민이 되어야 한다. 2009년도 유엔의 보고서에 의하면 한국은 해외 원조 및 개발지원국으로서는 꼴찌를 기록하고 있다. 이것은 한국이 자기만 알고 이웃을 모르는 졸부 국가라는 것이다. 반면 미국·일본 등 주요 선진국은 원조 순위에서도 상위권에 올라 있다. 우리는 과거 어려웠던 시절 미국·일본 등 선진국에서 원조를 받아 경제 성장 기틀을 다진 경험이 있다. 한국은 경부고속도로와 소양강댐 등 주요 인프라를 차관을 활용해 갖췄다. 이제 선진사회로 발돋움하게 된 만큼 과거에 받았던 도움의 손길을 후발 개도국에 내미는 것이 국제사회 정서에도 맞고, 국가 이미지 제고에도 보탬이 될 것이다. 이제 한국도 우리의 이웃들, 동남아, 아프리카, 남미, 서북 아시아 등의 어려운 나라들에 대하여 평화 봉사단 및 개발 지원단을 보내어야 한다. 우리는 지금보다 더 전(全) 세계로 나가야 하고, 지금보다 더 전 세계를 우리 안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용감하게 개방하고, 과감하게 세계를 지원해야 한다.
여섯째, 선진 문화는 폐쇄적이지 않고 개방적인 문화다. 외국인 범죄를 이유로 비이성적인 외국인 혐오증은 경계해야 한다. 지난 4월 총선에 베트남계 여성이 비례대표 국회의원이 되자 많은 거부감이 표출된 것이 그 단적인 예다. 탈북자 뿐만 아니라 동남아에서 귀화해 온 이주자들이 우리 사회의 중요한 사회적 공직에서 봉사할 수 있는 열려 있는 태도가 요청된다. 폐쇄적인 단일 민족 신화는 더 이상 바람직하지 않다. 대부분의 선량한 외국인이 우리 사회에 빨리 적응하고 한국의 문화와 법규범을 존중하도록 유도하는 적극적이고 체계적인 사회 통합 프로그램을 마련하여 지속적으로 시행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런 과정에서 경찰은 다양한 국가의 내부 사정에 정통한 사람들로부터 정보를 파악하고 각국 문화에 대한 이해를 높일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이러한 선진문화의 정립을 위하여 한국 기독교는 정신적 기반이 될 수 있다. 한국교회가 초창기로부터 추구해온 청교도 정신은 일상적 삶에서 자기 규제의 문화적인 삶의 동력을 제공해 줄 수 있다. 청교도 윤리는 초창기 한국사회에 만연된 주초(酒草)문제를 해결하는 데 큰 도움이 되었다. 당시 주초(술과 담배)로 인하여 많은 가정들이 파괴되는 상황 속에서 주초금지의 기독교적 청교도 윤리는 이 문제에 취약한 가정을 구하는 데 도움이 되었다. 청교도적 정신은 세상을 벗어나는 것이 아니라 세상 내에서 세상을 초월하는 것이며, 자기를 하나님이 주신 자연의 질서에 조화시키는 것이다. 법 질서와 자연의 질서를 하나님의 창조질서로서 수용하고 지키는 것이다. 청교도 정신은 샬롬나비(Shalom-Nabi) 시민운동에서 실천강령으로 하고 있듯이 열심히 일하고 감사하고 나누고 섬기는 것을 실천하는 것이다. 신약성경은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구속이라는 직설법을 말하고 난 후에 이제는 거룩한 삶을 살아라고 명령법을 말한다. 기독교인들이 우리의 직장과 사회에서 모범적으로 바로 선진사회의 문화적 질서를 지키는 삶을 보여주어야 한다. 이것이 바로 오늘날 한국 기독교인들이 선진국 진입에 있어서 해야할 사회적(社會的) 성화(聖化)의 삶을 보여주는 모습이다.
김영한(기독교학술원장/숭실대 기독교학대학원 초대원장)
한국이 세계 일곱 번째로 가입하게 된 ‘20-50 클럽’은 서방 선진국 모임인 G7 회원국과 거의 겹친다. G7 회원국 중 캐나다 자리에 한국이 들어가면 20-50 클럽과 G7의 명단이 똑같아진다. 한국보다 국가 브랜드 가치가 높은 캐나다가 20-50클럽에 못 들어간 것은 국토도 넓고 소득도 높으나 단지 인구가 3513만명으로 이에 미치지 못하기 때문이다. 호주도 마찬가지로 국토도 넓고 소득도 높으나 인구가 2380만명으로 이 기준에 들어가지 못한다. 이제 한국은 소득과 인구 두 가지 부문에서 선진국 진입의 조건을 충족했다. 그러나 통계적인 선진국 진입 수치가 바로 내용적인 선진국 진입을 보장하는 것은 아니다.
