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 영어 클라스에서 주관하는 보올링 경기에 영어를 배우는 학생들의 가정 식구들과 운동을 하기 위해 참여하게 되었는데 한 엄마가 양 손에 남녀의 어린아이를 잡고 보올링장에 들어오는 것을 보았다.

그 중에 이제 3살이 채 되지 아니하는 남자아이에게 친근하게 말을 건네려고 접근을 하는데 처음보아서 그러는지 뭔가 쑥스러워하며 고개를 돌리고 엄마의 뒤로 숨는 것이었다. 그리고 보올링이 시작되는데 너무나도 조용할 뿐 아니라 차분히 한 쪽 구석에 앉아있는 것을 보았는데 그 모습은 아이의 아버지가 보올링장에 오기 이전까지였다.

경기를 하기위해 조금늦게 도착한 아빠의 얼굴이 아이에게 보이자 큰 소리를 치며“아빠”하고 달려가는 것이었다. 그 후부터 아이는 사람들을 아랑곳하지 아니하고 보올링을 하는 라인이 어디든지 상관없이 자신의 좋은 기분을 표현하기 위해 여기저기 정신없이 뛰어다녔고 그를 본 식구들은 아이를 번갈아 가면서 쫓기 시작하였다. 수줍어하던 아이가 갑작스럽게 에너지가 넘쳐 여기저기 뛰어다니며 웃움을 지었던 천진난만한 그 아이가 역동적인 행동을 취한 것의 요인은 분명히 자신을 “너는 내 아들이라”고 인정하는 아빠가 자신의 곁에 있기 때문이라고 볼때 그에게 아빠의 효과(Father’s Effect)는 대단한 것이었다.

아이가 발랄하게 아빠를 보고 에너지를 가질수 있었던 것을 보면 그아이에게 아빠는 평상시 친구처럼 느껴졌을 것이며 시간이 날때마다 아들과 함께 놀았던 아버지와 아들간의 상호작용에 의한 것이라고 볼수 있다. 이러한 상호작용은 이성적인 뇌의 발달에 좋은 영향을 줄 뿐 아니라 삶을 바라보는 시각에 긍정적인 힘을 가져다 줄 수 있는 것이다.

이와 반대로 상호작용이 원만하게 이루어지지 아니하는 자녀들은 또래 집단에서도 늘 외토리 처럼 맴돌게 되고 뇌속에 긍정적이고 희망적으로 자신이나 사회의 구조를 바라 보아야 하는데 늘 부정적이고 자신의 미래를 어둡게 바라볼 것이다. 아빠들의 행복이라면 자신이 하는 일이 즐겁고 보람되다 느끼면 누구나다 자녀들이 아버지의 하는일들을 이어받기를 바랄 것이다.

특별히 목사들은 자녀들이 대를이어 주님을 섬기고 영혼을 구원하는 일들을 감당하는 교회의 목사가 되기를 위해 기도하고 늘 꿈을 꾸게 된다. 그러나 이러한 것은 기도만 가지고, 아버지의 바람만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자녀에게 보여준 아버지의 모습이 신뢰가 이루어질때 목사인 아버지의 하는일을 존경할 뿐 아니라 그 길이 소중하게 느껴져 대를 잇는 교역자가 될 수 있다.

어느 목사님이 자신이 사랑하는 아이가 사춘기가 되었을때 자신의 아들이 목사가 되기를 위해 오랫동안 기도했던 것을 같이 나누고 아들에게 할아버지도 목사이기에 나를 이어 고등학교를 졸업하면 신학교에 가는 것이 어떤가에 대해 물어 보았을때 그 아들로 부터 아버지 목사는 대단한 충격을 받게 되었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 이유는 아들이 아버지에게 “나는 목사가 될 수 없는 세가지 이유가 있습니다.”라고 말을 한 것때문이었다.”첫째는 나는 남들 앞에서 말을 유창하게 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두 번째, 나는 일을 추진하는데 있어서 리더쉽이 부족하기에 리더를 돕는 역활을 하겠습니다.”그 말을 들은 목사는 이 두 가지는 시간이 지나서 노력하면 누구나 변할 수 있기에 목사가 될 수 없다고 생각하는 것은 합당한 것이 아니라고 말을 했다는 것이다. 문제는 세번째이었는데 “내가 목사가 될 수 없는 것은 아버지가 가정을 돌보는 일보다 교회에 너무나 치중하였기에 나도 이 다음에 목사가 되면 아버지처럼 가정을 잘 보살필 수 있는 목사가 될 수 없을 것 같아 목회자에 관심이 없다.”는 말이었다.

