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 주면 ‘재의 수요일(2월 22일)’을 시작으로 사순절이 시작된다. 사순절의 절정은 고난주간이고, 그 ‘연관검색어’로는 미디어든 음식이든 ‘금식’이 자연스레 떠오른다.
하지만 크리스천들에게, 특히 오래 믿은 이들일수록 금식에 대한 부담감이나 거부감이 생기는 것도 사실이다. “꼭 곡기를 끊어야 하나님이 기도를 들어주시는가”는 투덜거림부터 시작해 “‘금식까지 했지만’ 아무런 변화가 없었다”며 분노하기도 한다. 때로는 바리새인들이 그랬던 것처럼 ‘좋은 신앙인이라면 마땅히 해야 할 일’로 인식되기도 한다.
신약학자 스캇 맥나이트의 <금식(IVP)>은 이러한 ‘금식’의 오용과, 심지어는 남용에서 벗어나 ‘가장 아름답고 거룩한 몸의 언어’로서 금식의 제자리를 찾아준다. 이는 금식의 ‘과정(순서)’을 되돌아보는 데서부터 시작된다.
저자는 금식이 ‘수단’이 아니라 ‘자연스러운 반응’이라는 데서 실마리를 찾는다. “인생의 비통하고 엄숙한 때에 나타나는 지극히 자연스럽고도 당연한 반응”이라는 것. 이러한 상황, 이를테면 가까운 이들의 죽음이나 깊은 질병, 죄가 드러난 순간이나 국가적 위기의 순간 등에 닥치면 대다수 사람들은 먹고 마시려 하지 않는다. 저자는 “기독교 전통의 핵심은, ‘금식하면 어떤 결과를 얻을 것이다’가 아니라, ‘이런 일이 일어날 때 하나님의 백성은 금식한다’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물론 금식으로 인해 죽음에서 생명을, 죄에서 용서를, 위험에서 소망을, 결핍에서 충만을, 질병에서 건강이라는 ‘결과물’을 얻을 수 있지만, 금식이 이러한 ‘더 좋은’ 결과를 얻기 위한 의도적인 행위는 아니라고 저자는 강조한다. 금식이 이렇듯 ‘더 좋은 결과’를 위한 의도적인 행위가 될 때, 금식은 ‘수단’으로 전락하고 우리는 신앙에서 그토록 경계하던 바리새인이 된다.
저자는 “상황은 무시하고 오로지 결과에만 집착하는 금식은 진정한 기독교적 영성 훈련이 아니라, 결과를 조작하는 수단일 뿐”이라 정리하면서 “그리스도인의 영성 훈련에서 금식에 대한 인식이 가장 잘못된 이유는, 영과 육이 연결되어 있다고 보았던 고대의 지혜가 이원론으로 인해 사라지거나 왜곡되었기 때문”이라는 견해도 제시한다.
저자에 따르면 우리는 몸을 사용해서 아주 구체적이고 가시적이고 육체적이고 감각적인 방법으로 하나님께 경배하고 하나님에 대한 사랑을 표현한다. 금식도 이처럼 몸으로 표현하는 영성, 즉 ‘몸의 언어’다. 하지만 우리는 어느덧 비통하고 엄숙한 순간에도 자연스럽게 금식으로 반응하지 않게 됐는데, 이는 영성과 몸의 연관성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성경에서는 몸이 무척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육체와 영혼을 ‘유기적인 통합체’로 보고 있다. 그러나 우리의 사고는 몸과 영혼이라는 이원론으로 나뉘어 영혼과 정신, 의지, 영원한 삶 등은 선하게 보는 반면, 몸과 육체, 마음, 이 땅의 삶 등은 좋지 않게 보게 됐다. 저자는 “몸에 대한 통합적 인식을 회복함으로써, 몸을 끌어안는 영성을 창조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러한 인식이 회복되면 ‘금식’은 우리에게 몸의 언어이자 돌이킴이고, 몸의 간구이자 탄식이며, 몸의 훈련이자 체험, 소망이 될 수 있다. 저자는 이를 구약부터 시작해 초대교회와 기독교 역사를 근거로 설명한다.
이와 함께 저자는 “금식 전후에 폭식을 한다면 금식의 의미도 무색해질 뿐 아니라 건강에도 해롭다”, “올바른 건강의 원리들을 지키며 지혜롭게 금식하지 않으면 몸을 해칠 수 있다”, “성경에 나오는 금식은 살을 빼거나 건강을 증진하려는 노력과 아무 상관이 없었다”는 등 글을 마무리하면서 실제적인 이야기를 빼놓지 않는다.
<금식>은 ‘IVP 영성의 보화 시리즈’ 제5권이다. 시리즈 이전 책이었던 ‘십일조’에 개인적으로 약간 실망을 느낀 터라 별 기대 없이 펼쳤지만, 아주 잘 정리되고 유익한 책이라는 느낌이다. ‘역사적 예수 연구’ 권위자라는 그의 이 책 속에는 故 김준곤 목사의 일화도 만날 수 있다.
곧 다가올 사순절, “자신을 돌아보고 죄를 고백하고 회개하고 금식함으로써 용서의 기적과 부활절에 주어지는 생명의 능력을 체험하는” 기간으로 삼는 건 어떨까. 물론, “해야만 하는 것”이 아니라, “하지 않을 수 없어서” 하는 것이다.
