밸런타인데이(Valentine's Day)이 있는 주간입니다. 마켓에 가면 핑크색의 여러 선물과 사탕들이 올해도 어김없이 우리의 주머니를 노리고 있습니다. 학교에서도 해마다 친구들에게 조그마한 사탕들을 서로 나누어 주면서 즐기는데 왠지 이것을 안 하면 안 되는 것처럼 느껴지는 것이 마음을 씁쓸하게 합니다.
왜 이날에 선물을 꼭 줘야하고 받아야 하는지, 앞에서는 사랑을 말하지만 뒤로는 사랑보다 눈에 보이는 선물을 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몰고 가는 상업적인 대중매체에 속아 넘어가고 있는 것은 아닌지 또 어릴 때부터 이런 이벤트가 있는 날이면 마음에는 아무런 감정이 없더라도 선물만은 웃으면서 줘야한다는 생각을 자리 잡게 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 봅니다.
발렌타인의 유래는 이러하다 합니다. 3세기경 로마에서는 황제의 허락을 받아야만 결혼을 할 수 있었다 합니다. 당시 로마 황제 클라우디우시 2세는 원정을 떠나는 병사들의 정신이 헤이해지는 것을 막기 위해 결혼을 금했기 때문입니다. 집에서 사랑하는 아내가 기다리고 있다고 생각하면 전쟁터에서 용감히 싸우기 보다는 어떻게든 살아 돌아가기 위해 위험을 피하려고만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발렌타인>이라는 사제가 한 연인의 참된 사랑을 맺어주기 위해 결혼 주례를 서 주었고 이 때문에 황제로부터 처형을 당하게 되었는데 그날이 2월 14일이었다고 합니다. 그 후로 그 사제의 희생을 기리는 날이 지금까지 이어져 왔다고 하네요. [출처] 발렌타인데이의 유래(네이버)
사람이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뭔가를 한다는 것은 그 자체가 위대한 일이고 삶을 살아가게 하는 의미임에 틀림이 없습니다. 이런 사랑이 상품과 이벤트를 같이 한다면 더 좋을 수 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주객이 바뀌어서 사랑의 척도가 상품으로 결정이 된다면 우리는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한 가지를 잃어버리는 것입니다.
이것은 마치 결혼식에서 하객들의 식사를 생각해서 결혼식을 대충 빨리 끝내고 식사를 대접하는 일이나 마찬가지입니다. 결혼식을 하는 이유는 모든 사람들에게 밥을 먹이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신랑신부 두 사람의 앞날을 축복해주고 격려해주고 오래 사랑하며 잘 살도록 권면하는 것입니다. 식사는 부산물이지 메인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정확하지는 않지만 밸런타인데이의 처음 의도는 사랑하는 사람에게 자기의 마음을 전달하는 기회와 용기를 주고 희망을 주는 의도로 시작이 되었지 선물을 꼭 주고받으려고 생긴 날은 아니었으리라 생각을 합니다.
때로는 사랑을 표현하고 마음을 전달하는 수단으로 선물을 주고받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방법은 방법이지 메인이 될 수도 또 되어서도 안 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물질만능주의라는 심각한 공해에 피해를 입고 있습니다. 이것은 어떠한 공해보다 온난화보다 더 심각하게 사람들을 황폐화 시키고 있습니다. 성공의 기준도 삶의 목표도 심지어 사랑도 물질이 더 우선순위가 되어가는 삭막한 인생을 만든다는 것입니다.
사람이 살아가면서 재물이 필요합니다. 그것을 부정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사람은 재물만 가지고는 살아가지 못하는 존재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밥 잘먹고 생존해 있다고 삶이 아닙니다. 그런 것으로 인간이 행복하다면 옛날에 보리고개를 넘고 먹을 것이 없어서 고생을 했던 옛날사람들이 자살률이 높고 우울증 환자들이 많아야 하는데 그렇게 어렵던 시절보다 지금이 훨씬 더 많다는 것입니다.
사랑은 받아서 좋은 것이 아니라 주어서 좋은 것입니다. 사랑은 가졌기에 좋은 것이 아니라 함께 가질 수 있는 희망이 있기에 좋은 것입니다. 사랑은 모든 사람이 좋아하기에 예쁜 것이 아니라 내가 좋아하기에 예쁜 것입니다. 사랑은 받아서 좋은 것이 아니라 느낄 수 있기에 좋은 것입니다.
성경에 보면 “내가 사람의 방언과 천사의 말을 하더라도 내게 사랑이 없다면, 나는 울리는 종과 시끄러운 꽹과리와 다를 게 없습니다. 내가 예언하는 선물을 받고, 모든 비밀과 모든 지식을 헤아리고, 또 산을 옮길 만한 믿음을 가지고 있다 하더라도 내게 사랑이 없다면, 나는 아무것도 아닙니다.”(고전 13장, 쉬운성경)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다가오는 밸런타인데이를 즐겁고 의미 있게 보내시기를 바랍니다. 껍데기 선물과 하이퍼 되는 캔디에 돈쓰지 말고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진정한 사랑의 캔디를 주고받는 모두가 되기를 축복합니다.
