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학년을 둔 모든 부모들의 관심은 자녀들의 대학진로에 관한 것으로 자녀들과 함께 긴장과 더불어 조금은 예민해 있음을 부모들과 대화를 하면 느낄수있다. 그 중에 하나같이 공통적인 것은 “자녀 교육은 내 맘대로 안되는것 같다. 요즘 아이들은 도대체 자기 멋대로 인 것 같다. 부모말에 순종을 잘 하지 않는것 같다.”라는 말들이다. 이런 대화들 가운데 어느 분이 필자에게 질문하기를 “목사님 자녀는 목사님에게 잘 순종하십니까?” 그때 그분의 질문에 이렇게 답을 주었던 기억이 나는데 그것은 바로 “오늘날 십대들은 우리가 부모님에게 순종하던 시대와 다른 것 같습니다. 십대들이 부모들에게 순종하려면 그들이 볼때 부모의 제안이 합리적이어야 하고 그들의 중심에 부합되어야 부모를 따르는것 같습니다.”라고 말하자 그분이 말하기를 “그러기에 저는 내 자녀를 상전(上殿)으로 모시고 삽니다.” “목사님도 자녀를 상전으로 모시고 사셔야 삶이 편합니다.” 우스개 소리로 그분이 필자에게 던진 말이지만 그말이 그냥 머리속에 스쳐지나가는게 아니라 회전되어 몇번이고 생각해 보았는데 과연 왜 현대인의 부모가 자녀를 상전으로 모셔야 하는가 이었다. 그것은 곧 현대인인 부모들이 십대들에게 보여주고 가르쳐 주는것이 나르시시즘이 아닌가? 그것으로 말미암아 젊은이들을 이기주의인 나르시시스트로 만들어지기 때문이라고 본다.

그렇다면 사람들을 이기적으로 만들어내는 자기애(自己愛) 즉 나르시시즘(narcissism) 은 무엇일까? 그것의 정의를 정신 분석학적으로 보면 “자신의 외모, 능력과 같은 어떠한 이유를 들어 지나치게 자기 자신이 뛰어나다고 믿거나 아니면 사랑하는 자기중심성 성격 또는 행동을 말한다.”이것은 자라가는 십대 청소년들이 자신의 주체성을 형성하는 과정속에서 누구에게나 나타나는 삶의 한 과정인데 이것을 정신 분석학에서는 인격적인 장애증상이라고 말을 한다.

그런데 이러한 인격적인 결함을 가진 사람들이 현대인들의 사회에 폭넓게 받아들여지고 있을 뿐 아니라 사회적으로 높은 자리에 앉아 많은 문제성들을 드러내면서도 자신이 마치 완벽한 사람으로 여기며 허상속에 만족을 느끼며 살아가는데 사람들은 그들을 “행복과 부러움의 대상”으로 여긴다는 것은 현대인들의 역병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이러한 역병들이 국민을 대표하는 정치인들이나 TV화면에 나타나는 유명한 연예인들과 엄청난 액수의 금액을 받고 운동을 하는 스포츠 스타들에게 번져있다면 이것은 사회적으로 심각한 병이 아닐 수 없다는 것이다. 어느 이민2세의 젊은 청년과 함께 이야기 하던중 앞으로 결혼 계획에 대해 물어 보았는데 그 형제가 말하기를 같은 한국인이지만 한국여성과 결혼하기가 쉽지 않을 것 같습니다. 그이유는 “요즘 한국 여자들은 교제를 하려고 하면 BMW나 벤즈차를 사달라고 하는데” “저는 그런 돈이 없어서 결혼이 어려울 것 같습니다.” 이러한 허영심과 사회적인 병폐에 의해 많은 사람들이 상처를 받고 있다는 사실이다.

