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삶을 여기까지 이끌어주고 지탱해준 힘인 `사랑'에 대한 빚을 갚으려 합니다"

한국계 미국인으로 백악관 차관보급 직위까지 올랐던 시각장애인 강영우(69) 박사가 삶의 마지막 촛불이 타오른 순간에도 아름다운 기부로 세상과 아름다운 이별을 준비했다.

9일(월) 밤 워싱턴 D.C 시내 중심부의 한 사무실에서 국제로터리 재단이 주최한 강 박사를 위한 감사 행사가 열렸다.

강 박사와 두 아들 폴 강(한국명 진석) 안과전문의, 크리스토퍼 강(진영) 백악관 선임법률고문이 국제로터리재단 평화센터의 평화장학금(Peace fellowship)으로 25만달러를 기부하기로 한데 따른 것.

강 박사가 20만달러를 내놓았고, 아버지의 제안으로 두 아들이 각각 2만5천달러씩을 갹출해 `강영우 패밀리'의 이름으로 장학금이 쾌척됐다.

지난해 연말 췌장암 발견으로 `앞으로 살 날이 한달 남짓 밖에 남지 않았다'는 의사의 선고를 받은 강 박사는 이전보다 여윈 모습이었지만 부인 석은옥 여사의 부축을 받고 행사에 참석했다.

강 박사의 오랜 벗인 법무장관 출신의 딕 손버그 전 펜실베이니아 주지사 부부와 피터 카일 미 의회 로터리 클럽 총재를 비롯, 몇몇 로터리 지구별 총재도 자리를 함께 했다.

강 박사는 1972년 국제 로터리재단 장학생으로 뽑혀 피츠버그대에서 유학헸고, 한국 최초의 미국 시각장애인 박사가 된 후 로터리 회원으로 활동하며 나눔의 삶을 실천해왔다.

시한부 삶 판정을 받은 사람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밝은 표정으로 행사에 참석한 강 박사는 "너무 많은 축복을 받고 살아온 삶에 대한 감사의 뜻"이라고 기부금을 낸 이유를 설명했다.

강 박사는 "세계 곳곳에서 벌어지는 갈등을 없애고 평화를 만들어가기 위해 공부하는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기부하고 싶었다"며 "재단에는 우리 기부금이 이왕이면 평화 프로그램에 참여한 한국 학생들을 위해 사용했으면 한다는 뜻도 전달했다"고 말했다.

그는 "우리가 받은 축복을 되갚기 위해 기부를 하자는 나의 제안에 흔쾌히 응한 두 아들에게도 너무 고맙다"고 이 행사에 함께 한 두 아들에게 사의를 표하기도 했다.

둘째 아들 크리스토퍼 강은 "40년전 아버지를 위한 그 장학금이 없었다면 오늘 우리 가족은 이 자리에 있을 수 없었을 것"이라며 "작지만 이를 갚을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돼 너무 감사하다"고 말했다.

이 장학금은 듀크대와 노스 캐롤라이나대에 설립돼 있는 로터리재단 평화센터 학생들의 학비로 사용된다.

이날 행사에는 두 대학의 평화센터 프로그램에 참여하고 있는 호주, 캐나다, 브라질, 일본, 수단, 아이티, 멕시코 등 세계 각국의 학생들도 참석했다.

강 박사의 역경을 이겨낸 감동적인 삶을 전해들은 각국의 학생들은 행사가 끝난 후 강 박사와 악수하기 위해 줄을 늘어섰다.

36년간 강 박사와 우정을 쌓아온 손버그 전 주지사도 오랜 벗의 마지막이 될지도 모를 행사에 참석해 축사했다.

이들은 1975년 비가 억수처럼 쏟아지는 어느 날 우산을 쓰고 지팡이에 의지해 학교로 향하던 낯선 한국인 `맹인' 유학생과 길 모퉁이에 차를 세워 그를 태워주는 친절을 베푼 한 연방검사장으로 처음 만난 이래 인연을 이어왔다.

손버그 전 주지사는 "강 박사는 신체적 장애가 장애이지만 않다는 것을 삶으로 보여준 분"이라며 "기부 소식을 듣고 정말 가슴이 따뜻해지고 뭉클했다"고 찬사를 보냈다.

강 박사는 지난해 12월 치유할 수 없는 말기 췌장암이라는 청천벽력같은 선고를 받았으나 이를 현실로 받아들이고 세상과 이별을 준비하기로 결심했고, 지난 성탄절을 앞두고 지인들에게 생애 마지막 이메일 인사를 보내기도 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