그것을 들은 아버지 목사는 아들에게 굉장한 수치스러운감과 아들에게 미안한감이 들어서 “그래! 아들아 그러면 네가 원하는대로 하려므나”라고 자유함을 주었다는 것을 들었었다. 사춘기를 맞은 아이의 행복은 아마 아빠가 교회 목사가 아니라 자신이 어렵고 힘이드는 상황에 아빠가 자신의 좋은 친구로 그리고 인생의 선배로 그에게 자리잡기를 바랐지만 그러기에는 너무나 많은 시간동안 아빠와 함께한 기억이 없을 뿐 아니라 자신의 아빠가 교회의 목사님으로만 자리잡은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시편2편을 보면 “그 아들에게 입맞추라 그렇지 아니하면 그 진노하심으로 너희가 길에서 망하리니 그 진노가 급하심이라 여호와를 의지하는 자는 다 복이 있도다.”이말은 하나님이 모든 열방의 영혼들을 사랑하여 그의 아들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가 이땅에 오셔서 인간의 죄를 사하시기 위해 조건없이 십자가에서 희생하신 그 아들에게 입맞추라는 것이다. 그렇지 아니하면 아들을 사랑하시고 그를 영화롭게하신 하나님의 진노에서 피할 수 없게되는 상황에 처하게 될 것이며 삶이 부패하게 된다는 말이다. 이것에 대한 이유는 하나님의 자녀들이 입맞춤을 하고 의지하는 대상이 세상이어서는 아니된다는 것이다.

입을 맞춘다는 것은 나의 마음에 끌린다는 것이며 하나로 동화된다는 것을 상징하는 것이라고 볼때 살아계신 우리주 예수 그리스도에게 입맞추지 아니하고 세상에 입맞추게 되면 세상은 헛되고 무익하기에 그것이 주는 유익이 그리 크지못할 뿐 아니라 세상은 사람들에게 잠시 잠깐만 기쁨을 주기 때문이다. 세상이 사람들에게 보여주는 것은 더 많은 것과 인간의 힘으로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생각에의해 하나님의 권위에 도전하는 것을 권장하는 어리석음을 갖게 하는데 그것은 바라는 것이 쉽게 이루어지지 아니하거나 삶을 통해 어려움를 겪게되면 쉽게 포기하고 분노하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 중심의 세상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기에 하는일이 실수 투성이고 “민족들이 허사를 경영”하는 것처럼 헛된 가치를 추구하게 되고 삶을 바라보는 것이 긍정적인 것보다는 부정적인 것이 우선이 되고 하나의 사랑의 공동체보다는 분열과 불신을 갖게 된다.

이것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어제도 오늘도 그리고 내일도 변함없이 동일하게 인류를 사랑하시는 살아계신 그리스도 즉 창조자 하나님께서 “너는 내 아들이라”고 여기시는 주님을 절대적으로 믿고 살아가는 것인데 그 이유는“여호와를 의지하는 자는 다 복이 있도다”라고 말씀 하셨기 때문이다. 이것을 위해서는 겸손한 자세로 주님께 굴복하는 삶을 살아야 하는데 이것은 곧 주님이 말하시는 그 무엇이든지 그 말씀에 덧붙여서도 가감해서도 안되는 말씀 그대로 순종하는 삶을 살아가는 것이고 그분에게 모든 것을 구하는 삶을 사는 것이다. 하나님의 자녀들은 자신을 영원토록 축복하시고 늘 함께하시는 아버지의 품에 있을때 안전하고 축복이라 볼때 살아계신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안에 거하는 삶을 사는 것이다.

크로스로드 한인교회 김칠곤목사 문의전화:425-773-93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