나르시시즘으로 인해 사회가 계속적으로 병이 들거나 나르시시스트 때문에 상처속에 묻혀 산다면 그것은 참으로 불행한 것이다. 이것으로부터 “나”를 지키는 치료를 해야하는 것이고 부모도 십대들과의 갈등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분명 “치료의 방법”을 간구해야 할 것이다. 그것은 먼저 십대들이 과연 무슨생각을 하고 있는지 그들이 가지고 있는 고민이 무엇인지를 알고 그들의 문화를 이해하고자 하는 폭을 넓혀야 하는것이다. 십대들 뇌의 구조는 부모들의 뇌와 다르다는 인식을 해야 하는데 그것은 바로 “십대들의 결정적인 발달기”를 이해 하는 것이다. “십대의 뇌는 급속한 흐름 한 가운데 있기에 정신없이 뒤엉키고 있기에 그것이 정상이라고 여겨야 한다.” 그리고 그들은 한번쯤은 무엇에 미쳐보고 싶은 충동에 빠지고 싶은 욕구를 가질뿐 아니라 무슨일을 할때 앞뒤 상황을 재보지 않고 생각나는대로 자신이 원하는일 들을 행하게 되는 것이다. 심리학자들은 그들이 그러한 과정속에서 자신의 정체성과 주변을 바라보는 시각의 변화를 가진다는 것이다. 그렇기에 그들을 대할때 일방적으로 막무가내식의 화를 낼것이 아니라 민주적이고 합리적으로 십대들에게 이해를 시키는 것이 중요하다. 특별히 이민자들의 1세대와 2세대 사이에는 영어와 문와의 큰차이의 벽이 있기에 그들과 많은 대화를 통해서 서로가 오해고 이해하지 못하는 장벽들을 허물어 나가야 한다.


대화가 갈등의 구조를 완벽하게 해결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대화를 통해 문제의 갈등을 극소화 할수 있고 십대와 부모사이의 신뢰를 구축하는데 있어서 최선의 방법이라 할수 있다. 게임에서 탈출하지 못하는 십대들, 부모 눈에 전혀 삶의 목적이 보이지 아니하는 십대들을 권위와 일방적으로 명령하여 순종하기를 바란다면 그들은 더이상 대화의 문을 열지 아니할 뿐 아니라 부모를 더이상 존경하지도 감사하지도 아니할 것이고 부모가 원하는 방향과 항상 맞서 대결하려는 갈등이 계속될 것이고 사랑에 의한 부모의 충고가 잔소리로만 남게 될 것이다. 분명 십대들에게 부모들이 존경받기를 바란다면 그들이 바라는 순종이 무엇인지를 이해하고 그들이 사고의 전환을 하도록 가르치는 것인데 두가지를 늘 생각해 보아야한다.

그것의 첫번째 “십대들의 합리주의와 이기주의를 잘 이해하는 것이다.” 그리고 둘째는 “영적으로 부모들도 하나님께 나의 삶의 모습이 십대처럼 살아가고 있지 아니한지를 발견하는 일이다.” 부모인 나 자신이 먼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려고 노력을 하고 있다면 십대들에게 좀더 사랑과 대화로 그들의 문제를 극복하도록 도와주며 살아갈 것이다. 순종은 내 자신의 상식과 지식을 초월하여 절대자인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는데 이것을 성경 말씀에서 찾아 본다면 그것의 한 부분은 예수님께서 게네사렛 호숫가에서 배를 타고 나가려고 하는 베드로에게 말하기를 “깊은데로 가서 그물을 내려 고기를 잡으라 시몬이 대답하여 가로되 선생이여 우리들이 밤이 맞도록 수고를 하였으되 얻은 것이 없지마는 말씀에 의지하여 내가 그물을 내리리이다 하고 그리한즉 고기를 에운 것이 심히 많아 그물이 찢어지는지라” 순종을 통해 기적이 일어나고 그일을 하나님께서 하시는데 이것을 부모들이 나르시시즘을 가지고 있는 십대들에게 가르치기 이전에 하나님께 먼저 순종하는 모습을 그들에게 보인다면 그들의 합리적이고 이기적인 아집은 녹아내리고 부모에게 순종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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