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교회(담임 오정현 목사)에서 매주 목요일 오후 7시 열리던 쥬빌리 통일구국기도회(공동대표 김동호, 오정현, 홍정길)가 북한 김정일 위원장의 사망을 기해 ‘쥬빌리 통일비상구국기도회’라는 이름으로 22일 오후 같은 장소에서 개최했다.
지난 2004년부터 시작돼 359차를 맞은 기도회에는 5백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오정현 목사가 ‘하나님의 때를 준비하는 기도의 동역자들’이라는 주제로 설교했다. 앞서 오후 5시에는 북한 관련 사역자들이 이를 설명하는 기자간담회를 열었다.
오정현 목사는 간담회에서 “통일은 기도하는 사람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선물이라 생각한다”며 “김정일 사망을 놓고 정치적 시각이 아닌 복음적 시각에서 바라봐야 한다”고 전했다. 오 목사는 “이런 시각에서 ‘때가 찼다’고 할 수 있다”며 “이번 사태를 계기로 느슨하게 연대하던 분들의 마음이 모아지길 바란다”고 했다.
오 목사는 “지난 1982년 동독 성니콜라이교회에서 시작된 기도회가 1990년 독일 통일의 결정적 역할을 했듯, 우리도 하나님의 새 일을 기대하며 기도해야 한다”며 “분명한 것은 북한 정권이 변하지 않았더라도 주민들은 변하고 있다는 사실이고, 이는 기도의 능력”이라고 전했다.
하광민 사무총장은 비상구국기도회 개최에 대해 “김정일 사망은 노환 때문으로 볼 수 있지만, 우리는 하나님의 신적 개입으로 해석한다”며 “이후 새로운 질서가 형성되는 와중에 생길지 모르는 여러 우려들을 놓고 ‘비상’하게 기도로 움직이자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유관지 목사(북한교회연구원장)는 “이번 사건의 교훈은 ‘통일은 도적같이 온다’는 사실”이라며 “하나님은 사람의 계획과 지식을 초월해서 일하신다”고 말했다. 유 목사는 “어떤 의미에서 4세 때까지 빨치산을 따라다니고, 7세에 어머니가 사망했으며, 8세에 동생이 죽고, 9세에 중국에서 학교를 다녔으며, 부인이 4명이나 있었던 김정일은 불행한 인간인데 이 문제를 아무도 다루지 않는다”고 했다.
주도홍 교수(기독교통일학회장)는 “김정일 사망은 한 인간의 죽음이자 독재자의 죽음이고, 불신자의 죽음이라 할 수 있다”며 “한국교회가 이번 기회에 각성해서 남북분단 극복이라는 하나님 주신 숙제를 풀어 나가야 한다”고 언급했다.
허문영 대표는 마지막으로 “오늘 간담회 결론은 ‘곧 통일이 온다’가 아니라, ‘통일이 오도록 기도해야 한다’가 돼야 한다”며 “김정일 사망에 관심을 갖기보다는, 동아시아에 다가올 심각한 여러 국가간 갈등을 푸는 기도를 해야 한다”고 정리했다.
쥬빌리 통일구국기도회측은 김정일 사망 발표일인 19일에도 긴급히 모여 다음날 오전 4시까지 철야기도를 한 것으로 알려져 관심을 모았다. 이날 기도회 인도자는 “오늘 이 자리는 사탄의 영향력, 사탄의 막대기가 뽑힌 축제의 자리이고, 하나님께서 직접 일하신 것을 받아들여야 한다”며 “그래도 하나님은 그동안 독재했던 사람들의 말로와 달리 김정일에게 체면을 지키도록 긍휼을 베풀었는데, 이는 그의 조부와 조모의 믿음의 기도를 하나님께서 기억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박영환 교수 “김정일 사망 발표 당시 평양에서는…”
사랑의교회 쥬빌리 통일비상구국기도회 기자간담회에 참석한 박영환 교수(서울신대 북한선교연구소장)는 북한이 김정일 사망을 발표할 당시 평양에 있었다. 그는 간담회에서 당시 상황을 자세히 설명했다.