축복합니다, 사랑합니다, 감사합니다. 아름다운교회 임성택 목사.
왜 이날에 선물을 꼭 줘야하고 받아야 하는지, 앞에서는 사랑을 말하지만 뒤로는 사랑보다 눈에 보이는 선물을 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몰고 가는 상업적인 대중매체에 속아 넘어가고 있는 것은 아닌지 또 어릴 때부터 이런 이벤트가 있는 날이면 마음에는 아무런 감정이 없더라도 선물만은 웃으면서 줘야한다는 생각을 자리 잡게 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 봅니다.
발렌타인의 유래는 이러하다 합니다. 3세기경 로마에서는 황제의 허락을 받아야만 결혼을 할 수 있었다 합니다. 당시 로마 황제 클라우디우시 2세는 원정을 떠나는 병사들의 정신이 헤이해지는 것을 막기 위해 결혼을 금했기 때문입니다. 집에서 사랑하는 아내가 기다리고 있다고 생각하면 전쟁터에서 용감히 싸우기 보다는 어떻게든 살아 돌아가기 위해 위험을 피하려고만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발렌타인>이라는 사제가 한 연인의 참된 사랑을 맺어주기 위해 결혼 주례를 서 주었고 이 때문에 황제로부터 처형을 당하게 되었는데 그날이 2월 14일이었다고 합니다. 그 후로 그 사제의 희생을 기리는 날이 지금까지 이어져 왔다고 하네요. [출처] 발렌타인데이의 유래(네이버)
사람이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뭔가를 한다는 것은 그 자체가 위대한 일이고 삶을 살아가게 하는 의미임에 틀림이 없습니다. 이런 사랑이 상품과 이벤트를 같이 한다면 더 좋을 수 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주객이 바뀌어서 사랑의 척도가 상품으로 결정이 된다면 우리는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한 가지를 잃어버리는 것입니다.
이것은 마치 결혼식에서 하객들의 식사를 생각해서 결혼식을 대충 빨리 끝내고 식사를 대접하는 일이나 마찬가지입니다. 결혼식을 하는 이유는 모든 사람들에게 밥을 먹이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신랑신부 두 사람의 앞날을 축복해주고 격려해주고 오래 사랑하며 잘 살도록 권면하는 것입니다. 식사는 부산물이지 메인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정확하지는 않지만 밸런타인데이의 처음 의도는 사랑하는 사람에게 자기의 마음을 전달하는 기회와 용기를 주고 희망을 주는 의도로 시작이 되었지 선물을 꼭 주고받으려고 생긴 날은 아니었으리라 생각을 합니다.
때로는 사랑을 표현하고 마음을 전달하는 수단으로 선물을 주고받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방법은 방법이지 메인이 될 수도 또 되어서도 안 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물질만능주의라는 심각한 공해에 피해를 입고 있습니다. 이것은 어떠한 공해보다 온난화보다 더 심각하게 사람들을 황폐화 시키고 있습니다. 성공의 기준도 삶의 목표도 심지어 사랑도 물질이 더 우선순위가 되어가는 삭막한 인생을 만든다는 것입니다.
사람이 살아가면서 재물이 필요합니다. 그것을 부정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사람은 재물만 가지고는 살아가지 못하는 존재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밥 잘먹고 생존해 있다고 삶이 아닙니다. 그런 것으로 인간이 행복하다면 옛날에 보리고개를 넘고 먹을 것이 없어서 고생을 했던 옛날사람들이 자살률이 높고 우울증 환자들이 많아야 하는데 그렇게 어렵던 시절보다 지금이 훨씬 더 많다는 것입니다.
사랑은 받아서 좋은 것이 아니라 주어서 좋은 것입니다. 사랑은 가졌기에 좋은 것이 아니라 함께 가질 수 있는 희망이 있기에 좋은 것입니다. 사랑은 모든 사람이 좋아하기에 예쁜 것이 아니라 내가 좋아하기에 예쁜 것입니다. 사랑은 받아서 좋은 것이 아니라 느낄 수 있기에 좋은 것입니다.
성경에 보면 “내가 사람의 방언과 천사의 말을 하더라도 내게 사랑이 없다면, 나는 울리는 종과 시끄러운 꽹과리와 다를 게 없습니다. 내가 예언하는 선물을 받고, 모든 비밀과 모든 지식을 헤아리고, 또 산을 옮길 만한 믿음을 가지고 있다 하더라도 내게 사랑이 없다면, 나는 아무것도 아닙니다.”(고전 13장, 쉬운성경)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다가오는 밸런타인데이를 즐겁고 의미 있게 보내시기를 바랍니다. 껍데기 선물과 하이퍼 되는 캔디에 돈쓰지 말고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진정한 사랑의 캔디를 주고받는 모두가 되기를 축복합니다.
축복합니다, 사랑합니다, 감사합니다. 아름다운교회 임성택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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