하지만 크리스천들에게, 특히 오래 믿은 이들일수록 금식에 대한 부담감이나 거부감이 생기는 것도 사실이다. “꼭 곡기를 끊어야 하나님이 기도를 들어주시는가”는 투덜거림부터 시작해 “‘금식까지 했지만’ 아무런 변화가 없었다”며 분노하기도 한다. 때로는 바리새인들이 그랬던 것처럼 ‘좋은 신앙인이라면 마땅히 해야 할 일’로 인식되기도 한다.
신약학자 스캇 맥나이트의 <금식(IVP)>은 이러한 ‘금식’의 오용과, 심지어는 남용에서 벗어나 ‘가장 아름답고 거룩한 몸의 언어’로서 금식의 제자리를 찾아준다. 이는 금식의 ‘과정(순서)’을 되돌아보는 데서부터 시작된다.
저자는 금식이 ‘수단’이 아니라 ‘자연스러운 반응’이라는 데서 실마리를 찾는다. “인생의 비통하고 엄숙한 때에 나타나는 지극히 자연스럽고도 당연한 반응”이라는 것. 이러한 상황, 이를테면 가까운 이들의 죽음이나 깊은 질병, 죄가 드러난 순간이나 국가적 위기의 순간 등에 닥치면 대다수 사람들은 먹고 마시려 하지 않는다. 저자는 “기독교 전통의 핵심은, ‘금식하면 어떤 결과를 얻을 것이다’가 아니라, ‘이런 일이 일어날 때 하나님의 백성은 금식한다’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물론 금식으로 인해 죽음에서 생명을, 죄에서 용서를, 위험에서 소망을, 결핍에서 충만을, 질병에서 건강이라는 ‘결과물’을 얻을 수 있지만, 금식이 이러한 ‘더 좋은’ 결과를 얻기 위한 의도적인 행위는 아니라고 저자는 강조한다. 금식이 이렇듯 ‘더 좋은 결과’를 위한 의도적인 행위가 될 때, 금식은 ‘수단’으로 전락하고 우리는 신앙에서 그토록 경계하던 바리새인이 된다.
저자는 “상황은 무시하고 오로지 결과에만 집착하는 금식은 진정한 기독교적 영성 훈련이 아니라, 결과를 조작하는 수단일 뿐”이라 정리하면서 “그리스도인의 영성 훈련에서 금식에 대한 인식이 가장 잘못된 이유는, 영과 육이 연결되어 있다고 보았던 고대의 지혜가 이원론으로 인해 사라지거나 왜곡되었기 때문”이라는 견해도 제시한다.
저자에 따르면 우리는 몸을 사용해서 아주 구체적이고 가시적이고 육체적이고 감각적인 방법으로 하나님께 경배하고 하나님에 대한 사랑을 표현한다. 금식도 이처럼 몸으로 표현하는 영성, 즉 ‘몸의 언어’다. 하지만 우리는 어느덧 비통하고 엄숙한 순간에도 자연스럽게 금식으로 반응하지 않게 됐는데, 이는 영성과 몸의 연관성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성경에서는 몸이 무척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육체와 영혼을 ‘유기적인 통합체’로 보고 있다. 그러나 우리의 사고는 몸과 영혼이라는 이원론으로 나뉘어 영혼과 정신, 의지, 영원한 삶 등은 선하게 보는 반면, 몸과 육체, 마음, 이 땅의 삶 등은 좋지 않게 보게 됐다. 저자는 “몸에 대한 통합적 인식을 회복함으로써, 몸을 끌어안는 영성을 창조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러한 인식이 회복되면 ‘금식’은 우리에게 몸의 언어이자 돌이킴이고, 몸의 간구이자 탄식이며, 몸의 훈련이자 체험, 소망이 될 수 있다. 저자는 이를 구약부터 시작해 초대교회와 기독교 역사를 근거로 설명한다.
이와 함께 저자는 “금식 전후에 폭식을 한다면 금식의 의미도 무색해질 뿐 아니라 건강에도 해롭다”, “올바른 건강의 원리들을 지키며 지혜롭게 금식하지 않으면 몸을 해칠 수 있다”, “성경에 나오는 금식은 살을 빼거나 건강을 증진하려는 노력과 아무 상관이 없었다”는 등 글을 마무리하면서 실제적인 이야기를 빼놓지 않는다.
<금식>은 ‘IVP 영성의 보화 시리즈’ 제5권이다. 시리즈 이전 책이었던 ‘십일조’에 개인적으로 약간 실망을 느낀 터라 별 기대 없이 펼쳤지만, 아주 잘 정리되고 유익한 책이라는 느낌이다. ‘역사적 예수 연구’ 권위자라는 그의 이 책 속에는 故 김준곤 목사의 일화도 만날 수 있다.
곧 다가올 사순절, “자신을 돌아보고 죄를 고백하고 회개하고 금식함으로써 용서의 기적과 부활절에 주어지는 생명의 능력을 체험하는” 기간으로 삼는 건 어떨까. 물론, “해야만 하는 것”이 아니라, “하지 않을 수 없어서”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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