박 교수를 비롯한 대북협력민간단체협의회 관계자 10명은 지난 17일부터 3박 4일 일정으로 황해북도 강남군의 탁아소와 소학교, 유치원에 전달한 밀가루 250톤에 대한 모니터링 실시차 북한을 방문했다.
박 교수는 “주일(18일) 봉수교회에서 예배를 드린 후 오후에 출국하려 했는데 모두들 쉰다고 해서 월요일로 미뤄졌다”며 “월요일 오전 11시쯤 기념품 구입차 백화점에 들어갔고, 이때만 해도 북측 안내원들과 농담을 주고받을 정도로 아무런 이상이 없었다”고 설명했다.
이후 11시 50분쯤 분위기가 이상해짐을 느꼈고, 안내원들이 갑자기 찻집에 가서 대기하라기에 이를 거부했다고 한다. 이들은 일행 중 2명이 대열을 이탈해 평양시내 일반인들과 섞여있다 적발된 일이나 평양시내를 촬영한 일 때문인 줄 알고 있었다. 그러나 당국자가 안내원들과 이야기를 나누더니 숙소인 보통강여관으로 가 있으라고 했다.
숙소에 도착하니 김일성 흑백사진 옆에 걸려있던 김정일 컬러사진이 덮개로 덮여 있었다고 한다. 식당에 갔더니 모든 직원들이 울면서 밥을 줄 생각을 하지 않고 있었다. 그때 한 중국인이 “애도”라고 하는 말을 듣고 방으로 돌아가 TV를 켰더니 김정일 사망 소식이 나오고 있었다.
박영환 교수는 “4시가 돼서야 점심식사를 할 수 있었다”며 “이후 모든 일정을 취소했고, 다음날 출국을 준비하라고 해 준비 후 출국했다”고 전했다. 박 교수는 “TV에서는 김정일을 애도하는 내용과 함께 ‘김정은 대장을 중심으로 단결하자’는 장면이 수 차례 교차 방영됐다”며 “김정은을 중심으로 내부 불안을 수습하려는 것처럼 보였다”고 전했다.
지난 2004년부터 시작돼 359차를 맞은 기도회에는 5백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오정현 목사가 ‘하나님의 때를 준비하는 기도의 동역자들’이라는 주제로 설교했다. 앞서 오후 5시에는 북한 관련 사역자들이 이를 설명하는 기자간담회를 열었다.
오정현 목사는 간담회에서 “통일은 기도하는 사람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선물이라 생각한다”며 “김정일 사망을 놓고 정치적 시각이 아닌 복음적 시각에서 바라봐야 한다”고 전했다. 오 목사는 “이런 시각에서 ‘때가 찼다’고 할 수 있다”며 “이번 사태를 계기로 느슨하게 연대하던 분들의 마음이 모아지길 바란다”고 했다.
오 목사는 “지난 1982년 동독 성니콜라이교회에서 시작된 기도회가 1990년 독일 통일의 결정적 역할을 했듯, 우리도 하나님의 새 일을 기대하며 기도해야 한다”며 “분명한 것은 북한 정권이 변하지 않았더라도 주민들은 변하고 있다는 사실이고, 이는 기도의 능력”이라고 전했다.
하광민 사무총장은 비상구국기도회 개최에 대해 “김정일 사망은 노환 때문으로 볼 수 있지만, 우리는 하나님의 신적 개입으로 해석한다”며 “이후 새로운 질서가 형성되는 와중에 생길지 모르는 여러 우려들을 놓고 ‘비상’하게 기도로 움직이자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유관지 목사(북한교회연구원장)는 “이번 사건의 교훈은 ‘통일은 도적같이 온다’는 사실”이라며 “하나님은 사람의 계획과 지식을 초월해서 일하신다”고 말했다. 유 목사는 “어떤 의미에서 4세 때까지 빨치산을 따라다니고, 7세에 어머니가 사망했으며, 8세에 동생이 죽고, 9세에 중국에서 학교를 다녔으며, 부인이 4명이나 있었던 김정일은 불행한 인간인데 이 문제를 아무도 다루지 않는다”고 했다.