국제 사회에 비치는 이미지 측면에서 한국은 경제·문화·스포츠 분야에서 점수를 따지만 정치·사회 분야에서 점수를 까먹는다. 문화체육관광부가 해외 주요 언론에 나타난 한국 관련 기사 5,000여건을 분석해봤더니 부정부패, 비리, 외교분쟁, 범죄 등 정치·사회 분야에서 부정적 기사가 특히 많았다.
한국이 국제사회에서 차지하는 위상이나 대우는 G7 국가들에 한참 못 미친다. 세계경제포럼(WEF)이 발표한 올해 국가 경쟁력 순위에서 한국은 142개국 가운데 24위에 그쳤다. 삼성경제연구소가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회원국들의 국가브랜드지수를 조사한 결과에서도 한국의 국가브랜드 ‘실체지수’와 ‘이미지지수’는 각각 15위, 19위에 머물렀다.
다른 분야에 비해 뒤처진 정치·사회의 후진성은 결국 국격(國格) 문제와 연결된다. 국격을 갖춰야 비로소 국제사회에서 제대로 된 선진국으로 대접받을 수 있다. 관용, 배려심, 도덕성, 애국심 같은 개개인의 인격이 제고돼야 국가의 품격도 높아진다. 국제사회에서 나라 규모에 걸맞은 역할을 하는 것도 국격을 높이기 위한 방안으로 자주 거론된다. 2011년 한국의 공적개발원조(ODA) 규모는 13억2000만달러로 OECD 개발원조위원회 23개 회원국 가운데 17위에 머물렀다.
국민소득이 높아지고 수출강국이 되었다고 선진국은 아니다. 수치적으로 국민소득 2만불 총인구 5천만명에 도달해서 20-50이라는 선진국 클럽에 가입했다고 선진국의 품위를 지니게 되는 것이 아니다. 필자가 1970년대 독일 하이델베르그 대학에서 유학할 당시, 경제 부흥한 일본인들이 엔화를 앞세워 유명한 하이델베르그 성(城)에 올라서 가는 곳마다 샷을 눌러대는 것을, 독일 사람들이 보면서 꼴불견이라고 했다. 30년 지나 2000년부터 한국인들도 단체 해외 여행길에 올라서 오늘날 세계에 가지 않는 곳이 없으며, 가는 곳마다 카메라 샷을 눌러대고 있다.
단기간에 경제를 발전시켜 부자가 된 한국인들은 사회문화적으로 하는 행실이 국제 수준에 미치지 못할 때 졸부(猝富) 국민이라고 수모를 당할 수 있다. 졸부란 땅값이 하루아침에 올라서 부자가 된 자를 말하는데, 한국에서 1970년대 강남 개발붐이 불어 배나 누에 경작지의 땅값이 올라서 하루아침에 부자가 된 자들이다. 그런 졸부들의 자녀들이 주로 강남의 오렌지족으로 행세하게 되었는데, 이들은 사회적으로 결코 존경받는 자들이 아니다. 이제 우리는 경제적 향상에 걸맞는 문화적 격식을 갖추어야 한다. 한국이 국제적으로 오랜 선진국 위상에 걸맞는 문화수준을 유지하기 위하여 다음 몇 가지를 열거해 본다.
첫째, 선진 국민들은 성공에 이르는 합리적 절차를 준수해야 하며, 효율성 못지 않게 도덕성과 책임성이 중요하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공부 열심히 해서 경쟁자를 제치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고 돈 버는 게 최고라고 가르쳐서는 안 된다. 일하는 열정과 재미를 말하고, 재능을 발굴해야 한다. 결과보다는 과정이 중요하다는 태도를 가져야 한다. 겸손과 애국심, 품위와 존경, 헌신과 희생, 사랑을 주제로 대화해야 한다. 기성세대는 젊은 세대가 선(善)을 좋아하고 악(惡)을 부끄럽게 여기도록 스스로 모범을 보여야 한다. 영국의 왕실과 귀족사회가 오늘날까지 지탱해온 것은, 이들이 전쟁시에는 먼저 나아가 목숨을 내놓는 희생을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지금처럼 관료들이 직책을 특권으로 알고 군림하고 자기 희생을 보이지 않고, 시민들은 공공질서를 무시하고 부패와 비리의 관행에 둔감하고 부끄러워할 줄 모른다면 우리 한국은 절대로 선진국이 될 수 없다.
