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에서 생활로, 구호에서 실천으로’, 탈북자 문제에 대한 전국민적 관심이 높아지면서 ‘북한인권 3.0’ 시대가 본격 열리고 있다.

지난달 31명의 탈북자들이 중국에서 강제 억류돼 북한으로 송환될 위기에 처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국민적인 반대운동이 전개되고 있는 것. 특히 이제는 중국 등 제3세계에서 숨어지내거나 임시 수용된 탈북자 대책과 아울러, 근본 문제인 북한 주민들의 인권과 통일에까지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사실 탈북자 문제는 북한이 지난 1990년대 말 ‘고난의 행군’으로 상징되는 끔찍한 식량난 때부터 시작됐다. 하지만 이 ‘북한인권 1.0’ 때는 김대중·노무현 좌파정권의 영향과 함께 북한에 남은 탈북자 가족의 신변 위험 등으로 본격 이슈화되지 못했다.

이러한 이유들로 2011년 이전까지는 일부 인권운동가들이 문제를 제기하거나, 동남아 등 제3세계에 임시 수용된 탈북자들의 열악한 처우 문제가 언론 등에 소개되는 정도였다. 대중들도 일부 좌파언론들의 선동 때문에 탈북자 이슈를 ‘정치적’으로 인식하면서 피부에 와닿는 운동이 일어나지 못하게 됐다.

하지만 국내 정착 탈북자가 1만명, 2만명을 넘어서고 탈북자 문제가 ‘우리 주변’ 문제가 되면서 이같은 흐름이 변화의 물꼬를 트기 시작했다. 직접적인 계기가 된 건 지난해 1월 북한의 정치범수용소 문제를 다룬 ‘그곳에는 사랑이 없다’ 전시회였다. 한동대학교 ‘세상을 이기는 그리스도의 지성(세이지)’ 소속 청년들은 대표적 화랑가인 서울 인사동에서 전시회를 열어 5천여명의 관람객을 눈물바다로 만들었다.

특히 부제였던 ‘통영의 딸이 그곳에 있습니다’가 반향을 불러오면서 ‘북한인권 2.0’ 시대가 개막됐다. 유학생 오길남 박사가 한때 잘못된 선택으로 북한에 들어갔다가 함께 데리고 나오지 못한 부인 신숙자와 딸 혜원·규원을 구명하자는 움직임이 자발적으로 통영지역 교회들과 주민들을 중심으로 일어나게 됐다. 전시회는 1년간 전국 교회에서 계속돼 구출운동과 탈북자 문제에 관심을 불러일으켰고, 때마침 ‘아랍의 봄’을 이끈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 바람을 타고 여기저기서 확산됐다.

단식하는 국회의원, 친구 도와달라는 대학생, 연예인들까지…

▲탈북청년 대표가 편지를 읽자 참석한 연예인들이 눈물짓고 있다.

이러한 가운데 최근 31명의 탈북자들이 중국에 억류돼 있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국민적인 반대운동이 일어나기 시작, 북한인권 3.0 시대를 열어젖혔다. 여기에는 청년층을 중심으로 시작돼 SNS를 타고 전세계로 번진 ‘Save My Friend’ 운동과, 연예인들이 뭉쳐 결성한 ‘Cry with Us’ 모임, 그리고 45kg의 가냘픈 체구로 단식에 나섰던 박선영 의원(자유선진당)이 큰 역할을 했다.

탈북자 친구의 동생이 중국 공안에 잡혀있다는 사연을 접한 대학생들이 시작한 ‘Save My Friend’ 운동은 탈북자 문제를 상징하는 구호가 됐고, 탈북자 이슈가 ‘정치’가 아닌 ‘사람의 목숨’이 달린 일임을 재확인시켰다는 평가다. 이들이 시작한 서명운동에는 전세계인들이 참가해, 2주일만에 100여개국에서 16만명 이상이 동참했다. 이들은 오는 20일까지 온·오프라인에서 1백만명의 서명을 받아 후진타오 중국 국가주석과 힐러리 클린턴 美 국무장관 등에게 전달할 예정이다(savemyfriend.org).

연예인들도 힘을 보탰다. 평소 탈북 청소년들에게 관심을 표시해 온 대표적인 선행 배우 차인표 씨와 개그우먼 이성미 씨 등 연예인 20여명은 지난달 21일 중국대사관 앞에서 기자회견을 개최한 데 이어, 지난 4일에는 연세대 백주년기념관에서 탈북자들을 위로하고 강제북송중지를 호소하는 콘서트 ‘Cry with us’를 열었다.

함께한 50여명의 연예인들은 한 목소리로 “우리는 비록 정치는 잘 모르지만, 돌아가면 죽거나 수용소행이 뻔한 탈북자들을 내버려둘 수 없다”며 “가족의 소중함을 누구보다 잘 알기에 동참했지만, 우리 힘으로 할 수 있는 일이라곤 함께 울어주는 것 뿐”이라고 말했다. 활동의 제약이 생길지도 모르는 상황 속에서도 용기를 낸 이들의 결단으로 대부분의 언론들이 몰려왔고, 탈북자 이슈가 확산되는 데 크게 기여했다. 이들은 전국 순회 콘서트를 계속 가질 계획이고, 전세계 연예인들의 동참을 이끌어 탈북자들을 돕겠다는 의지를 갖고 있다.