주도홍 교수(기독교통일학회장)는 “김정일 사망은 한 인간의 죽음이자 독재자의 죽음이고, 불신자의 죽음이라 할 수 있다”며 “한국교회가 이번 기회에 각성해서 남북분단 극복이라는 하나님 주신 숙제를 풀어 나가야 한다”고 언급했다.
▲제359차 쥬빌리 통일비상구국기도회가 열리고 있다. | |
쥬빌리 통일구국기도회측은 김정일 사망 발표일인 19일에도 긴급히 모여 다음날 오전 4시까지 철야기도를 한 것으로 알려져 관심을 모았다. 이날 기도회 인도자는 “오늘 이 자리는 사탄의 영향력, 사탄의 막대기가 뽑힌 축제의 자리이고, 하나님께서 직접 일하신 것을 받아들여야 한다”며 “그래도 하나님은 그동안 독재했던 사람들의 말로와 달리 김정일에게 체면을 지키도록 긍휼을 베풀었는데, 이는 그의 조부와 조모의 믿음의 기도를 하나님께서 기억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박영환 교수 “김정일 사망 발표 당시 평양에서는…”
사랑의교회 쥬빌리 통일비상구국기도회 기자간담회에 참석한 박영환 교수(서울신대 북한선교연구소장)는 북한이 김정일 사망을 발표할 당시 평양에 있었다. 그는 간담회에서 당시 상황을 자세히 설명했다.
박 교수를 비롯한 대북협력민간단체협의회 관계자 10명은 지난 17일부터 3박 4일 일정으로 황해북도 강남군의 탁아소와 소학교, 유치원에 전달한 밀가루 250톤에 대한 모니터링 실시차 북한을 방문했다.
박 교수는 “주일(18일) 봉수교회에서 예배를 드린 후 오후에 출국하려 했는데 모두들 쉰다고 해서 월요일로 미뤄졌다”며 “월요일 오전 11시쯤 기념품 구입차 백화점에 들어갔고, 이때만 해도 북측 안내원들과 농담을 주고받을 정도로 아무런 이상이 없었다”고 설명했다.
이후 11시 50분쯤 분위기가 이상해짐을 느꼈고, 안내원들이 갑자기 찻집에 가서 대기하라기에 이를 거부했다고 한다. 이들은 일행 중 2명이 대열을 이탈해 평양시내 일반인들과 섞여있다 적발된 일이나 평양시내를 촬영한 일 때문인 줄 알고 있었다. 그러나 당국자가 안내원들과 이야기를 나누더니 숙소인 보통강여관으로 가 있으라고 했다.
숙소에 도착하니 김일성 흑백사진 옆에 걸려있던 김정일 컬러사진이 덮개로 덮여 있었다고 한다. 식당에 갔더니 모든 직원들이 울면서 밥을 줄 생각을 하지 않고 있었다. 그때 한 중국인이 “애도”라고 하는 말을 듣고 방으로 돌아가 TV를 켰더니 김정일 사망 소식이 나오고 있었다.
박영환 교수는 “4시가 돼서야 점심식사를 할 수 있었다”며 “이후 모든 일정을 취소했고, 다음날 출국을 준비하라고 해 준비 후 출국했다”고 전했다. 박 교수는 “TV에서는 김정일을 애도하는 내용과 함께 ‘김정은 대장을 중심으로 단결하자’는 장면이 수 차례 교차 방영됐다”며 “김정은을 중심으로 내부 불안을 수습하려는 것처럼 보였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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