둘째, 선진문화는 공무원, 정치인 및 사회지도층이 청렴해야 한다. 그런데 실제로 우리나라의 부패 정도는 세계 최고 수준이다. 최근 홍콩 소재 기업컨설팅 연구소가 발표한 아시아 국가 부패지수를 보면 한국의 부패지수는 아시아 16개국 중 11위를 기록했다. 국가청렴도를 따지자면 태국(9위)이나 캄보디아(10위)만도 못한 나라이다. 우리나라 부패지수는 지난 6년간 꾸준히 나빠지고 있다. 지난해 국제투명성 기구가 발표한 부패인식지수에 따르면 청렴도 순위가 2010년 39위에서 지난해 43위로 추락했다. 선진국 모임이라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4개 회원국 중에는 27위로 최하위권이다. 우리 사회가 수치적으로 선진국에 진입했다고 하더라도 부패를 척결해서 높은 도덕성을 갖추지 못하면 소용없다. 부패하면 경제성장도 한계에 부딪힌다. 정직하지 않은 나라에 외국인 투자가 몰려들 리 없고, 부정으로 얼룩진 나라에서 만드는 제품의 이미지가 좋을 리 없다. MB 정부의 원로격인 방송통신위원장이 수뢰 혐의로 구속되고, 후세의 교육을 책임진 서울시 교육감은 돈으로 상대 후보를 매수했다는 혐의로 재판 중이다. 검사가 그랜저와 벤츠를 선물 받고, 감사위원이 저축은행 브로커로부터 돈을 받은 혐의로 감옥에 가 있다. 청와대 경호처장은 경호장비업체로부터, 경찰청장은 건설현장 식당(속칭 함바집) 운영자로부터 돈을 먹는 세상이다. 저축은행장들이 줄줄이 횡령·배임 혐의로 감옥에 가고, 저축은행을 감독하는 금융감독기관 공무원도 함께 수갑을 찬다. 정권 말기에는 어김없이 대통령의 최측근 인사나 고위 정치인, 재벌 회장까지 교도소를 자기 집 드나들듯 한다. 정부수립 이후 모든 대통령의 가족 친인척의 비리(非理)는 매 정권 말기마다 터져 나오는 나라다. 심지어는 전직 대통령도 뇌물수뇌 혐의에 걸려 두 분은 감옥살이를 하다 사면으로 풀려 나왔으며, 한 분은 자살하는 나라다.
셋째, 선진문화는 예약제를 잘 활용하고 지키는 문화다. 예약제는 행사 운영자에게 준비할 시간을 주고 대기 인원과 수용 능력의 균형을 적절히 맞춰주는 제도다. 항공기 좌석이든 호텔 방이든 상당 기간 앞서 예약하는 손님에겐 요금을 깎아주고, 예고 없이 무작정 오는 고객에겐 최고 요금을 물리는 것도 이 때문이다. 여수 엑스포가 예약제를 실시한 것은 스마트폰 2500만대가 보급된 선진 IT 기반을 믿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예약 문화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 부족과 일부 떼쓰기 앞에서는 IT 강국도 허울 좋은 이름 뿐이었다. 기술로 예약문화가 실천되는 것이 아니라 기술을 활용하는 사고가 중요하다. 엑스포 조직위가 8개 주요 전시관에서 시행해오던 관람 예약제를 중단하고 선착순 줄서기로 바뀌는 일이 벌어지기도 하였다. 이 예약제가 뒤집힌 것은 일부 관람객의 거친 항의 때문이었다. 예약했으면 자기 차례가 오기까진 서 기다리는 여유를 생활화해야 한다. 여수 엑스포는 국제적 행사이므로 이를 반드시 실천해야 한다. 외국 공항에 가보면 외국인 승객도 항공기 연발·착에 항의할 때가 있다. 공항측이나 항공사가 늦는 이유를 제대로 설명하지 않는 경우다. 그러나 갑작스러운 기상 변화나 테러 제보에 따른 긴급 수색으로 지연될 때는 조용히 기다린다. 항의할 때와 참아야 할 때를 가릴 줄 아는 것이 선진(先進)국민의 분별이다. 1인당 GDP가 2만 달러를 넘었다고 해서 저절로 선진국이 되는 것은 아니다. 광릉 국립수목원은 하루 5,000명 입장객 모두 예약제로 받아 성공적으로 운영하고 있다.