5천만 국민 동참 위한 과제는… 진정성으로 하나돼야


▲탈북자들의 강제북송중지를 위해 촛불을 들고 기도하는 성도들 모습. 이 촛불이 전국 교회로 확산돼야 탈북자 문제도 해결되고, 통일도 가까워질 것이다.

물론 남은 과제도 산적하다. 무엇보다 탈북자들이 이미 북송됐다는 관측이 나오는 등 중국이 아직 의미있는 변화를 보이지 못하고 있고, 아직 진보·좌파 언론들이 침묵하고 있다. 소위 ‘개념’ 연예인들도 아직 탈북자 문제에는 숨죽이고 있다. 하지만 이들까지 힘을 합친다면 지난 2008년 광우병 촛불집회보다 더한 국민적 동참을 이끌어낼 수 있다는 점에서, 포기할 수 없는 과제다. 최근 정부의 탈북자 문제에 대한 적극적인 자세도 들끓는 국내 여론으로 인한 것이었다.

탈북자 친구를 위해 ‘Save My Friend’ 운동을 시작한 청년 김지유 씨는 이에 대해 지난 5일 “전세계에서 16만명 이상이 탈북자 강제북송반대에 서명하고 이중 미국인만 10만명이 넘는데, 정작 한국인은 1만 2천여명에 불과하다”며 “아이티나 일본에서 지진이 나도 도움을 주는 한국인들이 탈북자들에게 무관심한 것이 이해되지 않는다”고 토로한 바 있다.

이러한 침묵 때문인지 온라인상에서는 한 기독 CEO가 ‘Cry with us’ 운동에 대해 “연예인들은 독자적으로 모여 무언가를 조직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에, 이들 뒤에는 한 대형교회가 있다는 이야기가 돌고 있다”는 음모론을 제기하면서 논쟁이 불붙기도 했다. 여기에는 ‘탈북자 살리기’에 심정적으로 지지하지만 여기에 앞장선 세력과는 함께하기 싫은 이들이 적극 동조했다.

결국 중국을 움직이기 위해서라도, 정치적인 입장을 떠나 ‘탈북자 구출’이라는 대전제 아래 전 국민이 하나되는 일이 필수적이다. 이를 위해서는 무엇보다 탈북자 문제를 정쟁의 대상으로 삼지 않으려는 태도가 절실하다는 평가다. 그러므로 이제까지 인권 이슈에서 활발히 목소리를 냈지만 탈북자 문제만을 침묵해 오던 세력들을 더 이상 비난하거나 ‘이중잣대’로 폄하하지 말고, 먼저 다가가 동참을 권유하는 손을 내밀어야 한다.

지난 4일 콘서트에서 맷 데이먼 등 할리우드 배우들과 그룹 U2의 보노에게 탈북자들을 위해 나서줄 것을 요청한 차인표 씨 등 연예인들이 순수성과 진정성을 갖고 가까이 있는 김제동과 공지영, 김여진 등 ‘소셜테이너’들에게도 공개적으로 탈북자들을 위해 힘을 합치자고 제안해볼 수 있다. 새 지도부가 구성된 후 탈북자 문제에 앞장서고 있는 한국기독교총연합회(대표회장 홍재철 목사)도 전통적으로 인권을 중시하는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총무 김영주 목사)에 ‘조건없는 동참’을 제의한다면, 최근 잇따른 분쟁으로 얼룩진 한국교회 이미지 쇄신과 연합운동 활성화에 기여할 수 있을 것이다.

이처럼 탈북자 문제가 국민적인 관심사로 떠오를 때만이 반대하던 이들은 더 이상 이 문제를 외면하지 못하고, 통일을 위한 걸음도 빨라질 수 있다는 결론이 나온다. 이는 탈북자 이슈가 강력히 제기되자 민주통합당이 탈북자 강제북송반대 결의안을 제출한 것이나, 새누리당이 강세인 대구 지역에 출마한 김부겸 의원 등이 탈북자 강제북송에 대해 목소리를 내기 시작한 것만 봐도 충분히 실현 가능한 일이다. 정치인들은 자발적으로 형성된 거대한 여론에 기본적으로 따르지 않을 수 없다.

이렇게 탈북난민의 생명이라는 가치 아래 힘을 하나로 결집한다면, 한민족의 최종 목표인 통일이라는 ‘북한인권 4.0’ 시대를 맞을 수 있을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먼저 총선과 봄바람에 잠시 숨고르기에 들어간 중국대사관 앞 집회가 더욱 활성화돼야 하고, 여기에 한국교회가 앞장서 탈북자 강제북송의 흐름을 끊어내야 한다.

이에 대해 서경석 목사는 한 세미나에서 “지난 역사 속 3·1운동과 민주화운동처럼, 대가를 치르더라도 북한 주민들과 탈북자들을 생각하고 행동하는 일이야말로 기독교적인 태도”라며 “생명을 살리는 일에 신학생들부터 나서야 하고, 모든 교회가 돌아가면서 1주일에 하루만이라도 중국대사관 앞으로 나와 함께 기도하자”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