넷째, 선진문화는 사회 구성원들이 기초질서를 잘 지킨다. 미국 대부분의 주(州)에서도 해변에서 술을 마실 수 없다. 해변 등 공공장소에서 술 마시는 행위를 불법으로 규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해변에서 술을 마시다 적발될 경우 1,000달러(약 110만원) 이하의 벌금 또는 6개월 이하의 징역에 처한다. 미국의 대표적인 해변인 캘리포니아 샌디에이고와 하와이 와이키키 해변에서 술 마시는 사람을 볼 수 없는 이유다. 뉴질랜드에서도 해변에서 술을 먹다 적발될 경우 최대 2만 뉴질랜드달러(약 1,820만원)를 벌금으로 내야 한다. 한국 동해안 경포대 해변에서 음주규제를 실시한다고 한다. 이러한 음주규제는 점차 전국적으로 확산되어야 한다.
다섯째, 국제관계에 있어서 우리보다 못 사는 나라들에 대하여 겸허하고, 도와주는 국민이 되어야 한다. 2009년도 유엔의 보고서에 의하면 한국은 해외 원조 및 개발지원국으로서는 꼴찌를 기록하고 있다. 이것은 한국이 자기만 알고 이웃을 모르는 졸부 국가라는 것이다. 반면 미국·일본 등 주요 선진국은 원조 순위에서도 상위권에 올라 있다. 우리는 과거 어려웠던 시절 미국·일본 등 선진국에서 원조를 받아 경제 성장 기틀을 다진 경험이 있다. 한국은 경부고속도로와 소양강댐 등 주요 인프라를 차관을 활용해 갖췄다. 이제 선진사회로 발돋움하게 된 만큼 과거에 받았던 도움의 손길을 후발 개도국에 내미는 것이 국제사회 정서에도 맞고, 국가 이미지 제고에도 보탬이 될 것이다. 이제 한국도 우리의 이웃들, 동남아, 아프리카, 남미, 서북 아시아 등의 어려운 나라들에 대하여 평화 봉사단 및 개발 지원단을 보내어야 한다. 우리는 지금보다 더 전(全) 세계로 나가야 하고, 지금보다 더 전 세계를 우리 안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용감하게 개방하고, 과감하게 세계를 지원해야 한다.
여섯째, 선진 문화는 폐쇄적이지 않고 개방적인 문화다. 외국인 범죄를 이유로 비이성적인 외국인 혐오증은 경계해야 한다. 지난 4월 총선에 베트남계 여성이 비례대표 국회의원이 되자 많은 거부감이 표출된 것이 그 단적인 예다. 탈북자 뿐만 아니라 동남아에서 귀화해 온 이주자들이 우리 사회의 중요한 사회적 공직에서 봉사할 수 있는 열려 있는 태도가 요청된다. 폐쇄적인 단일 민족 신화는 더 이상 바람직하지 않다. 대부분의 선량한 외국인이 우리 사회에 빨리 적응하고 한국의 문화와 법규범을 존중하도록 유도하는 적극적이고 체계적인 사회 통합 프로그램을 마련하여 지속적으로 시행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런 과정에서 경찰은 다양한 국가의 내부 사정에 정통한 사람들로부터 정보를 파악하고 각국 문화에 대한 이해를 높일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이러한 선진문화의 정립을 위하여 한국 기독교는 정신적 기반이 될 수 있다. 한국교회가 초창기로부터 추구해온 청교도 정신은 일상적 삶에서 자기 규제의 문화적인 삶의 동력을 제공해 줄 수 있다. 청교도 윤리는 초창기 한국사회에 만연된 주초(酒草)문제를 해결하는 데 큰 도움이 되었다. 당시 주초(술과 담배)로 인하여 많은 가정들이 파괴되는 상황 속에서 주초금지의 기독교적 청교도 윤리는 이 문제에 취약한 가정을 구하는 데 도움이 되었다. 청교도적 정신은 세상을 벗어나는 것이 아니라 세상 내에서 세상을 초월하는 것이며, 자기를 하나님이 주신 자연의 질서에 조화시키는 것이다. 법 질서와 자연의 질서를 하나님의 창조질서로서 수용하고 지키는 것이다. 청교도 정신은 샬롬나비(Shalom-Nabi) 시민운동에서 실천강령으로 하고 있듯이 열심히 일하고 감사하고 나누고 섬기는 것을 실천하는 것이다. 신약성경은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구속이라는 직설법을 말하고 난 후에 이제는 거룩한 삶을 살아라고 명령법을 말한다. 기독교인들이 우리의 직장과 사회에서 모범적으로 바로 선진사회의 문화적 질서를 지키는 삶을 보여주어야 한다. 이것이 바로 오늘날 한국 기독교인들이 선진국 진입에 있어서 해야할 사회적(社會的) 성화(聖化)의 삶을 보여주는 모습이다.
김영한(기독교학술원장/숭실대 기독교학대학원 초대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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